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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마지막은 발칸반도에서
by YEOL Mar 17. 2017

여행은 나를 발견하기 좋은 방법

Travel is made of choice




흔히들 여행을 삶의 축소판이라고 말한다. 일상적이지 않은 특수한 장소, 상황에 놓인 것들이 어찌 삶과 닮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싶지만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터.


특히 매 순간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삶과 여행은 똑 닮았다. 여행만큼 우리가 집약적으로 선택하는 순간이 있을까? 매 순간이 선택의 연장이다. 어디에 갈지, 어느 길로 갈지, 점심은 어디에서 먹을지, 메뉴와 드링크는 무엇으로 할지, 잠은 어디서 잘지 등 수많은 선택이 내 눈앞에 놓인다. 우유부단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나도 여행 속에서는 수없이 많은 결정을 해야만 했다. 그 선택들이 겹겹이 쌓이고 쌓이니 나도 몰랐던 내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Sofia, Bulgaria


벨리코 타르노보에서 만난 영국 친구가 물어봤었다. "넌 작은 마을이 좋아? 아니면 도시가 좋아?"
"당연히 작은 마을이지!!" 정말 그런 줄로만 알았다. 아기자기한 마을과 골목들을 좋아하고, 바다와 숲을 품고 있는 제주도를 사랑하여 단연코 내 취향은 '작은 마을 또는 자연이 어우러진 곳'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소피아에 오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애초에 소피아에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다. 플로브디프와 벨리코 타르노보를 거쳐 오니 어느덧 불가리아에 머무는지도 10일. 조금 지겨워지고 있던 터라 짧게 머물고 다른 나라로 넘어가려 했다. 더더구나 소피아는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그리 큰 호평을 받지 못하는 곳이었다. '릴라 수도원' 외에는 볼 게 없다고 대부분 입을 맞춰 말을 했기에 큰 기대 없이 소피아를 찾았다.




Sofia, Bulgaria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 때면 어김없이 하는 신고식. 호스텔 주위를 어슬렁어슬렁 돌며 마트, 베이커리 등을 찾는 동시에 도시 분위기를 살펴보는데, 이 도시 뭔가 심상치 않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꽤 예쁘다. 이때까지 봐 온 두 도시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소피아만이 가지고 있는 그 특유의 색깔과 분위기.





Sofia, Bulgaria

도심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큼직큼직한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곁으로 화려한 레스토랑과 바들로 즐비한 거리, 현지인과 관광객이 한데 어우러져 북적이는 모습, 도로 위를 바삐 오가는 트램 등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로소 도시를 찾아왔구나가 몸소 느껴졌다. 그러나 그 모습은 정신없는 혼란스러움이 아닌 활기와 생동감으로 내게 다가왔다. 도시만이 지닌 다이나믹한 에너지, 화려함과 다채로움으로 둘러싸인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벨리코 타르노보에 머무르면서 알 수 없는 답답함과 체증을 느꼈는데, 아마도 나는 도시가 주는 이 에너지를, 생동감을 그토록 갈망했던 모양이다.


잊고 있었다. 도시를 사랑하고 있던 것을. 제주도를 사랑하는 만큼 화려한 서울도 무척이나 사랑한다는 것을. 다만 내가 매일 삶을 이루고, 일상을 채워가는 공간이다 보니 너무 익숙해져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주 갈 수 없는 곳이라서 제주도가 더 아른 아른거렸던 것뿐.




Sofia, Bulgaria

나 자신을 그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모른다는 것을 여행하면서 깨달았다. 그리고 새롭게 하나둘씩 나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선택과 그로 인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그 시간들이 쌓이면 쌓일수록 나의 취향과 성향들은 또렷하게 두드러졌다.


고기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매일 먹을 수 있을 만큼 좋아하지 않았던 것. 음식보다는 커피, 차, 맥주, 와인 등 마시는 것을 더욱더 즐기는 것. 지나가며 들은 생소한 언어를 따라서 되뇔만큼 낯선 언어에 대한 배움의 욕구가 있다는 것. 빛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것. 생각보다 건축물에 관심이 많은 것, 높은 곳에서 전경을 내려다보는 것이 나에겐 힐링 방법이라는 것. 역사가 깃든 박물관보다는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을 좋아한다는 것. 색감, 색채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 아무 목적 없이 무작정 트램을 타고 빙글빙글 돌만큼 트램을 좋아한다는 것.




Sofia, Bulgaria


여행은 늘 새로운 기분과 감정으로 나 자신을 환기 시켜준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잊힌 나를, 그리고 새로운 나를 상기시키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여행 중에 발견한 나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해 발견할 때마다 노트에 적었다. 그리고 여행을 마칠 때쯤 다시 쭉 살펴보니 그곳엔 또 다른 하나의 여행 보고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동안 한 번도 써본 적 없었던 '나' 여행 보고서가 남아 있었다.







Sofia, Bulg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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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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