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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 Aug 09. 2021

구분 짓기

[참을 수없는 존재의 가벼움]_밀란 쿤데라

"소설은 불만족스러운 삶에서 환상적인 도피의 가능성을 그녀에게 제공해 주었다. 또한 그것은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그녀는 옆구리에 책을 끼고 산책하기를 즐겼다. 그녀에게 있어서 책은 지난 세기의 신사들이 들고 다니던 우아한 지팡이와 같은 것이었다. 책으로 인해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었다."

_61p


# 테레사는 토마스를 찾아 프라하에 가던 날에 [안나 카레니나] 책을 들고 있었다. 


# 나에게도 책은 내 삶의 도피처다. 멀쩡해 보이는 것과 실재는 다르다. 자신만이 안다. 자신만의 지옥. 자신만의 망상일 수도 있다. 뭐라고 불리든 내 마음이 안 멀쩡하다는 게 중요하다. 석가모니나 노자처럼 인간의 경지를 넘어서는 중도의 지혜나 해탈을 바라지도 않는다. 어차피 불가능하다.


# 나에게 책은 쉼터다. 가끔 책 속의 주인공처럼 살고 싶다.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안다. 현실에서는 B급 인생이지만 책을 손에 든 나는 멋진 사람이 된 것 같다. 테레사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책으로 인해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었다."라는 문장은 지적인 사람이냐 아니야를 구분하는 수단으로써의 분별이 아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지극히 구분되는 게 무엇이지 스스로 규정짓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연적 요소가 많으면 많을수록 의미가 더 커지고,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오직 우연에서만이 메시지가 나타날 수 있다. 필연성에 의한 것, 기대에 의한 것, 일상의 반복에 의한 것은 아무런 메시지를 주지 못한다. 오직 우연만이 우리들에게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해 준다. 마치 집시들이 컵의 밑바닥에 앙금이 진 커피의 모양을 보고 운세를 점치듯이, 우리들은 우연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려고 애쓴다. 마술처럼 신비스러운 것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다."_62p


# 테레사가 일하는 곳에 우연히 이방인인 토마스가 나타난다. 그때 베토벤 음악이 흘러나온다. 테레사는 운명이라 믿는다.


# 운명적 만남은 예나 지금이나 짜릿하고 숭고한 그 무엇이 된다. 왜 우리는 우연에 열광하는 걸까. 특별하다는 것은 희소성과 관련되어 있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는 일. 사람과의 만남도 비슷하다. 우연성에 더 특별함을 부여하는 것은 반복적인 것에 우리의 반응이 둔해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린 왕자가 친구인 여우를 기다리던 밀밭이 떠오른다. 우리는 운명이라는 의미도 확장시킨다. 우연은 우리에게 운명이라는 열쇠를 던져준다. 이 열쇠는 우리를 어떤 곳으로 데려다줄까? 


출처_[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문화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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