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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Oct 02. 2019

떠날 채비

미국으로 이사 오면서 끊어둔 왕복 비행기 티켓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덕에(?) 한국에 잠시 다녀오게 됐다. 외국생활을 하다 한국을 들어가는 기분을 꽤나 오랜만에 느껴서인지 뭔가 설레면서도 이것저것이 섞인 묘한 기분이 든다.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쌀쌀해지는 날씨에 혼자 집에 오도카니 있을 남편을 생각하자면 발걸음이 아주 가볍지만은 않다. 


흔히들 엄마들이 장기간 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곰국이나 카레처럼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해 두곤 하는데, 그렇게 해둘까 싶다가도 굳이 뭐 내가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자기 먹을 것은 스스로 알아서 해 먹겠지 하는 생각에 관뒀다. 대신 내가 없는 동안 먹지 않을 식재료들은 미리미리 반찬으로 만들어 먹고, 가급적 냉장고를 비워두고 가야겠다는 생각만 있을 뿐. 남편에게 내가 집을 비우는 동안을 대비해서 뭘 좀 만들어 놓을까? 했더니 파나 좀 다듬어 두고 가랜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역시 내 남편답다 싶었다.


몇 달 만에 캐리어를 꺼내고, 간절기에 입을만한 니트들을 꺼내어 담으니 괜히 꽤 오래 떠날 사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남편과는 떨어져 산 시간이 결혼생활의 절반 가까이 되는지라 헤어짐이 익숙할 줄 알았는데, 막상 혼자 두고 가려니 괜스레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그리고 없는 걱정도 만들어서 하는 성격 탓에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둘은 어쩌면 다시 떨어져 지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그때도 쉽진 않겠구나 마음이. 떨어져 산다는 것의 실체를 알지 못했던 때, 공항에서 처음으로 헤어지며 우리는 울었다. 그리고 그 시간 이후로 내게 공항은 헤어지는 곳, 서글픈 곳으로 밖에 기억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공항이 주는 쎄한 아쉬움의 공기가 싫다.


짐이 많지도 않고, 집과 공항이 가까운 거리도 아니라 혼자 공항까지 가겠다고 했다. 그 길을 다시 혼자 되돌아와야 할 그가 좀 짠하기도 했고, 굳이 피곤해야 할 일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항에서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떠남의 설렘으로 가득 찬 공항에서 나만 울고 있는 그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겨우 며칠 혹은 길어야 한 달 남짓 떨어져 지내는 건데 뭘 그러냐~해도 막상 그 장면에 서게 되면 왈칵 눈물이 앞선다. 분명히 조만간 다시 올 집인데도 떠난다는 마음이 주는 생경함은 괜히 생각이 많아지게 한다.


나의 떠남이 남편에게는 일종의 홀가분함일 텐데 나 혼자 이렇게 청승(?)을 떨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찌 됐건 떠남이 주는 마음은 자주 해도 습관처럼 몸에 익지는 못하나 보다. 혼자 지내면서도 잘 먹고 잘 자고 무척 잘 지낼걸 알면서도, 괜히 한번 더 쓸고 닦고 혹시 혼자 지내며 불편할 게 없는지 이리저리 살핀다. 새롭게 살게 된 곳을 잠시 떠나 원래 살던 곳을 방문하는 흔치 않은 경험이 주는 복잡 미묘한 이 감정이 그저 새롭기만 하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가지고 떠난 나는 또 한국에서 세상 가장 신나게 돌아다니며 흐르는 시간을 아쉬워할 것이라는 것도 대충은 짐작이 간다. 


덧붙이는 글.

어제 이 글을 쓰고 저장해둘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남편이 예약해 둔 공항버스를 나만 타고 간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다 함께 저녁을 먹던 중에 대뜸 남편이 "나도 공항 가는데?"라고 말하는 바람에 생각지도 못하게 심쿵했다. 이 사람 매력은 정말 빠져나올 수가 없다. 매력투성이 남편 덕분에 우리는 또 공항에서 잠깐의 헤어짐을 마주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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