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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L Mar 27. 2017

당신은 내 친구입니까? 적입니까?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건



I don't know who my friends are who my enemies are. They love me some, they cheat me some in the same way. Why do I have to live with them, why do I love them?

나는 누가 내 친구인지, 누가 나의 적인지 모르겠어요. 그들은 똑같은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속이기도 하죠. 나는 왜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며, 왜 그들을 사랑해야 하는 거죠?

- 자우림, #1



고등학교 때 즐겨듣던 노래를 다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이곳 발칸반도에서. 몇 년 동안 듣지 않아 머릿속에서 잊혀진 노래를 왜 이곳에서 다시 부르게 되는 걸까 싶었다.

발칸반도에 온 이후, 생각했던 것 그 이상으로 많은 사람을 만났다. 해가 뜨고 지듯이 만남과 헤어짐이 수차례 반복되었다. 사진을 찍고 있으면, 벤치에 앉아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다가와 말을 붙였다. 길을 걷는 와중에도 붙잡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발칸반도에선 동양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보니 더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할아버지들은 종종 자국 언어로 말을 걸어오면서 악수를 청했고, 한국인을 처음 봤다며 기념으로 함께 사진을 찍어 달라고 이야기하는 주민도 있었다. 또 길 위에서 마주친 여행자들은 뭐라도 마시면서 같이 이야기 나누자며 나를 이끌었다.




Dubrovnik, Croatia

처음엔 무섭기도 하고, 영어도 부족하여 그 자리에서 몇 마디를 나누고 곧장 돌아섰다.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으니까. 이들이 진짜 어떤 의도로 나에게 접근한 지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 명제가 생각하면 할수록 기이하더라.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으니까 믿을 수 없지만 반대로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으니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닐까.

뜻밖의 만남을 거절함으로써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도 있지만, 또한 진짜 친구를 만날 기회까지도 저버릴 수 있는 거니까. 그때부터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사귀기 시작했다.


물론 그 무턱댄 믿음 덕분에 소피아에서 나도 모르는 남자친구가 30분 동안 있었던 어이없는 해프닝이 일어 났으며, 오흐리드에서는 변태와 마주치기도 했다. 아직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하다.




Ohrid, Macedonia

호수 옆으로 빙 둘러진 오솔길을 혼자 걷고 있었다. 숲 옆으로는 절벽이 이루어져 있었고, 절벽 아래로는 푸르른 호수가 펼쳐졌다.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걷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한 남성이 걸어 오고 있었다.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늘 그랬듯 인사를 건네왔고 어디에서 왔냐, 여행 중이냐 등 의례적인 질문을 해왔다.

친절한 오흐리드 사람들에 푹 빠져 있던 터라 1%의 의심도 없이 길 위에서 마주친 살가운 사람이라 생각했다. 스치듯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각자 길을 걷고 있는데, 나를 앞서가고 있던 그 남자가 갑자기 멈춰 돌아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갑자기 자신의 바지와 속옷을 쓱 내리더니 "I want you"라고 외쳤다.

그런 상황을 맞닥뜨리면 욕이 나올 줄 알았는데 말문이 턱 막히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바로 뒤돌아서 뛰었고, 정말 다행히도 그 남잔 뒤따라오지 않았다. 사람이 많은 곳으로 나오고 나니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리고 눈물이 났다. 단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은 내가 한심스러웠다. 그 일을 겪은 후, 한동안은 사람들을 피해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 마음을 어루만져준 것 또한 길 위의 사람들이었다.




Belgrade, Serbia

소수의 사람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진짜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대가 없이 빈방을 제공하고, 저녁을 대접해주던 친구를 만나기도 했으며, 가이드를 자처하며 도시를 소개를 해주던 친구도 만났다. 그리고 일평생 한 명 만날까 말까하는 소울메이트 친구도 만났다.


우리는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호스텔에서 마주쳤다. 한눈에 봐도 '나 장기 여행자야'라는 포스가 느껴지던 친구. 프랑스에서 소설을 쓰고 있는데, 휴식차 발칸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같이 커피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 게 계기가 되어 우리는 베오그라드를 함께 여행했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놀라웠다. 성격, 취향, 생각들이 너무 닮아 있어서. 또 다른 나를 보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동안 어떠한 사람도, 심지어 연인도 채워주지 못했던 대화들이 오갔다. 언어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엉터리 영어실력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끊이지 않는 것이 이상하리만큼 신기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다 읽는 친구. 내가 '쿵'하면 '짝'을 하는 친구.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Split, Croatia


소울메이트 = 영혼이 통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드디어 이곳 베오그라드 위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베오그라드에서 헤어진 이후로도 여전히 장문의 메시지를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다. 나의 정신적 지주이자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조력자. 만약 그때 내가 "같이 커피 마실러 나갈래?"라는 친구의 말을 거절했다면 과연 어찌 되었을까? 그토록 찾아 헤매던 영혼의 친구를 알아볼 기회는 없었겠지.




Skopje, Macedonia


여전히 나는 누가 진짜 나의 친구인지 나의 적인지 한눈에 구별하지 못한다. 여행하는 내내 줄곧 그랬으며, 또 앞으로의 삶의 여정 속에서도 그럴 것이다. 일상 속에서 만난 사람이라고 다를까. 여행이 삶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처럼 결코 다르지 않을 것.

그렇다 할지라도 다시 또 마음의 문을 열고 사람들을 진심으로 맞이할 수 밖에 없다. 상처가 두려워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고 밀어내기만 한다면 그 어느 누구도 내 옆에 머무르지 않을 테니. 늘 어디든 나를 속이고 상처 주는 사람이 있었듯이 반대로 나를 아껴주고 진심으로 위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니까. 처음 친구를 사귀던 그 순간처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Budva, Montenegro
Sarajevo, Bosnia and Herzegovina
Ljubljana, Slovenia
Plovdiv, Bulg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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