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나를 보낸다 018
나는 우선 종석산을
이어도공화국 가족들의 소풍 장소로
약초 농장으로, 쉼터로, 창작촌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나는 아직 종석산에서 살 수 없으니
해마다 함께 약초를 심고
해마다 함께 감나무를 심고
해마다 함께 밤나무를 심을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시인들의 창작촌으로
.................................................,
종석산에는 참나무도 많고 황토도 많으므로 황토방을 만들면 좋겠다. 2012년에 종석산에서 종석산 흙과 종석산 나무와 종석산 돌을 이용하여 황토방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아직도 그곳에 있으니 그때 경험을 살려서 조금 더 보강하고 개선해서 황토방을 만들면 좋겠다. 그때 기록이 있으니 참고하기 위하여 여기에 옮겨놓는다.
- 강산 시인의 꿈삶글 11
2012년 5월 어느 화창한 봄날,
단비네 집에서 포클레인이 부산하게 움직입니다.
본채 왼쪽 땅을 다지는 것입니다. 포클레인 삽날이 산 귀퉁이를 조금 깎고
바닥을 평평하게 다졌습니다. 혹시 지붕을 때릴지도 모르는 나무 서너 그루도 베어냈습니다.
본채 옆에 따로 서재 지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서재 자리는 땅속에 수맥이 없는 자리로 골라 두었답니다.
그렇게 기초를 다지고 가로 11 미터, 세로 4 미터 넓이의 땅 네 귀퉁위에 철심을 꽂았습니다.
끈으로 네 귀를 둘러 직사각형을 만들고 문, 창문, 아궁이, 굴뚝 자리를 정합니다.
산 여기저기에서 주워 온 크고 작은 돌을 경운기로 실어 와 한가득 부려 놓았고요.
서재 지을 자리를 고르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의 의견과 조언이 보태졌습니다.
지난해 단비의 학교 선후배들이 급 결혼 급 귀향한 단비 집들이를 위해 멀리 종석산까지 와 주었지요.
그날 목숨 걸고 올라 와 지금의 서재 자리에 쳐진 텐트 앞에 널브러져 있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니는 반듯하게 누워 눈만 초롱초롱 빛내며 별을 바라보았지요.
그리고 제 손을 붙들고 이 자리에 꼭 정자를 지어달라, 요청했지요. 그니의 이름은 숙영!
쉬리 생각과 같았지요.
정자는 그 후 쉬리의 머릿속에서 손님들이 묵어갈 방이 되었다가
두 사람이 조용히 글 쓰고, 명상할 공간으로 최종 결정이 되었습니다.
그 후
풍수를 좀 아는 쉬리의 형, 동생들이 함께 서재 방향과 문 자리, 기운 등을 봐주었고요.
포클레인 작업이 끝난 뒤,
산을 깎고 주변 땅을 정리하며 나온 흙에 약간의 시멘트, 여기에 적당히 물을 섞은 흙반죽을 만들었습니다.
먼저 밑돌을 놓고 사이사이 흙을 채워 넣어 서재 벽 쌓기에 들어갑니다.
네모 반듯한 벽돌이 아닌 크기가 제각각인 돌을 이용해 벽을 쌓는 것은 얼핏 쉬워 보이지만
상당한 경험과 지식이 필요합니다. 옆에서 보면 그저 알맞음직한 돌을 갖다 놓고 흙을 채워 넣으면
되는 것 같지만 돌의 성질과 각도를 가늠해 가며, 흙과 작은 돌을 사이에 끼워 넣어 어느 쪽에서 밀어도
꿈쩍하지 않을 벽의 토대를 쌓는 것이니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입니다.
쉬리 혼자 힘으로 일곱 번째 짓는 집입니다.
다른 사람은 쉽게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지만 대목장이셨던 아버님께 일을 배웠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아버님은 아홉 살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면서도 집 짓는 기술을 배워
그 기술로 8남매를 길러내셨습니다.
대목장인 아버님은 술과 소리, 낚시를 좋아하셨답니다.
1년에 두세 채, 남의 집을 지어주고 가족들 먹을 1년 양식을 마련한 뒤에는 아예 강가에서 사셨답니다.
몇 날 며칠을 세우기 일쑤여서 형제들이 늘 아버님 밥을 날랐답니다.
날이 추워지면 아예 옛날 군용 천막 천으로 지붕을 얹고 강가의 돌을 놓아
구들을 만들어 불 때 가면서 낚시를 하셨다지요.
8남매 중 둘째인 쉬리는 일찌감치 아버님 뒤를 이어 농사짓고 시골에서 살 자식으로 길러졌답니다.
쉬리를 낳을 때 이미 오십이 다 되었던 아버님 뒤를 집 짓는 연장 짊어지고 다니며 조수 노릇을 퍽도
했다지요. 구구절절 이어지는 어린 시절 산골살이와 아버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옛날옛적 이야기 속을 아슴아슴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혼자 힘으로 집을 완성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아랫채에 사는 쉬리의 동생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흙집 토대가 놓였습니다. 그 위에 미리 베어서 40 센티미터 길이로 잘라 둔 나무를 한 단 둘러쌓고 있습니다.
근처에 있는 재료로 누구나 찬찬히 혼자 지을 수 있는 방법이지만 누누이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어렵답니다.
기술이 없는 사람이 이런 방식으로 쌓아 올리면 나중에 벽이 비스듬히 틀어진답니다. 자칫하면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릴 수도 있습니다. 이만저만한 낭패가 아니요, 공든 탑이 무너졌으니 그만큼 허망한 일이 없습니다.
벽이 틀어지지 않게 하려면 나무를 쌓기 전에 가느다란 나무를 잘라 네 귀퉁이에 박아 고정시킨 다음 쌓는 겁니다.
집안 일 하는 짬짬이 찍은 사진이라 모든 공정을 다 찍지는 못했습니다.
좀 더 자세한 기술이 알고 싶은 분은 메일로 문의하세요. ^^
나무를 한 단 쌓고 난 뒤 문 틀을 세웁니다. 미리 봐 둔 나무를 자르고, 껍질을 벗기고,
문 길이를 재어 먹줄을 튕깁니다. 정확하게 치수를 재고 나무 결을 보아가며
문과 닿을 면과 벽과 닿을 면을 정하고 기계톱으로 기둥 면을 반듯하게 자릅니다.
문 틀을 세울 때는 눈을 믿지 말고 중심 추를 늘어뜨려 정확하게 수직이 되는지 재야 합니다.
모름지기 건축할 때 명심해야 할 것은 일이 더뎌 보이더라도 반드시 정확하게 치수를 재고
자르고 깎아야 한다는 겁니다.
뚝딱뚝딱 대충 눈대중으로 보고 지어도 될 것 같은 개집이라도 그렇습니다.
자 질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눈속임에 넘어가 몇 번이고 톱질이고 대패질이고 다시 해야 하기 일쑤니 까요.
이 또한 아버님께 수없이 지청구를 들어가며 배운 것입니다.
지금은 스스로 경험하며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동생의 도움을 받아 번듯하게 문틀이 세워졌습니다.
시작이 반이니 반은 된 것 같아 뿌듯합니다.
통나무를 두 단 쌓아 올리면 2~3일 쉬어야 합니다. 흙이 굳기를 기다렸다 쌓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흙이 주저앉아 버립니다.
다시 비가 오지 않는 날, 나무를 켭니다.
창문틀이 되어 줄 나무입니다.
바로 손아래 동생이 도와주어 손에 날개를 단 것처럼 일이 빨라집니다.
가장 손발이 잘 맞는 동생입니다. 참을 먹을 때면 아버님 얘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어이~ 저기 봐라. 살짝 틀어졌다. 아버지 봤으면 한 마디 하셨겠다."
"한 마디뿐이여. 종석산이 들썩거리도록 호통 치셨겠지."
혼자 일을 할 때도 쉬리 옆에는 늘 아버님이 계십니다. 일이 좀 귀찮아서 꾀를 부려 좀 쉽게 갈라치면
벽력 같은 아버님의 호통이 들려와 한 숨 한 번 쉬고 제대로 짚어 나가게 됩니다.
돌아가셨어도 아버님은 여전히 아들의 스승으로서 집 짓는 과정을 지켜보며 아들과 함께 집을 짓고 계신 겁니다.
벽을 두 줄씩 쌓고 기다리는 동안 쉴 새 없이 고무망치로 흙을 살살 두드려 줍니다. 그러면 갈라지는 틈 없이 바깥면이 메꿔지면서
단단해집니다. 이렇게 매끈하게 벽이 다듬어지면 나중에 흙이 갈라지거나 덩어리로 떨어져 내리는 일이 줄어듭니다.
흙집을 몇 채 지으면서 터득한 방법이랍니다.
드디어 벽을 다 올렸습니다. 다시 봐두었던 나무를 베어와 다듬어 대들보를 얹었습니다.
지붕은 샌드위치 패널을 사다 얹습니다. 흙집에는 기와가 어울릴지 모르지만 산꼭대기로 기와를 사서 나를 일도
만만치 않고 가격도 비쌉니다. 조립식 집에 얹는 샌드위치 패널도 괜찮습니다.
처음부터 비용이 적게 들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이 산에 가장 알맞은 집을 지을 요량이었으니까요.
아쉽게도 지붕 얹는 과정 사진은 생략합니다. 핸드폰 카메라로 찍었으나 관리소홀로 날아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지붕 올리기까지 한 달 정도 걸렸습니다. 오월 중순에 시작해 유월 중순에 끝났습니다.
일 한 날로만 치자면 딱 보름만입니다. 중간중간 흙이 굳기를 기다렸고 비가 오는 날은 쉬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다시 집을 짓기 시작한 것은 시월이 다 되어섭니다.
지붕 올리고 나서 계속 비가 와 자재를 올리지 못했고(종석산은 흙길이라 비가 오면 차가 올라오기 힘들거든요)
이런저런 바쁜 일들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지요.
다시 2012년 시월 햇살 좋은 가을날
서재 내부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모래와 흙, 시멘트를 섞어 구들장을 만듭니다.
옛날 선조들은 시멘트가 없어서 넓고 판판한 돌을 구해 구들로 썼습니다. 요즘에는 시멘트 블록이나 다른
재료들을 써서 구들을 만들기도 합니다. 쉬리는 이렇게 시멘트 구들을 만들어 쓰기로 했습니다.
두께가 웬만해서 불을 때도 튀거나 깨질 염려가 없고 불도 잘 들이기 때문입니다.
구들을 놓기 위해서 방바닥을 파냅니다.
방 안에서 곡괭이로 흙을 파는 일은 온전히 두 팔 근육과 허리 힘으로만 해내야 합니다.
아궁이에서 방문 있는 곳까지 골고루 따뜻하게 불을 잘 들게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구들을 잘못 놓으면 여러 번 뜯었다 다시 놓아야 합니다. 보통 일이 아니겠지요.
불이 골고루 잘 들이게 하기 위한 비법 또한 아버님께 전수받았습니다.
아버님은 때와 장소, 그 지역의 특성, 집주인의 형편에 맞게 재료와 방법을 써서 집을 짓는데
탁월하셨습니다. 아버님께 배워 쉬리 또한 상황에 맞게 임기응변에 능합니다.
아버님이 가르쳐주신 방법에 자신만의 방법을 접목시켜 짓는 집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서재 짓는 동안 열이면 열, 백이면 백 각자 말을 보태곤 했습니다.
참 말도 많고 조언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마다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가고 나면
꿍얼꿍얼 투덜거리면서 땅을 팝니다.
"그러게 울 아버지가 그랬어. 다 지어도 절대로 길 가상(길가) 집은 짓지 말라고.
지나가는 인간들이 다 한 마디씩 하면 주인이 귀가 솔깃해가지고 이렇게 하자
저렇게 고쳐라, 얼마나 요구사항이 많았겠어."
그러거나 말거나 묵묵히 자신만의 방식대로 바닥을 다져 군데군데 빨간 벽돌을 몇 장씩 놓고 그 위에 구들판을
놓았습니다. 그 위에 다시 흙과 모래, 시멘트를 섞어 바닥을 매끄럽게 마감했습니다.
역시 이 사진도 다 날아가 보여 드릴 수가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서재 내부를 마감하고 아궁이를 만들었습니다. 가마솥을 걸고 불을 땝니다.
연기가 구들 안으로 쑥 빨려 들어가고 빨간 불꽃이 넘실거립니다.
방바닥은 서서히 데워지고 이내 뜨끈뜨끈해졌습니다.
굴뚝으로 연기도 잘 빠지고요. 구들이 잘 놓아진 게 증명된 겁니다.
2012년 11월 초,
드디어 아담한 서재가 완성되었습니다.
참말이지 감개가 무량합니다.
요사이 쉬리는 아예 책꽂이도 예쁘고 튼튼하게 짜 주었답니다.
컴퓨터 놓는 탁자도 짜 준다고 합니다.
서재 내부는 책을 옮겨 꽂고 보여드릴까 합니다.
우리들의 서재요 사랑방에 이름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우선은 '단비산방'으로 정했습니다.
더 정겹고 어울리는 이름이 있으면 일러 주세요. 감사한 마음으로 현판 만들어 걸어 두겠습니다.
올겨울에는 서재의 넓은 창으로 펑펑 날리는 눈발을 보며
글 쓰는 시늉이라도 하며 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