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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Mar 05. 2020

24. 프로메테우스


나는
 해바라기 인가
 해바라기 씨 인가


 나는...
땅을 들어올리는 새싹 인가
 새싹을 토해버린 껍데기 인가



 나는
 별을 가득 품은 해의 가슴 인가




신화와 인간


 서양 사람들은 오랜 세월
 그리스로마신화와 기독교 이야기를
 조금씩 더 정교하게 갈고 닦아왔다...
특히 여러 예술가들이 더욱 그랬다
 시인들은 인간이 만든 신들을 찬양하고
 화가들은 신들의 모습을 그리거나 조각했다
 또한 음악가들은 신들의 노래를 부르고
 철학자들은 신들의 이야기를 끌어와서
 더욱 확대하거나 새롭게 재생산 하였다
 서양의 역사는 어쩌면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여러 개념들을
 신의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신들을 위하여
 그런 신들을 먹여살리기 위하여
 전쟁도 불사하는 그런 인간들의 집단이 되었다



 요즘에 인간들이 만들고 있는 신은 돈의 신,
요즘의 인간들이 집중하는 신은 돈의 신이다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힘이 센 나라는
 원자폭탄을 떨어뜨려 세계를 손아귀에 쥔 나라
 한 손에는 트로피 부인을
 또 다른 한 손에는 돈을 들고 흔드는 나라
 그런 장사꾼을 당당하게 대통령으로 뽑은 나라
 여전히 오늘 날에도 
 새로운 신화가 쓰여지고 있는 세계의 오늘


 더 큰 문제는
 그 동안 그렇지 않았던 동양 사람들도 
 그런 서양 사람들을 따라가려고 한다는 것이 아닐까?





프로메테우스 불 암벽에 묶인 신 고통


니체는 왜 저렇게 콧수염이 길고 많은가


아모르파티 운명을 사랑하라


아포리아 


통로가 없는 상태


길 없음의 시대


길이 막히다


단장의 아픔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


[  Prometheus


]  



요약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티탄족(族)의 이아페토스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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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박된 프로메테우스




이름은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주신(主神) 제우스가 감추어 둔 불을 훔쳐 인간에게 내줌으로써 인간에게 맨 처음 문명을 가르친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불을 도둑맞은 제우스는 복수를 결심하고, 판도라(Pandora)라는 여성을 만들어 프로메테우스에게 보냈다. 이때 동생인 에피메테우스(Epimetheus, '나중에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는 형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아내로 삼았는데, 이로 인해 ‘판도라의 상자’ 사건이 일어나고, 인류의 불행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제우스의 장래에 관한 비밀을 제우스에게 밝혀 주지 않았기 때문에 코카서스(캅카스)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날마다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고, 밤이 되면 간은 다시 회복되어 영원한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영웅 헤라클레스에 의해 독수리가 사살되고, 자기 자식 헤라클레스의 위업(偉業)을 기뻐한 제우스에 의해 고통에서 해방되었다고 한다. 한편, 그가 제우스의 노여움을 산 원인에 관해서는, 제물(祭物)인 짐승고기의 맛있는 부분을, 계략을 써 제우스보다 인간 편이 더 많이 가지도록 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또한 인간을 흙과 물로 만든 것이 프로메테우스라는 전설도 있다.            







제우스의 금기를 깬 프로메테우스                              

신화, 세상에 답하다  


제우스의 금기를 깬 프로메테우스




그리스 신화에도 금기가 아주 많이 등장한다. 우선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줌으로써 제우스가 내린 금기를 어겼다. 또 에피메테우스는 ‘제우스의 선물은 무엇이든 받지 마라!’는 형 프로메테우스의 금기를 어기고 판도라를 아내로 받아 인류의 불행을 초래했다. 프로메테우스와 판도라의 이야기는 크로노스의 티탄 신족과 제우스의 올림포스 신족 사이에 벌어진 전쟁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이 올림포스 신족의 승리로 끝난 후 프로메테우스의 형제들은 운명이 엇갈렸다. 우직하게 티탄 편에서 싸웠던 맏형 아틀라스는 어깨로 하늘을 떠받치는 벌을 받았다. 둘째 메노이티오스 역시 제우스의 벼락을 맞고 지하의 암흑세계 에레보스로 내던져졌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와 막내 에피메테우스는 공을 인정받아 제우스로부터 주요 임무를 떠맡았다.

프로메테우스는 신을 공경할 인간과 짐승들을 창조하고, 에피메테우스는 피조물들에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선물을 배분하기로 합의했다. 그래서 새에게는 날개, 사자에게는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거북이에게는 딱딱한 등판 등이 돌아갔다. 그런데 ‘뒤늦게 깨닫기’라는 이름의 에피메테우스가 아무 생각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이것저것 줘 버리다 보니 마지막 창조된 인간에게는 줄 것이 없었다.

에피메테우스는 사려 깊은 형에게 이 난감한 상황을 이야기했다. 자신이 창조한 어떤 피조물보다 인간을 사랑한 프로메테우스는 궁리 끝에 인간에게 금지된 불을 훔쳐 주기로 결심했다. 제우스는 불이 인간의 손에 넘어가면 위험한 상황이 초래되리라는 것을 염려하여 그것을 엄하게 금하고 있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속이 빈 회향나무에 불을 숨겨 인간에게 건네주었다. 불을 훔친 곳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제우스의 번개, 헤라의 부엌 아궁이, 아폴론의 태양마차,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 등이다.

헤시오도스는 《신통기》에서 프로메테우스의 불 도둑 사건을 다르게 전해 준다. 그것은 인간이 신께 드리는 소 제사에서 비롯되었다. 소를 올려 제사를 드림으로써 처음으로 인간이 신과 협정을 맺을 때 프로메테우스는 인간 편을 들기 위하여 제우스를 속였다. 그는 살코기와 기름진 내장은 뻣뻣한 가죽으로 싸고 뼈다귀는 윤기 나는 기름덩어리로 싸서 제단에 올려놓고 제우스가 선택하도록 했다. 제우스는 술책을 꿰뚫어 보았지만 인간에게 재앙을 내릴 생각으로 뼈다귀 쪽을 택했다. 기름덩어리에 싸인 뼈다귀를 확인한 제우스는 분노하여 인간에게 불을 금하는 벌을 내렸다. 그러자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 몰래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주었다.

제우스는 자신이 내린 금기를 어긴 프로메테우스를 가혹하게 처벌했다. 그는 힘의 신 크라토스와 폭력의 신 비아를 시켜 프로메테우스를 잡아들여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견고한 쇠사슬로 카우카수스 산 절벽에 묶어 놓았다. 이어 자신의 독수리를 보내어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파먹게 했다. 하루 종일 파 먹힌 간은 밤새 다시 돋아나 이튿날 또다시 독수리의 먹이가 되었다.

그리스 신화는 프로메테우스가 겪는 고통이 3000년이나 지속된다고 전한다. 그동안 제우스는 전령 헤르메스를 통해 그를 협박하기도 하고 회유하기도 했다. 앞을 내다보는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의 앞날에 드리워진 액운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협박과 회유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불의와 억압에 무릎 꿇지 않는 저항정신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3000년 후 영웅 헤라클레스가 나타나 독수리를 활로 쓰러뜨리고 프로메테우스를 사슬에서 해방시켰다. 그제야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운명에 얽힌 비밀을 밝혀 주었다. 당시 제우스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에게 푹 빠져 있었다. 프로메테우스는 테티스가 낳을 아들이 아버지를 몇 배 능가하는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이를 두려워한 제우스는 테티스를 단념하고 그녀를 보잘것없는 인간 펠레우스에게 시집보냈다. 후에 둘 사이에서 위대한 영웅 아킬레우스가 태어났다. 제우스로서는 가슴을 쓸어내릴 순간이었다. 보잘 것 없는 인간의 씨로 위대한 영웅을 잉태한 테티스였으니 최고의 신인 자신의 씨를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를 처벌한 제우스는 인간들도 손을 보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금지한 불을 사양하지 않고 넙죽 받은 인간이 괘씸했기 때문이다. 제우스는 인간이 불을 받은 대가로 평생 불행을 껴안고 살아가게 할 목적으로 최초의 여성 판도라를 만들 계획에 착수했다. 헤시오도스는 《신통기》와 《노동과 나날》에서 판도라에 관한 이야기를 두 번에 걸쳐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여기에 기록된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자.






황금시대의 서막과 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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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 창조는 세계의 주민인 인간이 마땅히 크게 관심을 가질 만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고대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오늘날의 기독교인이 성서로부터 얻은 것과 유사한 지혜를 터득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 나름의 천지 창조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이를 후세에 전했다.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땅과 바다와 하늘이 지어지기 이전에는 만물이 모두 하나였으니 이것이 바로 우리가 〈카오스〉라고 부르는 상태이다. 곧 세계는 잡탕으로 뒤섞인, 형태가 없는 덩어리, 오직 부동(不動)의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그 안에는 갖가지 씨앗이 잠재해 있었다. 땅이나 하늘이나 공기가 모두 뒤섞여 있었기 때문에 땅은 아직 단단하지 못했고, 바다는 출렁거리지 않았고, 공기는 투명하지 못했다. 이윽고 신(神)과 대자연이 손을 써서 이 혼란을 수습했다. 신과 대자연이 땅과 바다를 나누고 이를 또 하늘과 갈라 놓은 것이다.


그 때 불에 타고 있던 부분은 가장 가벼웠기 때문에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었다. 공기는 무게가 조금 있어서 하늘 바로 아래에 놓였다. 땅은 그보다 무거워 아래로 가라앉았고 물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 땅을 떠받치게 되었다.


그 때 어떤 신이 있어서(그 신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크게 마음을 내어 땅을 정리하고 배열했다. 그는 강과 만(彎)의 자리를 정하고, 산을 일으켜 세우고, 골짜기를 파고, 숲, 샘, 기름진 논밭, 돌투성이 황야를 여기저기에 고루 심었다. 공기가 맑아지자 별도 보이기 시작했고, 물고기는 바다를, 새는 하늘을, 네발짐승은 땅을 각각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여기에 보다 고등한 동물이 필요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이 창조되었다. 창조주가 인간을 만들 때 자신과 같은 재료를 썼는지, 아니면 하늘에서 갓 떨어져 나온 흙, 다시 말하면 천상의 씨앗이 조금 남아 있는 흙을 썼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프로메테우스

1)

는 이 땅으로부터 흙을 조금 취하여, 물을 붓고 이를 이겨 신들의 형상과 비슷한 인간을 만들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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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인간(남성)을 빚는 프로메테우스(중앙). 아테나 여신이 프로메테우스 뒤에 서 있다. 아테나는, 프로메테우스가 진흙으로 빚은 인간에게 영혼을 불어넣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로메테우스의 발치에 놓여 있는, 원뿔 모양의 과일 바구니가 인상적이다. 원뿔 모양의 바구니는, 그리스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풍요의 뿔〉을 상징한다. 3세기 로마의 석관(石棺) 돋을새김. 기원전 3세기의 그리스 작가 파우사니아스의 글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보이오티아 지방에 가면 〈프로메테우스의 석상〉이라는 글씨가 대리석에 새겨져 있는데, 이 근처 골짜기에는 땀 냄새가 나는, 거대한 갈색돌이 무수히 굴러다닌다. 이 지방에는, 그 돌이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만들던 흙덩어리가 굳은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이 인간에게 직립할 능력을 부여했다. 이 덕택에, 다른 동물은 모두 고개를 숙여 땅을 내려다보는데 인간만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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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불을 훔쳐 인간 세계로 내려오는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가, 속이 빈 회향나무 대롱으로 불을 붙인 곳이, 제우스의 벼락이라는 설명도 있고, 아테나 여신의 마차, 혹은 화로의 여신 헤스티아의 부뚜막이었다는 설명도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거인족인 티탄 족이었다. 그는 인류가 창조되기 전부터 지상에 살고 있었다. 이 프로메테우스와 그의 아우 에피메테우스

3)

는,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을 비롯한 다른 동물들에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능력을 부여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에피메테우스가 이 일을 해내면 프로메테우스가 그 일의 결과를 점검, 감독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에피메테우스는 갖가지 동물에게 용기, 힘, 속도, 지혜 같은 것들을 선물로 주기 시작했다. 어떤 동물에게는 날개를, 어떤 동물에게는 발톱을, 또 어떤 동물에게는 딱딱한 껍질을 주는 식이었다.


드디어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주어야 할 차례가 왔다. 그러나 가히 만물의 으뜸 자리를 차지한다고 해도 좋을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주긴 주어야 할 텐데, 에피메테우스의 수중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말하자면 선물을 다 써버린 것이었다.


몹시 당황한 그는 형 프로메테우스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했다. 아우의 하소연을 듣고 난 프로메테우스는 여신 아테나의 이륜차의 불을 자기 횃대에 옮겨 붙여 가지고 내려와 이를 인간에게 주었다.


이 선물 덕택에 인간은 다른 동물이 감히 넘보지 못할 존재가 될 수 있었다. 곧 인간은 이 불을 이용, 무기를 만들어 다른 동물을 정복할 수 있었고, 연장을 만들어 땅을 갈아먹을 수 있었으며, 아무리 추워도 거처를 데워 따뜻하게 기거할 수 있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갖가지 기술을 개발하고, 거래 수단이 되는 화폐를 주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판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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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가 인간(남성)을 벌하기 위해 헤파이스토스로 하여금 판도라를 만들게 했을 때,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판도라에게 아름다움을 주었고, 헬리오스는 노래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으며, 헤르메스는 아첨하는 법, 속이는 법을 가르쳤고, 아테나 여신은 좋은 옷감을 짜주었다고 한다. 19세기 화가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그림.
  

여자는 만들어져 있지 않았다. 이야기(꽤 웃기는 이야기)인즉, 그래서 제우스가 여자를 만들어 프로메테우스와 그의 아우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냈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 형제가 예뻐서 선물을 준 것은 아니고, 프로메테우스가 천상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선물로 준 것을 괘씸하게 여겨 이들과 인간을 벌하기 위해 그랬다는 것이다.


최초로 만들어진 여자의 이름은〈판도라〉

4)

라고 했다.


판도라는 천상에서 만들어져 신들로부터 한 가지씩의 선물을 받았다. 그래서 판도라는 완벽했다. 판도라가 신들로부터 무엇을 받았는고 하니 아프로디테로부터는 아름다움을, 헤르메스로부터는 설득력을, 아폴론으로부터는 음악을 받았던 것이다.


이렇게 선물을 잔뜩 받아 지상으로 하강한 판도라는 에피메테우스의 차지가 되었다. 에피메테우스는 형 프로메테우스로부터, 제우스라는 작자와 그가 주는 선물에 주의하라는 충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덜컥 판도라를 아내로 삼아 버렸다.


그런데 이 에피메테우스의 집에는 단지가 하나 있었다. 이 단지 안에는 몹쓸 것들이 들어 있었다. 인간에게 새로운 주거 환경을 만들어 줄 당시에는 필요 없는 것들이어서 에피메테우스가 그 단지 안에다 넣어 두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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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화가 장 쿠쟁의 〈에바 프리마 판도라〉. 해골에다 오른팔을 괴고 있는 것으로 보면, 인류 최초의 여성 판도라가 좋은 의도에서 창조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중세의 화가들까지도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
  

판도라는 호기심이 강한 여자였다. 판도라는 단지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판도라는 도저히 궁금증을 삭이지 못하고 뚜껑을 열고 단지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그 단지 안에서, 인간에게는 몹쓸 것들인 무수한 재액(災厄), 곧 육체적인 것으로는 통풍(痛風), 신경통 같은 것, 정신적인 것으로는 질투, 원한, 복수심 같은 것들이 나와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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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상자를 여는 판도라. J. W. 워터하우스 그림.
  

판도라는 후닥닥 뚜껑을 도로 덮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으니, 단지 속에 있는 것들은 거의 사방팔방으로 흩어진 다음이었다. 요행히 단지 안에는 딱 한 가지가 남아 있었다. 바로 〈희망〉이다. 우리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떤 횡액을 당해도 희망만은 버리지 않는 것은 다 이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어떤 횡액도 우리 존재의 뿌리를 흔들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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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球體) 위에 앉아있는 소녀는 뤼라, 혹은 수금(竪琴)을 들고 있다. 수금과 소녀는 사슬로 연결되어 있다. 이 둘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다. 소녀의 수금 줄은 거의 다 떨어져 나가고 한 줄밖에 남아있지 않다. 판도라의 상자에 〈희망〉 하나만 남아 있었듯이. 영국 화가 조지 와츠가 1886년에 그린 이 그림은 판도라의 상자 속에 남아 있던 〈헛된 희망〉을 그린 듯하다.
  

다른 설(說)도 있다. 판도라는 제우스가 인간을 축복하기 위해 보낸 사자(使者)라는 설이다. 이 설에 따르면, 판도라는 여러 신들로부터 받은 선물을 상자에 넣어 가지고 지상으로 하강했다. 그런데 어느 날 실수로 이 상자 뚜껑을 열었기 때문에 다른 선물은 다 날아가 버리고 희망만이 남았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앞의 이야기보다 이 이야기가 더 그럴듯하게 들린다.


희망이라는 것은 고귀한 보석 같은 것이 아닌가? 그런 것이 어떻게 횡액이란 횡액은 다 들어 있는 상자에 쓸려 들어갈 수가 있겠는가?


어쨌든 이렇게 해서 인간은 이 세상에 살림을 꾸리게 되었다. 처음 시대는, 죄악이 발붙일 곳 없던 행복한 시대라서 흔히 〈황금의 시대〉로 불린다. 법률이라는 고삐에 끌리지 않고도 인간은 진리와 정의를 편들었다. 을러메거나 죗값을 물리는 관리도 없었다. 배 만들 나무를 구한답시고 삼림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일도 없었고 사람 사는 마을 주위에다 성채 쌓아올리는 일도 없었다. 칼, 창, 투구 같은 것도 없었다. 대지는 인간이 힘들여 갈고 씨 뿌리지 않아도 인간의 필요에 맞추어 무엇이든 거두게 해주었다. 계절은 늘 봄이어서 초목은 씨 뿌리지 않아도 저절로 싹터 자랐고, 강에는 우유와 포도주가 흘렀으며 떡갈나무에서는 누런 꿀이 뚝뚝 들었다.


이 시대에 이어 〈은의 시대〉가 왔다. 이 시대는 황금의 시대만은 못했지만 그래도 다음에 올 〈청동의 시대〉에 비하면 꽤 살 만했다.


제우스 신은 봄을 토막 내어 1년을 네 계절로 나누었다. 인간은 난생 처음 찌는 듯한 더위와 살을 에는 추위를 겪어 보았다. 은의 시대에는 주거에 필요한 가옥이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동굴이 사람의 가옥 구실을 했고, 이어서 나뭇잎에 덮인 숲속의 구덩이가, 그 다음에는 잔가지로 얽어 만든 오두막이 가옥 구실을 했다. 하지만 이 시대에 이르자 농작물은 씨 뿌리고 가꾸지 않으면 자라지 않았다. 농부는 씨를 뿌려야 했고, 소는 좋든 싫든 쟁기를 끌어야 했다.


이 시대에 이어 〈청동의 시대〉가 왔다. 이 시대에는 인성(人性)이 거칠어져 사람들이 걸핏하면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경향이 두드러진 시대였다. 그러나 구제불능의 극악한 시대는 아니었다.


가장 거칠고, 가히 극악하다고 할 수 있는 시대는 바로 〈철의 시대〉였다. 이 시대에는 죄악이 홍수처럼 범람했고 겸양과 진실과 명예는 이름뿐이었다. 아니 이름뿐인 것은 고사하고, 이들 미덕이 간사함과 폭력과 사악한 사리사욕으로 바뀌어 횡행했다. 뱃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돛을 올리고 바다로 나갔으며, 배의 용골을 만들자니 산의 나무가 성할 리 없었다. 이들은 그렇게 만든 배를 타고 먼 바다를 누볐다.


이 때까지 공동으로 경작되던 땅이 조각조각 나뉘어 사유재산이 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대지가 그 거죽으로 농산물을 지어내는 데 만족하지 않고 대지의 배를 가르고는 갖가지 금속과 광석을 파내었다. 이렇게 해서 유해한 철과 철보다 더 유해한 황금이 제련되었다. 사람들은 철과 황금을 무기로

5)

 전쟁을 일으켰다.


이 때부터 객(客)은 친구의 집에 묵어도 안전하지 못했다. 사위와 장인, 형제와 자매, 아내와 남편이 서로를 믿지 못했다. 아들은 재산을 상속받으려고 아버지가 죽을 날을 기다렸다. 가족간의 사랑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대지는 살육의 피로 더럽혀졌고 이 때문에 신들은 하나씩 땅을 버리고 떠났다. 끝까지 남아 있던 아스트라이아 여신도 마침내 이 땅을 떠나고 말았다.


제우스는 땅의 형편이 돌아가는 꼴을 보고 몹시 화가 났던 나머지 신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신들은 대신(大神) 제우스의 소집에 응하여 하늘의 궁전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제우스의 궁전으로 통하는 길은 청명한 밤이면 누구에게든 보일 수 있을 정도로 하늘을 가로질러 훤하게 트여 있다. 이 길은〈비아 락테아〉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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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의 〈은하수〉. 은하수를 뜻하는 라틴어 〈비아 락테아(ViaLactea)〉는 〈젖의 길〉이라는 뜻이다. 영어의 〈밀키 웨이(Milkyway)〉는 라틴어를 직역한 말이다. 헤라가 아기 헤라클레스에게 젖을 먹인 적이 있는데, 헤라클레스가 어찌나 세게 빨았던지 헤라의 젖이 멎지 않고 뿜어져 나와 이루어진 것이 은하수라는 것이다. 헤라 뒤에는, 헤라의 신조(神鳥) 공작이 끄는 수레가 서있다. 그림 왼쪽에, 머쓱한 표정을 하고 제우스가 앉아 있다. 제우스의 발치에는, 제우스 권능의 상징인 벼락이 놓여 있다.
  

이 〈젖의 길〉 연도에는 고위(高位) 신들의 궁전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지위가 낮은 신들은 길 양쪽의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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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토레토의 〈은하수의 기원〉. 아기 헤라클레스는 헤라 여신이 낳은 아들이 아니라, 제우스의 애인 알크메네가 낳은 아들이다. 따라서 질투의 화신으로 불리기도 하는 헤라가, 지아비의 시앗이 낳은 아들에게 젖을 물렸을 까닭이 없다. 그래서 신화는 헤라가 헤르메스에 속아서 아기 헤라클레스에게 젖을 물렸다고 쓰고 있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아기 헤라클레스를 안고 가서 헤라에게 젖을 물리는 이는 헤르메스가 아니라 제우스다. 아기의 발치에 있는 독수리는 바로 제우스의 신조(神鳥)다. 헤라클레스가 어찌나 세게 빨았던지 입을 떼었는데도 불구하고 헤라의 왼쪽 젖가슴에서, 젖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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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이치를 주관하는 여신 테미스.
  

아스트라이아는 〈순진무구〉의 여신이었다. 이 여신은 땅을 버리고 하늘의 별자리 〈비르고〉, 곧 처녀좌가 되었다.


테미스 여신은 이 아스트라이아의 어머니였다.


아스트라이아는 천칭을 든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이 아스트라이아가 서로 상반되는 것을 우기는 두 편의 주장을 이 천칭으로 달기 때문이다.


땅을 떠난 여신들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여 〈황금의 시대〉를 재현할 수는 없을까······. 이것은 옛 시인들이 즐겨 노래하던 시의 주제였다.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가 쓴 『구세주』는 지금은 기독교의 찬송가로 불리는데, 이 시에는 이러한 소망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이윽고 죄악이 자취를 감추고, 해묵은 기만도 뿌리뽑히면
정의의 여신도 이 땅으로 돌아와 천칭을 높이 들고,
평화의 여신도 이 땅 위로 올리브 가지를 흔들고,
백의(白衣)의 여신 아스트라이아도 하늘에서 내려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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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을 든 시간의 신과, 칼과 천칭을 든 정의의 여신의 돋을새김. 아래쪽에는 〈호라 푸기트, 스타투스 이우스(Hora fugit, stat Jus)〉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시간의 신은 날지만, 법과 정의의 여신은 한 자리에 우뚝 서 있다〉는 뜻이다. 시간의 신, 정의의 신은 각각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로노스와 아스트라이아의 변형된 모습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시간에 대한 법과 정의의 우위(優位)를 강조하는 이 돋을새김은 어디에 새겨져 있었겠는가? 파리 시테섬의, 프랑스 법무부 건물에 새겨져 있었다.
  

밀턴의 『그리스도 강탄에 부치는 찬가』 14절 및 15절을 참조하라.


그같이 거룩한 노래가
우리의 공상 안에 언제까지나 깃들여 준다면
세월의 바퀴를 되돌려 황금의 시대가 찾아오게 하리라.
마마 자국을 메우던 우리의 허영은 병들어 이 땅을 떠나고,
나병 같은 죄악도 이 땅에서 사라지리라.
그리고 지옥의 신도 죽고,
그 음울한 집은 백일하에 드러나 빛의 세계를 받으리라.

그렇다, 이윽고 〈진실〉과 〈정의〉가,
오색찬란한 〈무지개〉 주렴에 가려진 채
천상에서 인간의 땅으로 하강하리라.
그리고 〈자비〉가 어느새
천상의 빛을 한 몸 가득히 받으며
그 휘황찬란한 발로 금은실 술이 달린 구름을 밟으며 옥좌에 앉으리라.
하늘의 여신은 큰 명절이라도 맞은 듯이
궁전 대전(大殿)의 문을 활짝 열게 되리라.



대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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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름 걷는 역할을 맡는 북풍의 신 보레아스.
  

제우스는 신들의 회의석상에서 만장한 신들에게 일장연설을 했다. 그는 먼저, 도저히 더 두고 볼 수 없는 지상의 타락상을 설명하고 이어서 이 지상의 인간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 버리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종족으로 하여금 살림을 시작하게 하면, 삶 자체가 실다울 뿐만 아니라 신들을 섬기는 태도도 전과 다를 것이 아니겠느냐고 역설했다. 


제우스는 말끝에 벼락을 집어 들고 금방이라도 지상으로 던져 세상을 태워 버리려 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본 제우스는 그럴 일이 아니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세상에다 불을 질러 놓으면 천계(天界) 또한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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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비 분수 중앙에 서있는 신은 포세이돈, 때로는 오케아노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제우스는 계획을 바꾸어 세상을 물바다로 만들어 버리기로 했다. 그는 우선, 비구름을 흩날리게 하는 북풍을 비끄러매었다. 그리고는 남풍을 보내어 하늘을 먹구름으로 덮어 버리게 했다. 사방팔방에서 모여든 구름이 저마다 부딪치는 바람에 하늘은 순식간에 굉음의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어서 폭포수처럼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논밭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농부가 1년 내내 정성을 쏟은 논밭이, 한 시간도 채 못 되어 모조리 홍수에 휩쓸려 갔다.


제우스는 천상에 있는 자기 물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지 포세이돈에게 바다와 강을 모조리 범람하게 하고 그 물을 대지로 쏟아 보내게 했다. 뿐만 아니라 지진을 일으켜 땅을 쑥밭으로 만들고 바다로 흘러내려온 물을 다시 역류시켜 해안을 덮치게 했다. 이 바람에 양과 소를 비롯한 가축과 사람과 집이 모두 물에 떠내려갔고, 신전도 그 안의 성소(聖所)들과 더불어 한순간에 유린되었다. 커서 물에 떠내려가지 않은 건물이 하나도 없었고, 높아서 물에 잠기지 않은 탑이 하나도 없었다.


세상은 물바다로 변했다. 보이는 것은 오직 끝없는 대해원(大海原)이었다. 여기저기에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 이들은 겨우 머리만 물 위로 내민 산꼭대기에 모여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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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가 그린 구약 시대의 〈대홍수〉. 그림 중앙에, 의로운 인간 노아가 미리 만들어 놓은 방주(方舟)가 보인다. 그리스의 대홍수 신화에도 의로운 인간 부부 데우칼리온과 퓌라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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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올스턴이 1804년에 제작한 〈대홍수〉. 데우칼리온과 퓌라 이야기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그림은 아니지만 대홍수 직후의 암담한 풍경이 실로 섬뜩하다.
  

조그만 배를 타고 죽자고 노를 젓는 사람들도 간혹 있기는 했다. 그들이 노를 젓는 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이 쟁기질하던 문전옥답 위였다. 물고기는 나뭇가지 사이로 오락가락했다. 닻이 뜰로 내려지기도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양떼가 놀고 있던 곳에서 사나운 물개들이 첨벙거리며 놀았다. 이리가 양떼 사이에서, 누런 사자와 호랑이가 물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멧돼지의 힘도, 수사슴들의 빠르기도 물 속에서는 하릴없었다. 날개 쉴 곳이 없어진 새들도 나는 데 지쳐 물 위로 곤두박질쳤다. 다행히 물난리를 피한 생물도 오래지 않아 굶어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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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내려다본 로마의 트레비 분수. 포세이돈(혹은 오케아노스)과 물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해신(海神) 혹은 수신(水神)들의 다양한 모습이 새겨져 있다.
      

데우칼리온과 퓌라



하고 많은 산 가운데서 오직 파르나쏘스 산만이 물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프로메테우스와 일족(一族)인 데우칼리온

6)

과 그의 아내 퓌라

7)

가 이 산 위로 피난했다. 데우칼리온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퓌라는 신들을 잘 섬기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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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에게 아들인 전령신 헤르메스가 있다면 포세이돈에게도 아들인 전령신 트리톤이 있다. 이 트리톤은 뿔고둥 나팔로 강의 신들에게 신호를 보내어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뜻을 알린다.
  

제우스는 이 부부 이외에는 살아남은 인간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는 이 부부야말로 흠잡을 데 없이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왔음을 상기하며 북풍에게 구름을 걷고 땅에서는 하늘이, 하늘에서는 땅이 보이게 하라고 명령했다. 포세이돈도 아들 트리톤에게 뿔고둥 나팔을 불게 하여 물을 물러가게 했다. 물은 명령에 순종했으니, 바다는 해변 너머로 되돌아갔고 강은 그 강바닥으로 되돌아갔다.


이렇게 되자 데우칼리온이 아내 퓌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 아내여, 혈혈단신 살아남은 여자여, 처음에는 나와 혈연으로 맺어지더니, 이제 공동의 위기에 맞서 다시금 맺어진 내 아내여, 우리에게 내 아버지 프로메테우스 같은 능력이 있어서, 아버지께서 이 세상 인간을 지으신 것처럼 우리 종족을 새롭게 지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나 우리에게 어찌 그런 일이 가능할까 보냐. 그러니 우리 저기 보이는 신전으로 가서 장차 우리가 어찌 해야 할지 신들께 여쭈어 보기로 하세.」


두 사람은 이렇게 해서 신전으로 들어갔다. 신전은 진흙 같은 것으로 잔뜩 더러워져 있었다. 두 사람은 제단 쪽으로 가보았으나 거기에서 타던 성화는 꺼진 지 오래였다. 두 사람은 계단 근처의 땅에 엎드려 테미스 여신에게 어떻게 하면 멸망한 인간을 다시 세울 수 있는지 가르쳐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자 신탁(神託)이 내렸다.
「얼굴은 가리고 옷을 벗고 이 신전에서 나가 너희 어머니의 뼈를 등 뒤로 던져라.」
두 사람은 이 뜻밖의 신탁에 몹시 놀랐다. 퓌라가 먼저 침묵을 깨뜨리고 한탄했다.
「저희는 이 신탁을 따를 수 없습니다. 저희가 어찌 감히 어머니의 유체(遺體)를 더럽힐 수 있겠습니까?」


두 사람은 숲속의 어두컴컴한 나무 그늘로 들어가 이 신탁의 의미를 곱씹어 보았다. 이윽고 데우칼리온이 이렇게 말했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조상에게 불경을 범하지 않고도 이 신탁을 좇을 수 있을 것이오. 이 대지가 만물의 크신 어머니이시고, 돌이야말로 어머니의 뼈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이 돌을 등 뒤로 던지면 되는 것. 신탁이 우리에게 그렇게 일렀을진대 시험삼아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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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놀트 뵈클린의 〈프로메테우스〉.
  

두 사람은 얼굴을 가리고 옷을 벗은 다음 돌을 집어 등 뒤로 던졌다. 그러자 돌은(참으로 이상하게도) 말랑말랑한 덩어리가 되어 물체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엉성하긴 하나 인간의 형상에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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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이탈리아 화가 안드레아 델 밍가의 〈데우칼리온과 퓌라〉. 데우칼리온과 퓌라가 어깨너머로 던진 돌이 사람으로 변하여 신전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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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모습을 바꾸어 가는 데우칼리온과 퓌라의 돌들(〈데우칼리온과 퓌라〉), (부분).
  

흡사 조각가의 손길에 반쯤 깎인 돌덩어리와 같았다. 돌의 겉면에 묻어 있던 수분과 흙은 살이 되었다. 딱딱한 부분 자체는 뼈가 되었다. 돌결(vein)은 혈관(vein)이 되니, 맡은 일이 달라졌을 뿐 이름은 그대로였다. 남자가 던진 돌은 남자가 되었고 여자가 던진 돌은 여자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종족은 튼튼한 종족이어서 노동을 잘 익혔다. 우리가 노동에 잘 적응하는 것을 보면 우리 역시 이들 종족의 후예인 모양이다.


이브와 판도라를 비교하다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밀턴은 『실락원』 제4편(714~719)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신들이 저 나름대로 한 가지씩 선물을 안겨 주었던 저 판도라보다
훨씬 사랑스러운 이브. 오, 너무나도 닮은 슬픈 사건이여.
헤르메스에 의해 그 때 야벳의 어리석은 아들 있는 곳으로 간 판도라는 그 아름다운 자태로 인류를 홀리고
제우스의 진짜 불을 훔친 자에게 복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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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에우스의 아테나 여신상(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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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경우 완전 무장한 모습으로 그려지거나 새겨지는 아테나 여신. 아테나 외항(外港) 피라에우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청동 아테나 여신상.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는 이아페토스의 아들이었는데 밀턴은 이 이아페토스를 야벳

8)

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옛부터 많은 시인들이 즐겨 노래하는 시의 제재(題材)가 되어 왔다. 그가 인류의 편으로 칭송을 받아 온 것은 제우스가 격노해서 인류를 보고 있었을 때 그는 인류를 위해 이를 중재하고, 인류에게 문명과 기술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 때문에 제우스의 성미를 건드렸고 신들과 인간의 통치자인 제우스의 노여움을 초래했다.


제우스는 사자(使者)에게 명하여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 산 위의 바위에 묶어 두게 했다.


프로메테우스가 받은 고통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 산꼭대기에는 독수리가 있어서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파먹었다. 그러나 간은 독수리가 파먹을 때마다 새로 돋아났다. 프로메테우스가 받은 이러한 고통은 만일 프로메테우스가 자진해서 제우스에게 복종을 맹세하기만 하면 언제든 끝날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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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모로의 〈프로메테우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 오는데 사용한 회향나무 대롱을 남근(男根), 독수리에게 파먹히는 족족 재생하는 프로메테우스의 간(肝)을 성욕으로 해석한, 짧지만 독특한 논문을 쓴 바 있다. 프로이트는 헤라클레스가 퇴치한 휘드라(대가리를 자르면 그 자른 자리에서 또 하나의 대가리가 솟아오르는, 대가리가 아홉 개인 물뱀)까지도 성욕을 상징하는 괴물로 해석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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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모로의 〈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를 겨냥하고 내려오는 듯한 벼락(그림 오른쪽 위)은 제우스의 분노를 상징하는 듯하다. 프로메테우스의 발치에서 무수한 여성이 애통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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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콥 요르단스의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 먹는 제우스의 신조(神鳥) 독수리 뒤로, 중재안을 가지고 온 듯한 제우스의 전령 헤르메스가 보인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앉아 있는 왕위의 안전과 관계 있는 중요한 비밀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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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에게 비밀을 끝까지 귀띔해 주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신화에 따르면 프로메테우스는 헤르메스 편에 그 비밀을 귀띔해 준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비밀이란, 메티스 여신에게서 태어나는 제우스의 자식이 장차 제우스의 왕좌를 넘보리라는 것이었다. 제우스는 그 말을 듣고는 몇 차례 동침한바 있는 메티스 여신을 조그맣게 줄어들게 만든 다음에 삼켜 버렸다. 그런데 몇 달 뒤, 제우스가 두통을 호소하면서 두 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뒹굴었다. 헤파이스토스가 달려와 그의 머리를 가르자 굉음과 함께, 완전 무장한 젊은 여신이 튀어나왔다. 이 여신이 바로 아테나 여신이다. 기원전 6세기의 세 발 걸상에 그려진 이 그림은 제우스의 머리에서 아테나가 튀어나오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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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뷔렌의 〈헤파이스토스의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손에는 카두케우스(하늘을 상징하는 독수리와, 저승을 상징하는 뱀이 새겨진 지팡이)를 들고 머리에는 날개 달린 투구를 쓴 헤르메스가 헤파이스토스에게 프로메테우스를 결박하라는 제우스의 명령을 전했던 모양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이를 귀띔만 해주어도 제우스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질 터였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그런 짓을 업신여겼다. 바로 이 때문에 프로메테우스는 오늘날까지도 부당한 고통에 대한 고결한 참을성, 포학에 항거하는 의지력의 상징이 되어 있는 것이다.


바이런과 셸리는 이러한 테마를 다루었다. 바이런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프로메테우스』 1절 및 3절)


티탄(거인)이여! 인간의 고통이 슬픈 현실이었어도
신들이 능멸해도 좋을 것으로는 여기지 못하게 했던
불멸의 눈을 가진 이여!
인간에 대한 그대의 연민이 어떤 보상으로 돌아왔던가?
침묵의 고통, 견디기 어려운 고통, 바위, 독수리, 그리고 사슬,
잘난 체하는 자가 맛볼 수 있는 고통,
그들에겐 어림없는 번민,
질식시킬 듯한 낭패.

그대의 신성한 죄는 인간에 대한 사랑.
그것은 그대가 들려준 교훈으로, 인간은 이로써 비참한 경험을 줄이고
〈인간〉을 제정신으로 강화할 수 있었다.
그러한 노력은 하늘의 이름으로 좌절당했으나,
그대의 끈질긴 인내로 이겼으니 〈하늘〉도 〈땅〉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대 불굴의 정신이 보여 준 끈기와 저항에서
우리는 큰 가르침을 받는 것이다.



바이런은 이와 유사한 인유를 나폴레옹 보나파르뜨에게 바치는 송시(頌詩)에서도 시도하고 있다.


혹은, 천상에서 불을 훔쳐 온 이처럼
그대로 이 충격을 견디어 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불 도둑처럼, 용서받지 못할 이여,
독수리와 바위의 고통을 맛보려 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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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제우스 신전은 크기만 할 뿐 별로 아름답지 못해서 찾는 사람이 적다. 아버지 제우스 신전 뒤쪽으로 아크로폴리스(우뚝 솟은 산)와 딸 아테나 여신의 신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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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티스 여신의 몸에서 태어나는 자식이 아버지 제우스를 능가하게 되리라던 프로메테우스의 예언은 실현되었는지도 모른다. 아테네의 우뚝 솟은 암산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것은 아테나 신전이지 제우스 신전이 아니다. 암산 정상의 신전이 저 유명한 〈파르테논(처녀 신전)〉이다.









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19) 허혜정 <적들을 위한 서정시>

깊고 어두운 규방에서 뛰쳐나온 여성의 노래

글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다시 의문은 시작되었다
 숙맥들은 눈치채지 못할 신호를 돌리다
 슬며시 자리를 터는 그들은 어디로 몰려가는 걸까
 뒤늦게 홀로 구두를 찾아 신고 내려오는 시간
 확실히 내가 모르는 암호가 있는 것이다

 악수도 모르고 멀어지던 거만한 그들
 뭔가 안 보이는 벽 너머에서
 내일이 있는 척 웃어대던 얼굴들
 나에겐 너무도 힘들었던 문제들
 흥나는 대로 지껄여대던 혀들
 내심 옆 사람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알 수 없는 귓속말을 즐기는 그들

 굳게 잠가놓은 안쪽에서 그들이
 어떤 세상을 세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함부로 넘겨짚진 않지만, 내가 알고 싶어 하는 건
 벽 너머 세상, 어쩌면 그 호기심조차
 다 똑같은 목적 때문이라 생각할지 모를
 그래서 혹 내 꿈을 안다고 재단해왔을지 모를 그들

 하지만 성공까지는 바래본 적이 없다
 종이가 무엇이란 걸 알기 때문에
 목적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게 아니다
 닥치는 대로 쓰고 핸들을 돌리고 돌리다보면
 어디선가 들어맞을지 모를 숫자를 찾아
 한 칸씩 한 칸씩 정교하게 조합해 맞춰보는 퍼즐
 반쯤 왔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방향을 틀었다
 알았다고 생각할 때 바보같이 머리를 쳤다
 알만한 농담으로 웃어넘겼던 말도 생각하며 걸었다

 오늘 다시 틀렸다고 생각한 말들을 지운다
 부패한 방언으로 가득한 대화에서
 떨어져 나온 외로운 미치광이가 되어
 차갑고 단단한 구멍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단어는 뭘까
 꼭두각시 하나 불태울 수 없는 말이라면
 시 같은 건 손대지도 않았다


〈적들을 위한 서정시〉는 “깊고 어두운 규방”(〈스란치마〉)에서 뛰쳐나온 여성의 노래다. 뛰쳐나왔지만 어디로 갈지 모른다. 시의 화자는 유령과 동거하는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티고, 집 밖을 한없이 배회한다.

“유령이 출몰하는 음산한 집보다는 / 떠들썩한 맥주 집을 선택한다.”(<미망인으로 살기>) 허혜정은 최승자 이후, 여성 삶에 대한 가장 나쁜 스토리를 쓰는 여성시인이다.

“역사의 벼루에 핏물을 붓던 어둠의 후궁들”(〈스란치마〉)이 쓰는 시, “폐허를 어슬렁거리는 똥개로 다시 태어나”(〈재방송〉)고 싶은 여성의 시들. 그 절망과 비참과 모욕의 극단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살의다. 타인을 향한 것이든 스스로를 향한 것이든 살의는 섬뜩하다. 시인은 “미망인의 비참함을 즐기는 내게 / 때마다 안 늦었냐고 물어대는 머리통을 진짜로 / 끓는 냄비 통에 처박아버리고 싶다”(<미망인으로 살기>)고 말한다. 이 유령의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사생활의 지독한 불행을 견디는 것, 악몽과 나쁜 스토리를 견디는 것뿐이다.

장 주네는 “공포에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거기에 완전히 빠져드는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허혜정의 서정적 자아들은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절망에 온몸을 담근다. 〈적들을 위한 서정시〉는 끝끝내 안이 될 수 없고, 안을 거부하고 “궁궐 문을 함부로 따고 나온 / 방탕한 무수리”(〈스란치마〉)가 부르는 바깥의 노래다. 안이 “종묘사직의 국가”를 떠받치는 남성 지배의 세상이라면, 바깥은 “구천을 떠돌던 귀신들” “벼락을 맞았던 볏짚인형” “허연 소복 차림으로 백지에 수절해온 과부”(〈스란치마〉)들로 이루어진 여성 세상이다.

안에서 바깥으로 뛰쳐나온 여성 화자가 만난 것은 그들이 세운 벽이다. 허혜정의 여성 화자는 그 벽에 부딪쳐 피를 흘리며 날개가 꺾인다. “악수도 모르고 멀어지던 거만한 그들” “뭔가 안 보이는 벽너머에서 / 내일이 있는 척 웃어대던 얼굴들” “흥나는 대로 지껄여대던 혀들” “알 수 없는 귓속말을 즐기는 그들”은 벽을 세우고, 그 안쪽에서 바깥을 식민지로 길들이고 지배한다.

그들은 유령이요, 나의 생명력과 열정을 빨아먹는 흡혈귀요, 삶을 공포로 밀어 넣는 에일리언이다. 허혜정의 시적 자아들은 그 적들과 싸운다.

그의 시들은 삶을 쥐고 조종하고 전제군주처럼 지배하려 드는 당신들, 내 밖의 모든 적들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모든 나들이를 취소하고 빗장을 걸어 잠그는 시간”(〈미인도〉) 속에서 숙성시킨 시들이다. 그의 화자들은 “나는 당신들의 필법을 배우려 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당신들의 필법을 거부함으로써 그들의 식민지가 되기를 거부한다. 그러므로 당당하게 “곰팡이가 퍼렇게 슨 족자 속에 표구되어서도 / 나는 누구의 계집이었던 적이 없다”(〈미인도〉)고 노래한다. 누구의 계집이 되기를 거부하는 여성 화자는 그들의 세상에서 격리되고 내쳐져 소외당한다.

그들이 만든 세상은 “종묘사직의 국가”(〈미니어처〉)다. “부패한 방언으로 가득한 대화에서 / 떨어져 나온 외로운 미치광이가 되어”라는 시구에 따르면, 그 격리와 소외는 불가피한 것이다. 그들의 세상에는 “부패한 방언”들로 가득 차 있다. 거기에 끼어들 수 없던 시의 화자는 미치광이로 떠돈다. 저 안쪽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굳게 잠가놓은 안쪽에서 그들이 / 어떤 세상을 세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구의 계집이 되는 것도 거부한 채 자발적 소외를 선택한 시의 화자는 세상 바깥을 떠돌 수밖에 없다. 외로운 미치광이의 삶은 “뽑혀나간 핸들을 움켜쥐고 / 악몽의 공회전에 갇혀 있”(<나, 더미>)는 삶이다. 그들은 “내 꿈을 안다고 재단”하지만, 그리하여 날마다 나의 사유와 웃음과 입술을 무엇이라고 규정하지만, 종묘사직, 굳게 잠가놓은 그 벽의 안쪽에 갇힌 그들이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성은 끝내 안이 될 수 없는 바깥이고, 외로운 미치광이고, 비천한 무수리고, 국가 없이도 정치적일 수 있는 아나키스트다. 여성은 “낯선 자가 아니라 / 낯설어지는 자”, 나쁜 덫에 걸려 “손가락을 자르고 꼬리를 자르고 뒤꿈치를 자”(<네 행을 쏴라>)르고 사라지는 자다. 허혜정의 시는 그 여성에 의한, 그 여성을 위한 울음이요, 비명이고, 노래다.


허혜정(1966~ )은 경상남도 산청에서 태어났다. 영국 낭만파 시인을 연구하는 영문학자였던 아버지의 서재에서 문학의 기초 교양을 키운 그는 오직 시를 쓰려고 동국대학 국문과에 진학한다.

그런 환경이 만든 조숙(早熟)으로 일찍이 스물한 살에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다. 

그 허혜정이 새 시집을 냈다. 첫 시집 《비속에도 나비가 오나》 이후 18년 만이다. 《적들을 위한 서정시》는 내내 우울하고 처절하고 어둡다. 빗장을 걸고 악몽을 견디며 쓴 시들.

“밤마다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며 / 나는 쓴다”(<만약 나의 삶이 나쁜 스토리라면>)고 하지 않는가! 동거인은 죽었기에 유령이고, 그가 죽었으므로 시의 화자는 미망인의 삶을 받아들인다. 산 자를 유령으로 만들고, 스스로를 미망인으로 만든 이 삶은 지옥의 삶이다. 미망인이라는 어휘 자체가 여자에 대한 모독이다. 모독을 삼킨 이 여자의 삶은 침묵이거나 비명, 공포이거나 개그다. 미망인의 자리에 서 있는 시의 화자에게서 비명은 주르르 쏟아진다. “나는 사망의 밤이요 / 죄악이요 / 시뻘건 달이요 / 폭풍우를 머금은 보랏빛 구름이요”(〈미망인으로 살기〉) 이것은 여성 삶의 안쪽에 각인된 트라우마의 흔적들이다. 《적들을 위한 서정시》는 그 절망과 비참과 모욕의 비망록이다.글쓴이 장석주님은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고, 같은 해 동아일보에 문학평론이 입선되어 시인과 문학평론가의 길을 함께 걸어온 사람이다. 그동안 《물은 천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붉디 붉은 호랑이》, 《절벽》 등의 시집을 내고, 《20세기 한국문학의 모험》(전 5권) 등 50여 권의 책을 냈다. 지금은 국악방송에서 생방송 <장석주의 문화사랑방>을 진행하고 있다. 





2009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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