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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L Mar 20. 2017

때로는 직감을 믿고 따를 것

Just a Feeling!




가끔은 정말 예상지도 못 한 곳에서 행운을 맞닥뜨린다. 마치 이 순간을 위해 오랫동안 나를 기다려 왔던 것처럼, 행운은 깊은 곳에 매복해 있다가 단숨에 축포를 팡 터트린다. 대개 그러한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오며 극적인 전개를 이룬다. 그때 느낀 행복감은 여태껏 내가 느낀 행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강도 높은 행복을 안겨준다.

살아가면서 그런 행운을 몇 번이나 맞이하게 될까? 만약 각자의 삶에 행운의 할당량이 정해져 있는 거라면, 나의 행운 중 하나는 소피아 속에 숨어 있던 것이 틀림없다.




Novi Sad, Serbia


그곳을 발견한 것은 전적으로 우연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낯선 골목길을 헤매고 있었다. 늘 나의 관심사는 큰 대로변이 아닌 뒷골목이었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줄곧 그랬다. 할머니 댁에 갔다가 돌아오던 길 또는 엄마의 심부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늘 걷던 익숙한 길이 아닌 새로운 골목을 선택했다. 낯선 길을 통해서 집을 찾아가는 것이 일종의 나만의 놀이였던 것. 골목 여행 놀이. 시간이 흘러 그 놀이는 나만의 것을 만들기 위한 모험으로 바뀌었다. 모든 사람이 전부 알고 있는 곳 말고 뒷골목 속에 숨겨진 나만 아는 곳, 아지트를 만들기 위한 탐험 놀이.


소피아에서도 여전히 그 놀이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눈에 띄지 않는 어느 낯선 골목 속에서 불빛이 하나 새어 나왔다. 불빛을 따라가 보니 트렌디한 레스토랑 하나가 자리 잡고 있는 것 아닌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곳은 나를 위한 곳이라는 것을.


물론 이곳이 어떤 곳인지는 모른다. 어떤 메뉴를 파는지,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지 않은지, 음식의 맛은 어떤지 알 수 있는 단서는 단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 자리에서 핸드폰을 꺼내 검색을 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선택하는 것은 재미가 없지. 그저 창문 속으로 보이는 레스토랑 분위기 하나로 나의 촉을 곤두세워보았다. 그리고 '오늘 밤은 여기다! 이곳에서 나를 위한 밤을 보내자'라고 결정을 내렸다. 좀 더 거리를 걷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Sofia, Bulgaria

문을 열고 들어서니 푸근한 인상의 서버가 다가와 미소로 인사를 한다. 첫인상 만점. 따스한 색감의 원목으로 이루어져 있던 레스토랑이었는데, 그에 반해 조명은 하늘 위에 떠 있는 별처럼 반짝반짝 움직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입구에 놓인 기다란 바는 이곳이 음식과 맛있는 술 한 잔을 곁들일 수 있는 다이닝바라는 것을 알게 해줬다.


우리나라에는 비교적 불가리아 와인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불가리아 와인 또한 우수하다고 정평이 나 있다. 오직 와인을 마시기 위해 '멜니크'라는 작은 지역을 찾는 여행자들이 있을 만큼. 물론 나도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불가리아 와인이 유명한지 몰랐다. 하지만 이젠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어찌 이곳에서 와인을 마시지 않고 지나칠 수 있겠는가? 곧장 불가리아 와인 한 잔을 주문했다.




Sofia, Bulgaria

서버는 와인을 가져오면서 와인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불가리아 와인의 우수성을 소개해줬다. 꽃을 머금은 듯 풍부한 플로럴 향이 느껴지는 와인이었다. 그 맛에 반해, 향기에 반해 연거푸 와인을 들이켰다.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석 잔이 되어가던 무렵. 전담 서버가 작은 디저트를 들고 온다. 지금 마시는 와인과 잘 어울릴 거라며 함께 즐겨보라며 이야기를 하고 간다. 아마도 낯선 동양인 여자가 홀로 앉아 와인을 연거푸 마시는 것이 주방까지 소문이 났나 보다. 뜻밖의 서비스에 덩달아 신나 역시 이곳에 오길 잘했다며 기분에 취해, 와인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있었다.




Sofia, Bulgaria

얼마 지나지 않아 셰프가 테이블로 찾아와 내 옆으로 섰다. 손에 들고 있는 접시에는 핑크색 장미 한 송이가 있었다. 페이스트리 셰프는 정중하게 내게 인사를 하고는 불가리아를 상징하는 로즈 오일을 함유한 로즈 디저트라며 디저트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해줬다. 그리고는 먼 곳에서 찾아온 나를 위해 준비했으니 맛있게 즐겨 달라며 웃으며 이야기를 전한다.

그에 질세라 전담 서버는 다른 불가리아 와인도 테이스팅 해보겠냐며 물어보았고, 곧이어 로즈 디저트와 가장 어울리는 와인이라며 한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간다.

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들에 믿기지 않아 그저 눈만 깜빡이고 있으니 전담 서버가 웃으며 말했다.

"Just for you. Enjoy!"

갑자기 내게 왜 이런 선물들이 쏟아졌는지는 모르겠다. 우연히 길을 지나치다 그저 느낌에 이끌려 왔을 뿐인데,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행운이 우수수 쏟아졌다. 덕분에 그 어떠한 날보다 달콤하고 호사스러운 밤을 선물 받았다.




Ohrid, Macedonia


그 뒤로도 나는 오로지 나의 촉을 따라 장소들을 선택했다. 오늘의 레스토랑, 오늘의 카페, 오늘의 펍, 오늘의 플레이스 등. 물론 그날과 같은 호사스러운 행운은 여행 중 손꼽히는 경험으로 남았지만. 그렇게 흔한 것이었다면 행운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거겠지. 비록 뒤따르는 선물은 없었을지라도 그렇게 선택한 곳에서 내 인생 스테이크를 맛보기도 했고, 또 내 스타일의 맥주도 찾아 냈다. 그리고 그런 기억들이 다른 기억보다 오랫동안 즐거움으로 남았다.

때로는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곳, 블로그에서 너도나도 칭찬해주는 곳이 아닌 오로지 나만의 촉을 따라 가보기를 권해본다. 다른 사람들은 찾지 못했던 행운이 그곳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






Belgrade, Serbia
Sofia, Bulgaria
Veliko Tarnovo, Bulg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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