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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택근 Nov 08. 2022

Life in Leeds, UK

Episode 2 <공부, 다시 시작>


뮤지컬 창작 <Movement(Choreography), Music, Text(Story)>


새롭다. 전에는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해보는 중이다.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야 해보는 중이다.


Movement(Choreography)

엄마는 한국 무용을 하셨었다. 기억하기로는 2000년대 초, 가족 다 같이 영국에 가기 전까지 한국에서 무용학원을 운영하셨었다. 누나와 거실에서 같이 자고 있으면 엄마가 밤늦게 들어오시고는 가끔씩 야식으로 치킨을 시켜주시곤 했다. 그때는 '밤마다 왜 치킨을 드실까'하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힘든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에 들어갈 때 아무 이유 없이 마트에 들러서 갑자칩과 탄산음료 사는 지금 내 모습을 보자면, 이제야 엄마의 행동이 이해가 간다.


개인적으로는 무용을 해본 적이 없다. 춤보다는 악기 연주와 운동을 좋아했던 아이였다. 하지만 무용을 하시는 엄마를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무용에 대한 걸 배우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춤을 배우는데 '어... 나 왜 잘하지? 이게 왜 되지?'와 같은 어찌 보면 자만한 생각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교수님들의 칭찬이 내가 이 생각을 하도록 더욱 부추기셨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 번도 춤을 쳐본 적 없는 사람이 자세가 바로 나온다는 거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역시 피는 못 속이나 보다.


오랜 시간 피아노를 쳐왔기에 무언가를 배우는 데에 있어서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는 것 같다. 첫째는 급하지 않게 차근차근히 배울 것. 둘째는 처음에는 머리로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먼저 몸이 느끼고 반응하며 몸이 기억하도록 해보는 것. 춤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가지는 마음가짐이다.


Music

피아니스트, 음악가로서 살아온 나이기에 곡을 쓰는 거에 대해서는 이것이 나의 Safe Place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뮤지컬을 공부하면 할수록, 그동안 내가 음악을 대하고 만들었던 방식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다가가야 함을 느낀다.

뮤지컬에는 모든 것에 의미가 있어야 하고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인물(캐릭터)의 성격과 그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음악 안에 표현을 해야 한다. 언어 즉, 언어에 따른 강세와 표현 방식들이 나라와 인종마다 다른데, 그 언어에 맞추어서 음악을 쓴다는 것이 쉽지가 않은 일이다.

'오늘밤나는집에가서영화한편보면서잠에들꺼야'라는 글을 한국인들은 띄어쓰기나 강세 없이(로봇이 말하듯이) 읽어도 이해를 한다. 하지만 어떤 언어는 띄어쓰기가 꼭 필요하며 또한 강세를 어디에 두냐에 따라 의미가 확 바뀌곤 한다. 음악에는 쉼표와 음표가 있으며, 박자표(4/4, 3/4 등등)에 따른 악센트(강약)의 위치가 바뀌기에 언어를 음악을 통해서 그 의미를 전달한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Text(Story)

뮤지컬에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를 쓰는 자를 Book Writer라고 한다. Text라는 과목에서는 이야기를 쓰는 방법들 그리고 Script 쓰는 방법들을 배운다.

문과생이 된 느낌이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하며 Script도 많이 읽어야 한다. 또한 정해진 형식에 맞춰서 직접 쓰기도 한다. 내가 인물을 창조하고 내 마음대로 그들이 행동할 것들과 말할 것들을 쓰는 것이 내가 마치 신이 된 것만 같다. 근데 신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이야기 쓰는 사람들은 인물들에게 자유의지 따위는 주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쓰는 데로 캐릭터가 되니 말이다.

이야기에 집중을 하고 인물들의 전개에 관심을 가지니 음악에서 그들이 '왜 이런 노래를 부를까?', '왜 이런 말을 하지?'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들이 조금씩 이해가 된다. 작년 음악감독 공부를 할 때에는 악보만 보며 그 의미를 찾아야 했는데 script를 읽으며 음악을 보니 그 의미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1학기 프로젝트로 만든 Eight Angry Jurors Musical

예술의 의미


예술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하는 질문을 한다.

이것은 사치인 걸까.

지금 이 세상에서 이것은 낭비인 걸까.


20대 초반 학교 다닐 적부터 이 질문을 끊임없이 해왔다.

하루는 연습실에서 혼자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군대에서 같이 군생활을 하던 친구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응급실에 있다는 소식을 받았었다. 학교 수업이고 뭐고 바로 천안에서 부산으로 내려갔던 기억이 있다.

응급실에서 호흡 줄 끼고 누워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는 내가 연습하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친구가 곧 하늘나라로 갈 것 같은데 내가 연습하는 게 꼭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한동안은 연습실에 있기보다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그냥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들을 관찰하곤 했다. 길거리를 하루 종일 걸으며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내가 하려는 이 예술이 저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미를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결국에는 며칠 뒤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 당시에는 내가 맛있는 밥을 먹는 것도, 내 꿈을 위해 무언가를 배우고 연습한다는 것도 죄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 그 친구를 다시 기억하자면, 그 친구는 노래 부르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기억 속에 군대 교회에서 내가 반주를 하고 그 친구가 찬양을 부르는 모습이 보인다.

그래서 그 아이가 생각날 때에는 피아노 앞에 다시 앉는다. 피아노 앞에 앉아 그 아이를 상상하며 피아노를 치곤 한다.


이것이 과연 예술의 의미인걸까?

누구에게는 사치이고,

누구에게는 낭비이며,

누구에게는 여유가 안돼서 즐길 수도 없는 예술인 걸까?


에단 호크라는 배우는 결국에 우리는 예술을 찾게 된다고 했다. 사랑에 빠질 때 우리는 모두 시인이 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었을 때 우리는 모두 위로의 노래를 부르지 아니한가.



예술은

우리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

사회적 계층이나 인종의 구별 없이

모두가 다, 원한다면

예술을 찾을 수 있도록

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예술을 할 수 있도록


십자가

Life in Leeds, UK Episode 2

https://youtu.be/URAY63haU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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