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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문어 Oct 06. 2024

돌고 돌아 건축으로

나의 졸업전시 1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그 장소로


나의 졸업전시가 열렸던 시기로부터 이제 막 1년이 되었다. 이번에도 역시 같은 시기에 졸업전시가 열렸다. 작년에 내가 엉망으로 선보였던 그 갤러리에서, 같은 지도교수님의 지도 아래에. 건축졸업전시는 늘 학부 동문회 행사와 겸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를 비롯한 작년 졸업설계 동료 친구들에게 동문회참여 여부는 올 한 해의 꽤나 큰 이슈였다.


우리는 작년의 기억을 꽤나 많이 잊어버렸다. 일부는 미화되기도 하였다. 너나 할 거 없이 1년 동안 우리 모두가 힘겨운 시간을 보냈었기 때문에, 같은 장소로 돌아가 후배의 건축졸업전시를 마주하고, 그 장소에서 지도 교수님을 마주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총 11명 중 일부는 해외에 있어서, 일부는 다른 일정으로 빠지고, 다섯 명이서 패기 있게 동문회와 졸업전시 행사에 참여키로 했다. 교수님께 드릴 선물까지 준비해서! 아무렴, 작년에 우리를 도와줬던 주력인물들이 이번 졸업전시의 주인공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선물을 사들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그 거리로 돌아갔다. 지하철 역 입구에서 나오자마자 마주한 광경, 그 거리가 자아내는 풍경만으로도 나는 이미 작년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며, 숨이 가빠오는 것을 애써 진정시키며 계속 걸었다. 전시회 장소에 다다를 때쯤엔 귀까지 먹먹해졌다. 괜찮아. 안 죽어. 교수님 순해지셨대잖아. 그래도 뵈러 가야지. 하고는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소문대로 교수님께서는 인상도, 말투도 작년보다 훨씬 순해지셨음을 확인했다. 확실히 젊어지셨다. 첫째 졸업전시를 보내고, 험난했던 둘째 졸업전시를 보내면서 이런저런 충격을 받으셨던 탓이었을까, 교수님께서 남기신 글에 직접 언급되었듯 이번 졸업설계는 "셋째는 발로 키운다"는 말처럼 조금 수월하셨다고 한다.  



그래도...! 저는 건축을 사랑해요...!


현장실습을 준비하며 건축사사무소 소장님과 통화를 하다 내뱉은 나의 고백이다. 처음 학부에서 건축설계를 들을 땐 훨훨 날아다녔던 내가, 건축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나의 온갖 밑바닥을 마주하며 좌절했다가 다시 일어나려 했을 때였다. 정말이지 건축이 너무 미웠다. 건축은 나의 인성의 밑바닥을 드러내고, 내 통장잔고의 바닥을 드러내고, 내 정신력의 밑바닥을 드러냈다.


그렇게 돌고 돌았다. 건축을 비껴나가 조금 덜 괴로운 일은 없을까, 여기저기 기웃거려 본다. 그러다가 다시 돌아온다.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건축만큼 좋은 것이 없어서.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세상을 담는 일이다. 인간의 힘으로 세상을 담아내기 위해 평면도를 그리고, 단면도를 그리고, 입면도를 그린다. 공간 안에 사람을 담아내기 위해 사람을 공부한다. 사람이 계단을 안전하게 올라가기 위한 최소 치수, 높은 곳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몸을 지켜줄 난간의 최소 높이, 사람을 지키기 위해 맞춰진 작은 디테일들이 나의 가슴을 울린다. 사람과 함께 살아갈 우리의 친구들, 가구에 대해서도 공부한다. 공간에 최적화하기 위한 작디작은 치수들, 이것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건축을 할 수 있다.


중학교 기술가정 책에서 처음 평면도를 보고 가슴이 설렜던 건, 바로 건축이 사람을 생각하는 일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생각하고, 세상을 생각하는 건축을 나는 사랑한 것이다.



길을 걸어가는 건축, 길을 제시하는 건축


돌고 돌아 나의 건축의 길을 찾아 헤매면서, 건축에는 두 가지 길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현시대를 살아가며, 사람을 생각하고, 공간을 생각하는 건축가로서, 자신의 생각을 건축물과 공간으로 표현하는 길.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서 건축이 걸어가야 할 방향과, 건축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제시하는 길. 


건축은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은 역사 속에서 급변하고 발전하는 사회에 맞춰 건축은 발달해 왔고, 이에 따라 건축가들 또한 시대상에 맞춰, 혹은 그다음 시대를 그리며 건축물로서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해 왔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기술의 발전 정도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것 이상으로 넘어가고 있다. 예전에는 이상적인 도시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다면, 지금은 도시를 어떻게 더 스마트하게, 효율적이게 만들 지에 대해 고민한다. 이전에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시대였지만, 이제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스토리텔링, 논리성과 타당성에 더 집중하는 시대다. 무지성은 더 이상 허용이 안 된다.


모든 것이 급변하는 현시대에서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중요해짐을 느낀다. 나의 건축의 길은 이렇게 좁혀지고 있다.



건축가는 노인의 직업이다


이번 졸업전시 오픈크리틱을 마무리하며 J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이다. 건축을 계속하는 데 있어 당장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가야 함을 방증해 주는 말이었다. 이 말을 듣고 나니 비로소 나의 졸업전시가 마무리된 기분이었다. 나는 지금도 돌고 돌아가는 길을 걷는다. 아직은 밑바닥을 마주한 후폭풍이 큰 탓에 나의 다음을 상상하고 기대하는 것조차 힘에 부치는 상황이지만, 이렇게 나는 계속해서 건축을 공부하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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