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 영국 스코틀랜드로
2021년 9월 3일 새벽 금요일 00시 55분, 인천에서 출발해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수개월 전부터 준비해온 출국이었지만 사실 실감이 나질 않았는데 출국하기 하루 전날 짐을 싸기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뭔가 이 모든 게 다 계획이 되어 있었던 것만 같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다 이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 겪어야만 했던 것임을.
영국 스코틀랜드로 왔다. 너무나도 어수선하고 위험해 보이기도 하는 이 시기에 나는 유학을 왔다. 올해 초에 이 학교에서 오디션을 본다는 모집공고를 인터넷에서 본 후 '바로 이 학교다!' 하는 끌림에, 마감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 혼자서 이것저것 검색해보며 지원했었다. 그리고선 잡힌 오디션.
오디션은 정말이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평소에도 줌으로 피아노 레슨을 진행하던 나였기에 줌으로 본 오디션은 정말 편했다. 1시간은 학교 교수님과 피아노 레슨, 또 1시간은 다른 교수님 한 분 더 들어와서 같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레슨 오디션은 꽤 재미있었다. 그동안 오랫동안 교회 반주를 해오며 그리고 건반 연주자로 공연과 녹음을 해오며 경험했던 것들이 그 레슨 한 시간에 다 정리가 된 느낌이었다. 뭔가 내가 이 오디션을 잘 보기 위해서 준비한 건 없지만 그동안 10년 동안 한국에서 음악생활을 하면서 천천히 준비가 된 느낌이었다.
인터뷰는 꽤 흥미로웠다. 지금까지 건반 연주자로 활동을 잘 해왔는데, 왜 이제 와서 뮤지컬 감독을 하고 싶은 건지. 나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질문들이었기에 영어로 내 머릿속에 있던 것들을 정확히 전달을 못했던 것 같다. 정말 횡설수설이었을 거다. 하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교수님들이 내가 하고 싶던 말들을 본인들이 정리를 하시면서 나에게 얘기를 해주셨다. 마치 본인들도 내 나이 때에 이런 생각을 가지셨다는 듯이, 내 생각을 꿰뚫어 보고 계셨다.
그러고는 몇 주 뒤, 합격 통지서가 메일로 날아왔다. 영어 IELTS 점수가 평균 7.5점을 넘겨야 한다는 조건하에. 국제학생 신분이었기에 꼭 필요한 시험 점수라고 한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2~3주 뒤가 이 시험 점수 제출 날짜였는데, IELTS는 시험 접수하고 또 시험 결과가 나오는 데에 최소 2주 정도 여유를 잡아야 한다. 시간이 없던 것이었다. 그래서 곧바로 시험 접수를 하고 영어 공부도 아닌 IELTS라는 시험 형식에 익숙해지기 위한 시험공부를 1주일 정도 하고 바로 시험을 치렀다.
생각보다 어려운 건 없었다. 처음엔 '아 이거 어떻게 하지?' 겁을 먹기도 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별 것 아니더라. 물론 시험 점수가 안 나오면 어떡할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붙으면 가는 거고, 떨어지면 한국에서 하던 일 계속하면 돼'라는 마음을 가지며 스스로 부담을 덜었던 것 같다. 마음속으로는 유학길을 간절히 원하긴 했지만, 이게 인생에 다가 아니란 걸 스스로에게 계속 되뇌었다.
시험 점수는 다행히도 정확히 평균 7.5점이 나왔다. 말하기와 읽기 시험 점수가 낮아서 '아, 끝났다...' 싶었지만 다행히도 합격. 바로 학교로 시험 점수가 적힌 서류를 보내고는 다시 인터뷰 일정을 잡자는 답변이 왔다.
그리고서는 다시 줌으로 진행한 인터뷰. 이번에는 교수님 두 분이 계셨는데 한분은 내가 공부할 곳의 부학과장님과 다른 한분은 국제학생들의 영어담당(?) 하시는 교수님이셨다. 인터뷰는 30분 정도 진행을 하였는데 정말로 편하게, informal 한 대화를 서로 주고받았다. 어렸을 적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는지, 그동안 무슨 공부를 해왔고 앞으로 어떤 공부를 더 하고 싶은지 등등, 인터뷰를 하면서 나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질문들을 계속 던져주셨기에 스스로 생각이 정리가 됐던 것 같다. 물론 영어를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하진 못하기에 조금 버벅거릴 때도 있었지만 '사실 저는 한국말도 좀 버벅거립니다'라고 말했더니 교수님 두 분이 뻥 터지셨다. 이게 영국 유머인가 싶었다.
인터뷰를 계속하면서 나도 생각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 어렸을 적 아버지 유학길을 따라서 가족다같이 영국을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나는 뮤지컬 음악 영화들을 보며 영어를 습득해왔다.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 <요셉(joseph and the amazing technicolor dreamcoat), <애니(Annie)>,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 <빌리 엘리엇(Billy elliot)> 그리고 특히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작품들을 많이 보고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나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외우고 있는 뮤지컬 작품수가 4~5곡 정도가 되더라. 대사와 음악 하나하나를 이미 다 익히고 있던 것이다. 또한 영국에 있을 때 요셉 뮤지컬에서 콰이어 하는 어린아이들 역할도 한 적이 있단 것이 생각이 났다. 정말로, 뭔가 내가 준비한 건 없지만 준비가 된, 하나님이 준비를 시켜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확 드는 인터뷰였다.
그리고서는 최종 합격 통지서를 받고 유학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검사와 준비해야 될 서류들이 생각보다 엄청 많았다. 여기저기 혼자 돌아다니며 유학길을 준비했다.
스코틀랜드 글라스고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자가격리하는 숙소까지 버스와 도보로 이동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숙소까지 걸어가는 거리만큼은 자유. 최대한 사진을 많이 찍었다.
걸어오면서 잔디밭이 넓게 깔린 학교를 지나게 되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맡아보는 잔디 냄새였다. 숨이 탁 트이는 순간이었다. 한국에서는 맡아보지 못했던 공기 냄새. 생각보다 친근한 숨이었다.
날씨는 사진처럼 어둡고 어중충하며 한국보다 춥다. 패딩을 입으신 분들도 몇몇 보였다. 평소에 시원한 것을 좋아하기에 개인적으로는 너무나도 좋아하는 날씨다.
숙소에 도착했다. Henri라는 프랑스인 친구가 나를 반겨주었다. 나랑 동갑이며 프랑스에서 프랑스 문학을 가르쳤고 현재는 휴가를 얻고 여행차 스코틀랜드에 왔다고. 자기도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나는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격리를 해야 하고 본인은 안 해도 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스코틀랜드 정부에 대해서 불만이 많은 친구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엄청 바쁘고 힘들었어서, 오히려 10일 동안 휴가를 얻은 셈이니 좋다고 하니 쿨하게 다행이라며 웃어주더라.
숙소에 온 후 짐 정리 후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연락을 남기고는 잠시 쉬었다. 쉬면서 뭐 좀 먹어야지 생각하던 순간 벨이 울렸다. 학교에서 내가 숙소에 도착할 시간에 맞춰서 딱 자가격리 키트를 보내준 것이다. 너무너무 감사해서 바로 학교에 감사하다고 메일을 보냈다.
과자, 과일, 빵, 파스타, 각종 통조림. 이곳에서는 엄청 평범하고 일상적인 음식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에서는 일상 음식이 아니기에 나에게는 너무나도 감격스러운 선물이었다.
저녁(?) 야식으로 Henri 가 파스타를 해주었다. 맛은 할많하않. (한국에서는 맛 본적이 없는 그런 파스타 맛이었다. 생각보다 시큼했고 소스를 꾸덕하니 진득하게 만들어 파스타를 움푹 적셔 먹기보다는 거의 파스타면에 소스를 바르는 정도였다. 약간의 청양고추와 청정원에서 나오는 스파게티 소스를 세 스푼 정도 넣으면 입맛에 맞을 것 같았다. 한국인의 입맛이란...) 본인도 조금 맛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테스코(Tesco)에서 산 재료들이 너무 별로였다며 핑계를 대는 친구다. 하지만 맛있게 먹어주었다. 접시를 다 비울 타이밍에 파스타 더 필요하냐는 질문에 거절을 못하고 두 세 스푼 더 먹겠다고 했다. 그래도 계속 먹어보니 그만의 매력이 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누군가가 요리를 해주면 음식을 먹은 다른 누군가가 설거지를 하는 게 예의이기에 내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했더니 본인이 요리를 하고 대접해준 거니 본인이 설거지를 하는 게 맞다고 한다. 그래서 쿨하게 설거지를 맡기고 나는 주변 정리를 같이 했다.
이렇게 스코틀랜드에서의 하루가 끝이 났다. 자가격리 0일 차 끝.
사진과 영상을 자주 찍어 이렇게 기록에 남겨보려 한다.
2021년 9월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심택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