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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ul 14. 2023

정방폭포 6

― 삼밧구석 팽나무



정방폭포 6

― 삼밧구석 팽나무




생선을 먹지 않는다는 김연옥 할머니를 삼밧구석에서 만났다

상가리 사는 천년폭낭을 닮아가는 삼밧구석 팽나무를 만났다 

태풍과 벼락을 맞고 한쪽으로 쓰러지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삶

상가리 천년폭낭과 삼밧구석 폭낭은 살아있는 짐승을 닮았다 


1948년 일곱 살이었던 아이는 부모님 손을 잡고 불타는 마을을 떠나 매일 밤마다 이 굴 저 굴 도망을 다녀야만 했다 눈이 많이 내린 터라 맨발이 참 시렸다 끝내 잡혀간 곳은 서귀포 정방폭포 인근 수용소였다 주먹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오빠, 남동생을 군인들이 다 끌고 나갔다  마지막 끌려가는 아버지가 눈앞에서 발로 밟히고 몽둥이에 맞는 걸 본 아이는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순간 누군가가 확 잡아챘다 아이는 그만 돌담에 머리를 부딪쳐서 기절을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혼자 깨어나 살아남은 그 아이의 머리에는 애기주먹만 한 움푹 파인 상처가 생겼다 동광리가 고향인 일곱 살이던 아이는 이제 할머니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모든 가족을 잃어 고아가 되었다 제대로 글을 배울 기회도 잃었다 10살까지 신발 한 번 신어보지 못한 고아였다 할머니는 혼자 바닷가에 자주 나가셨다 땅도 아닌 바다에 던져져 없어져 버린 가족들 이름을 남몰래 불렀다 그럴 때마다 팽나무는 귀를 기울였다


할머니는 물고기를 지금도 전혀 안 드신다 멸치 한 마리도 먹지 않는다 부모와 형제가 모두 바다에 떠내려가 물고기에 다 뜯겨 먹혔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참으면서 멸치 한 마리도 먹지 않았다 할머니의 바다는 지금도 그런 곳이다 할머니의 바다는 지금도 부모님이 사는 집이다 아니, 바다는 할머니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의 몸이다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도 모두 한 가족이다 바다가 자꾸만 할머니를 부른다 "나는 지금도 바닷물 잘락잘락 들이쳐 가민 어멍이영 아방이 '우리 연옥아' 하멍 두 팔 벌령 나한테 오는 거 닮아. 그래서 나도 두 팔 벌령 바다로 들어갈 뻔 해져..." (나는 지금도 바닷물이 찰랑찰랑 들어오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우리 연옥아' 하면서 두 팔 벌리고 나한테 오는 것 같아. 그래서 나도 두 팔 벌려서 바다로 들어갈 뻔 하지)


고아가 된 이후 10대의 시간을 대구와 부산, 서울에서 고생고생하다 뿌리를 잊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다시 고향 제주로 돌아왔을 때는 열여덟 살이었다 김연옥 할머니는 이후 시신 하나 없는 '헛묘'를 조성해 여태껏 매년 정성스럽게 벌초를 하고 있다 벌초를 하다가도 문득 짐승 같은 팽나무를 본다 팽나무에서도 정방폭포 소리가 들린다 바다에서도 그날의 정방폭포가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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