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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ul 18. 2023

정방폭포 13

― 동백에서 먼나무까지




정방폭포 13

― 동백에서 먼나무까지




정방폭포에서 동백꽃을 만났다

동백꽃에서 강요배 선생님을 만났다

강요배 선생님을 찾아가다가 나는

이중섭 화가를 만났다

이중섭 화가를 만나러 가다가 

나는 드디어 서귀포를 만났다


동백꽃 지는 길을 보지 못하고

풍경의 깊이를 볼 수 있었다

그 풍경의 깊이에서 

이중섭의 소도 보았고 게도 만났다


정방폭포와 소정방폭포를 지나서

동백꽃을 지나서 먼나무를 만났다

1949년 토벌을 마친 2 연대 병사들이

한라산에서 캐와 기념으로 심었다는

바로 그 먼나무를 보고야 말았다

늦게 도착한 붉은 총알들이 박혔다


바람까마귀들이 날아올랐다

 딴딴하고 옹이 진 팽나무에도

칼바람이 불었다 샛바람이 지나면

마파람이 불었다 갈바람과 하늬바람

바람은 시원으로부터 불어와서

시간을 관통해서 불어 간다

그런 바람들이 나무와 함께

바다와 함께 어둠과 함께 제주를 빚었다


바람은 고목을 만들고 고목은 바람을 기억한다

바람의 손으로 빚은 고목들이 바람으로 서 있다

한라산에서 잡혀온 저 먼나무는 평생 빵갱이

누명을 쓰고 살았다 연좌제에 걸려 나갈 수없다

온몸에 총알을 맞고도 살아남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평생을 붉은 눈총을 받고도 잘 버티어주어서 고맙다

서홍동 먼나무에게 최고령 이름표를 넘겨주고

이제 비로소 완장도 깃발도 없이 살아서 참 좋다


동백꽃은 동백꽃일 때 더욱 아름답고

팽나무는 팽나무일 때 더욱 아름답고

먼나무는 먼나무일 때 가장 아름답고 자유롭다



  


http://www.seogwipo.co.kr/news/articleList.html

http://www.seogwipo.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2448


역사 속에서 포로가 된 나무, 수려하니 더 눈물겹다

기자명 장태욱 

 입력 2022.06.06 09:46

 수정 2022.06.08 08:32


[영혼의 도서관, 나무와 숲 (24)] 제주 4․3 진압군 제2연대 1대대 중대본부 주둔 기념 먼나무


자치경찰단 마당에 자라는 먼나무(사진=장태욱 기자)


6월, 이제 햇살이 뜨겁다. 더위가 기상을 부릴 태세다. 이럴 때면 시원한 계곡이 그리워지지만, 평일 직장인에게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근처에 큰 나무라고 있으면, 그늘에서 잠시 더위를 날릴 수 있다.


서귀포시 구도심에도 이중섭박물관 입구 팽나무 고목처럼 드물게나마 오래된 고목이 있다. 오래전 이 일대 주민에게 더울 때 그늘이 되어주고, 아플 땐 위로를 전한 것들이다.


이중섭박물관 인근 자치경찰대 마당 남쪽 구석에는 마치 거대한 우산을 펼쳐놓은 같은 자태를 뽐내는 나무가 있다. 먼나무인데, 다른 나무의 방해 없이 독립수로 자라기 때문에 무척이나 화려한 수관을 뽐낸다.


사연을 알고 보면 이 나무도 도민의 아픔과 깊은 연관이 있는데, 위로보다는 고통을 상징하는 나무다.


나무가 자라는 자치경찰단은 일제강점기 서귀면사무가 있던 곳이다. 제주 4ㆍ3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국군 병력이 제주도로 몰려들었다.


국군 제2연대 1대대 중대본부가 1948년 9월 이후 서귀면사무소에 주둔했다. 12월에는 1대대 2중대가 의귀초등학교와 상효 칡오름 서쪽에, 1대대 3중대가 안덕면 상창리 대난도에, 1대대 4중대가 서호리에, 1대대 5중대가 대정면 대촌병사에, 1대대 6중대가 서귀초등학교에 각각 주둔했다.


1대대 중대본부 소속 장병들은 중산간 일대에서 무장대를 소탕한 후 49년에 한라산에서 30년쯤 된 먼나무 한 그루를 이곳에 옮겨 심었다. 자신들이 이곳에 주둔한 사실을 기념한다는 취지였다. 처음에는 ‘공비 토벌’이라는 명분을 붙였지만, 사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얘기다.


국군 제2연대 1대대 중대본부가 1949년에 주둔을 기념하기 위해 심은 것인데 지금은 수려한 자태를 뽐낸다.(사진=장태욱 기자)


이곳은 훗날 읍사무소, 서귀포시청 등으로 활용됐다. 그리고 나무는 1971년 8월 26일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됐다. 군사정권 시절이라 제주 4․3을 진압한 2 연대가 주둔했던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고, 먼나무의 수형이 수려하니 이 또한 높이 사려는 의도였다.


철거되어 지금은 없지만, 보호수를 알리는 안내 표지가 설치되기도 했다. 기록에 남아 있는 당시 안내표지의 내용이다.


제주도 기념물 제15호


소재지: 제주도 서귀포시 서귀동


이 나무는 키 6.5m, 가슴높이둘레 1.4m로서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먼나무로서는 가장 큰 나무이며, 수관이 사방 4m 반경으로 고르게 퍼져 마치 우산을 펴서 세워 놓은 것 같이 보인다. 이 나무는 한라산에 있었던 것을 1949년 4·3 사건 당시 공비 토벌을 마친 기념으로 제2연대 병사가 주둔지인 이곳에 심은 것이다.


먼나무는 감탕나무과에 속하는 상록교목으로 본도의 난대림대와 전라남도 보길도에 자생한다. 껍질은 검은빛을 띠어서 이 지방 말로 ‘먹낭’또는 ‘개먹낭’이라 한다.


암ㆍ수꽃이 딴 나무에 달리며 이 나무는 암나무로써 열매가 둥글고 지름이 5~8mm이며 10월경에 붉게 익는다.


나무 그늘 아래에는 햇살이 들지 않을 정도로 가지가 빽빽하다.(사진=장태욱 기자)


‘공비 토벌’ 같은 사실에 맞지 않은 내용이 들어 있지만, 나무의 자태를 칭송하는 내용에는 거짓이 없어 보인다.


김대중 - 노무현 대통령이 연이어 집권한 후 제주 4·3 사건이 역사적으로 재조명됐다.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면서 ‘먼나무 기념식수’에 대한 의미도 퇴색했다. 2005년 10월 5일 기념물에서 해제됐고 안내 표지판도 철거됐다.


옛 서귀면사무소 자리는 지금, 서귀포시 자치경찰대 업무공간으로 사용된다. 자치경찰 몇 명이 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달래고 있다. 한라산에서 잘살고 있던 나무가 거친 역사 속에 인질이 된 듯하여 씁쓸하다. 나무의 자태 또한 수려하니 더욱 눈물겹다. 나무에 무슨 죄가 있을까? 그저 권력에 취한 자들이 미쳐 날뛰던 시절이 야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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