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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 Jul 12. 2020

남의 꿈 vs 나의 꿈

실패와 성공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옷을 사러 가면 쭉쭉 빵빵 마네킹이 입은 옷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머릿속으로 마네킹 대신 내가 입은 모습을 상상해 본다. 대충 그럴싸하다. 하지만 실제로 입어보면 역시 나에겐 안 어울린다. 이것저것 입어 봐야 겨우 입을 만한 옷 하나를 건진다. 입어보지 않으면 나에게 어울리는 옷이 어떤 건지 알 수 없다.


꿈도 그렇고 직업도 그렇다. 옷 고르는 것과 닮았다.

 

이십 대부터 난 늘 꿈을 쫓아다녔다. 나에게 맞는 직업은 이걸까 저걸까? 또 이것이 내 꿈이 맞나?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선생님 칭찬 한 번에 화가가 되고 싶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미술학원은 꿈도 못 꿨다. 난 부모를 원망했다. 지금도 이것저것 끄적거리고는 있지만 그림 그리는 일이 내가 원하던 꿈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대학은 점수에 맞춰 갔다. 영문과에 가고 싶었지만, 1 지망에서 떨어져 일문과를 갔다. 영문과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대학생활을 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영문과도 내가 원했던 게 맞나 싶다. 영문과는 그 당시에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무난하게 선망했던 학과였다. 진짜 원했던 거라면 학교 다니면서 영어공부를 혼자라도 하지 않았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불교신문사 기자를 지원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다. 그냥 기자라는 직업이 멋있어 보여서 그랬던 것 같다. 그 후 번역회사에 입사지원을 한 적도 있다. 그다음엔 애니메이션 학원에서 그림 그리는 일을 배워 애니메이션 회사에 들어갔다. 수작업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일은 대체로 만족스러웠으나 낮은 임금은 나에게 실패자라는 주홍글씨만을 남겨 주었다.


그쯤 난 선을 보고 3개월 만에 결혼했다. 결혼은 정답은 아니다. 인생은 개별이다. 남의 인생에 묻어서 살 수 없다. 나도 안다. 하지만 적어도 그때의 나는 결혼도 못하고 나 혼자 남게 되는 게 두려웠다. 아이를 갖게 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내 인생인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아이도 잘 키우고 싶고 나 자신을 위한 일도 다시 찾고 싶었다.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욕심이 커질수록 집착이 되어갔다. 다른 아이만큼 무언가를 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잠자는 아이를 깨워가며 문화센터를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어디서도 특출 나지 않았다. 남편과 자식을 통해 대리 만족과 성공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초조했다. 이렇게 아이를 키우다가 전업주부로 쪼그라들까 봐 두려웠다. 나의 무능력을 사람들에게 들킬까 조바심이 났다. 나는 겨우 한돌을 넘긴 아기를 친정 엄마에게 맡기고 학습지 영어교사를 시작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 집단에서도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몇 개월 하다가 그만두었다. 


친정 엄마와 음식점도 차렸다가 망했다. 그다음엔 공부방을 시작했다. 양육과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고 반나절만 일하는 것도 괜찮았다. 공부방 프랜차이즈는 매월 지사 모임이 있다. 잘 나가는 지점의 성공 사례를 들려주고 노하우를 공유하는 모임이다. 내 공부방은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역량을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돈을 얼마큼 버느냐는 자존감에도 영향을 미친다. 항상 어디에 소속이 되어도 실패자 같은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항상 잘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남과의 비교는 자신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이런 생각의 습관은 아주 안 좋다. 그런데 자꾸 그런 못난 생각을 하게 된다.


공부방을 하던 중에 남편 친구가 공무원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연령제한 폐지를 그때서야 알았다. 일을 하면서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따고 시험공부도 병행했다. 진짜로 시험에 합격을 했다. 처음에는 너무 좋았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은 처음 가져보는 거다.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다. 이제 확실히 알았다. 이것도 남의 꿈이었다는 사실을... 남들은 이런 내 감정이 사치라고 할지 모르겠다. 이곳에서도 난 아무것도 아니다. 이 직장을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 겉도는 느낌이다.


내 인생의 대부분을 남의 꿈인 줄도 모르고 달려왔다. '한 번의 선택으로 나락으로 떨어지면 어떡하지? 낙오자가 되면 어떡하지?' 이런 질문을 하면서 살았다. 


나머지 인생을 또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지금 나는 덫에 걸린 느낌이다. 제 발로 들왔으나 그만두는 일은 쉽지 않다. 


무엇이든지 선택하고 해보지 않으면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판사나 변호사, 의사라 할지라도 나에게 맞지 않으면 그만이다. 난 아직도 꿈을 꾼다. 나를 마음껏 드러내며 나답게 살고 싶을 뿐이다.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라고 한다.

흔한 말이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직도 난 실패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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