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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Mar 11. 2020

27. 씨와 돌


씨와 돌


1


우연히 김씨돌 선생을 만났다


은유님의 인터뷰기사를 보았다


동영상들도 보았다 오랜만에


참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재활중 이었다


의인으로 살다가


자연인으로 살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발견된 사람


등산객에게 극적으로 발견된 사람


사람의 운명에 대하여 생각한다


뇌졸중에 대하여 다시 생각한다


그의 가족들을, 가족들을 생각하고


나의 앞날에 대하여 깊이 생각한다


그리고 코로나19와 페스트를 읽고


내가 쓸 수 있는 글에 대하여 생각한다


2


혼자 놀기의 달인인 나는 요즘


코로나 때문에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


하지만 면역력이 약한 나는 조심한다


심장병에 패혈증까지 앓아본 나는


늘 죽음에 대한 공포와 함께 산다


특히 금속판막으로 살아가는 나는


뇌출혈과 뇌졸중에 각별히 조심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코로나가 아니어도 평생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살아야만 한다


3


코로나가 잠잠해지더라도 우리들은 잊지 말자


마스크 사태와 신천지를 잊지 말아야만 한다


또한 전염병이 돌았을 때


중국과 미국의 대처 방법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잘 하고 있다


돌출 변수였던 신천지의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나마 잘 대처하고 있다


특히 달빛동맹 같은 성숙한 시민정신이 돋보인다


하지만 반성할 점도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 정부라는 말을 듣더나도


비상시에는 마스크 정도는 정부예산으로 사서


마스크 살 형편도 못 되는 사람들에게는


무료로 나누어 줄 수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신천지처럼 숨어서 은밀하게 진행하는 밀교


그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여 대처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4


시인의 월급은 얼마일까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직업 1위가 시인 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나는 등단 했던 날


시인의 월급은 월마나 된다냐


아주 먼 옛날 그런 시를 쓴 적이 있다


5


시인의 월급은 얼마나 된다냐


― 어머니, 시인의 월급은 가난입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길을 간다


두엄자리 곁에 세워진 아버지의


낡은 지게를 지고 저물녘을 간다


참깨 베러 가신 어머니의 산밭으로


늦은 마중을 간다 오랜만에


바람을 비껴 여름 한쪽 끝으로


산길을 오른다


노을이 차마 곱게 익는다


일찍부터 외항선을 탄 만수


뱃사람이 된 만수네가 새로 장만한


논을 바라보며 들길을 간다


일곱 번씩이나 떨어지고도 다시


행정고시공부를 시작했다는 현길이,


이미 기울어 버린 그 집에서


마지막으로 팔아넘긴 논배미를 지나


쓸쓸하게 걸어간다 새를 쫓는 깡통소리와


반짝이는 반짝이의 마음들이 노을 속으로


새를 날려보내며 또 내일을 염려하는 가슴을


가다듬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도 허수아비는


쓰러지지 않고 동그랗게 질린 비닐 얼굴들이


하늘까지 닿으려는 마음으로 솟아오르곤 했다


콩밭으로 바람이 기어들어가고 밤은


들쥐처럼 숨어들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어머니와 산길을 내려온다 가끔


고개 치켜드는 벼포기 사이로 추억들이


발소리를 숨죽이며 기어나왔다 나는 참깨를 지고


어머니는 토란대를 이고 오셨다 가슴조인


달빛이 풀어지고 우리는 하염없이 걸어 내려온다


― 어머니, 저 이제 시인이 되었어요


― 그래, 시인이 뭣허는 것이다냐


― 예, 지금까지 제가 되고 싶었던 것이예요


   밤낮을 밤으로만 지내면서 말이예요


― 그러냐, 그럼 이제 취직이 됐단 말이냐


― 아니예요 어머니 그런 것이 아니예요


― 그럼, 시인이 뭣하는 것인디 그러냐


   오랜만에 니가 웃기까지 하고 말이여


― 예, 앞으로 


   우리들의 고향을 노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노래? 그럼 인쟈 테레비에도 나온다냐


― 아니예요 어머니, 그런 게 아니예요


― 그라믄, 시인 한 달 월급이 월마나 된다냐


   먹고 살 만한 직업이다냐


   요즘 시상에는 돈이 최고드라


   봐라, 만수는 돈 있승께 다들 걱정허는


   장개도 쉽게 간다드라


   돈 많은 이쁜 색씨가 낼 모래 온다드라


― 어머니, 하지만 저는 그렇지를 못해요


   앞으로 어머니를 팔지도 몰라요


   앞으로 고향을 팔아먹을지도 몰라요  


   시인은 가난한 직업이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잖아요


   마음을 갈고 닦아 영혼을 맑게 하는 일이예요


   그래서 저는 더욱 시인이 되고 싶었어요


우리들의 이야기가 들판 가득 출렁일 때 달빛은 우리가 걸어온 들길을 따라오고 있었다 어머니, 저는 시가 무엇인지 모르는 어머니와 고향을 위하여 우리들의 생활을 팔아먹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땅의 눈물 같은 시 한편으로 살고 싶습니다





페스트 (La Peste)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공포와 죽음, 이별의 아픔 등 극한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의 인간 군상을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출간 한 달 만에 초판 2만 부가 매진되면서 2차 세계 대전 시기를 경험한 동시대인들에게 큰 공감을 얻어 냈다. 카뮈는 재앙에 대처하는 서로 다른 태도를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면서도, 생지옥으로 변해 가는 세계를 거부하며 진리의 길을 가는 인물들을 그려내 '무신론적 성자'로 칭송받기도 했다.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현실을 직시하며 의연히 운명과 대결하는 인간의 모습을 다룬 『페스트』는 20세기 프랑스 문학이 남긴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작품에서 무서운 전염병이 휩쓰는 가운데 고립되어 버린 도시에서는 재앙에 대응하는 이들의 각기 다른 모습들이 묘사된다. 첫째는, 이 도시의 이러한 사태가 ‘이 고장 사람이 아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확신하는 기자 랑베르의 ‘도피적’ 태도이다. 둘째는, 초월적인 존재에 기대어 해석하려는 파늘루 신부의 ‘초월적’ 태도이다. 마지막 세 번째 태도는 이 작품의 주요 주제인 ‘반항’이다. 토박이도 아니면서 마을에 머무는 미지의 인물 ‘타루’는 의사 리유를 찾아가 페스트와 싸우기 위해서는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보건대’를 조직해야 한다고 말한다. 리유는 타루에게 동의하고 페스트, 즉 질병과 죽음에 맞서 싸우며 “이미 창조되어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거부하며 투쟁함으로써 진리의 길을” 걸어가려 한다. 이러한 그들의 태도는 카뮈의 세계관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실상 『페스트』 착상의 기폭제가 된 것은 2차 세계 대전이라고 볼 수 있다. 카뮈는 자신의 ‘작가수첩’에 이렇게 기록했다. “전쟁이 터졌다. 어디에 전쟁이 있는가? (......) 전쟁이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전쟁의 혐오스러운 모습이 어디에 있느냐고 우리는 자문했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를, 우리가 마음속에 그것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작가수첩』 1권) 작품 속에는 페스트와 맞서 싸우다 죽어 간 사람들, 그에 맞서 싸워 이겨 낸 사람들, 희망과 기쁨 속에서 맛보는 고통과 절망이 골고루 들어 있다. 하지만 결국 작품은, 절망과 맞서는 길은 행복에 대한 의지임을 역설한다. 즉 현실이 아무리 잔혹하다 할지라도 희망을 놓지 않고 자신의 걸음을 이어나가는 것이야말로 이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진정한 ‘반항’이며 우리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것이다.


줄거리


조용한 해안 도시 오랑에서 언젠가부터 거리로 나와 비틀거리다 죽어 가는 쥐 떼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정부 당국이 페스트를 선포하고 도시를 봉쇄하자 무방비 도시는 대혼란에 빠진다. 의사로서 사명을 다하려는 리유와 부당한 죽음을 거부하려는 미지의 인물 타루, 우연히 오랑에 체류 중이던 신문기자 랑베르 등은 공포와 불의가 절정에 달한 도시에서 페스트에 맞서 싸우기 위해 노력한다. 한편 이 재앙을 신이 내린 형벌이라고 보고 신의 뜻에 따르자고 설교하는 신부 파늘루, 모두가 고통에 빠진 상황에서 오히려 세상에 소속감을 느끼는 코타르도 있다. 페스트는 쉽사리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보건대 사람들은 새로운 혈청의 실험 대상이었던 어린아이가 죽어 가는 모습을 고통스럽게 지켜본다.


작가 소개-알베르 카뮈


1913년 11월 7일 알제리의 몽도비에서 아홉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다. 포도 농장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전쟁에 징집되어 목숨을 잃은 뒤, 가정부로 일하는 어머니와 할머니 아래에서 가난하게 자란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재능을 키우다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대학에 갈 기회를 얻는다. 알제 대학 철학과 재학 시절, 생계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도 창작의 세계에 눈을 떠 가는데, 무엇보다 이 시기에 장 그르니에를 만나 그를 사상적 스승으로 여긴다.

1934년 장 그르니에의 권유로 공산당에도 가입하지만 내면적인 갈등을 겪다 탈퇴한다. 교수가 되려고 했으나 건강 문제로 교수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고, 진보 일간지에서 신문기자 일을 한다. 1942년에 『이방인』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에세이 『시지프 신화』, 희곡 「칼리굴라」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다. 1947년에는 칠 년여를 매달린 끝에 탈고한 『페스트』를 출간하는데, 이 작품은 즉각적인 선풍을 일으키고 카뮈는 ‘비평가상’을 수상한다. 마흔네 살의 젊은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지만, 그로부터 삼 년 후인 1960년 1월 4일 미셸 갈리마르와 함게 파리로 떠나다가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역자 소개-김화영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문학 상상력의 연구』, 『행복의 충격』,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알제리 기행』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미셸 투르니에, 파트릭 모디아노, 로제 그르니에, 르 클레지오 등의 작품들과 『알베르 카뮈 전집』, 『섬』, 『마담 보바리』, 『지상의 양식』, 『다다를 수 없는 나라』,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를 비롯해 다수가 있다.                                      



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22) 배한봉 <육탁(肉鐸)>

바닥을 치는 힘으로 살아내기

글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새벽 어판장 어선에서 막 쏟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
육탁(肉鐸) 같다
더 이상 칠 것이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나도 한때 바닥을 친 뒤 바닥보다 더 깊고 어둔 바닥을 만난 적이 있다
육탁을 치는 힘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바닥 치면서 알았다
도다리 광어 우럭들도 바다가 다 제 세상이었던 때 있었을 것이다
내가 무덤 속 같은 검은 비닐봉지의 입을 열자
고기 눈 속으로 어판장 알전구 빛이 심해처럼 캄캄하게 스며들었다
아직도 바다 냄새 싱싱한,
공포 앞에서도 아니 죽어서도 닫을 수 없는 작고 둥근 창문
늘 열려 있어서 눈물 고일 시간도 없었으리라
고이지 못한 그 시간들이 염분을 풀어 바닷물을 저토록 짜게 만들었으리라
누군가를 오래 기다린 사람의 집 창문도 저렇게 늘 열려서 불빛을 흘릴 것이다
지하도에서 역 대합실에서 칠 바닥도 없이 하얗게 소금에 절이는 악몽을 꾸다 잠깬
그의 작고 둥근 창문도 소금보다 눈부신 그 불빛 그리워할 것이다
집에 도착하면 캄캄한 방문을 열고
나보다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부터 마중할 새끼들 같은, 새끼들 눈빛 같은





새벽 어판장 바닥에 막 쏟아 낸 고기들은 살아서 파닥거린다. 시인은 그것을 “육탁”이라고 말한다.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는 것은 삶의 어떤 계기에서 얻은 시인 자신의 깨달음이다. 바닥을 친다는 것은 생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진 상황을 가리킨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피투적(被投的) 기투(企投), 즉 세계에 내동댕이쳐짐이 바로 그것이다. 바다에서 포획된 생선들에게 어판장 바닥은 그야말로 낯선 세계다. 생존의 영도(零度), 즉 바닥이다. 바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한 추락도 있다. 바닥을 치고 난 뒤의 바닥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현실에서는 드물지 않은 일이다. 육탁은 온몸으로 바닥을 쳐서 제 살아 있음을 알리는 일이고, 다시 일어서기 위한 몸짓이다. 그렇게 힘껏 바닥을 치다 보면 온몸은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눈물이 나는 은유다.

이 시의 화자는 고달픈 아버지-가장이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이다”(김현승 〈아버지의 마음〉)할 때의 그 아버지-가장이다. 그에게는 집에 가면 까만 눈빛을 반짝이며 달려들 새끼들이 있다. 삶은 온몸으로 바닥을 치는 생선만큼이나 고달픈 것이지만 아울러 목탁을 치는 수행자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숭고한 수행이다. “육탁을 치는 힘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은 뒤늦은 깨달음이다. 시인은 어판장 바닥을 온몸으로 치고 있는 생선의 눈에 비친 알전구의 불빛을 주목한다. 절망과 공포속에서도 끝내 닫을 수 없는 그 눈! 그 눈이 흘리는 것은 눈물이 아니라 불빛이다. 시인은 생선의 눈이 흘리는 불빛과 “누군가를 오래 기다린 사람의 집 창문”의 불빛을 겹친다.

살아 냄의 몫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닐 때 절망은 현실로 닥친다. 그러나 모든 걸 도도하게 휩쓸고 지나가는 절망의 탁류를 희망의 동력으로 바꿀 줄 아는 게 사람의 지혜다. 무제의 노여움을 사 궁형을 당한 사마천은 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 마음에 맺힌 울분과 절망을 풀어 《사기열전》을 끝냈다. 거렁뱅이 꼴로 떠돌던 한신을 한 젊은이가 여러 사람 앞에서 겁쟁이일 거라고 모욕했다. “네 놈이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나를 찌르고, 죽음을 두려워하면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 나가라”고 했을 때 한신은 울분과 모욕감을 숨기고 묵묵히 몸을 구부려 젊은이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갔다. 나중에 한신은 한나라의 군대를 다스리는 최고 장수가 되었다. 비록 현실이 그들을 모욕했지만 사마천이나 한신은 가슴에 푸른 별을 품고 참았다.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일과 이거니…”(신석정 <들길에 서서>) 집 밖에 나온 모든 존재는 온몸으로 수고와 노동을 감당하는 자다. 뼈가 휘는 수고와 노동을 감당하는 삶을 내 능력과 의지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더 큰 힘이 짓누를 때 절망은 낮아져서 바닥이 된다. 온몸으로 바닥을 치는 생선들은 “지하도에서 역 대합실에서 칠 바닥도 없이” 누운 노숙자들로 바뀐다. “하얗게 소금에 절이는 악몽을 꾸다” 한밤중에 눈을 뜰 때도 있을 것이다. 눈 뜨면 제가 누워 있는 지하도의 차가운 바닥을 보게 될 것이다. 그래도 살아 봐야 한다. 물은 백도가 넘어 끓어오른다. 끓는 물만이 주전자 뚜껑을 들어 올린다. 새도 깃털이 자라지 않으면 높이 날 수 없고, 절망도 극한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 뚜껑을 밀어 올리지 못한다. 배한봉의 〈육탁〉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시다. 어쩌면 우리는 흰 것을 검다 하고, 위를 거꾸로 아래라고 모욕하는 세상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봉황은 새장에 갇혔는데, 닭과 꿩은 하늘을 훨훨 날며 노닌다. 그래도 우리의 살아 있음은 그 자체로 바닥을 온몸으로 치며 치열하게 살아 내야 할 이유다.



배한봉(1962~ )은 경상남도 함안 사람이다. 1998년 시 전문지 <현대시>로 등단했다. 그동안 《흑조(黑鳥)》(1998), 《우포늪 왁새》(2002), 《악기점》(2004), 《잠을 두드리는 물의 노래》(2006) 등 네 권의 시집을 냈다. “득음은 못하고, 그저 시골장이나 떠돌던 / 소리꾼이 있었다, 신명 한가락에 / 막걸리 한 사발이면 그만이던 흰 두루마기의 그 사내”의 소리에 우포늪 왁새의 울음 완창을 겹쳐 내던 (〈우포늪 왁새〉) 이 우포늪의 시인이 《악기점》에 와서는 과수원지기로 변신한다. 과수원에서 삶과 노동을 하나로 겹쳐 보는 가운데 자연 생명을 지배하는 원리를 깨달았다면 과수원은 수행자의 청정도량이었을 터다. “그 주렁주렁 열린 열매 아까워 / 제대로 솎지 못했다네 / 한 해 실농(失農)하고서야 솎는 일이 / 버리는 일이 아니라 과정이란 걸 알았네”(〈복숭아를 솎으며〉)에서 볼 수 있듯 열매를 솎아 주며 버리는 일의 어려움을 깨닫고, “제 몸 불볕에 내맡기면서도/넓은 그늘”(〈나무는 스스로 그늘이다〉)을 만드는 나무에게서 “늙은 수도승”(〈나무의 혀〉)의 모습을 본다. 시인은 농업 노동의 두터운 깊이 속에서 땅과 나무와 사람이 생명의 범주 안에서 하나라는 사실을 깨우치고, 그런 바탕 위에서 자연과 생명을 두루 감싸는 상상력은 발효되었을 텐데, 그 농경적 상상력이 그를 우리 ‘생태시’의 전위로 우뚝 서도록 밀어 올렸을 것이다.



글쓴이 장석주님은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고, 같은 해 동아일보에 문학평론이 입선되어 시인과 문학평론가의 길을 함께 걸어온 사람이다. 그동안 《물은 천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붉디 붉은 호랑이》, 《절벽》 등의 시집을 내고, 《20세기 한국문학의 모험》(전 5권) 등 50여 권의 책을 냈다. 지금은 국악방송에서 생방송 <장석주의 문화사랑방>을 진행하고 있다

200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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