1. 이 약은 한 번 맞는 데 천만 원이 넘게 들지만, 동맥경화를 막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
2. 배달을 마친 LDL 콜레스테롤은 간으로 복귀하거나 말초 세포에 흡수되며 임무를 끝마칩니다. 그런데 운이 나쁜 LDL 콜레스테롤도 있습니다. 퇴근길에 혈관벽에 끼여 버려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불운한 LDL 콜레스테롤로부터 동맥경화는 시작됩니다.
3. 다행히 사고가 난다고 전부 동맥경화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생각보다 여러 과정이 필요하고 시간도 꽤 소요됩니다. 과학자들은 사고를 아예 안 나게 할 수는 없겠지만 사고가 나더라도 병으로 확대시키지 않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사고 차량, LDL 콜레스테롤이 동맥경화로 발전하는 데에는 최소 3가지의 조건이 필수적입니다. 그 조건은 산화과정, 염증과정, 그리고 어제 다룬 혈관 평활근 세포의 개입입니다.
4. 사고로 방치된 차량이 녹이 슬 듯, 혈관내피세포에 끼인 LDL 콜레스테롤도 시간이 흐르며 산화됩니다. 특히 산소를 많이 머금은 동맥혈과 깊숙한 혈관 내막은 산화를 늦추기에 좋지 않은 환경입니다. 혹시 담배를 태우거나, 혈당마저 높다면 산화는 더 빨리 일어납니다.
5. 녹이 슨, 산화 LDL 콜레스테롤은 결국 원래의 분자 구조를 잃어버립니다. 마침내 내피세포는 녹슨 LDL(ox-LDL)을 외부 침입자로 인식해 ‘처리반’을 불러 모읍니다. 내피세포가 분비하는 SOS 신호 (MCP-1/VCAM-1등)를 전해 듣고 사고 현장으로 가장 먼저 부랴부랴 달려오는 것은 단핵구라는 세포입니다.
6. 도착한 단핵구는 처리를 위해 LDL 콜레스테롤이 끼여 있는 혈관 내막 속으로 들어옵니다. 혈관 내막을 통과하며 단핵구는 변신을 하는데요. 전문 처리반 대식 세포(macrophage)로 업그레이드합니다. 대식 세포로 변신한 단핵구는 예전과 많은 점이 달라집니다. 무엇보다 특별한 무기를 하나 가지게 됩니다. 바로 스캐빈저 수용체라는 것으로, 무려 무제한 수거가 가능한 특수 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팔을 가진 대식세포는 치워야 할게 남아 있다면 절대 멈추지 않고 끝까지 처리하는 책임감 강한 녀석이 됩니다.
7. 참고로 우리가 몸에 새기는 문신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 게 다 이 대식세포 덕분입니다. 피부에 주입된 잉크를 이물질로 인식한 대식세포가 그 잉크를 몽땅 잡아먹고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며 머물러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보는 문신은 피부 속 잉크가 아니라, 사실 잉크를 가득 머금은 채 그 자리를 우직하게 지키고 있는 대식세포들인 셈입니다. 대식세포는 생명력이 무지 강해서 몇 년 동안은 폐기물을 가진 채 버틸 수 있고, 대를 이어 폐기물을 승계하기도 합니다.
8. 문신 잉크를 한가득 머금는 것처럼, 대식세포는 녹슨 LDL 덩어리들도 섭취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대식세포도 한계가 있습니다. 무한정 수거할 수는 있지만 무한정 저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콜레스테롤은 기름이라, 어찌 보면 문신의 잉크보다 훨씬 더 생리적으로 난이도가 높은 폐기물입니다. 결국 대식 세포 내의 처리기관 (리소좀 등)의 용량을 넘어서면 대식세포에게 위기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세포 내 콜레스테롤 결정화는 NLRP3 인플라마좀의 활성화를 유발함) 그러고 보니 무한정 수거가 가능한 특수 팔, 스캐빈저 수용체가 썩 곱게 보이지 않습니다.
9. 대식 세포도 엄연한 세포인지라, 세포 질 내 콜레스테롤이 많아지면 뱉어내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HDL 콜레스테롤에서 소개해드렸던 콜레스테롤 펌프(ABCA1)는 에너지(ATP)를 써서 콜레스테롤을 강제로 세포 외부로 토해내는 통로입니다. 말 그대로 안간힘을 써서 구역질하듯 콜레스테롤을 세포 밖으로 꺼내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나가던 HDL (ApoA1 단밸질)이 잽싸게 다가와 버려진 콜레스테롤을 수거하는 겁니다. 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대식세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쌓여있는 폐기물을 처리하러 복귀할 수 있습니다.
10. 문제는 이런 콜레스테롤 인계가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질 때입니다. 기름으로 빵빵해져서 곧 터져버릴 것 같은 위기감을 느낀 대식세포가 SOS 신호를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이게 문제인 게, 대식세포가 보내는 SOS 신호가 보통 신호가 아닙니다. 왜냐면 앞서, 단핵구가 대식세포로 변신하면서 얻게 된 능력 중에는 ‘염증세포 어셈블’ 명령권도 있었거든요. 처리는 해야 하는데, 본격적인 염증이 그 좁은 내피세포 안에서 한바탕 벌어지는 걸 생각하니 걱정입니다.
11. 이 '염증세포 어셈블' 신호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IL-1β입니다. IL-1β은 동맥경화가 악화되는 첫 번째 중요한 고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IL-1β는 근처 혈관 벽에 부착 분자 (VCAM-1 등)를 수십 배 많이 발현시키게 해 더 많은 단핵구가 몰려들 수 있게 합니다. IL-1β은 간에 작용해 CRP와 같은 염증 물질을 대량 생산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IL-1β은 중막에 있던 평활근 세포를 자극해 사고 현장으로 넘어오게 만드는 신호를 활성화시킵니다. 어제 다루었지만 중막의 평활근 세포는 변하긴 하지만 제대로 작동은 못해서 일을 더 그르치는 골치 아픈 녀석입니다.
12. 서두에서 소개해 드린 일라리스(Ilaris), 성분명 카나키누맙(canakinumab)은 이 IL-1β에 선택적으로 결합해 중화하게 만든 단일 클론 항체입니다. (졸레어나 키트루다와 동일한 방식) 카나키누맙은 IL-1β과 결합해 IL-1 receptor type I와의 결합을 1:1로 막음으로써 염증이 확산되는 것을 막습니다. 원래는 희귀병을 위해 개발된 치료제인데, IL-1β는 동맥경화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니 동맥경화 환자에게 써보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로 진행된 연구가 있었습니다. (CANTOS연구)
13. 연구 결과는 흥미로웠습니다. 카나키누맙을 투여한 환자군은 콜레스테롤 수치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지만 위약 대비 심혈관 사건(심근경색, 뇌졸중, 심혈관계 사망) 발생 위험이 15% 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100 인년당 3.86건 vs. 4.50건) 물론 염증 지표인 hsCRP 수치도 현저히 감소했습니다. (카나키누맙 용량에 따라 26%~41% 감소) 이 말인즉슨 동맥경화가 일어나는 데에는 LDL 콜레스테롤이 많고 적음만이 관여하지 않으며 염증 반응 또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염증반응만 막더라도 치명적인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14. 하지만 이런 뛰어난 효과를 보여준 카나키누맙이 아쉽게도 동맥경화에 표준 치료로는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높은 가격도 문제긴 하지만, 카나키누맙 투여군에서 위약 투여군에 비해 치명적인 감염 및 패혈증 발생률이 유의하게 높게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사망률(all-cause mortality)도 막상 투약하지 않은 군과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강력한 항염증 효과를 가진 면역 억제제이기 때문에 면역력이 저하되고 심각한 감염도 종종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15. 하지만 카나키누맙과 비교해 약 15,000 분의 1 밖에 안 되는 가격으로, 심각한 부작용 걱정 없이, 비슷한 효과를 보이는 약이 있으니 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약은 바로, 놀랍게도 스타틴입니다. 스타틴은 단순히 콜레스테롤을 덜 만드는 기전으로만 작동하지 않습니다. 스타틴은 굉장한 다각적 효과를 통해 동맥경화를 효과적으로 억제합니다. (Pleiotropic effects) 항염 작용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16. 심지어 스타틴은 대식세포가 IL-1β 신호를 내기 전부터 작용합니다. 천만 원짜리 신약은 이미 나온 IL-1β를 1:1로 마크하는 데 스타틴은 훨씬 고차원적으로 작동하는 겁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스타틴의 기전인 HMG-CoA reductase를 억제한 결과가 단순히 콜레스테롤의 생산만 막지 않고 다른 단백질의 생산도 함께 방해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앞서 스타틴이 CoQ10 생산 경로까지 막는 바람에 근육통이 생긴다며 트집을 잡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막아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17. 스타틴의 항염증 효과는 대규모 임상 시험을 통해 증명되었습니다. 스타틴을 복용한 환자들은 hsCRP 수치가 37%나 떨어졌습니다. 천만 원짜리 신약 카나키누맙에 못지않습니다! (JUPITER 연구) 심혈관 위험도 절반 가까이 줄었습니다. 이러한 결과가 가능한 것은 분자화학적으로는 스타틴이 프레닐화(Prenylation)를 차단함으로써 일어납니다. Guanosine triphosphate (GTP) 결합 단백질인 Rho A, Rac, Ras 이 활성을 가지려면 프레닐화가 필수적입니다. 스타틴이 Rho를 막으면 NF-κB가 중단되고 IL-1β 신호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18. 간간히 스타틴을 몹 쓸 약으로 치부하는 분들의 의견을 볼 때마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이런 동맥경화의 기전 곳곳에 스타틴이 작용하는 이점을 놓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런 점을 설명하기는 매우 지루하고 복잡한데 반해, "아니, 그거 우리 몸에서 당연히 필요하니 만들어지는 건데, 그걸 줄였다가 무슨 일을 당하려고!"라는 단순한 겁박용 멘트는 참으로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