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대 그리스로의 초대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지중해, 에게해, 발칸 반도, 펠로폰네소스 반도 그리고 크레타 섬. 여러 도시 국가(폴리스: 아테네, 스파르타, 올림피아 등등)들이 있었으며 제우스, 헤라, 포세이돈과 같이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을 섬기던 시기이다.
기원전 776년, 제우스 신을 위한 제전 경기로 올림피아에서 고대 올림픽 경기가 처음 행해졌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사람들이 다양한 신들이 있다고 믿었으며 그들을 섬기기 위한 여러 제사들이 있었고 제사를 드리기 위해 자연스레 수많은 이들이 이곳저곳에서 한 곳으로 모였다는 사건에 초점을 두고 싶다.
이 당시 주변 나라들을 살펴보자. 흔히 고대 그리스 때가 와서야 여러 가지 철학과 문학 그리고 문화가 발달했다고 생각을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이집트, 바빌론 등 당시로서는 최고로 발달된 문명국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여러 글들을 남기기 오래전부터 성경 속 시편이 쓰이고 있었으며 바빌론 등 그 주변 나라들도 본인들만의 예술과 여러 신화와 시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고대 그리스가 처음 시작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성경 속 아담과 이브, 가인과 아벨, 노아와 홍수, 바벨탑, 아브라함, 요셉과 모세의 시대는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신화'와 같은 오래전 이야기였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암흑기(1100 BC - 800 BC)라 불리던 시기, 이스라엘에서는 다윗과 솔로몬 왕의 시기로 이미 큰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바빌론의 네부갓네살 2세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바빌론으로 포로가 보내졌던 시기인 597BC - 538 BC, 그리고 바빌론이 페르시아에 의해 정복당하고 포로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축하던 이 시기에 고대 그리스는 본격적으로 철학과 예술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던 때로 볼 수가 있다.
고대 그리스가 본격적으로 황금기에 접어들어 여러 문화들이 발전하는 이 시기 동양에서는 춘추전국시대 그리고 후에 한나라의 통일과 같은 사건들이 있었다. 또한 공자, 맹자, 노자 등등 여러 철학자들이 있던 시기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는 '극'도 이미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행해지던 하나의 행위였다. (앞으로 더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극이 어쩌면 고대 그리스인들이 디오니소스 신을 찬양하기 위한 어떤 모습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듯이 동양에서도 같은 이유로 제사의 특징이 강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이 많다.)
이처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철학과 예술 시작의 시기인 고대 그리스 전부터 이미 세계 곳곳에서는 여러 문명들이 번영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당시 여러 전쟁들을 하며 여러 문화가 충돌하면서(또한 여러 나라들을 정복하며 포로를 삼는 과정에서) 세계 곳곳에 있던 여러 사상들과 예술 형식들이 서로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분명 고대 그리스에서의 '극의 탄생'에 콕 집어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바로 '연기'이다. 이 전에는 '나'가 아닌 타인을 '나'로 연기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나'가 아닌 타인을 '나'로 연기하는 것이 이 당시에는 이단적인 생각이었을까?
극이 서서히 나타나기 전, 서사시(Epic Poetry), 서정시(Lyric Poetry)와 같은 장르가 있었다. 어느 한 이야기꾼이 신화 속 신과 전설 속 영웅들의 무용담을 운율에 맞춰서 노래를 한 것이 바로 서사시. 대표적으로 호메로스가 그동안 구전되어 오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를 서사시로 묶었다고 알려져 있다.
반면에 서정시는 신들과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닌 ‘나’에 집중한 이야기이다. 한 이야기꾼이 주로 리라(Lyre)라는 악기를 연주하며 부르는 노래였으며 서사시보다는 다양한 운율로 노래되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이 당시의 음악은 현재 남겨져있지 않아 어떤 소리였을지 우리는 모른다.)
홀로 악기를 연주하며 이야기를 전하는 형식을 지나 합창으로 다 같이 노래하는, 합창 서정시가 생기게 된다.
이 시기에 뒤트람(Dithyrambs)이라는 가면을 쓰고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며 디오니소스 신을 찬양하는 합창 형식이 있었다고 한다. 이 뒤트람의 작곡가였던 테스피스가 무리에서 나와 홀로 대사를 '말'하기 시작한 후부터 '연기'가 탄생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바로 무리에서 나와 홀로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주연)'과 '코러스(앙상블)'의 역할이 생겼으며 후에는 '주인공(주연)'과 '악역' 혹은 '조연'과 같은 다양한 역할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러 역할들이 생기면서 자연스레 인물들 간의 '대화'가 생겨난 것이다.
포도주, 광기, 황홀경, 쾌락, 축제, 연극의 신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신을 섬기기 위한 여러 종교축제를 만들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여러 폴리스 국가 중 문화적,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였던 아테네에서 크게 행해졌던 디오니시아(Dionysia) 축제가 가장 영향이 컸던 걸로 보인다.
이들에게 축제는 어떤 의미였을까?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정복하고 정복을 당하는 과정에서도 계속 이런 축제가 열렸다는 것에 의아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당시의 축제는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축제와는 많이 달랐던 것일까? 지금도 세계 곳곳 전쟁이 있지만 계속해서 월드컵, 올림픽이 열리는 것과 같은 것일까? 또한 당시의 전쟁은 현대인이 전쟁을 하는 방식과는 달랐던 것일까.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축제와 극장에 모이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 디오니소스 극장
저 위에 신들이 거한다고 여긴 신전의 모습이 보인다. 광장(아고라)도 보이며 반원형의 극장도 보인다. 디오니소스 신을 찬양하는 축제인 디오니시아 축제가 열렸던 곳인 만큼 이곳은 원래 디오니소스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공간이었다고 보기도 한다. 오케스트라(현재 관현악단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오케스트라(Orkestra)는 당시 메인 스테이지였다.) 무대 중앙에 번제물을 드릴 수 있는 공간 있었으며 이 무대에서 행해졌던 각종 '극'들이 아마 제사의 한 형식이지 않았을까 보는 이들도 있다. 당시 관람객들이 앉아있던 곳은 테아트론(Theatron). (테아트론이라는 단어는 헬라어의 '본다'(테아오마이; 탐구하고 관찰하듯이 유심히 바라보는 행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배우들과 '코러스'라는 인물들이 연기를 하였다. 스케네(Skene)라는 공간은 일종의 분장실, 백스테이지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이 당시에는 극장이 어떤 작품을 공연하고 그것을 관람하는 공간만이 아닌 종교적인 제사를 드리기 위한 성스로운 곳이었다. 축제 기간 중 한 순서로 '비극'이 이 극장에서 공연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초창기 극은 단순히 공연하며 그것을 관람하는 행위보다 더 큰 의미가 있었을 것이라 추측을 해본다. 이들은 왜 신을 찬양하는 이 제사 예배에 극을 사용한 것일까? 극을 통해서 디오니소스의 어떤 점을 찬양하고 싶었으며 당시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 형성에 있어서 극장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한 인물의 시각만이 아닌 극 중 여러 인물들의 시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으며 그 인물들이 서로 어떻게 문제를 달리 바라보며 해결하는지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리라. 극장은 안전한 곳(Safe Place)이라는 말을 하듯이, 각기 다른 이들이 마음껏 자신의 욕망을 표출할 수 있는 곳이었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에게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극장에서 벌이던 행위를 이방신, 거짓신을 섬기는 방탕한 죄의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디오니시아 축제 때 비극, 희극이라는 형식 하에 벌이던 행위들이 현대인들에게도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으니 말이다. 극 안에서는 누구나 누가 될 수 있기에 극의 역사를 뒤돌아볼 때 사회적으로 억압받던 자들과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무대 위에서 그나마 자유롭고 안전하게 표현할 수가 있었던 것을 볼 수가 있다. 그 결과 현대의 극은 그들을 위한 그리고 그들을 옹호하기 위한 색깔을 띠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지금으로서는 이러한 현상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 다루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이슈들을 주제로 극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며 수많은 이들이 그것을 관람하니, 현대인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도 극장과 극은 시민들의 사회적 목소리 형성에 있어서 큰 영향을 줬으리라고 정리를 해본다.
인간은 항상 영원한 것을 바라며 부활을 소망해 왔다. 시대별로, 인종별로 각각 다른 신들과 종교들이 있지만 이 부분은 공통인 듯하다. 자신들이 만들어 낸 신(들)을 예배하기 위해,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혹은 신들이 자기들에게 하는 말들을 전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그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글과 음악 그리고 무용을 사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