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든 고요함
바로 떠오르는 사건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행운일지도 모른다. 책의 첫 번째 주제가 ‘11월’이라 멋지게 글을 써보려 했지만, 나에게 11월은 특별한 개성이 없는 달이다. 12월의 조연 같은 느낌이랄까.
10월은 은행과 단풍 덕에 계절의 변화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커다란 은행나무의 노란빛이 가로등 불빛과 어우러지는 장면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12월은 차가워지는 공기와 함께 연말의 설렘이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에 드러난다. 거리마다 캐럴이 흘러나오고 트리가 반짝인다.
그 사이에 있는 11월은 그저 무색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달. 그래서 오히려 평온하다. 사람들은 흔히 특별한 사건을 기억하려 하지만, 때로는 아무 일도 없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 삶을 살아낼수록 평범한 순간만큼 기적적인 일은 없다. 화려하지 않기에 마음이 고요해지고, 조용하기에 삶의 결이 또렷해진다.
무색한 11월 속에서 나는 평온을 얻는다. 그 고요함이 이 책에 스며들어, 읽는 이에게도 잠시 숨 고르는 평온을 전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