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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May 06. 2023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너와 나란히

너에게 나를 보낸다 45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너와 나란히 앉아서




사랑을 잃고 울고 있는 사람은

지금 바로 이어도공화국으로 오라

삶에 지쳐서 쓰러져 있는 사람은

지금 당장 이어도공화국으로 오라

펑펑 울면서 와도 좋고

무릎이 깨지면서 기어서라도 오라

그러면 나는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너에게 조용히 나의 어깨를 주리라

너와 나란히 앉아서 바다가 되리라

나란히 앉은 너와 함께 붉은 노을이 되리라

이어도공화국에서는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너의 소원은 틀림없이 이루어지고 말리라

언제나 함께라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기다린다




나비의 꿈  



             

나비의 꿈을 꾸고 일어나 서귀포 앞바다를 본다

푸르게 빛나던 바다가 집어등 불빛으로 반짝인다

서귀포의 하늘이 별빛으로 반짝이더니

동쪽에서부터 붉은 노을빛 옷으로 갈아입는다

아, 하느님께서는 참 많은 옷을 만들어주셨구나

옷은 누구에게나 날개라고 했는데

나는 지금껏 누구에게 옷 한 벌 지어주지 못했구나

어머니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옷 한 벌 지어드리지 못했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날개 한 번 달아주지 못했구나

가난한 이웃에게도 따뜻한 옷 한 벌 사주지 못했구나

꿈속에 나타난 나비 한 마리가 나에게 옷을 주는구나

꿈속에 나타난 나비 한 마리가 나에게 날개를 주는구나

나도 이제는 옷 한 벌씩 사서 나누어 주어야만 하겠구나

나도 이제는 날개를 달아주는 사람이 되어야만 하겠구나

오늘도 서귀포의 하늘을 걷고 계시는 하느님은 우리들에게

일용할 양식과 저마다 어울리는 옷을 지어주시는데

나도 이제는 오늘부터 밥 한 끼와 옷 한 벌씩 ……,        









등나무 / 배진성




당신은 나에게 등을 보이고 떠나버린 등나무였다

등만 보이던 그 등나무가 오늘은 등꽃을 켜고 있다


 


*


“등만 보이던 등나무.” 어떤 사람들은 정말 그렇다. 나는 오로지 그 사람의 ‘등’만을 기억할 뿐이다. 얼굴도 지워지고 표정도 지워지고 다 지워졌는데 “등”, 그거 하나 남은 사람들이 있다. 당신이 그렇다. 손가락 끝이 아프다. 이마에 열이 난다. 나의 신체들 전부가 나의 등, 같다. 당신은 바깥이고 나는 안이다. 나는 아니다. (‘당신이 없으니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났다.


꽃이 피었다. 그 등나무에 꽃이 피었다. 모르고 살았다. 모르는 사이 피고 졌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이전부터 꽃을 피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제야 나는 꽃을 보았다. 나는 이제 겨우 좀 지칠 수 있겠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내 몸속 짐승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다. 가까스로, 나는 정말 이제 안이다. (박진성)



https://blog.naver.com/poetone/222840249649






강산 2019년 8월 5일


옥상 텃밭 정리를 하다가 돌무더기를 헐었다

수천수만 마리의 개미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창고에서 먹이를 내와 이고 지고 달리는 놈들

미처 무기를 챙기지 못하고 나에게 달려들어

맨몸으로 나를 쥐어뜯고 나를 물어뜯는 놈들

무심한 나의 행동이 저들의 집을 망가뜨리고

저들의 세상을 일시에 전쟁터로 만들고 말았구나


저 개미들에게 나는 어쩌면

신이거나

아니면

폭군이었을 것이다


나는 잠시 지는 해를 바라보는데

날아가던 매미 한 마리

내 머리에 탁 부딪혀 바닥에 떨어진다

나를 한 대 온몸으로 때리고

갑자기 바닥에 뒤집힌 매미 한 마리

날개가 부서지도록 맹렬하게  바닥을 친다




강산 2018년 8월 5일


월대천 축제 둘째 날

9시부터

외도 물길 20리 탐방 및 보물찾기

참가했으나

너무 더워서

보물 찾기는 포기했다

아직은

폭염에 걷기는 무리인 듯

가장 중요한 보물은 건강이다






강산 아침산책



   

                              

강산 2017년 8월 5일



순례 序 ― 순례를 준비하며, 평화를 위하여


1

인디언의 땅을 정복한 사람들이

태평양을 건너기 시작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우라늄 235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죽음의 버섯구름이 태양을 가렸다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플루토늄 239 폭탄이 또 떨어졌다

하늘 가득 독버섯이 피어올랐다


일본은 무조건 항복했다

우리나라 광복군은 들어오기 전이었고

미군의 전선은 38선까지 전진하였다

제2의 오키나와를 염려하던 제주도는

그렇게 미군에게 통째로 점령되었다


하지만 제주도 주민들은

오키나와의 주민이 되지 않기 위하여

쫓겨난 인디언이 되지 않기 위하여

자주독립의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평화통일의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평화를 꿈꾸며 서천꽃밭으로 가고 있었다


2

일장기가 펄럭이던 자리에 성조기가 우렁찼다

몽고군이 지나가고 일본군이 지나가고

미군이 들어와 군홧발로 짓밟기 시작했다

양의 탈 속에 감추어진 늑대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쌀의 나라로 착각했고, 아름다운 나라로도 착각했다


친일 경찰들은 옷을 갈아입고 미군정 경찰이 되었다 

친일파들은 그렇게 반공주의자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3

고향을 떠났던 6만여 명의 제주 사람들이 돌아왔다

하지만 고향에는 먹을 것이 없었고 생필품이 부족했다

해방 이듬해, 1946년은 유례없는 대흉작까지 겹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온 섬에 호열자까지 나돌았다

흉년에 역병이라니!

민심은 극도로 흉흉하였고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게다가 해방된 땅에 나타난 점령군 미군은

미곡 수집령을 내렸다 일제의 공출 제도의 변형이었다

주민들이 굶어 죽어가는데, 보리 공출에

밀수품 단속을 빙자한 군정 관리들의 비리까지 늘었다


1946년이 저물고, 해가 바뀌어도

도민들의 삶은 무겁기만 하였다

제주도는 이제 거의 빈사상태가 되었다

실오라기만 한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학생들이 펜을 놓고 교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학생들의 저항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일제 잔재 교육과 독재적인 교육을 반대하며 동맹휴학을 하였다

학생운동은 1947년 접어들면서 펄펄 끓었다

2월 10일, 미군정청이 자리한 관덕정 광장에서

"조선의 식민지화를 양과자로부터 막아내자"라고 외치는

학생들의 격렬한 양과자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제주 시내 중학생들이었다

교내에서 시작된 학생운동이 사회운동으로 번져나갔다

1947년 제주도의 양과자 수입 반대는 전국적인 화제가 되었다

미군 보고서는 이 사건을

제주도에서 일어난 최초의 반미 시위로 규정했다


4

1947년 3월 1일 꽃샘추위 속, 하늘은 맑았고 토요일이었다

사람들이 제주북국민학교 운동장으로 밀물처럼 모여들었다

제28주년 3.1절 기념 제주도 대회였다

제주 도민의 10분의 1이 넘는 제주 사람들이 모였다

다른 지역은 각 면 단위로 기념식을 하고

제주읍과 애월면과 조천면 사람들은 함께 모여서 한 것이었다


드디어 1947년 3월 1일 오전 11시, 제주북국민학교에서

역사적인 3.1절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 기념식에서 안세훈은

"3.1 혁명 정신을 계승하여 외세를 물리치고 조국의 자주통일 민주국가를 세우자"라고 외쳤다

이어 각계 대표들이 나와 발언을 하면서 대회는 후끈 달아올랐다

모여든 사람들은 목청껏 구호를 외쳤다

"삼상회의 결정 즉시 실천!"

 "미소공동위원회의 재개!"

 "3.1 정신으로 통일 독립 전취하자!"

 "친일파를 처단하자!"

 "부패 경찰을 몰아내자!"

 "양과자를 먹지 말자!"


이날 오후 2시께, 기념식을 마친 군중은 이런 구호와

'왓샤! 왓샤!'를 외치며 관덕정 광장으로 나가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 대열이 관덕정 광장을 거의 벗어난 2시 45분께

말을 탄 경관의 말발굽에 한 어린아이가 차여 쓰러졌다

그런데도 기마 경관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유유히 가려고 했다

성난 군중은 "저놈 잡아라" 쫓아갔고, 당황한 경관은 군중에 쫓기며

관덕정 옆 경찰서 쪽으로 말을 몰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팡팡팡 몇 발의 총성이 하늘을 찢었다

총소리에 놀란 군중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총소리는 관덕정 앞에 배치되었던 무장 경관과

경찰서 내 꼭대기 망루에서 일제히 울려 퍼졌다

관덕정이 날아갈 듯한 총성과 함께 구경하던 6명이 죽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희생자 가운데는 젖먹이를 안고 쓰러진 스물한 살의 젊은 어머니 박재옥과

북국민학교 6학년 허두용도 있었다

부검 결과, 희생자 중 1명을 빼고 다른 5명은 모두

등에 총을 맞은 것으로 판명이 났다

희생된 이들은 시위대가 아니라 단순한 관람 군중이었다

'제주 3.1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관덕정 광장을 울렸던 총성, 비극의 시작이었다

바로 이때부터 제주 사회는 잿빛 급물살로 빨려 들기 시작했다


경찰은 곧바로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경찰은 '경찰서 습격 사건'으로 규정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수습하려 하기보다 오히려

강경 대응 쪽으로만 몰아가려 하고 있었다

경찰은 다음 날부터 사람들을 잡아들였다

총을 쏜 행위는 애써 외면한 채 사람들을 잡아들였다

3월 2일 하루 동안 학생 25명을 연행했다

잡히면 무조건 구타와 고문을 한다는 소문이 바람처럼 휭휭 나돌았다


경찰은 "시위 군중이 경찰서를 습격할 태세를 보여 불가피하게 발포하게 됐다"는 

발포가 정당했다는 것을 내세운 성명을 발표한다

민심은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는 폭발 직전이었다

"3.1 사건 진상을 규명하라!" "3.1 사건 발포 책임자를 처벌하라!"

민중의 목소리는 점점 파도처럼 높아만 갔다

그해 3월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 민중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렇게 엄청난 대비극이 발아하기 시작했다


5

1947년 3월 10일 총파업이 시작되었다

국내외에서 보기 드문 대규모 민. 관 총파업이었다

제주도 사람들은 물일도 밭일도 모두 손을 놓았다

총파업, 그것은 3월 1일 경찰의 발포와 이에 저항하는 민중의 의사 표시였다

총파업은 평화적이었고 별 탈 없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곧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이 휘몰아 오고 있었다

경찰은 눈에 불을 켜고 총파업 주모자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미군정과 우익 세력에 대한 도민의 반감은 분노에 가까웠다


파업 중인 제주도청을 방문한 조병옥 경무부장 그는

공무원들에게 파업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면서 말한다

"제주도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불온하다"

"건국에 저해가 된다면 싹 쓸어버릴 수 있다"

조병옥, 그는 한술 더 떠 경찰의 발포를 정당방위로 규정했다

더구나 3.1 사건은 북한과 서로 짜고 공모한 사건이라며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몰아붙였다


조병옥이 제주에 들어온 다음 날

전남 응원 경찰, 전북 응원 경찰, 서북 청년회 단원들이 대거 날아든다

400명이 넘는 이들이 삼엄한 경계망을 펴고 파업 주모자들을 검거한다

이틀 새 검거한 사람만 200여 명에 이르렀다

엿새 만에 서울로 돌아간 조병옥은

3.1절 발포사건의 발포는 정당했다는 담화문을 발표한다


총파업은 열흘이 지난 3월 20일을 전후해 잠잠해진다

하지만 4월 10일께는 검거자 500명에 달한다

미군정은 이렇게 3.1 사건이 마무리되어 가자

고위 관리들을 극우 성향의 인물로 바꾸기 시작한다

군정 장관에 러셀 베로스 중령, 도지사에 유해진이 임명된다


이 좁은 섬은 순식간에 폭력과 긴장의 섬으로 변모시키고 있었다

'서청'이라면 울던 아이도 눈을 크게 뜨고 숨을 죽일 정도였다

젊은 여성을 희롱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서청의 도민에 대한 테러는 더 극성을 부렸다

도민들의 우익에 대한 시선도 더 날카로워졌다

제주에는 유해진의 암살을 요구하는 전단이 나돌았다

미군 축출, 경찰 타도, 그리고 우익 저주를 요구하는 전단도 뿌려졌다


3.1 사건 직후부터 제주도에 내려오기 시작한 서북청년회,

한자로 서북(서북)이라고 쓰인 완장을 찬 이들은 자금 모금을 한다는 구실로

태극기나 이승만 사진 등을 주민들에게 강매하기도 했다

1947년 말부터는 경찰과 행정기관, 교육계에 근무하는 서청 단원이 늘어났고

'좌익 척결'이란 이름 아래 서청에 의한 테러가 곳곳에서 발생했다

이러한 서청의 탄압은 도민들로 하여금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무장대의 봉기를 일으키는 커다란 원인을 제공한다


3.1 사건과 총파업, 이어진 대량 검거 사태

그야말로 제주도는 혼돈 그 자체였다

제주 섬은 점점 불안의 도가니가 되었다

동서 냉전의 거대한 검은 그림자에 휩싸이고 있었다

그렇게 1947년이 불안하게 저물어 갔다

해가 바뀌어도 희망의 싹은 보이지 않았다

3.1 사건의 파장으로 붙잡힌 청년들이 

극한 고문에 시달린다는 말이 섬을 떠돌았다

그러한 고문의 증거가 곧바로 눈앞에 현실로 나타났다


6

다시 섬은 출렁거렸다 1948년 3월

경찰에 연행되었던 20대 청년 3명이

경찰의 고문으로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조천지서에 연행되었던 김용철

조천중학원 2학년이었던 그가

유치장에 갇힌 지 이틀만인 3월 6일 숨졌다

모진 매질을 당한 몸은 시커멓게 멍으로 덮여 있었다

부검 결과 고문 때문이었음이 드러났다

미군정의 주목을 받은 이 사건은 방첩대가 직접 부검에 참관

미군정청 사법부 소속 민간인 변호사가

진상 조사를 위해 파견되기도 하였다

3일 동안 전 학생과 주민이 모여 장례를 치르고 난 후 민심은 더욱 악화되었다

민중의 가슴은 확 달아올랐다

많은 학생들의 가슴엔 뜨거운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조천중학원생들은 분노했고, 분노는 시위로 이어졌다

"학생을 살려내라!"

"우리도 맞아 죽을 것 아니냐!"

사인 규명을 요구하며 저항했다

그렇게 시위는 사나웠다

"신탁통치 절대 반대!"

전신주에 학생들이 밤중에 붙인 전단은

아침에 보면 파닥파닥 날리고 있었다

이미 1947년에도 조천중학원 교사들이 자꾸 지서로 잡혀가자

책보따리를 들고 지서로 줄줄이 몰려가 돌멩이를 던지며 항거하던 학생들이었다

도민들의 울분은 기름을 붓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타오를 것 같았다

이미 곪아 있던 것이 건드리기만 하면 곧 터질 태세였다

미군정은 조천지서 경찰관 5명 전원을 구속해 사태를 진정시켜보려고 했다


하나 모슬포 지서에서 청년 양은하가 경찰의 고문으로 또 죽었다

그뿐이랴, 죽음은 계속되었다 이어서 서청과 경찰에 붙잡힌

한림면 금릉리의 청년 박행구도 곤봉과 돌에 맞아 초주검 상태에서

끌려가다가 총살당한 충격적인 사건이 터져 나왔다

3.1 사건 이후 끔찍한 고문은 그렇게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여기에 도지사 유해진과 서청의 횡포로

제주 사회는 더 긴장감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도민들의 저항은 갈수록 거세졌다

미군정의 조사 결과, 대부분의 제주도민을 좌익으로 규정한 유해진의

우익 강화 정책 같은 독선이 제주도민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해진을 유임시키고 말았다


6

다시 섬은 출렁거렸다 1948년 3월

경찰에 연행되었던 20대 청년 3명이

경찰의 고문으로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조천지서에 연행되었던 김용철

조천중학원 2학년이었던 그가

유치장에 갇힌 지 이틀만인 3월 6일 숨졌다

모진 매질을 당한 몸은 시커멓게 멍으로 덮여 있었다

부검 결과 고문 때문이었음이 드러났다

미군정의 주목을 받은 이 사건은 방첩대가 직접 부검에 참관

미군정청 사법부 소속 민간인 변호사가

진상 조사를 위해 파견되기도 하였다

3일 동안 전 학생과 주민이 모여 장례를 치르고 난 후 민심은 더욱 악화되었다

민중의 가슴은 확 달아올랐다

많은 학생들의 가슴엔 뜨거운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조천중학원생들은 분노했고, 분노는 시위로 이어졌다

"학생을 살려내라!"

"우리도 맞아 죽을 것 아니냐!"

사인 규명을 요구하며 저항했다

그렇게 시위는 사나웠다

"신탁통치 절대 반대!"

전신주에 학생들이 밤중에 붙인 전단은

아침에 보면 파닥파닥 날리고 있었다

이미 1947년에도 조천중학원 교사들이 자꾸 지서로 잡혀가자

책보따리를 들고 지서로 줄줄이 몰려가 돌멩이를 던지며 항거하던 학생들이었다

도민들의 울분은 기름을 붓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타오를 것 같았다

이미 곪아 있던 것이 건드리기만 하면 곧 터질 태세였다

미군정은 조천지서 경찰관 5명 전원을 구속해 사태를 진정시켜보려고 했다


하나 모슬포 지서에서 청년 양은하가 경찰의 고문으로 또 죽었다

그뿐이랴, 죽음은 계속되었다 이어서 서청과 경찰에 붙잡힌

한림면 금릉리의 청년 박행구도 곤봉과 돌에 맞아 초주검 상태에서

끌려가다가 총살당한 충격적인 사건이 터져 나왔다

3.1 사건 이후 끔찍한 고문은 그렇게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여기에 도지사 유해진과 서청의 횡포로

제주 사회는 더 긴장감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도민들의 저항은 갈수록 거세졌다

미군정의 조사 결과, 대부분의 제주도민을 좌익으로 규정한 유해진의

우익 강화 정책 같은 독선이 제주도민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해진을 유임시키고 말았다


7

이즈음 한반도는 긴장된 모습이었다

미국과 소련이 개입한 가운데 통일국가로 갈 것인가

아니면, 분단국가로 갈 것인가를 두고 극렬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미군정은 남한만의 단독 선거인 5.10 선거 강행을 결정했고

정국은 혼란으로 치닫고 있었다

김구, 김규식 등 민족 지도자들은 단독선거 반대에 나섰다

그러나 미군정 수뇌부는 당시 이 격동하는 냉전의 흐름 속에서

단독정부 수립을 들고 나온 이승만을 선택했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단독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것이었다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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