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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Feb 16. 2020

4. 나는 지금

깊은 밤 산책을 나간다   

 

개 짖는 소리 멀어지고

지상의 불빛 모두 사라진다

계곡 물소리가 나를 감싼다

물소리를 짚고 가는 지팡이 소리에

하늘에는 젖은 별빛들이 피어나고

월라봉에서는 노루가 노루를 부른다    


유반석에서 부엉이 소리가 들려오고

달도 보이지 않는데 박수기정에서 

항아가 내려와 샘물 마시는 소리 들린다       


‘김광종영세불망비’ 앞에 앉아서 나는

도깨비들의 춤을 보며 물소리를 받아 적는다

휴대폰 메모장에 물소리와 별빛을 받아 적고

다시 하늘을 보니

그 많았던 별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다    


나는 다시 별빛을 찾아서 계곡으로 돌아가는데

별들은 보이지 않고 동백꽃들만 길가에 내려앉아

깊고도 푸른 물소리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있다     


며칠 전에 메모를 했는데 이 메모를 시로 만들어보려고 한다. 제목은 <밤 산책>으로 할까 고민 중이다. 앞으로 이 메모가 시로 완성될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다시 시를 쓰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어디까지 와 있을까? 그리고 나의 시는 어디에서 어떻게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을까 깊이 고민하고 있다.    


새로운 시를 쓰기 위해서는 지난 날 내가 썼던 시들을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쓸 수 있는 시와 내가 써야할 시를 찾아야만 한다. 옛날에 내가 썼던 시보다 한 발짝이라도 더 앞으로 전진 한 시를 써야만 한다. 그것이 살아있는 시인의 운명이다. 똑 같은 시를 반복해서 쓰거나 후퇴한 시를 쓴다면 차라리 다시 쓰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우리들의 고향

― 길이 있는 풍경    


나는 밭 가운데 너뷔바위에 앉아 있었다

아침 시선은

고춧대 하나에 꽂혀 있었다

외톨이처럼

뽕나무 가지 버팀목이 없었다 


참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고춧대가 휘청거렸다

또 한 마리가 날아왔다

고춧대가 드디어 꼬꾸라졌다 


새는 약속처럼

한꺼번에 떠났다

고추나무는

끝끝내 일어서지 못했다 


그러한 밭에서 걸어 나온 길로

살벌한 평화처럼

젖은 여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들의 고향

― 밤하늘은 반란이다   

 

고향의 밤 별들이 싸운다 밤하늘은

반란이다 바람이 분다 쓰러진다 다시

넘어진다 별은 쌈질하는 입이다 주점

젊은 여자의 열린 자궁 속이다 길들이

제 골목을 찾아 들어가도 동네는 앞으로도

시끄럽다 물소리도 밤하늘을 쥐어뜯으며

이어져 흐른다 그래도 사랑하는 고향 우리 집은

골목 끝으로 몰렸다 동네의 개들은 무리지어

일제히 짖어댔다 끝에 매달린 우리는 건너로

이어지는 길을 보았다 바람에 쓰러진 곡식들이

줄기로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솟아올랐다

태풍의 눈이 다시 무섭게 쏘아 보았다 우리들의

다리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포식한 어둠은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악을 썼다 몽둥이질

낫을 들고 휘둘렀고 쇠스랑으로 후려

갈겼다 검은 까마귀는 떼로 몰려와 무덤을

만들었다 무덤 속에도 하늘이 있었다 떠가는

흰 구름 변두리에 걸린 빛의 폐곡선에

갈라진 고향의 고샅길들이 감기고 있었다 그

하늘 속에는 메마른 공동우물이

파헤쳐져 있고 동네 사람들은 거꾸로 매달려,        


심사평 ― 두 심사위원은 별다른 이견 없이 배진성 씨를 당선 시인으로 정하는 데 합의하였다. 그는 두 권 정도의 시집이 될 만한 작품을 투고하였다. 오히려 어려움은 이 많은 작품 가운데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하느냐 하는 데 있었다. 결국 ‘길이 있는 풍경’과 ‘밤하늘은 반란이다’ 두 편을 골랐지만, 이 선정은 필연성이 있는 것이라고 자부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는 것은 배진성 씨의 작품이, 많은 작품 수에도 불구하고, 매우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의 시는 오늘의 범람하고 몽롱하고 막연한 서정시나 비분강개의 시의 언어에 비하여 괄목할 만한 탄탄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의 시가 오늘의 현실 ―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거기에 서정이나 판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느낌과 판단에도 흐릿함이 있고 탄탄함이 있게 마련인 것이다. 수가 많은 만큼 또 고른 수준의 것인 만큼 그의 시가 믿을 만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수준의 한계가 이미 다 드러나 버린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지금의 수준이 가장 바람직한 폭과 깊이, 무엇보다도 오늘의 수다스러운 시세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시상과 표현의 압축에 도달하였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심사위원 / 김우창, 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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