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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L Mar 01. 2017

눈물 속 비행

이스탄불로 향하는 길



첫 배낭여행이자 첫 유럽 여행을 떠났던 8년 전,

그날이 떠오른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향하던 새벽 비행기. 홀로 떠난 여행이었는데 비행기가 출발하는 순간부터 자꾸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말을 붙이고 싶었다. 아마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보다 벅찬 나의 감정을 눌러 담지 못해서, 자꾸 비집고 나오는 말들을 누구에게라도 꺼내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을 터.


"저 여행가요 !!!!"
"그것도 유럽이요 !!!!"
"한달 동안 배낭여행을 할 거에요 !!!!"


지금 생각하면 촌스럽기 그지없지만 그야말로 첫 여행이다 보니 소풍 떠나는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물론 옆자리에 앉은 차가운 표정의 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헤드폰을 끼고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 끝끝내 말을 붙이진 못했지만. 대신 일기장에 가슴 벅찬 감정들을 모두 쏟아부었던 기억이 선명하게 난다.


그러나 8년이 흐른 후, 나는 여행의 시작부터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유도 알 수 없이. 비행기가 활주로를 떠나 이륙하는 순간부터 마음이 저릿하더니 이내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등 떠밀려 억지로 가는 여행도 아니고,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떠나는 여행인데, 대체 왜?






늘 여행은 즐거운 일이라 생각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여행의 시작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오랜만에 준비하는 배낭여행이어서 였을까. 이미 나는 여행 전부터 많이 지쳐있었다. 생각보다 준비할 게 너무 많았고, 모든 걸 홀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여행을 준비하면 할수록 '여행 잘 하고 올 수 있을까?', '아무 탈 없이 혼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맴돌았다. 처음 떠나는 여행도 아닌데, 처음으로 홀로 떠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리만큼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오랜만에 끄는 캐리어는 또 왜 이렇게 무거운지. 집에서 공항까지 가는 길부터 벌써 허리가 아프고 손목이 시큰해왔다. 대체 8년 전에는 어떻게 이걸 끌고 여행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3개월 여행 잘하고 오겠다고 큰소리쳤는데, 이러다가 1달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거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만큼 첫 여행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설렘 가득했던 그 마음, 그 어떤 것으로도 감출 수 없었던 행복한 표정, 새로운 세계를 만날 생각으로 한껏 부푼 기대. 어릴 때부터 노래 노래 불렀던 유럽이었으니 안 신날 수가 없었다 그땐. 그렇지만 이번 여행 또한 나의 첫 발칸 여행이고, 그렇게 외쳤던 여행을 드디어 하게 됐는데 왜 나는 웃지 못하고 있는걸까?




Ohrid, Makedonia



시간의 무게는 생각보다 잔인했다.

8년 사이에 무거워진 것은 캐리어 무게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몸의 나이만큼 마음의 나이도 든 것. 그 어느 누구보다도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고,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던 내가, 반복되는 일상을 기피하고 새로운 것을 마주하기를 바라던 내가 어느새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이 주는 안정감과 머무는 삶이 주는 편안함에 어느새 길들여진 거지. 더 이상 멋모를 도전이 신나지 않았다. 위험 변수에 노출되고 싶지 않아서. 험난한 여정 속에 또 데이고 싶지 않아서. 내가 만든 삶의 안전 범위 속에 그렇게 안주하며 살아오고 있었다. 그 사실을 나 자신만 새까맣게 모른 채. 낯선 세계로 떠나는 그 길목에서야, 그제야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세월이 변하는 만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람은 변한다. 아무것도 경험해보지 못한 21살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을 수가 없다. 시간이 흐른 만큼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했으니까. 그 시간들이 말해주었다. 여행의 과정이 마냥 반짝이고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여행하는 내내 나는 또 많이 헤맬 것이고, 지치기도 할 것이고, 때론 외로움과 서러움에 눈물이 나는 날도 있을 것이라는 것을. 8년의 경험들이 그 모든 과정들을 예상하게 만들었다.


또 한편으론 앞으로의 미래가 걱정되었던 것도 사실. 후회 없이 사직서를 내밀고 왔긴 했지만 이 선택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 돌아와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앞섰다. 나이가 쌓인 만큼 동시에 겁이 배로 늘어버렸다.






하지만 시간이 내게 준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또 다른 깨달음도 함께 알려줬다. 웃지 못하는 순간을 마주한다고 한들 결국 그 속에서 더 많은 것을 깨닫고 돌아올 것이라는 것. 슬픔이 있는 반면 행복과 행운 또한 존재한다는 것. 떠나보아야만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 다른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내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는 것. 또한 평생을 잊지 못할 추억이라는 덤까지.


또 시간이 오래 걸릴진 몰라도 나는 다시 분명 어디선가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혹시 모르지. 이 여행이 터닝 포인트가 되어 또 다른 길을 찾게 될지도.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하자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 내가 변했다면, 그렇다면 나는 21살의 여행과 얼마나 다른 여행을 하게 될까? 이번에는 어떠한 경험을 하고, 어떤 것들을 느끼게 될까? 나는 그만큼 성숙해졌을까? 갑자기 29살의 여행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이 여행의 끝에서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지, 이 여행이 내게 어떤 의미로 남을지 몹시 궁금해졌다.


그때부터였다.

여행으로 가슴이 두근 거리기 시작한 것이.



Nis, Ser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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