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약은 줄줄 새던 돈을 아껴 신장의 비용구조를 개선시킵니다.
2. 지난번 글에서, 신장은 물물교환을 위한 에너지 '화폐'로 나트륨을 쓴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폐기물을 버리려면 쓰레기봉투를 사야 하는 것처럼 신장 또한 노폐물과 수분을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서는 나트륨이라는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다만 우리가 필요할 때 구입하는 쓰레기봉투와 비용 지불의 방식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신장은 일단 투자금을 왕창 내고, 대부분을 회수한 뒤, 최종적으로 소변으로 나가는 만큼의 나트륨만 소비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소변이 짜다면 비용이 많이 들어간 것이고 (회수에 실패) 우리 소변이 맹맹하다면 비용을 덜 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투자금 규모를 결정하는 방식은 사구체에서 얼마나 나트륨을 내보내는가(여과율)입니다. 많이 거르면, 많이 투자됩니다. (모두 다 빠져나가므로)
https://brunch.co.kr/@ye-jae-o/210
3. 모든 사업이 그렇듯이 우리 신장에서도 일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냐를 확인하는 부위가 있습니다. 치밀반이라고 하는 세뇨관의 특수 부위는 소변이 흘러가는 길의 중간 정도에 위치해 소변의 나트륨 농도를 평가하고 대책을 내어놓는 역할을 부여받았습니다. (즉, 중간 정산에 해당) 이 치밀반에는 NKCC2라고 하는 채널이 빼곡하게 붙어 있습니다. 원래 NKCC2라고 하는 채널은 나트륨과 칼륨 및 염소 두분자를 커플링 해서 세포 내부로 들여 신장의 삼투압을 부위별로 다르게 만든 뒤 이 삼투압의 힘을 통해 다름 아닌 물을 몸으로 재흡수하는 데 씁니다. 참고로 가장 대중적인 이뇨제, 라식스(furosemide)가 바로 이 NKCC2의 Cl (염소) 한자리를 차지해 이뇨작용 (항-재흡수작용)을 나타내는 약입니다.
4. 여하튼, 이 NKCC2가 어느 정도로 활성화되는 가를 보고 신장은 '이후 분기'에 투입할 비용을 결정합니다. (피드백 과정) 중간 지점까지 기준 이상으로 이 채널이 활성화가 된다는 것은 비용이 남았다는 것입니다. (잔고가 많아요.) 반대로 중간지점에서 나트륨이 기준 이하로 측정되었었다면 비용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잔고가 부족해요.) 피드백을 받은 뒤 투자금을 더 넣으려면 사구체에 들어가는 혈류량을 늘리면 되고, 반대로 돈이 남았다면 굳이 사구체에 들어가는 혈류량을 유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회수하는 것도 거저 되는 것은 아니고 다 에너지를 써야 하니까요.
5. 실제 과정을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먼저 소변에 남은 나트륨이 너무 많은 경우입니다. 나트륨이 많으므로 치밀반의 NKCC2가 많이 작동합니다. 세포 내부로 들어온 Na, K, Cl 2 분자가 늘어나니 반대편 벽에서 Na+-K+ ATPase가 나트륨을 퍼내기 위해 맹렬히 작동하고, 펌프를 작동하려니 ATP가 소비됩니다. ATP가 방전되며 나오는 물질 중에 아데노신이 있는데 이 아데노신은 사구체로 인입되는 동맥, 수입세동맥의 직경을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동맥의 직경이 줄었다는 것은 사구체의 여과율을 낮추는 효과로 이어집니다. 2번에서 말씀드린 대로 여과율은 바로 투자규모입니다.
6. 반대로 나트륨이 너무 적게 검출되면 치밀반에서 ATP가 덜 쓰이므로 아데노신도 덜 나옵니다. 아데노신이 나오지 않은 수입세동맥은 확장되어 사구체에 좀 더 많은 양의 피를 들여보냅니다. 버리는데 돈(나트륨)이 더 필요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다만 무엇 때문에 나트륨을 많이 써버렸나, 뭐가 문제인가를 파악할 정도의 의사결정은 아닙니다. 신장에 뇌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수입세동맥이 늘어나고, 사구체를 통과하는 혈액의 양도 늘어나며, 그 결과 사구체를 건너는 나트륨과 그 밖에 여러 가지 (포도당 포함) 것들도 늘어나 치밀반에 적정한 농도의 나트륨이 검출될 때까지, 즉 치밀반에서 다시 아데노신이 나올 때까지 이 경향성은 지속됩니다.
7. 이 사업 점검 과정을 우리는 사구체-세뇨관 피드백(tubuloglomerular feedback, TGF)이라고 부릅니다.
8. 당뇨병성 신장병증의 첫 번째 단계가 바로 이 사구체 과여과 상태입니다. 사구체를 통과한 포도당이 너무 많다 보니 근위세뇨관에서는 최대한의 포도당을 재흡수하려 토큰(나트륨)을 씁니다. 버릴 수는 없잖습니까. 딴 것도 아니고 에너지로 바로 쓰이는 귀한 포도당인데요. 그래서 당뇨병 환자의 신장은 굉장히 대사적으로 항진된 상태가 됩니다. 지난 글에서 말씀드렸듯 산소 소모량도 무척 늘어납니다. 왜냐면 포도당을 흡수하려면 세뇨관의 나트륨을 줄여야 하고 줄이기 위해 나트륨을 퍼내는 펌프를 작동시키려면 ATP를 써야 하니까요.
9. 여기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이다음입니다. 포도당을 재흡수하려 토큰을 써버리고 나니 중간정산할 때 비용이 부족하다고 인식되는 겁니다. 치밀반에서는 이유를 막론하고 잔고가 적으므로 나트륨(돈)을 더 넣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 결과 앞에서 다뤘듯이 사구체로 들어오는 동맥은 늘어나고 사구체에 들어오는 혈액의 양도 늘어납니다. 사구체에 들어오는 혈액의 양이 늘었다는 것은 포도당도 늘었다는 것이므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아니 더 악화됩니다.
10. 치밀반은 사구체-세뇨관 수준의 '국소' 피드백 외에 또 다른 상위 체계로 비용의 변화를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나트륨이 많은 상황은 보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나트륨이 부족한 상황은 위기 상황일 수 있습니다. 쓰레기봉투만 보는 치밀 반 입장에서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까지는 알 수가 없지만 혹시 모르니 일감이 줄었다는 걸 상위 체계에 보고를 하는 겁니다. 왜냐면, 출혈이나 혈압의 감소로도 나트륨이 적게 검출될 가능성도 있거든요. (저기, 갑자기 평소보다 나오는 쓰레기가 줄었는데 혹시... 누가 죽은 거 아닐까요?)
11. ATP를 쓰지 않는 치밀반은 아데노신 대신 프로스타글란딘(PGE2)을 만들어내는데 이 프로스타글란딘이 사구체옆세포(Juxtaglomerular cells, JG cells)에 작용해 레닌을 분비하게 만듭니다. 레닌은 안지오텐신 II를 거쳐 부신에 가서 알도스테론을 분비하게 하고 알도스테론은 집합관과 원위세뇨관에 작용해 ENaC(Epithelial Sodium Channel)를 발현하게 합니다. 이 복잡한 전신의 피드백 과정을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위기상황인지도 모르니 일단 물 그거, 내보내지 말고 좀 잡고 있어 봐"라는 절차입니다. 많이 만들어진 ENaC는 소변 속의 나트륨을 재흡수하고, 체액량을 유지합니다.
https://brunch.co.kr/@ye-jae-o/206
12. 이 알도스테론은 1) 치밀반의 영향으로 방출된 레닌이 중단될 때까지 (아니네요. 다시 쓰레기 나와요. 잠시 여행 갔나 봐요.) 2) 칼륨이 떨어져 질 때까지 (저, 나트륨 아끼려다 칼륨이 떨어졌는데요) 3) 돈을 아끼려다 혈압이 너무 높아져 다른 상위 장기 (심장 등)의 개입이 들어올 때까지는 유지됩니다. 즉, 출혈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될 때까지는 보호작용이 유지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13. 문제는 9번의 상황, 즉 포도당을 재흡수하느라 토큰이 부족해진 것도 역시나 보고가 이뤄지고 부신 등 상위 체계에서는 '확실하지 않지만 일단 체액을 좀 가둬놔'라는 판단을 내린 뒤, 그 여파로 수출세동맥이 잠가진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RAAS의 항진 상황입니다. 안지오텐신 II 탓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