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돼지감자를 캐는데
자꾸만 토기들이 나온다
돼지감자보다 더 많은 토기들이 나온다
여기가 혹시 가마터가 아닐까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 깨진 토기 하나를 씻는다
자세히 보니
화순리선사유적공원에서 본
토기들과 닮았다
바로 곁에 있으니 당연할 것이다
화순리 선사유적 발굴 현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고고학자들은 참으로 상상력이 뛰어난 듯 하였다. 그 많은 조각들을 맞추고 붙여서 토기들을 떡 하니 다시 만드는 것을 보고 감탄을 하였다. 주전자로 물을 부어가며 흙을 파내고 토기 조각들과 돌들을 찾아내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토기 조각이 나오면 혹시 다칠까봐 붓으로 흙을 털어내며 조심히 수거해서 재구성하는 모습이 참 재미 있었다. 물론 많은 기초 지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또한 돌들의 위치를 감안하여 집터를 찾아내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모형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재미있고 놀랍기도 하였다. 어쩌면 우리들의 역사도 그렇게 상상력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화순리 선사마을 유적공원에 있는 안내문에 의하면 BC1세기~AD2세기경의 탐라형성기 거점 마을이라고 한다. 제주도 서남부 지역 최대의 거점마을 유적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예수가 살았다는 시대에 이곳에도 사람들이 살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가까운 곳에 고인돌도 있고 또한 바위그늘집도 있다. 그러니까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는 예수시대 훨씬 전에도 사람들이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나는 또한 흙과 토기에 대하여도 많은 생각을 한다. 흙 속에 묻혀 있었던 토기는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다른 흙들은 많은 미생물을 먹여 살리고 돼지감자도 잘 길러내는데 자신은 미생물들과 함께 살 수 없어서 절망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지난날 자신이 품어주었던 곡식들의 체온을 떠올리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가마 속에서 뜨거운 불길에 구워지던 그 절대절명의 시간을 추억하고 있었을까? 자신을 곱게 빚어주던 그 따뜻한 손길을 그리워하고 있었을까?
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득함
글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경상남도 남해군에 가면 해발 681m의 높이로 솟은 산이 있다. 바다 그 푸른 물을 저 발치에 두고 솟아 저 혼자 아름다운 그 산이 남해 금산이다. 저 아래 수평으로 누운 너른 물이 여성이라면, 하늘을 찌를 듯 홀로 우뚝 솟은 산은 남성의 표상이다. 언젠가 시인은 이 남해 금산을 다녀왔나 보다.
시인은 그 남해 금산에 와서, 물은 파도를 일으켜 넘실대고 홀로 날카롭게 솟은 산은 꿈쩍도 않는 이 절경을 바라보며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의 신화를 상상했나 보다. 물은 산이 될 수 없고 산은 물이 될 수 없는 남해 금산은 시인의 상상세계 속에서 슬픈 사랑의 전설을 회임한 정신적 거점으로 다시 태어난다. 시인은 이렇게 쓴다.
“사실 내 정신 속의 남해 금산은 ‘남’자와 ‘금’자의 그 부드러운 ‘ㅁ’의 음소(音素)로 존재한다. 모든 어머니와 물과 무너짐과 무두질과… 문과 먼 곳과… 몸과 물질의 ‘ㅁ’, 그 영원한 모성의 ‘ㅁ’을 가리고 있는 남해의 ‘ㄴ’과 금산의 ‘ㄱ’은 각기 바다의 유동성과 산의 날카로움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만약 남해 금산이 아니라 금해 남산이었다면 나의 마음이 그토록 기뻤을까. 어쩌면 바다와 산, 물과 흙은 ‘ㄴ’과 ‘ㄱ’ 이외의 다른 어울림을 가질 수 없도록 예정된 것이 아닐까.”
시로 돌아가 보자. 돌 속의 “한 여자”는 아직 여자로 태어나지 못한 돌이다. 돌은 아직 돌이므로, 돌은 여자의 실존에 대한 잠재태다. 돌의 부동성(浮動性) 앞에서 ‘나’는 여자에 대한 가망 없는 사랑으로 절망과 슬픔에 빠져 있다. 사랑하는데 끝끝내 안을 수 없는 여자란 돌같이 부동하는 존재일 터다. 열망의 깊이만큼 아픔의 깊이도 아득해질 것이다.
두 번째 행에서 “그 여자 사랑”에 시의 화자는 돌 속에 들어간다. 이 구절을 산문으로 풀자면 그 여자에 대한 사랑이 너무 깊어서 그 여자가 없는 돌 밖의 세상에서 견디는 것은 돌 속에 들어가 돌이 되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뜻이리라. 시의 화자가 돌 속에서 잠재태의 실존을 사는 여자와 만나는 것은 그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돌 속에서 그 여자와의 사랑이 행복했는지 어쨌는지는 언급이 없다. 당연하다. 돌은 여자가 아니고 여자의 잠재태일 뿐이니까. 네 번째 행에서는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난다. “울면서” 떠났다는 것은 떠나는 것에 대한 고통을 암시하는 것일까? 모든 이별은 상처다. 아픈 것이다. 보라, 이별의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내게서 당신이 떠나갈 때면 / 내 목은 갈라지고 실핏줄 터지고 / 내 눈, 내 귀, 거덜난 몸뚱이 갈갈이 찢어지고 // 나는 울고 싶고, 웃고 싶고, 토하고 싶고 / 벌컥벌컥 물사발 들이키고 싶고 길길이 날뛰며 / 절편보다 희고 고운 당신을 잎잎이, 뱉아 낼 테지만”(〈꽃피는 시절〉) 내 사랑의 힘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으나 님은 이미 떠나고 없다. 그 여자가 잠들어 있던 돌은 거기 있으나 여자는 울고 떠난 뒤다.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은 이루지 못한 사랑의 갈라지고 터지고 찢기는 슬픔이다. 그 슬픔의 응답으로 남해의 물은 출렁이고, 금산의 장엄한 바위들은 묵묵부답이다.
떠나가는 그 여자의 길을 이끄는 것은 “해와 달”이다. 왜 하필 해와 달일까. 해와 달은 번갈아 뜨며 지구의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친다. 낮과 밤, 삶과 죽음, 꽃의 피고 짐, 파도의 오고 감… 이런 것들은 자연의 섭리다. 사람의 의지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다. 그 여자를 사랑하고 헤어지는 일은 자연의 섭리와 같은 것이다. 이 사랑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실제의 사랑이 아니라 현실 저 너머의 신화 속 사랑이라는 암시다.
혹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득함에 대한 노래다. 밤과 낮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밤은 낮의 부재 속에서 이루어지고 낮은 밤의 부재 속에서 비로소 저를 드러낸다. 남해 금산이 낳은 돌 속에 칩거하는 여자와 그 여자를 따르는 ‘나’의 사랑은 밤과 낮이 공존할 수 없음과 마찬가지로 이승에서는 불가능한 사랑이다. 그래서 남해 금산 그 “푸른 하늘가, 푸른 바닷물”에 남은 것은 “나 혼자”다.
돌 속에 들어간 시의 화자가 돌 밖으로 나왔다는 언급이 없으니 시의 화자는 여전히 돌 속에 있을 터다. 슬픔과 절망의 극대치 속에서 시의 화자는 금산 바위들과 마찬가지로 부동성을 내면화한다. 그런 뜻에서 돌 속에 있는 것이다.
남해 금산에 가면 기기묘묘한 바위들은 이 세상이 사랑을 떠나보내고 그 상실의 아픔을 견디는 자리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시인이 지어서 퍼뜨린 슬픈 사랑의 서사 무가(巫歌)는 오늘도 그 자리를 맴돈다.
이성복의 〈남해 금산〉에 의해 남해 금산은 돌을 매개로 신화적 사랑이 일어난 승경(勝景)으로 다시 태어난다. 장소는 본디 거기 있는 것이지만, 그것에 의미를 불어넣고 뜻을 품은 장소로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이 시를 읽은 뒤 남해 금산에 가서 돌과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라. 남해 금산은 전과 달리 보일 것이다. 남해의 넘실대는 물은 제 새끼를 품는 암컷 됨으로 자애롭고, 물에서 수직으로 솟구쳐 오른 금산은 수컷 됨으로 날카롭다. 이 물과 산은 서로를 애타게 부르면서도 맺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가없는 슬픔 속에 제 삶을 풀어놓는다. 비단 물길 저 끝에 우뚝 솟은 남해 금산은 우리 욕망이 닿을 수 없는 사랑의 신화를 품고서 빛난다.
이성복
(1952 ~ )은 경상북도 상주 사람이다. 나는 아직 상주를 가보지 못했다.
상주 사람들은 자전거를 유난히 사랑한다고 한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상주는 호감이 가는 곳이다.
시인의 본관은 한산(韓山)으로 목은(牧隱) 이색의 일파다. 시인의 내향적이며 민감한 성격은 상주의 농잠고등학교를 나와 금융조합이나 경북능금조합에서 일했다는 아버지의 물림이다.
상주 남부국민학교 시절 시인은 지방 백일장에 나가 곧잘 상을 탔다. 나중에는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 백일장에 참가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 효제국민학교로 전학하는데, 그것은 어린 이성복의 고집 때문이다.
그이는 카프카를 좋아하고 카프카를 닮고자 했지만, 전공은 독문학이 아니라 불문학이다. 그이를 시인으로 키운 것은 카프카와 니진스키와 파베제와 첼란, 동시 상영관의 영화들, 배고픔, 이상한 고집, 선병질적인 민감함, 세상의 괴로움과 환멸들이다. 그 모든 것은 그이의 스승이자 선배고 친구였다. 그이는 해군 수병으로 병역의무를 마친 뒤에는 지나가는 해군 지프를 보면 경례를 붙이고 싶어진다고 썼다.
1980년에 내놓은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는 기념비적인 시집이다. 시인은 복숭아나무는 꽃 피기 전에 아주 작은 열매를 맺고, 불임의 살구나무들은 시들어 가는 정든 유곽의 봄을 노래한다.
시행의 이상한 배열들, 반어법, 초현실적 상상력들은 악성 신화를 유포하는 암울한 현실에 대한 시적 대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시집은 뒷날 수많은 문청들의 바이블이 되었다.
* 《topclass》2008년 04월호 0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