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비극'이라 하는가?
영단어 'Tragedy'가 우리에게 비극으로 불리게 된 이유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많다. Tragedy는 그리스어 tragōidia(염소를 뜻하는 trágos와 노래를 뜻하는 aoidós가 합쳐져 염소의 노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에서 유래되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비극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듯한 염소의 노래가 어떻게 비극으로 불리게 된 걸까?
이 질문에 대해 여러 추측들이 존재한다. 비극대회가 열리던 디오니시아 축제 때 염소가 디오니소스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라는 것. 다른 추측으로는 비극대회에서 우승하면 염소를 상품으로 받았을 것이다라는 것. 예를 들어 축구 월드컵(World Cup)에서 우승을 하면 컵/트로피가 주어지기에 그 이름이 붙여진 이유에서 말이다. 대통령 배(杯, 잔 배) 운동 대회들처럼 우승을 하면 누구의 명의로 혹은 그 무엇을 상으로 주듯이 염소를 상으로 주었기에 혹은 염소(혹은 Satyr, 사티로스)와 관련된 디오니소스 신에게 바치는 축제의 한 형태로서 비극이 행해졌기에 그렇게 불러졌으리라 추측을 해볼 수가 있다. 한국식으로 디오니소스 배 극 대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비극에서의 '비'자는 한자 슬플 비(悲)를 사용한다. 염소의 노래라고 불리던 것이 어떻게 슬픈 이야기를 뜻하는 비극이 되었나 그리고 왜 염소의 노래가 비(悲)의 감정을 느끼게 하도록 만들어졌는가 고민을 해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은 공포(fear)와 연민(pity)의 감정을 조성한다고 말한다. 또한 비극의 목적으로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일종의 정화(이 해석에는 여러 의견들이 갈린다)의 단계를 거치게 해야 한다고 한다. 비극은 즉 당시 수많은 이들이 한 공간 모여서 극을 관람하며 감정을 공유하고 사회적으로 서로 연결을 하며 개인적으로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던 기회였다. 여기서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더 깊이 들여다보자.
-비극이 일으키는 감정
우리는 감정을 마음 혹은 심장 어딘가에서 느낀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대에 와서 감정이라는 것은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흥미롭게도 여러 연구들을 보면 신체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으나 감정에 따라 특정 신체에서 어떠한 자극을 느낄 수도 있다고 하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가슴이 타들어가는 듯한 통증(슬픔)을 느끼는 것과 좋은 소식을 듣고 온 세상이 환해지며 눈이 밝아지는 듯한 느낌(기쁨)을 받는 것이 그 예이다.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실제로 심각한 우울증을 겪는 이들의 예를 들어보면 그들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을 하기도 한다.(*감정;Emotion은 뇌에서 보내는 일종의 에너지이며 *느낌;Feeling은 그 에너지와 신호들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여기서는 정리를 해보자.) 하지만 여러 뇌과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 감정들은 우리 안에 항상 있는데 그 감정들을 느끼도록 하는 무언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고장이 난 것이라고 한다. (이 주장에 의하면 우리는 생각을 조절해 어떤 감정을 느낄 것인지 선택할 수 있으며 그 선택한 감정에 따라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져있다고 얘기를 할 수도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은 어찌 보면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건강하다는 증명이 될 수가 있겠다.
-비극이 고대 그리스에 끼친 영향
넷플릭스 그리고 스포티파이와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의 발달로 인해 예전에는 다 같이 모여 경험하던 것들을 이제는 혼자서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수많은 영화감독들과 음악가들이 자신이 만든 창작물들은 누군가와 같이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며 계속해서 영화관과 공연장에서 본인의 작품들을 찾아달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 그 행위를 통해 서로 감정을 공유하는 것. 이것이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하고 값진 것이 아닐까.
물론 플라톤은 감정은 결국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이상적인 국가에서는 비극, 즉 감정을 느끼도록 하는 것들을 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화 'Equilibrium, 이퀼리브리엄' 세계관 속 인간이 감정을 느끼지 못하도록 감정을 통제받는 것이 이상적인 국가다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감정에 따라 행동을 하게 되는 인간이기에 플라톤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할 수가 있다. 영화 'Joker, 조커'에서와 같이 조커가 느끼는 그 복잡한 감정들이 잘못된 방법으로 표출이 되면 분명 사회를 혼란시키는 이유가 된다.
중요한 점은 고대 그리스에서는 시민들이 이런 감정을 느끼고 표출할 수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비극을 관람함으로써 인간이 겪게 되는 여러 감정들과 그 감정들에 따른 행동의 변화가 당시 그리스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리라. 비극을 관람하면서 여러 감정(특히 공포와 연민)들을 느끼고 또한 다른 관객들과의 '공감'을 경험했을 것이다. 공감을 하며 한 무리에서 소속감을 느끼는 것. 그것이 고대 그리스에서 각 도시의 일원으로서 정체성을 갖는 데에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비극대회가 만들어지고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장려한 것을 보면 고대 그리스에서는 소속감을 매우 중요시 여긴 것 같다. 여러 전쟁을 치르던 시기에 시민들을 한 마음으로 모으는 데에 있어서 비극을 관람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었으리라. 또한 수많은 철학자들이 살았던 시대였으며 그들이 던지던 수많은 질문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만물의 근원에 대해, 인간의 존재에 대해, 자연 형상들에 대해,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들에 대해 '신'이라는 초월적인 존재들을 만들어 설명하려던 이들이 점점 '왜'라는,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정의와 규칙들에 질문을 하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이야기를 만들어 상상을 하며 다른 이들과 감정들을 공유해 왔다. 2024년 현재에도 수많은 책과 영화와 연극과 뮤지컬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인간은 생각을 하는 동물인 것과 동시에 상상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우리가 원해서 예술 작품들을 관람하는 것이 아닌 필요에 의해서 관람하는 것이었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예술은 인생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이 관점에서 예술 작품의 역할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여러 생각과 상상과 감정을 느끼는 과정을 통해 찾게 하며 홀로 가지고 있던 생각과 감정들을 창작자 혹은 다른 관객과 공유함으로써 현실 세계를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라고 이 글에서는 정리를 해본다.
-
*다음 편에서 고대 그리스의 대표 비극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들 그리고 그 구성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