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달문moon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산 Feb 16. 2020

5. 지금은

  

시인들마다 

시를 쓰는 습관이 다르다

나는 시를 쓰기 위해서는 

예열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현실은

시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예열중이다  



북쪽 / 이용악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


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


다시 풀릴 때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마음은 눈감을 줄 모른다


  

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② 

천양희 시인의 <직소포에 들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나온 절창

글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천양희 시인

1942년 부산 출생. 1965년 이화여대 국문과 4학년 재학 중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마음의 수수밭》, 《오래된 골목》, 《너무 많은 입》 등이 있다.         



폭포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꿩이 놀라 뛰어오르고 

솔방울이 툭, 떨어진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다.     


와 ! 귀에 익은 명창의 판소리 완창이로구나.     


관음산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정상이란 생각이 든다 

피안이 이렇게 가깝다 

백색 淨土! 나는 늘 꿈꾸어왔다     


무소유로 날아간 무소새들 

직소포의 하얀 물방울들, 환한 수궁을.     


폭포소리가 계곡을 일으킨다. 

천둥소리 같은 우레 같은 

기립 박수 소리 같은 

바위들이 몰래 흔들 한다     


하늘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무한천공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 와서 보니 

피안이 이렇게 좋다     


나는 다시 배운다.     


절창의 한 대목, 그의 완창을.         

 

<직소포에 들다>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나온 절창이다. 그이는 죽기 위해 직소포에 갔는데, 거기서 ‘피안이 이렇게 좋다’는 걸 깨닫고 다시 살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죽음 저쪽에서 삶의 이쪽을 바라보면 차안(此岸)은 피안(彼岸)이 되고 피안은 차안으로 자리를 바꾼다. 그러니까 이 시는 죽음 저쪽에서 삶의 안쪽을 바라보고 삶이 아름다운 기적이란 걸 홀연히 깨닫는 명오의 순간을 기록한 것이다. 보라, 시의 첫 행부터 동사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동사는 살아 있는 것들의 움직임을 포획하는 그물이다. 죽음은 영원한 멈춤이다. 죽어서 움직임이 멈춘 주검에게 동사는 더 이상 쓸모없다. 그러니까 죽음은 동사가 필요 없는 상황으로 직진하는 것이다. 동사는 살아 있는 것의 곁에 붙어서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봉사한다.    


동사는 삶의 징표들이다. 동사의 활용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삶의 활기, 사물의 운동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증거다. 과연 “폭포 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꿩이 놀라 뛰어오르고 솔방울이 툭, 떨어진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다.” 산꿩은 공중으로 도약하고, 솔방울은 중력의 법칙에 순응하여 땅으로 떨어진다. 살아 있는 것들은 부스럭거리고, 꿈틀대고, 흔들거리고, 일어서고, 달리고, 춤춘다. 살아 있는 것들의 세상은 움직임으로 충만하지만, 반대로 죽은 것들은 움직임이 없다. 폭포 소리가 잠이 든 듯 고요한 산을 흔들어 깨운다. 산꿩은 그 소리에 놀라 뛰고, 나뭇가지의 솔방울은 떨어진다. 도토리를 주우러 나왔던 다람쥐가 꼬리를 쳐들고 생기로 충만한 주위를 유심히 살피는데, 오솔길이 저 혼자 환해진다. 절망 때문에 경직되어 가던 마음이 움직이는 것들이 만들어 낸 생기로 충만한 세상과의 만남으로 돌연 경직에서 풀려나는 기미를 힘차게 드러낸다. 직소포의 물은 위에서 아래로 큰 동선을 그리며 떨어지는데, 그 거침없는 하강의 움직임과 소리의 웅장함으로 이룬 거대한 활기를 죽음만이 살 길이라고 믿는 ‘나’의 마음속으로 수혈한다. 기진하여 빈사지경에 이른 ‘나’의 마음은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 빚는 저 웅장한 생의 찬가와 조응하며 기쁨으로 가득 찬다.    


관음산은 그 자체로 평지돌출, 즉 수직으로 일어서는 기운의 총체다. 산의 솟구침은 형태론적으로 발기(勃起)이며, 감싸고 안으로 받아들이는 음의 기운에 비해 밖으로 발산하며 뻗치는 양의 기운의 득세를 나타낸다. 관음산은 양의 기운이 집약되어 그 이마가 하늘에 닿은 산이다. 하늘 위로는 무한천공이다. 산은 거기 있는 세상 속에서 결코 거기 있지 않은 세계다. 우리 선조들은 산을 가리켜 선계라고 했다. 시인이 산을 오르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거기에 있으면서도 거기가 아닌 세계를 찾아 떠난 곳이 산이다. 높이 솟아 너른 품 안을 가진 관음산은 온갖 활동운화하는 것들을 품는다. 그중 하나가 시인이 만난 직소포다.    


‘나’는 그 산의 품으로 날아든 “무소유[의] 무소새”다. 힘찬 소리를 내며 직소의 물들은 수직으로 하강하고, 하강운동 중에 물들은 물방울이 되어 제멋대로 튀어오른다. ‘나’는 놀란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본다. 저 힘찬 생의 몸짓들이야말로 그토록 오래 꿈꾸어 왔던 “백색 정토!”이며, “환한 수궁”이 아닌가. 어느덧 “무소새”는 폭포에서 떨어져 공중에 떠있는 무수한 비말(飛沫) 중의 하나, 한 방울의 “환한 수궁”으로 거듭 태어난다.    


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옛날부터 하나를 얻어서 된 것들이 있다. 하늘은 하나를 얻어서 맑고, 땅은 하나를 얻어서 안정되며, 신은 하나를 얻어서 영험하고, 계곡은 하나를 얻어서 채워지며, 만물은 하나를 얻어서 산다. 昔之得一者,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노자, 『도덕경』 제39장) 그 하나가 무엇인가? 그게 도다. 시인은 죽기 위해 삶의 벼랑까지 갔다가 홀연 그 하나를 얻었다. 시인의 내면에서 눈뜬 것은 明이요, 觀이다. 눈이 열리니, 생명우주의 광대무변한 운용 속에서 작용하는 도를 홀연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랭보는 시인을 見者라 했던가! 폭포 소리는 낮게 엎드린 계곡을 일으킨다. 그 기세로 산꿩이 놀라 뛰고, 솔방울은 가지를 버리고 땅으로 내려앉는다. 직소포의 물소리는 삶의 온갖 질곡에 주검으로 엎드려 있던 ‘나’의 마음마저 일으키려고 내민 손이다. ‘나’는 그 손을 붙잡고 일어선다. 죽은 마음이 살아서 일어서니, 천(天)ㆍ지(地)ㆍ신(神)ㆍ곡(谷)ㆍ물(物)이 그 기미를 알아차리고 하나가 되어 힘차게 “기립박수”를 보낸다. 저 몸 무거워 매사가 굼뜬 바위거사마저 엉덩이를 들고 흔들 한다.        


천양희(1942 ~ )는 부산 사람이다. 부산 일대에서 보낸 그이의 어린 시절은 유복했다. 아버지는 한시를 외우실 만큼 풍류를 즐기는 분이셨고, 총명한 어린 딸을 애지중지했다. 그이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고향을 떠나는데, 그이에겐 실낙원(失樂園)의 아픈 체험이다. 이화여대를 다닐 때 <현대문학>에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시인이 되었다. 시인과 사랑에 빠져 살림을 꾸렸으나 가야 할 길이 달랐다. 멸망한 왕조의 공주와 같이 그이는 혼자 생계를 꾸리며 갖가지 험한 일을 해야만 했다. 그 고된 세월을 불경(佛經)을 외고 마음을 다스리며 건너온다. 시인이 된 지 마흔 해가 넘지만 그 마흔 해를 오롯하게 시만 쓰며 살지 못했다. 10년 넘게 시를 손과 마음에서 놓고 딴 짓하며 살았다. 홀로 먹는 밥은 차고, 밥이 찬 만큼 삶은 늘 시리고 버거웠으며, 상처는 자주 덧났다. 이도저도 다 싫어 그저 죽으려고 마음을 먹은 적도 있다.     


그이는 굳은 마음으로 직소포를 찾았다. 위에서 아래로 힘차게 떨어지는 물을 보면서 죽을힘이 있다면 그 힘으로 살아야만 뜻이 선다는 걸 번쩍 깨우치고 돌아왔다. 세월이 흘러 상처가 아물자 그 자리에 옹이가 생겼다. 다시 시에 매달렸다. 그이가 밥 먹고 잠자는 방은 면벽 수도하는 청정도량이 되었다. 마흔 해나 되는 독거(獨居)의 삶을 오로지 책 읽고 시를 쓰는 수행(修行)으로 끌어올렸다. 그이의 시구는 무르지 않고 매듭진 자리처럼 단단하다. 살아온 세월이 맵고 짜기 때문이다. 그이는 문단 어른 노릇을 톡톡하게 하려고 한다. 옳은 것에 내줄 가슴은 넉넉하지만 그른 것에 내줄 가슴은 없다. 그래서 참지 못한다. 그이의 말은 내려치는 죽비다. 말재기를 하다가 그 죽비를 맞고 혼비백산한 후배 글쟁이들이 한둘 아니다. 말이 화근이니 당나발 불거나 능갈치는 후배들의 그릇됨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호되게 야단을 치지만, 돌아서면 가슴을 아파한다.    

사진 : 이창주     


* 《topclass》 2007년 09월호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


매거진의 이전글 4. 나는 지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