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나이테만 보여주는 것이고
산문은
나무 전체를 설명하는 것이다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 나무를 글로 표현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시로 표현하는 방법이 있고 산문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있다.
산문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또한 여러 가지가 있다. 나무가 서 있는 주위 배경을 설명하고, 나뭇잎부터 가지와 기둥과 뿌리까지 모두 설명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나무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햇빛이며 바람이며 달빛이며 별빛까지 모두 설명을 곁들일 수 있다. 그리고 나무의 일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나무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나무가 겪은 모든 세월을 설명해야만 한다. 그래도 어쩌면 그 나무의 일생을 모두 설명하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런 산문에 비하여 시는 오히려 그 나무의 일생을 간단하고 명료하게 표현하는 방법이 있다. 나무 밑동을 잘라 나이테를 보여주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다. 나이테에는 그 나무의 일생이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압축된 일생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간단한 지식이 필요하다. 나이테를 읽어보면 어느 해에는 날씨가 추웠는지 알 수도 있고 햇빛의 방향도 알 수 있고 더욱 예민한 사람은 나이테 안에서 바람의 방향이나 바람의 세기까지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독자에 따라서 산문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 모든 것을 설명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고 간단히 나이테만 보여주면 스스로 그 나이테를 오래도록 해석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나이테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과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 시가 바로 그런 속성이 강하다. 나이테에는 대부분 반복과 운율이 숨어 있어서 산문에 비하여 산만하지 않고 단정하다. 그리고 나무를 자르면 꽃향기와는 또 다른 나무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시인들은 대부분 밑동을 자르고 처음 나이테를 보는 순간, 그 순간에 함께 맡을 수 있는 그 나무 향기가 좋아서 평생 시를 쓰는 경우가 많다.
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 이상국 〈혜화역 4번 출구〉
혜화역 4번 출구에서의 작별인사
글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 사진 : 김선아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의 소작이다
내 조상은 수백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우는 저를 업고
별하늘 아래서 불러준 노래나
내가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알겠는가
그래도 어떤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메시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 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 가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나의 마지막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애는 나를 안아 준다 아빠 잘 가
〈혜화역 4번 출구〉는 아비와 딸의 어긋나는 운명을 쓸쓸한 어조로 노래한다. 해방 이듬해 태어난 시인이 시적 화자인데, 전형적인 농경민의 후예다. 농경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전통적 삶의 방식을 몸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아비는 농경사회가 내면화하고 있는 덕목과 유습들에 기대어 살아온 사람이다. 그것은 퇴락한 시골집, 낡고 오래된 세간들, 느린 변화의 삶들, 시제나 제사와 같은 의례들, 땅의 복원력에 대한 믿음, 파종의 기쁨, 농업 노동의 고단함에 적응해야 할 뿐만 아니라, 농경사회의 친족 중심주의, 달과 계절과 해[年]로 분절된 주기적 리듬들, 유순함, 상호의존을 받아들임을 뜻한다. 시인은 고백한다. “나는 그곳의 산천을 물려받았고 농사하는 부모를 통하여 수천 년 농경문화를 태반으로 나고 자랐다. 그것들은 여전히 내 속에 작동하고 있으며 그곳의 농업적 사고와 투박한 언어들 그리고 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지배했던 전통적 삶의 양식과 정서는 내 시의 바탕이자 원적지가 되었다.”(《유심》, 2014. 6) 시인의 고백에 따르면 농경사회에서 누적된 삶의 경험들, 그리고 정서적 바탕은 그의 감정과 삶의 원적지다.
해방 이듬해 태어난 시인은 조상 대대로 농경민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농경문화의 전통을 내면화하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경험의 구조나 토대가 다를 수밖에 없다. 아비에겐 늦게 얻은 딸이 있고, 딸은 서울로 유학 와서 ‘원룸’에 산다. 서울에 온 시적 화자는 원룸에서 딸과 함께 잔다. 딸은 침대에서 자고, 아비는 바닥에서 잔다. 수백 년 동안이나 소를 기르던 조상의 후예는 바닥에서 자는 게 편한데, 그것은 스스로를 “대지의 소작”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딸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사람] 부리는 걸” 배운다. 그 딸이 수백 년 조상의 기억이 중첩된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딸에겐 관동지역에 쌓인 개체 발생의 기억도, 농업적 사유나 상상력도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 딸애의 정서나 입맛은 ‘도시인’의 것이고, 그의 생각과 삶은 오늘의 ‘세계인’이 하는 것들로 귀속한다. 그런 딸과 농경문화를 태반으로 나고 자란 자신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쓰디쓰게 확인하는 것이다. 그 마음에 서리는 것은 서운함이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그게 불가피한 운명인 것을.
〈혜화역 4번 출구〉는 시골에 사는 아버지가 서울 ‘원룸’에 사는 대학생 딸을 만나고 헤어지는 얘기다. 아비는 어떤 사람인가. “해 지고 어두우면 큰 소리로 부르던 나의 노래들/나는 늘 다른 세상으로 가고자 했으나/닿을 수 없는 내 안의 어느 곳에서 기러기처럼 살았다”(〈산그늘〉). 아비는 늘 다른 세상을 꿈꾸었으나 그 꿈을 실현하지 못했다. 조상들이 소를 기르며 밭을 일구고 살았던 고향을 떠나지 못한 채 평생을 지냈다. 아비는 농경문화의 유습에 속속들이 젖어 산 사람이다. 딸애를 바라보는 아비의 눈길에는 만감(萬感)이 담긴다. 딸은 아비의 마지막 농사다. 아울러 딸은 ‘타자화된 자기’일 텐데, 서울의 대학생이 된 딸은 낯설다. 자기에게서 멀어진 딸을 바라보는 아비의 눈길은 애틋하다. 우는 어린 딸을 등에 업어 달래며 키웠는데 그 딸애가 더는 품엣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이 서글퍼진다. 딸애는 아비와는 달리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전공하는 도시 지식인으로 성장 중이다. 딸애는 고향에서 치러지는 시제나 제사 따위와는 무관한 삶, 즉 유행과 계약들, 빅데이터, 미국 ‘연준’의 금리정책, 세계 경제의 동향, 첨단 전자기기들에 둘러싸인 삶을 살게 될 것임을, 아비는 직감한다. 아비와 딸 사이에는 정서적으로나 계급적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골이 가로지른다. 딸의 원룸 바닥에서 하룻밤을 잔 아비는 다시 고향 집으로 돌아가는데, ‘혜화역 4번 출구’는 딸과 헤어지는 장소다. 딸애는 아비를 안아주며, “아빠 잘 가”라고 작별인사를 건넨다. 이것은 한창 젊은 딸이 노경에 든 아비에게, 떠오르는 미래 세대가 속절없이 지고 있는 과거 세대에게, 그리고 현대 도시사회가 농경사회에 건네는 작별인사다.
이상국(1946~ )은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소농(小農)이었지만 한학에도 조예가 있었다. 새해에 마을 부녀자들의 신수점을 봐주고 경조사 택일을 도맡기도 했다. 아버지의 유산은 《주역》 한 질과 《주자가례》, 직접 필사한 《만세력》 한 권이다. 양양은 남애·수산·물치·대포 등 이름난 포구를 가진 바다와 면한 동해안에 있는 고장이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내고, 서울에서 보낸 몇 년을 제외하곤 직장생활도 줄곧 속초나 양양에서 해왔으니, 관동지역 언저리를 오래 떠날 일이 없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초등학교 시절부터 ‘문필가’를 자원했다 한다. 산골 벽지의 고립무원 처지에서 고작 〈현대문학〉이나 구독하며 시인의 꿈을 키우다가 덜컥 시인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시인의 고백을 들어보라. “내설악의 해 지는 풍경과 북천(北川) 물소리를 들으며 그곳에서 60대의 절반을 넘겼다. 음으로 양으로 받아들인 불교적 사유와 말씀의 무게는 내 웃자란 섶을 눌러주었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오현 대덕 스님의 법력과 거기서 만난 시인 묵객들의 치열성과 부드러움은 손바닥만 한 내 생과 시의 영역을 확장시켜주었다.”(《유심》, 2014. 6) 조상들이 수백 년 동안 살았던 관동 땅에 엎드려 살며 산그늘이나 바라보았으니, 시들이 농경 정서로 가득 찬 것은 그럴 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1976년 시지 〈심상〉의 신인상을 받고 시인이 되었다. 시집으로 《우리는 읍으로 간다》(창비, 1992), 《집은 아직 따뜻하다》(창비, 1998),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창비, 2005), 《뿔을 적시며》(창비, 2012) 등을 냈다.
* 《topclass》 2015년 0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