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한 대학원생인 나는 매일 도서관을 향해 빨리 걷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성격이 급했던 터라 등굣길에서 조차도 오늘까지 할 일, 다음 주 까지 할 일, 다음 학기까지 할 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할 일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하면 내 뇌는 꽤나 똑똑해서, 알아서 다른 자잘한 시간들은 줄여주는 전략을 세워주곤 했다. 그 전략이란 보통은 '덜 중요한 시간'들을 처리는 하되, 최소한의 노력과 시간으로 끝내고, '중요한 시간'에 소비할 시간을 최대한으로 확보하는 식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덜 중요한 시간'이란 보통은, 마감기한이 없는 것들, 이미 충분히 시간이 투자되어 잠깐은 쉬어가도 된다고 느낀 것들, 그리고 이런 바쁜 나를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었다.
등하교 시간, 밥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 같이 자신 안의 시간일 때도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들도 이에 포함되었다. 그때 드는 변명 이자 자기 합리화는 "내가 바쁘니까, 연락이 뜸 하더라도 이해해주겠지?", "잘했던 때도 있으니까 괜찮아" 혹은 "사람이 바쁘면 다 똑같은 걸 뭐"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언젠가 빨리 걷고 있는 나를 향해 갑자기 물음표를 던진 날이 있었다.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시간이었던 것 같다. 사람이 많아서 그 사이를 비집고 또 요리조리 추월하던 나는 내 앞에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천천히 걸어가고 있던 한 아버지와 아이 뒤에 멈춰 서게 되었다. 계속 돌진 중이었던 내가 장애물을 만났을 때의 첫 느낌이란 얼마나 날카롭고 신경질적이었을지 모두들 상상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작고 조그만 아이에게로 시선이 향했는데, 그 아이의 느린 걸음에 맞추어 말을 건네는 아버지의 질문이 그다음 들리기 시작한 것 같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어, 올리버! 저길 봐봐 나뭇잎 색이 어떻게 변하고 있니?" 아이는 아직 말을 잘 못하는지 알 수 없는 옹알이 중이었지만, 아버지의 말을 알아듣는 듯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이 두 부자의 귀여운 대화에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다가, 다시 발걸음을 빠르게 옮기려던 그때, 나는 갑자기 이유 없이 빨리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집까지 걸어가는 동안 천천히 걸으며 생각해 보았다. '내가 지금 왜 빨리 걷고 있지?'
생각해보니, 내가 빨리 걷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없었다. 표면적인 이유란 '과제를 끝내는 것' 그리고 '졸업을 하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내가 빠르게 걸어야 하는 이유, '덜 중요한 시간'들을 희생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 주지 못했다.
한동안 여유가 없어서 스스로를 돌보지도 못했던 것을 발견했다. 영양학 공부를 하고 있지만, 정작 나를 위해 인스턴트 라면, 과자로 끼니를 때우는 대신 건강한 요리를 했던 적은 얼마나 많았을까.
부모님과 통화를 제대로 못했던 것을 떠올렸다. 집에 별 일은 없는지 물어볼 시간이 없었고, 내 근황을 궁금해하실 걸 알면서도 짧은 카톡 몇 통으로 나의 안부를 대신했던 지도 꽤 오래됐었다.
지금 내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인스타그램으로 근황을 확인할게 아니라 전화라도 한통 해볼걸.
지금 학교 안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왜 이렇게 점심시간마다 시끄럽게 무언가를 위해 외치고 있는 건지. 내가 살고 있는 뉴욕은? 한국은? 세계는? 어떻게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볼 '마음'이 없었다.
'과제'를 위해 포기했던 나의 '덜 중요한 시간'들은 사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이자, 또 어떻게 보면 그 '중요한 시간'의 근본적인 이유인데 말이다.
앞만 보고 빠르게 돌진할 때 좁아졌던 내 시야와 생각이, 가장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는 부자의 대화로 기분 좋게 멈춰 설 수 있게 되어서 참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간은 어쩌면 느리게 걸었을 때 떠오르게 되는 생각, 마음, 그리고 사람들을 위한 시간인 것 같다.
빠르게 걷는 것보다 어디를 가고 있는지 아는 것은 그래서 참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