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하는 일과 누리는 순간 사이에서
이번 여행은 최대한 셔터를 누르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
나는 예쁜 풍경을 보는 게 좋고,
그 풍경 앞에서 멍하니 서 있는 시간이 좋다.
그 순간에 들리는 새소리와 물소리,
잔잔한 공기도 좋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안에 있는 ‘나’를 남기는 데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풍경 속의 나,
그 풍경 속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나.
아마도
이렇게 예쁜 공간과 순간에 있었던 나를
기억하고 싶었던 거겠지.
하지만 그런 나를 남기려 할수록
이 순간을 온전히 누리기는 어려워진다.
시간이 지나 보면 사진은 좋을지 몰라도,
지금의 감각은 자주 놓치게 된다.
좋아하는 일에
‘해야 하는 일’이 새치기하기 때문이다.
대개는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의 무게가 더 무겁다.
그래서 모든 생각과 감정이
순식간에 그쪽으로 전염된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가능한 한 카메라를 켜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예쁜 풍경들만 사진첩에 남았다.
내 모습은 거의 없다.
그래도 좋았다.
내가 누리고 있는 순간들에
꼭 내가 등장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찍은 사진이니까.
그 사진을 찍은 내가,
이미 그 안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