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나를 보낸다 32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 서천꽃밭 달문moon 입구에 거대한 용이 한 마리 누워있다. 승천하지 못했으니 이무기일지도 모르겠다. 용암이 흐르면서 굳어진 바위다. 경사가 약간 있어서 그런 모습으로 잠을 자고 있으리라. 그 용은 낮에는 자고 밤에는 어딘가 다녀오곤 하는 듯하다. 바다로 가는지 하늘로 가는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아침에 일어나 가보면 몸이 젖어 있는 날이 많아서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어떨 때는 바다 냄새가 나고 어떨 때는 온몸에 별빛이 묻어있곤 한다.
그 용의 머리라고 해야 할지 꼬리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는 위치에 코브라 머리가 있고 그 코브라 머리 위에 새가 한 마리 앉아 있다. 아니, 코브라 머리 모양의 작은 바위와 새 모양의 작은 돌 하나가 올려져 있다. 나는 자연농업을 한다. 내가 '숲농업'이라고 이름을 붙인 숲농업을 하고 있다. 나는 기계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호미로 농사를 짓는다. 농사라기보다는 숲을 만들고 있다. 가끔 땅을 호미로 파다 보면 돌과 바위가 많이 나온다. 자세히 보면 참 아름다운 돌들이 많다. 마음에 드는 돌들을 여기저기 놓아둔다. 가끔 자리를 옮겨주기도 하는데 저 코브라와 저 새는 지금까지 저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고수하고 있다. 어느덧 이어도서천꽃밭의 마스코트가 되어있는 듯하다. 코브라는 거의 움직임이 없는데 코브라 머리 위에 앉아있는 새는 자꾸만 어디를 다녀오는지 앉아있는 자세가 달라지곤 한다. 그리고 가끔은 뱀과 새가 손을 잡고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한다.
제초제는 물론이고 농약을 전혀 하지 않고 농사를 짓다 보니 온갖 생명들이 몰려든다. 땅 속에도 땅 위에도 참으로 많은 생명들이 함께 살아간다. 지렁이와 굼벵이는 물론이고 온갖 해충들도 몰려온다. 인간들은 해충이라고 말을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해충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벌레들과 온갖 날것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운명에 충실할 뿐이다. 그래서 이곳에는 기어 다니는 것들과 날아다니는 것들이 친구가 되어 살아가기도 한다. 꽃을 숨기고 있는 무화과나무 아래는 뱀들이 자주 출몰하곤 한다. 모세의 지팡이 같은 뱀이 그늘 아래 누워 있어도 나는 모세가 아니므로 집어 들지는 못한다.
제주도 사람들은 뱀을 신으로 모시기도 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뱀과 제주도 민간신앙에서 말하는 뱀은 완전히 다르다. 제주도 사람들은 뱀을 재물의 신으로 모시고 살아간다. 또한 육지 사람들은 칠성신 하면 북두칠성을 떠올리는데 제주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칠성신은 바로 뱀을 신격화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제주도는 흔히 일만 팔전 신들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제주도의 신들은 인간들보다 더욱 인간적인 신들이 많다.
제주의 신화에서 뱀은 재물과 소원을 들어주는 가정의 신으로 형상화된다. 풍녕을 들게 하고 부자로 만들어주는 칠성을 모시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집 안 곡식을 저장하는 방을 고팡이라고 하는데 그 고팡에 모시는 뱀신을 '안칠성'이라고 한다. 그리고 집 뒤 장독 곁에 모시는 뱀신을 '밧칠성'이라고 한다. 또한 안칠성을 '안할망' 혹은 '고팡할망'이라고 한다. 그리고 밧칠성을 '뒷할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안칠성과 밧칠성 등칠성신앙의 뱀신인 칠성이 태어나서 칠성신으로 좌정하기까지의 내력은 '칠성본풀이'에서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나는 오늘도 뱀과 새와 함께 손을 잡고 춤을 추며 놀다가 나무를 심는다. 이어도서천꽃밭에 나무를 심는다. 사랑 한 그루 심는다. 우정 한 그루 심는다. 작년에 친구가 가져온 나약한 나무 한 그루, 화분에 심어서 돌보다가 오늘 비로소 좋은 자리에 정성껏 심고 물을 준다. 그 친구는 많이 아프다. 특히 추운 겨울에 더욱 많이 아프다. 추우면 손과 발이 아파서 견디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겨울에는 따뜻한 나라에서 지내야 한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따뜻한 나라로 가지 못하고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따뜻한 서귀포에서 지낸다고 하였다. 이제 봄이니 그나마 좀 좋아지겠다. 나는 날마다, 그 친구의 건강을 위하여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다시 기도를 거듭할 것이다. 나의 기도가 하늘에 닿아서, 나와 함께 푸른 하늘이 될 것이다. 그런데 너무 어려서 라일락과 이팝나무가 잘 구별되지 않는다. 그 친구는 라일락과 이팝나무를 좋아한다고 하였다. 라일락과 이팝나무라며 가져왔었다. 큰 나무는 절대로 사지 말고 가장 작은 묘목을 사라고 신신당부를 하여 1년생 묘목을 사 왔었다. 이제 나와 친구와 뱀과 새는 함께 손을 잡고 춤을 추며 살 수 있으리라. 이어도공화국의 나무들은 이렇게 모두가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런 많은 이야기들이 함께 숲을 이루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