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의 산책

살아있다는 감각, 하루가 내 것임을 느끼는 시간

by 예 진리




‘살아있음이 버겁다’고 느껴지던 날들이 있었다. 삶을 지탱하던 중요한 것들이 모두 무너져버렸다고 생각되던 시절이었다. 직장, 교회 공동체, 남자친구. 직장은 나에게 지속적인 성취감을 안겨주는 공간이었다.


교회 공동체는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매개였고, 남자친구라는 존재는 각박한 서울 생활 속 유일한 내 편이었다. 그러나 이 세 가지가 짧은 시간 안에 하나씩, 조금씩, 결국 모두 다 무너졌다. 직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고, 교회에서는 오해가 쌓였다. 나는 점점 무너져 갔고, 지쳐버린 남자친구마저 내 곁을 떠났다.






그때는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이 너무 괴로웠고, 최대한 짧은 하루를 만들기 위해 일찍 잠들었다. 한 시간이 넘는 출근길은 숨이 막혔고,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걸을 때마다 힘이 빠졌다. 일을 하며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조차 버거울 때가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지만 억지로 먹었다. 혹시 쓰러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짧아야 할 점심시간조차 길게 느껴졌다.






그때 나는 숨을 쉬기 위해 산책을 시작했다. 점심시간이면 무작정 걸었다. 걷는 동안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집중하다 보면, 나의 의식이 선명해짐을 느꼈다. ‘오늘은 구름이 많구나.’, ‘나무가 참 높다.’, ‘길이 참 예쁘다.’, ‘햇살이 좋다.’ 그렇게 잠시나마 살아있음을 느꼈다. 산책을 하고 나면 오후 시간이 조금은 견딜 만해졌다.






힘이 생기기 시작하자 퇴근길에도 두 정거장 먼저 내려걸었다. 내게 일어난 일들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을 내려놓고, 현재 느껴지는 자극들에 집중했다. 산책을 할 때면 그럴 수 있었다. 지금의 공기와 바람, 눈앞의 풍경에 집중했다. 그 순간만큼은 살아있다는 감각이 또렷했다. 그렇게 조금씩 일상이 회복되었다.






나는 여전히 산책을 좋아한다. 아무런 계획 없이 갑자기 걷는 시간이 좋다. 집에 빨리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퇴근길을 걸을 때, 비로소 하루가 내 것임을 느낀다. 산책은 하루를 쫓기듯 살지 않게 도와준다. 이 글을 읽는 그대도 무작정 걸어보기를.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