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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문어 Mar 07. 2024

부러운 존재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부러운 존재다.

        지난 금요일, 드디어 친구들을 만나러 서울로 발걸음을 옮겼다. 작년 8월부터 12월까지 우도에서 일하다가 이곳 포항으로 돌아오자마자,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저녁타임에 일하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그렇다 보니 누군가와 저녁 약속을 잡거나,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만나러 가는 게 정말 쉽지 않았는데, 다행히도 사장님께서는 당신의 젊은 나이와 그보다 더 젊은 정신연령에 비해 어울리지 않는 어른 행세를 하며 매일같이 나를 꼽을 주는 바람에 4개월 동안 참다가 결국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그 덕에 감사하게도 친구들을 만나러 갈 시간이 생겼다.


그럼에도 이번 학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매주 과제로 운이 좋으면 한 편, 보통은 두 편의 글을 써야 했다. 그중 한 편은 영어로, 나머지 한 편은 한글로 쓴다. 지난주는 운이 나빠서 총 세 편의 글을 써서 제출해야 했다. 더군다나 친구를 보러 가기로 한 날은 오전에 있을 교양 영어 수업의 토론까지 준비해야 했다. 결국 그날 밤을 새웠고, 자취방을 나설 때 짐을 미리 다 챙겨서 나왔다. 그리고 시간을 분단위로 쪼갰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보고서를 작성하고 제출한 다음, 점심을 먹고 동대구로 향하는 열차에 올랐다. 포항에서 서울로 곧장 가는 KTX가 다 매진되고 없어서, 동대구역에서 서울로 출발하는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서평 과제의 개요를 작성해 나갔다. 그렇게 졸음을 쫓아내며 글을 썼고, 도착하고 보니 밤 10시였다.



        밤 10시의 서울은 찬란함 그 자체였다. 건물의 입면을 장식하는 수백 개의 LED가 빛을 내며 반짝였다. 나는 작은 점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영상을 홀린 듯이 쳐다봤고, 길 위의 사람들은 그런 것은 흔하고 익숙하다는 듯 마냥 갈 길을 향해 바삐 움직였다. 이 커다란 도시를 움직이는 시스템, 길가에 아무렇지 않게 놓여있는 조형물들, 정성 들여 심긴 조경들은 하나같이 이곳이 바로 서울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쉬지 않고 나를 유혹하는 온갖 것들에 시선을 뺏기지 않으려 노력하며 친구 A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는 데 성공했다. 불타는 금요일답게 정류장마다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버스 안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이어폰을 꼽고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속에서 홀로 창밖의 거리를 구경하던 나는, 나란히 길을 걷다가 아무렇지 않게 서로를 마주 보고 입을 맞추는 한 레즈비언 커플을 보았다.


이런 서울의 풍경을 보며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죽고 싶다’였다. 너무 오랜만에 방문하는 서울이라 그랬는지, 늘 친구처럼 따라다니는 우울증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허구한 날 나는 굳이 서울이 아니어도 좋아, 한적한 도시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안 그래도 인구집중이 너무 심해서 문제인데, 나 한 사람이라도 그 밀도를 좀 줄여보는데 앞장서겠다며 말하고 다녔지만, 막상 찬란한 모습의 서울을 마주하고 나니 죽을 때까지 서울의 속도를 따라가긴 어렵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딘가 모르게 피곤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긴 여정 끝에 친구 A의 집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친구 A는 대학 동아리 동기다. 미성숙했던 신입생 시절에는 서로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해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돈독해지고 정이 많이 쌓인 친구다. 그녀는 고단했던 취준 기간을 거쳐 대기업에 취업하는 데 성공했고, 오피스텔에서 자취 중이었다. 찰나의 어색함을 뒤로하고 우리는 정말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깔깔대느라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마찬가지로 같은 동기인 친구 B와 선배 C를 만나 오르기로 한 아차산의 유래를 찾아보며 웃고, 얼마 전에 건강검진을 하며 처음 굴욕의자에 앉아본 이야기를 하며 웃다 늦잠을 잤고, 결국 아침 등산은 B와 C만 다녀왔다. 그 마저도 즐거웠다. 늦게 일어난 대로 A와 나는 DDP에서 열린 팀 버튼의 전시를 보고, 저녁을 먹은 뒤 함께 B의 집으로 향했다. 혜화에 위치한 B의 집은 언덕 위 끝자락에 위치한 산책로 입구 즈음에 있었다. 대학로를 벗어나 골목길로 들어서니 어마어마한 경사의 오르막길이 펼쳐져 있었다. 그 위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허름한 모습의 빌라에는 분명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을 터였다. 허름해 보여도 이곳은 서울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르막길을 오르니 신경도 쓰지 않게 되었다. 


B만의 감성이 가득 느껴지는 집에서 우리는 그간 못 나눈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수다를 떨었다. 대기업을 다니고 있지만 자신이 마치 풍요롭던 로마시대의 노예같이 느껴진다는 A, 작년에 전시까지 마치고 졸업을 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학점이 모자라 꽤나 복잡한 상황에 놓인 B, 긴 휴식기를 거치고 화석이 되어 복학한 나. 겉으로 보이는 상황과는 별개로 우리 셋은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삶이 다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이 되면 고민이 좀 사라지고, 고생도 좀 덜하겠지 하며 자신 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동경하곤 하지만, 삶이란 죽을 때까지 이런저런 고민을 안고 사는 것이겠구나 싶었다. 우리는 서로의 삶을 묵묵히 응원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아직 제출하지 못한 서평과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끊고 빠져나와 서둘러 글을 써서 제시간에 제출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었다. 그에 비하면 과제는 내 인생에 있어 너무 사소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친구들과 있는 시간에 온전히 집중했다. 오히려 그때의 그 느낌을 당장 수필로 써서 남기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나는 A와 B가 잠들었을 때 서평을 마저 써서 제출했다. 신기하게도 하나도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편한 마음으로 집중해서 글을 써내려 갔고, 생각보다 일찍 글을 마무리해서 제출을 했다.



        언젠가 한번 인스타그램에 그런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장기하는 한 개도 부럽지가 않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아직 졸업을 안 한 내가 부럽고, 나는 졸업을 한 친구가 부럽다고. 그렇게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부러운 존재라고. 그리고 나는 나만의 속도를 찾았다고 말했다. 무슨 인생살이 통달한 마냥 굴었지만, 사실 아직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참 막막하기만 하다. 내 속도대로 가고는 있지만 늘 나보다 빨리 달려가는 서울을 보면 가슴 한편이 답답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부러운 것들이 천지다. 그렇지만 부러운 존재들 모두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 거란 점에서 인생은 누구에게나 평범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면 요동치던 부러움이 잔잔한 부러움으로 바뀐다. 그리고 친구들과 그랬던 것처럼, 그저 서로의 삶을 응원하게 되는 듯하다.



(2022.05.2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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