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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ny Oct 25. 2021

케첩도 엄연한 채소입니다.

관심에서 시작하는 작은 움직임

내가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지만,

나의 학창 시절 학교 급식은 참 맛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친구에게 들은 바로 오늘 점심 메뉴가 내가 좋아하는 카레라이스라고 했던가.

점심시간 즈음 울리기 시작하는 배꼽시계와 함께, 4교시 수업 종소리 치기 5분 전부터 우리 모두의 몸은 반쯤 문을 향해 있었고,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급식실을 향해 온 힘을 다해 함께 달렸던 기억이...

뭐 항상 그런 건 아니었지만.


내 유년시절 대부분의 식사를 책임졌던 학교 급식은 조리사 분들의 손길을 걸쳐 완성된 따뜻한 밥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식자재를 실은 큰 트럭이 학교에 도착하고, 주방으로 운반되면, 그 후에는 '탁탁 탁탁' 야채 써는 소리, '칭칭 칭칭' 밥 짓는 소리, 그리고 군침을 돌게 하는 고기 굽는 냄새가 오전 가득 복도에 퍼졌다.


집에서 어머니가 정성스레 차려준 밥상과 완전히 똑같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한국인이 먹는 기본 식사대로 밥과 국, 반찬 2-3가지가 나왔으니까 어떤 면에서 꽤 비슷했다고 볼 수 있다.


식사 시간이 되면, 급식 도우미 아주머니께서 우리의 음식을 담아주셨고,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김치도 받고, 콩자반도 받고, 싫어하는 반찬들도 어쩌다 한두 개씩 먹어보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미국에도 학교 급식이 있다.

미국 급식 시스템에 대해서는 나도 문외한이었지만, 이곳에서 몇 년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레 하나둘씩 경험하고, 그리고 배우면서 여기 실정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나라가 학교 급식에 대해 문제가 없겠냐마는, 미국의 급식 문제는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환경에서의 문제와는 좀 다른 차원의 문제 같았다.


미국인들의 식사에 자주 등장하는 베이글, 프룻 젤리, 프룻 펀치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에서 고민하는 문제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표가,

아이들 '모두'가 ' 건강한 학교 급식'을 먹는 것

이라니.

이 목표는 사실 두 가지 중요한 구체적인 문제들을 담고 있다.


하나는 아이들이 '모두' 급식을 먹지 않는다는 문제고, 또 다른 하나는 학교 급식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충격을 뒤로하고, 미국의 급식 문제의 원인에는 사실 꽤 복잡한 이유들이 섞여있었다.


가장 가까운 간단한 이유부터 살펴보면, 미국의 많은 학교들에 조리시설이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처럼 채소를 써는 기계, 국을 끓이는 큰 솥이 있기는커녕, 고작 오븐 한 두 개가 전부인 학교가 여전히 많다면 이해가 될까. 오븐 정도 있는 주방에서 만들 수 있는 음식이래야 미리 만들어진 음식을 '데우기' 정도일 테니까. 전자레인지뿐인 자취생들이 인스턴트, 냉동식품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위해 준비하는 음식이 미리 만들어진 공장 식품이라는 것에 충격적이지 않을 수없다.


하지만, 시야를 확장시켜 왜 미국 급식 시설이 이렇게까지 열악해진 것일까를 보면 생각보다 문제는 더 간단하지 않다.


미국 급식 시스템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시작은,

여느 다른 유럽 나라처럼, 어려운 아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좋은 취지에서 출발했다 (비록, 이런 인식이 오늘날까지도 남아있어, 아이들이 급식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어버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미국의 급식 프로그램도 처음에는 작은 규모로 시작했다(1853). 하지만 점차 급식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대두되면서 소수 단체, 일부 학교, 지역 단위 (1900년대 초)로 발전하게 되었고, 1930년대 들어와서부터는 국가차원에서 영양가 있는 급식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들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1946년대에는 '국가적 학교 점심 ' (National School Lunch Act) 제정되면서, 아이들의 급식은 '일리 있는 수준의 영양 조건' 충족시키도록 정부가 보호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꽤 오래가지는 못했다.

효과적인 수준의 정부지원이 1960년대까지 계속되다가, 미국 학교 급식 발전의 후진 기어가 작동되기 시작된 것은 1980 즈음이었다.


레이건 대통령 정부가 들어서면서, '쓸데없이 낭비되는 예산을 막기 위한' 명목으로 기존 학교 급식 재정 지원의 65% 수준으로 낮추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위해 아이들에게 학교급식 양은 줄기 시작되었고,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한 자격은 높아지면서 배고픈 아이들은 더 배고파지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미농 식품부는 아이들 급식 영양 기준을 바뀐 예산에 맞게 조정했는데, 그 조정안이 얼마나 우스운 지는 다음 내용이 충분히 설명하고 있을 거라고 본다.

- 케첩, 감자튀김, 피클, 피자 소스는 야채에 포함된다.

- 고기는 두부, 요구르트, 땅콩/땅콩버터, 코타지 치즈로 대체할 수 있다

사실 이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조정안이 포함되었다고 하는데, 다행히도 이 조정안은 결국 15일 만에 철회되었다.


하지만, 이런 기준 조정안과 지원금 삭감은 당시 정부의 우선순위가 무엇에 있었는지,

'어떤 것의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 '어떤 것이 희생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기업의 손을 거친 가공식품의 사용을 허락하고, 사용 가능한 여러 대체제를 늘림으로써

아이들의 급식은 결국 '영양적 기준'이 아닌, '소비될 필요가 있는 아무 음식'을 써도 가능해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급식이 후퇴의 길을 계속 걷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2000년대 초부터 건강 영양 전문가, 학교 직원들, 그리고 부모들은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앞장서기 시작했다.


 "더 이상 가공식'품'이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학교에서 조리된 '음식'을 아이들에게 먹여야 해요!"


작은 움직임들이 모이자 이것은 점점 변화의 필요성을 공론화시켰고, 결국 일부 시스템이 하나둘씩 움직이는 데 까지 이를 수 있게 했다.

 

이런 움직임에 영향을 받은 한 예로, 채소 위주의 학교 급식을 위해 고안된 프로그램, 'SchoolFoodPlus'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2004년에 한 개인 옹호가로부터 개발이 된 것으로, 나중에는 실제로 뉴욕의 일부 22개 학교에 시행될 만큼 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7년에는 이런 움직임들에 힘입어 드디어 국가적 차원에서 '건강하고 배고픔 없는 아이들을 위한 법' (Healthy Hunger Free Kids Act)이 제정되었고, 이로 인해 영양가 있는 학교 급식의 중요성이 다시 점차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이후로 지금까지 여러 개인, 단체, 기관, 단체에서 함께 조금씩 발전하고 있는 중이다.


이십 년 동안 낙후된 학교 급식과, 생각보다 더 복잡한 시스템 문제가 얽혀있던, 학교 급식문제를 해결 하기란 참 쉽지 않다.


낙후된 시설들을 다시 새롭게 바꾸는 것, 가공 식품만 사용했던 급식 메뉴를 건강한 메뉴로 바꾸는 것, 그리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고, 어떻게 사람들을 훈련시킬지 일단 한 문제가 있고.

또 엉망이었던 몇십 년간의 미국 급식 시스템 속에서, 가공음식들이 익숙해져 버린 아이들의 습관과 생각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문제를 또 찾자면, 개인주의적인 문화가 강한 미국인들 사이에서 다 같이 의무적으로 학교 급식에 동참하게 하는 것은 훨씬 어렵다는 점과,

급식에 관여할 수 있는 학교 선생님의 제한된 역할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이런 복잡한 문제 속에서도 당연한 것을 위해 움직였던 한 사람 한 사람을 또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엉망이었던 문제들 속에서 어떤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계속 만들어가고 있었으니까.


다시 본래의 문제로 돌아가 본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 미국의 문제.


아이들 '모두'가 '건강한 급식'을 먹는 것.


모든 나라가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한국에서 살 때는 다른 나라의 문제를 보기가 참 어렵다. 또 더 작게는 내가 사는 그 공간 밖, 그 이상의 것을 보는 것조차 어렵기도 하다. 이미 우리 안의 문제가 충분하기에,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알지는 못했지만, 보이는 문제들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은, 문제는 내가 아는 것과 상관없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따뜻한 급식을 먹었던 그때에 어떤 사람은 빵 한 조각으로 끼니를 때웠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쓰레기에 버려진 음식으로 배를 채웠을 것이다.


미국에 살면서, 그리고 길을 걷기만 해도 문제가 보이는 삶 속에 놓이게 되면서야 비로소 나는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더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화려한 뉴욕과는 정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참 많았다.


그리고 삶의 반경을 조금만 넓혀서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나를 넘어서서 더 크게 더 넓게.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가 알게 된 새로운 문제가 있다면, 너무 큰 것부터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움직임부터 시작하는 것은 good start.


 


Kids are hungry



References & Sources:

1. 미국 전형적인 급식 모습, 사진 출처. SWEETGREEN.TUMBLR.COM - TUMBLR.COM

2. Cooking Outside the Box. Laurie M. Tisch Center for Food, Education & Policy, Dec, 2019

3. Healthy Hunger-Free Kids Act, Child Nutrition Programs, USDA, https://www.fns.usda.gov/cn/healthy-hunger-free-kids-act

4. History of School Food in America, Feeding Kids Well https://food-studies.net/feedingkids/history-of-school-food-in-americ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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