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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May 21. 2023

연어의 종착역에서 다시 만나자

너에게 나를 보낸다 013




연어의 종착역에서 다시 만나자



 

고향집 바로 앞에

연어의 종착역 표지석이 있다

나는 연어가 되어

참으로 먼 길을 거슬러 돌아왔다

나도 이제 너를 만나

붉은 알을 낳아야만 한다  

   

시집 한 권이 왔다. 검은 관 하나가 도착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서 나에게 왔다. 생전에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 왔다.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왔다.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왔음이 분명하다. 아직은 따뜻한 어느 시인이 왔다. 비석 같은 시집이 왔다. 나를 갑자기 찾아온 사람, 처음으로 나를 만나려고 온 사람, 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온 사람, 죽어서 겨우 인연이 된 사람, 죽음의 길을 가다가 다시 살아온 사람, 나는 이제야 비로소 시인을 만난다. 운명처럼 만난 그 시인의 따뜻한 숨결을 통하여 그와 나를 함께 읽기 시작한다.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는 그는 나에게 ‘쿠바에 애인을 홀로 보내지 마라’며 쿠바도 보여주고 애인도 보여준다. ‘뭇별이 총총’한 밤하늘까지 모두 보여준다. 나는 그가 보여주는 것들을 차례대로 보면서 나 자신을 다시 한번 깊이 뒤돌아본다. 그리고 나는 그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시인의 길을 찾아서 새롭게 출발한다. 그의 종착역은 이제 나의 출발역이 된다.     


나는 오래전부터 달의 뒷면을 보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뒷면이 늘 궁금했다. 그리하여 나는 산문(山門)을 드나들 듯 달문을 드나들고 싶었다. 내가 그런 달문 이야기를 하니 존경하는 김종순 박사님께서 나에게 달문moon을 열어주셨다. 직접 작명을 하셨다는 <달문moon>이란 이름을 나에게 주셨다. 명상카페 이름으로 쓰라며 하사 하셨다. 내가 늘 사용하던 ‘달문’ 옆에 ‘moon’이 나란히 앉으니 의미가 더 깊어지고 확장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달문moon>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다.     


달문moon은 ‘달’ 하나를 의미하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달은 달이고 문은 moon을 한글로 표현한 말이고 moon 또한 우리말로는 달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달문moon’은 그냥 ‘달’이라고만 써도 된다. 하지만 나는 그 의미를 좀 더 확장하고 싶다. 그리하여 나는 달문을 한자로 바꾸어서 생각해 본다.     


‘달’이라는 글자는 한자로 여러 얼굴이 있다. ‘달’을 생각하면 나는 개인적으로 달마대사와 ‘도달하다’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達’이라는 글자의 뜻은 통달하다, 통하다, 이르다, 달하다, 전하다, 통용되다, 현달하다, 이루다, 갖추다, 대범하다, 정하다, 능숙하다, 드러나다, 드러내다, 마땅하다, 방자하다, 촐싹거리는 모양, 어린양, 등의 많은 의미를 품고 있다.     


‘문’이라는 글자는 한자로 더 여러 얼굴이 있다. ‘문’을 생각하면 나는 개인적으로 門, 文, 問, 聞, 紋, 蚊, 吻, 등이 먼저 떠오른다. 문과 글과 입과 귀와 문양과 모기와 입술이 먼저 떠오른다. 사람마다 그 의미는 각자의 처지에 따라서 많이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moon’이라는 글자는 나에게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상형문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어쩐지 문과 달을 형상해 놓은 듯, 그런 느낌으로 다가온다. 세상의 모든 문자는 직선과 곡선의 조합으로 만들어졌다.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도 좋아하지 않고 영어도 좋아하지 않지만, ‘moon’이라는 글자만은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달문’은 달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될 수도 있고 달이 드나드는 문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날마다 월라봉 위로 떠오르는 달을 본다. 사람들은 날마다 다른 모양의 달을 보지만 달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떠오르고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날마다 보고 있는 달의 모습은 어쩌면 달의 문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달이 조금씩 더 많이 열었다가 날마다 다시 조금씩 닫고 있는 달의 문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떠오르는 달을 보고 월문(月門)으로 읽지 않고 달문(達門)으로 읽거나 달문(達文)으로 읽는다. 그리고 나는 보름달보다 반달을 더 특별하게 생각한다. 내 고향 뒷산 이름이 반월산이다. 그 반월산 아래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나란히 누워계신다. 나도 어쩌면 언젠가는 그 곁에 누워 긴 잠을 잘 것이다. 나도 그렇게 반달 아래서 반월산이 될 것이다.  

   

나는 이제 문 앞에 서 있다. 나는 지금 글 앞에 앉아 있다. 내 몸 안에서 반달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들의 심장 속에도 반달이 있다. 대동맥판막은 반달 세 개로 이루어져 있다. 신께서 조직으로 만든 반달 세 개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이 금속으로 만든 반달 두 개에서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구조적으로 완전히 열릴 수 없는 반달문에서는 피가 엉긴다. 째깍째깍째깍 반달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나를 깨운다. 아무리 항응고제인 와파린을 잘 먹어도 피가 자꾸만 엉겨 핏줄을 막는다. 아직은 확실히 신이 인간보다 한 수 위다.    

 

나는 이제 문이 가장 무섭다. 어느 날 갑자기 닫혀버릴 문이 무섭다. 길의 문이 무섭다. 핏줄의 문이 무섭다. 달의 문이 무섭다. 달이 열고 닫아주는 달문이 무섭다. 나는 아마 뇌졸중으로 나의 문을 닫을 것만 같다. 어머니의 문을 열고 나오면서 함께 간직했던, 선천성 비후성 심근증 때문에, 돌연사를 염려했던 나는 이제 뇌졸중을 더 걱정하게 되었다. 인간이 금속으로 만든 반월판막이 나의 목숨을 겨우 살렸지만, 덕분에 나는 앞으로 평생 묽게 살아야만 한다. 성형수술을 한 승모판막까지 염려하면서 더욱 묽게 살아야만 한다.   

  

나는 이 지상에서 떠나기 전에 발자국 몇 개 남기려고 한다. 내가 명명한 <꿈삶글>을 쓰려고 한다. 내가 잠시 머물렀던 이 지상의 세상을 읽고 내가 늘 생각했던, 작지만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 하나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쓰는 글들은, 달문moon처럼 사람들마다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른쪽 뒤에 보이는 집이 나의 고향집입니다 표지석 왼쪽으로 섬진강으로 이어지는 삼기천이 흐르고 징검다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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