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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택근 Dec 27. 2020

영화 수첩

#3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I'm Thinking Of Ending Things,2020)'

(장르 : 공포/심리스릴러)


'존 말코비치 되기', '이터널 선샤인'의 각본가로 유명한 '찰리 카우프만'이 감독과 각본, 제작을 맡은 영화이다. 멧 데이먼과 외모가 흡사해 매번 헷갈리는 '제시 플레먼스'와 이번 영화를 통해서 처음 접하게 된 '제시 버클리'가 주연을 맡은 영화이다. 이 외에 해리포터의 루핀 교수님 '데이비드 듈리스'와 마이 리틀 선샤인에서 엉뚱한 엄마 역할을 보여줬던 '토니 콜렛'이 제시 플레먼스가 연기한 '제이크'역의 부모님으로 나와 연기를 펼쳐줬다.


이 영화의 포스터가 내가 이 영화를 관람하기로 결정하는 데에 큰 몫을 했다.

(C) 2020. Netflix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하듯 처음 이 포스터를 보고 '왜 조명은 3개일까? 여자 뒤의 벽에 그려진 그림은 무얼 뜻하는 그림일까? 저 여자는 왜 잔을 들고 마실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왜 멍 때리는 거지? 음식은 하나도 먹지 않고 그대로네.'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끔 만든 포스터이다. 당연히 영화가 궁금할 수밖에. 포스터가 풍기는 분위기도 미스터리한 게 정말 마음에 들었다. 전작들에서도 그랬듯, 찰리 카우프만의 영화는 첫 관람으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기에 여러 번 관람을 하고 여러 리뷰들도 보고 이 글을 끄적인다.


Scene. 1

(C) 2020. Netflix

눈 오는 어느 날, 길가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여성의 모습을 비춰주며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에서 가장 밝고 행복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이름이 확실하지 않은 여자 주인공(영화 내에서 이름이 수시로 바뀐다. 왜 그러는 걸까?)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수시로 들려주는 그녀의 독백을 통해 '이 영화는 그녀의 이야기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영화를 계속 보면 볼수록 '과연 이 영화는 누구의 이야기인가?',  '누구를 초점으로 진행해가야 하는 영화인가?' 하는 생각 들게 된다.



Scene. 2

(C) 2020. Netflix

영화는 대부분 주인공 둘이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들로 채워진다. 차 안에서 여자가 속으로 혼잣말을 하는데 남자는 그녀의 속 말이 들리기라도 하듯 그녀의 말을(그녀가 혼자 속으로 하는 말을) 자주 끊어버린다.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눌 때의 장면 구도나 편집 방법도 굉장히 색달랐는데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주인공들 얼굴 앞으로 수시로 움직이는 자동차 와이퍼가 조금은 신경에 쓰이기도 했으나 대화의 리듬에 맞춰서 조화롭게 움직이는 듯하기도 했다. 한 사람이 말할 때에 다른 사람의 얼굴을 갑자기 비추기도 했고, 한 사람이 말을 시작했는데 계속 다른 사람의 얼굴을 비추고 한 템포 늦게 말하는 사람의 얼굴을 잡아주기도 했다. 왜 이런 식으로 편집을 한 것일까? 계속해서 거슬리는 와이퍼의 움직임과 소리, 불친절한 편집에 이 자동차 안 장면은 살짝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아마 감독이 우리로 하여금 그 불편함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겠다.)



Scene. 3

(C) 2020. Netflix

남자(제이크)의 집에 도착해 그들의 부모님을 만나고 넷이서 같이 식사하는 장면이다. 이 부분부터 정말 의아하고 혼란스러운 부분들이 많아진다. 부모님들은 정말이지 그냥 무섭다. '아니 이거 옥에 티인가?' 싶은 부분이 보이다가도 '응? 아니 이거 찰리 카우프만인데 분명 어떤 의도가 있을 거야'하며 또 의미를 찾으려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남자는 부모님들의 존재가 어딘가 모르게 불편해 보인다. 부모님 또한 자신의 아들을 어렵게 대하는 듯하다. 정말 보는 나도 이 식탁 장면은 너무나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래서 장르가 공포인 것인가. 여자 주인공은 분위기를 띄우려 이런저런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분위기를 깨는 약간 엉뚱한 부모님들의 질문에 당황해하며, 억지웃음을 짓는데 이것 또한 무섭다. 그냥 소름이 끼친다. 전체적으로 화면 색감이 어두워서 음침함이 더욱 느껴진다.

 갑자기 장면이 바뀌어 접시를 치우는 여주인공의 장면이 비치는데 자세히 보면 아무도 음식을 하나도 안 건드린듯하다. 이분들 식사는 하긴 했나 싶은 의문이 들 정도로. 아마도 여자는 빨리 집에 가고 싶었나 보다.

이 집안에서 여러 일들이 벌어지는데... 정말 모르겠다. 여주인공도 얼굴에 스스로 '이게 지금 뭔가' 싶은 표정이 그려져 있다. 인물들의 모습도 수시로 바뀌고 나이 때도 바뀌고 장소에도 뭔지 모를 공포스러움이 있고 아무리 착한 대화들을 서로 해도 그게 더 무섭게 들린다.


 

Scene. 4

(C) 2020. Netflix

둘은 부모님 댁을 나와 집으로 향한다. 밖에는 눈이 엄청 내리고 있었다. 가는 길에 남자(제이크)가 다니던 학교에 잠깐 들리기로 한다. 이 부분도 의문점 투성이다. 갑자기 두 주인공의 모습을 닮은 무용수들이 나와 춤을 추고. (참고로 이 장면에 나오는 음악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유일하게 햇빛도 보이고 색감이 밝았던 이 무용 장면. 마치 꿈속에 있는 듯, 동화를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두 무용수가 만나서 서로 사랑의 춤을 춘다. 그리고는 결혼을 하고 갑자기 어느 관리인 차림의 무용수가 나타나 그들을 갈라놓고 남자를 죽여버린다. 이렇게 이들의 짤막한 무용은 끝이 난다. 이 무용 장면을 감독은 왜 넣은 걸까?



Scene. 5

(C) 2020. Netflix

마지막 장면. 학교 앞에 어느 차가 눈에 덮인 채 멈춰있다. 마치 생명력을 잃은 것처럼. 장면 속에 외로움과 차가움이 느껴진다. 이 장면 그대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으며 새소리와 주변 소리들이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계속 들린다. 마지막에 갑자기 차 안에서 사람이 나와 어슬렁 화면으로 가까이 걸어왔다면 정말 공포 영화였을텐데, 정적인 이 화면 그대로 영화는 끝맺음을 맺는다.


 



우리는 종종 을 꾸곤 한다.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한다. 미래에 있을 일들을 기대하며 '나중에 나는 이런 사람이 되면 좋을 것 같아.' 하며 희망을 품곤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과거의 꿈을 꾸고 있다.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이랬으면 지금 어땠을까?'식으로.

찰리 카우프만은 사람의 기억과 추억에 대해 관심이 많은가 보다.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영화에서는 한 남자가 자신의 기억 속에 들어가 하나하나씩 여자와 관련된 추억을 잊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터널 선샤인' 중 'What if you stayed this time?'이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과거에 했어야만 했는 그런 후회가 담긴 말이 이 영화에서도 계속 나온다. 'What if ~', '만약에 ~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 하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영화 중간중간 어느 할아버지의 장면들이 나오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자연스레 '아, 이 할아버지는 아마도 늙은 제이크의 모습일 거야'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할아버지의 장면들이 현실이고 어린 두 주인공이 나오는 장면들은 할아버지의 꿈속, 상상 속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이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어 다시 영화를 보게 된다면 수많은 옥에 티라 여겨졌던 부분들이 이해가 간다.

우리는 과거를 회상할 때 엄청 디테일한 것들까지 신경을 못쓰지 않은가. 이 사람이 어떤 옷을 입고 있었으며 반창고가 얼굴의 어느 쪽에 붙어있었으며 하는 그런 것까지 말이다. 영화 곳곳에 나오는 시들과 노래들 그리고 영화의 한 장면들 또한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과거 이 할아버지가 좋아했던, 즐겨 들었던 것들을 자신의 상상 속 안에 있는 인물들에게 투영해 본인의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물론 모든 꿈들이 그렇지 않겠지만 어떤 꿈들은 우리의 여러 경험들과 더불어 소망들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에서 보이는 모든 것들은 이 할아버지의 그동안의 경험들과 바람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본인은 재능도 많고 열심히 일도 하는 사람이었는데 나이가 들어 홀로 남겨져있고 아무도 신경 안 쓰는 학교의 관리인으로 남아있다는 것. '나도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그런 삶을 살았다면 어땠을까?'하고 펼치는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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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찰리 카우프만의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 또한 좋아할 것 같다. 항상 그렇듯, 첫 번째로 볼 때에는 답답함과 수많은 질문들만 남는다. 두 번째 볼 때에는 '이게 이런 의미였다니!' 하며 놀라움. 세 번째로 볼 때에는 '아, 그랬구나'하며 이해를 하게 되는.


(아직도 'I'm Thinking of Ending Things'라는 제목의 뜻을 이해 못하겠다.

여주인공이 말하는 거라면 '이 관계를 끝낼 생각이야.'라는 뜻이 되겠지.

늙은 할아버지가 말하는 거라면 '내 인생을 이젠 끝낼 거야.'라는 뜻이 되고.)


처음 볼 때에는 머리만 아파오는 질문들로만 가득한 수수께끼 문제집과 같은 영화였는데

해석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영화가 새롭게 보이는, 다시 관람하게 될 때에 한 장면 한 장면 곱씹으면서 보고 싶어 지는 그런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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