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삶]_세르티양주
“ 공부는 그 자체로 성스러운 의무다.
지적인 삶을 사는 데는 매일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공부하는 삶]에서
이 책의 저자는 앙코냉 질베를 세르티양주(1863-1948)로 프랑의 가톨릭 신자이면서 철학자이다. 공부를 인간의 소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했다. 서평은 아니고. 책을 읽다가 밑줄을 치게 되는 문장이 있는데. 이런 문장들은 생각을 머물게 한다. 종교인으로서 신의 소명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무교인 나에게 와닿지 않지만. 우리가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세르티양주는 공부를 위해 절제하고, 신체를 돌보고, 식사와 수면에 신경을 쓰고, 일상생활을 단순화하고, 사교활동을 삼가고, 내면의 고요를 유지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언제나 진리에 주의를 기울이고, 아침과 저녁에는 때에 맞는 활동을 하고, 열정을 가지고 집중해서 탐구하라고 요구하며, 읽기와 기억하기, 노트하기,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한다.
- 공부를 위해 절제하고 신체를 돌보고 하는 행위들은 자신을 돌보는 일이다. 살아 있는 공부를 하면서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참된 인생이라고 그는 말한다. 신자라는 면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과제인지 모르겠다. 우리의 삶도 수도승의 것과 다르지 않다. 살다가 죽는다. 외부의 것들은 개인의 환경적 차이일 뿐이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위해 글을 써야 한다. 자신의 입장과 문제를 뚜렷이 보기 위해, 자신의 사유를 규정하기 위해, 계속 활동하면서 정신을 환기하지 않으면 시들해지는 주의력을 유지하고 자극하기 위해 써야 한다.
- 배우고 익히고 그다음은 글쓰기라는 결과물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생각을 적으면 뇌에 새겨진다. 나는 그렇다. 희미하던 생각의 점들이 선이 된다. 이런 선들은 나의 행동을 만든다. 생각이 먼저지만 글을 쓰는 일은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인품이다
- 학식이 높은 사람은 존경을 받는다. 그저 배움이 자기만족으로 그치는 일은 안타까운 일이다. 학식이나 학벌이 그 사람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공부의 목적은 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과정이며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배움은 자신의 오류와 한계를 넘기 위함 이기도 하다.
공부는 삶의 활동이어야 하고, 삶에 이바지해야 하며, 삶으로 충만해야 한다.
- 아하. 이렇게 살고 싶다. 이타주의에 관해 배웠다면 자신의 삶에서 이타적인 생활을 적용하며 하는 거다. 그림을 좋아해서 배우고 익혔다면 그림을 그리면 된다. 그다음은 누군가를 위해 그림을 그리거나 그림으로 기금을 마련해 다른 이를 돕는 일을 할 수도 있다. 이타주의라는 것을 몸으로 실천하며 자신을 한껏 드러내면서 사는 일. 이렇게 충만하게 살아 보고 싶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어쩜 저렇게 표현할 수 있는지 감탄할 때가 있다. 꾸준히 글을 올리는 사람들의 부지런함도 보기 좋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공부하는 삶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저마다 자신의 생각을 적는다. 글을 읽으면 그 사람이 보인다. 나는 사유하는 걸 좋아한다. 내면의 것들. 그래서 자꾸 글이 비장해지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처럼 흉내도 내보지만 다시 비장해지기 일쑤다. 어쩌랴. 그게 나인걸. 이 저자의 진지함이 고리타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숙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