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사는 사람이 누군데?
"내 이상형은 열심히 사는 사람인데, 다시 생각해 보니 너가 졸업도 아직 못한 것도 그렇고... 열심히 사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내 이상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의 이상형이 "열심히 사는 사람"임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나의 25년 인생을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그냥 되는대로 살다가 아직까지 졸업도 못한 16학번으로 보이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처음 만난 날에도 그런 부분을 숨김없이 다 얘기했었다. 그랬음에도 그는 내가 좋(은것 같) 다며, 보고 싶으니 또 보자고 그랬고,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내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얼마나 손을 만지작 대던지, 표현은 서툴지만 나를 향한 마음이 아주 들끓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아닌 것 같다는, 남들은 대학교 새내기 시절 때나 하던 말을 한다.
살아가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지도, 큰 고민이 있지도, 취준 6개월 말고는 큰 난관을 경험한 적도 없고, 그저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꿈 하나만으로 대학 4년 다닐 동안에 학교 근처에 있는 맛집이며, 카페며 죄다 모른 채 졸업을 하고, 취직을, 그것도 대기업에 하셨다. 돈을 많이 버는 것 말고는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라곤 없는 모습에 좀 아닌가 싶기는 했지만, 그가 처음 내 모습 그대로를 다 들어준 것처럼, 나도 그가 그 모양으로 지어진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 하며 받아들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인생을 한껏 복잡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었기에, 험난했던 지난 내 삶과 달리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삶을 살아온 그를 보면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흔들림 없다가도 가끔씩 튀어나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방탈출하는 동안에 보았던 그의 멍청하고 끈기 없고 겁이 가득한 모습에 좀 정이 떨어지나 했지만, 그것마저 괜찮았다. 같이 있을 때 그만큼 편했던 적이 없었던 게 컸다.
그렇게 만나서 그렇게 같이 시간을 보냈는데도 자기감정에 대한 확신이 없이 우유부단해하며 나에게 이상형이 아닌 것 같다며, 열심히 사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하니, 멀리 떨어진 채 앞으로 보낼 날들이 무척이나 피곤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서로 힘들게 하지 말자고 내가 먼저 말했다. 만나자고 너무 성급하게 결정해서 미안하다는 그의 말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쓰다 보니 이것은 저격 글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다. 그는 글을 읽는 것을 싫어한다. 책 읽는 것 아주 싫어한다. 그러니 이 글이 그에게 닿을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차라리 잘됐다. 나도 이 어처구니없는 감정을 글로 해소를 시켜야겠으니, 브런치만큼 적절한 곳도 없겠다.
운이 좋아 좋은 부모님 밑에서 별로 모나지 않은 성격 가지고 태어난 그에게 있어 열심히 사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생각을 해봤다. 어쩌면 나에게 말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는데 괜히 이상형 핑계 대며 나와의 관계를 끊으려는 건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이니까, 최대한 배제하고 생각해 보았다.
나의 열심과 그의 열심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 머리에선 돈 말고는 그의 열심을 읽어내기가 어렵다. 그는 그냥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했다. 왜라는 질문은 없다. 그러나 그는 돈에 열심이고, 나는 나 자신과 이 세상에 열심을 향한다. 나라는 사람은 왜 이 모양인지, 세상은 왜 요지경인지, 이런 것들에 대한 생각이 나를 움직였고, 나는 단 한순간도 열심을 잃어본 적이 없다.
그가 내게 열심이 없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은, 내가 온 힘을 다해 열심을 내던 순간들이었다. 그런 나의 열심을 읽어내지 못한 채 자신만의, 혹은 남이 만든 기준으로 나를 보는 그와 앞으로 함께 갈 이유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그 어떤 말 보다도 나의 열심을 그렇게 폄하하는 그의 말에 기분이 조금 더럽고, 편하지는 않지만,
다시 한번 나의 열심을 확인할 계기를 만들어 준 점에 대해서는 감사하다. 너무 고마워. 정말 아닌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