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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L Mar 06. 2017

첫눈에 반한 그 도시

이스탄불의 첫인상



첫눈에 반하게 되는 도시가 있다.

도심 풍경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깊은 탄성이 나오는 그런 곳.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 너무나도 황홀해서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 그런 곳.


처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곳은 스물한 살에 만난 비엔나였다.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비엔나를 처음 마주했던 그 순간. 공항에서 도심으로 가는 길, 지하철 창밖으로 비엔나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보자마자 두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노란빛의 고풍스러운 건물, 도심 속을 메우고 있는 사람들, 그 사이로 지나가는 빨간색 트램. 지극히도 평범한 비엔나의 일상적인 풍경이 내게는 압도적인 풍경으로 다가와 한 편의 영화처럼 기억 속에 찍혀져 나가고 있었다. 벌써 8년이나 지났지만 그때 느꼈던 느낌들은 여전히 또렷한 잔상으로 남아 있다.








이스탄불 또한 내게 그러한 도시였다. 비엔나만큼은 아니었지만 첫눈에 반하기에는 충분했다. 처음 공항에 도착해서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발걸음을 바삐 재촉하는 사람들, 길게 늘어 뜨러진 노란 택시의 항렬,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 여느 공항과 다름없는 분주로움에 잠시 혼이 빠져나갔다. 공항버스를 타고 도심으로 빠져나가면서 서서히 이스탄불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Istanbul, Turkey



바람에 휘날리는 빨간색 국기, 그 색채를 더욱더 도드라지게 만드는 푸른 바다, 색 바랜 파스텔톤 건물과 빨간 지붕. 이스탄불 도심 전체가 다양한 색채들로 물들어 있었고, 그 색채들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가히 매혹적이었다.


또한 유럽풍 건물 속에 자리 잡고 있던 모스크와 히잡을 두르고 걸어가는 여인들의 모습은 여태컷 보지 못했던 묘한 분위기를 뿜어냈다. 첫인상은 강렬했다. 도착한지 30분도 되지 않았는데 이곳에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도시의 첫인상은 늘 이렇게 도심으로 향하는 창밖 풍경부터 시작이 되었다.

하지만 첫인상을 결정짓는 건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8년 전, 내가 비엔나에 막 도착했을 땐 사실 주위 풍경을 바라볼 그럴 여유 따윈 없었다. 며칠 동안 나를 재워줄 호스트이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곧장 잘츠부르크로 이동해야 했기에.


그런데 시작부터 꼬여 버렸다. 비행기가 연착이 되었고, 덕분에 생각해둔 스케줄이 모두 뒤틀려져버렸다. 첫 해외여행이었기에 비행기가 연착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고, 무슨 자신감인지 몰라도 정해진 스케줄대로 모든 것들이 순조롭게 진행될 거라 믿고 있었다. 친구와 역 앞에서 6시에 만나자는 약속만 해두고 친구의 연락처조차 적어오지 않았다. 돌발 상황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못한 것. 지금이야 스마트폰을 통해 바로 메일을 확인하거나 메시지를 남길 수 있지만 그 당시 내가 갖고 있던 것은 2G폰이 전부였다.


마음이 타들어가는 동시에 머리는 새하얘졌다. 일단은 늦더라도 잘츠부르크에는 도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허둥지둥 지하철을 타러 쫓아 내려갔다. 당초에 타려고 했던 S-Bahn이 아닌 2배 더 빨리 도달하는 CAT에 무작정 올라탔다. 하지만 이것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기에 CAT 도착지점에서 어떻게 서역으로 이동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뒷좌석에 앉은 아저씨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아저씨는 최대한 상세하게 답변해주었지만 처음 발을 내디딘 비엔나의 이동 경로는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아하, 알겠어요. 감사합니다."라는 이해의 말과 달리 당황한 표정을 눈치챘는지

"나도 지하철 환승해서 그쪽 방향으로 가는데 같이 가지 않겠어요?"라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1초의 고민도 없이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비엔나는 처음인가요?"

"네. 첫 해외여행이고, 첫 오스트리아 여행이에요."

"걱정 말아요. 나만 믿고 따라와요."

아저씨는 캐리어를 끌고 앞장서서 걸으면서도 수시로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뒤돌아 보았다.

얼마 가지 않아 환승할 지하철역에 도달했다.


"표는 어디에서 살 수 있나요?"

"걱정 말아요. 내게는 지하철 표가 많으니"

아저씨는 지갑 속 지하철 표를 보여주며 그중 한 장을 내게 건네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렇게까지 안 도와주셔도 돼요"

"별 거 아니에요. 그냥 비엔나에 온 웰컴 선물로 받아줘요"

티켓을 내 손에 쥐여주고 아저씨는 먼저 안으로 들어갔고, 계속된 호의에 약간은 얼떨떨해진 마음을 이끌고 그 뒤를 쫓아갔다. 덕분에 서역으로 가는 지하철로 무사히 환승을 할 수 있었고, 이리 헤매고 저리 헤매는 수고스러움도 덜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저씨는

"서역까지 데려다주면 좋을 텐데, 저는 여기서 내려야 해요.

서역까지는 몇 정거장 남았으니까 잊지 말고 몇 정거장 후에 꼭 내리세요.

그리고 앞으로의 여행에 행운을 빌어요"라며 따뜻한 작별의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모든 것이 뒤틀렸다고 생각됐던 여행의 시작이

따뜻함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건 아저씨를 만난 이후부터였다.


물론 나는 이미 타야 할 기차를 놓쳤고, 친구와 연락도 닿지 않은 상태였지만 예상지도 못한 따스한 호의를 받고 나니 왠지 모르게 앞으로 내 여행이 잘 풀릴 것 같은 기분, 정말 행운으로 가득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 행운의 힘 덕분이었을까? 결국 나는 우여곡절 끝에 잘츠브루크에서 친구와 무사히 만나게 된다).


여행의 시작부터 머리 아픈 걱정들로 주위 풍경을 둘러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제야 비엔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하철 밖으로 펼쳐지는 비엔나의 풍경은 햇살만큼 너무나 눈부셨으며 처음 만난 오스트리아 아저씨만큼이나 따뜻했다.


만약 내가 아저씨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비엔나의 첫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결국 그 도시의 첫인상을 완성 시키는 것은 그곳의 사람이다. 아무리 도시가 아름답다고 한들 그 도시를 매우고 있는 도시의 사람들의 인상이 별로였다면 첫인상도 순식간에 변하게 되니.







Istanbul, Turkey



이스탄불에도 그만큼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다.

탁심에서 호스텔로 가는 그 짧은 골목 속에서도, 사람들은 말을 걸어왔다.


"헬로"

스쳐 지나가면서도 반겨주던 따뜻한 인사


"길을 찾고 있나요? 제가 도와줄까요?"

길을 두리번 거리고 있으면 어디선가 도움의 손길이 뻗어 나왔다. 더 이상 길을 헤매지 않아 도움은 필요하지 않지만 그 마음만큼은 고마웠다. 물론 그들이 다른 마음으로 접근했을지 순수한 마음으로 접근했는지는 전부 다 알 수 없지만 사람들 얼굴 속에 퍼져있는 미소만큼은 따뜻했던 것은 사실.


호스텔에 도착하니 주인 언니가 환하게 웃으며 나온다.


"우리가 기다리던 코리안 걸이 도착했구나!

웰컴 투 이스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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