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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L Mar 29. 2017

동행과 여행을 한다는 건

동행의 눈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엿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정현종 <방문객>



정현종 시인은 말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라고. 그러고 보면 사람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특별하고 신기하다. 각자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저마다의 세계관이 만들어져 있으니. 각자 하나의 우주를 품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계속 길을 나서고,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를 갈망하는 건 또 다른 세계를, 우주를 만나고 싶은 이유에서 비롯된 걸지도 모른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사람들은 여행길 위에서 종종 새로운 사람을 찾고, 또 함께 길을 걸을 사람을 찾기도 한다. 여행 정보 카페만 보아도 동행을 구하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며, 같은 숙소 또는 같은 길에서 동행을 청하는 이들도 많다.

먼저 고백을 하자면, 나는 사실 누군가와의 동행이 불편한 사람이다. 나만의 여행 스타일이 확고하여 혼자가 훨씬 더 편했고, 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새로운 사람과 같이 길을 거닐곤 했다. 아무리 혼자가 좋다 한들 가끔은 혼자가 지겨운 것도 분명한 사실이며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기도 했다. 또 무엇보다 친구들의 눈을 빌려 여행을 하는 것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Ohrid, Macedonia

첫 번째 나의 동행은 마케도니아 오흐리드에서 만난 이탈리아 친구였다. 호숫가를 산책하다 우연히 만났는데,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유쾌함에 이끌려 함께 오흐리드를 거닐었다. 그 당시 나는 이미 오흐리드에 온 지 며칠 됐던 터라 더는 특별하게 없었다. 더는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유난히도 디테일한 시각을 가진 친구 덕분에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새롭게 발견하기 시작했다. 집마다 다른 디자인 포인트, 오흐리드 가옥을 담은 가로등 디자인, 빨랫줄 위로 걸려 있는 인형의 모습, 지붕 위에 낮잠을 즐기고 있는 고양이 등을 속속히 캐치하여 그는 내게 알려줬다.




Ohrid, Macedonia

같은 길을 같은 속도로 걷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보는 것이, 발견하는 것들이 달랐다. 나는 대부분 거리 위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면, 그는 거리 속 디테일한 부분에 관심을 두고 있던 것. 만약 혼자서 계속 길을 걸었다면 그런 부분들을 끝끝내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시각과 세계는 한정되어 있으니. 하지만 친구와 함께 길을 걸으니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여행의 시각이 더 확장되어갔다.






Skopje, Macedonia

마케도니아 스코페에서 만난 나이젤은 나를 또 다른 세계로 안내하였다. 발칸반도는 유럽의 동쪽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유럽과는 사정이 많이 달랐다. 유고슬라비아로 묶여 있다 분리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여전히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불안정했다. 2000년대 들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듯하지만 여전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 듯하다. 그로 인해 여행자에게는 물가가 저렴한 또 하나의 유토피아가 되었지만,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정작 유토피아가 되지 못했다.




Skopje, Macedonia

마케도니아의 수도인 스코페는 이제 막 생겨난 신생 도시처럼 새로운 건물들로 줄 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말 도시 전체가 공사장을 불방케 했다. 그 화려한 건물과 거리와는 대조적으로 쓰레기통을 뒤적거리는 사람의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거리에는 빈 통을 들고 다니며 도와 달라고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모습들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나의 생각은 딱 거기까지였다. 잠시 바라보고 마음 아픈 것이 전부였다. 이내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함께 길을 걸은 나이젤은 유독 손을 벌리며 돈을 달라고 하는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 아이들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면 눈물을 글썽였고 아이들의 눈을 쳐다보지 못할 정도였다. 그는 레스토랑 직원에게 이 도시에 저런 아이들이 얼마나 있는 건지, 또 그들은 학교에는 가는 것인지, 부모가 있는지, 있다면 왜 그들이 학교가 아닌 길거리에서 떠돌고 있는 건지 깊이 파고들었다.

당장 그가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없지만, 그는 그 모습을 지나치지 않고 한 번 더 생각하는 친구였다. 덕분에 나 또한 쓰라린 하나의 잔상으로 지나치지 않고 같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Skopje, Macedonia

또한 나이젤 덕분에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스코페 거리를 걷다 보면 물감으로 얼룩진 화려한 건물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처음 한두 개를 발견했을 때는 철없는 아이들이 장난을 친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치기에는 그 범위가 어마어마했고, 그 모습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답을 알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나이젤은 길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인가요? 하나 물어볼게 있어요. 이 아름다운 건물들이 왜 물감들로 얼룩져 있는 거죠?" 라고 물어봤다. 몇 명의 사람들을 붙잡은 그 이후에야 우리가 원하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화려한 건물에 물감으로 얼룩진 건 마케도니아 국민의 목소리를 담은 것. 일명 '컬러 레볼루션'이라고 말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소유 건물을 화려하게 재건하는 것에 불만을 가진 국민들이 물감을 뿌리면서 그들만의 평화적인 혁명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

혼자였다면 그냥 왜 그런 거지?라고 넘어갔을 이야기를, 물어보지 않았을 이야기를, 호기심이 많은 친구 덕분에 스코페의 새로운 이야기들을 알 수 있었다.




Skopje, Macedonia

그 이후로도 동행과 함께 길을 걸을 때면 나의 세계는 잠시 뒤로 젖혀두고 동행의 시선을 따라갔다. 나만의 여행은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따라간 그 길에는 늘 신세계가 존재했다. 관광지는 전혀 둘러보지 않고 오로지 마을 길만 배회하는 동행자를 따라 사람 냄새 나는 골목을 만났고, 또 여행에서 술은 빼놓을 수 없다고 말하는 동행자와는 아름다운 풍경을 벗 삼아 새로운 술을 탐험하기도 했다.

여행 중 동행자가 늘어난 만큼 새로운 여행 경험도 하나둘씩 늘어갔다. 혼자라면 결코 하지 않을 여행을, 생각들을 하나씩 발견해나가는 건 생각보다 큰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그렇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새로운 사람과 함께 길을 걷는 일은 더욱더 특별한 일이었다. 그들만의 시각을, 세계를 잠시 빌려 도시를 새롭게 여행하는 일이니. 닫혀있던 나의 시각을 조금씩 넓혀가는 일이니. 동행과 여행을 한다는 건 또 하나의 세계를 만나는 것이었다.





Skopje, Macedonia


Ohrid, Macedo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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