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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Sep 20. 2023

12. 아침부터 속이 터진다

==== 1~12




12. 아침부터 속이 터진다




이어도서천꽃밭 입구에 꿈순이와 꿈돌이가 있다

나는 아직도 함께 자는 애완견으로 키우지 못하고 

집을 지켜주는 문지기로 키우고 있다 개는 개처럼,

조금만 더 자라면 둘을 결혼시켜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요즘 꿈순이 마음이 뒤숭숭한가, 수상하다

언제부터인가 불한당 같은 견공 한 마리

자꾸만 밤낮으로 꿈순이 곁을 맴돌기 시작한다

오늘은 새벽부터 꿈순이를 범하려는 게 아닌가

아이고 이러다 큰 일 나겠다 안 되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꿈순이와 꿈돌이를 결혼시키기로 한다

꿈돌이 목줄을 풀어 꿈순이 방에서 합방을 시킨다

오랫동안 서로를 지켜보았던 둘은

금방 몸이 달아올라 합방에 성공을 한다

나는 결혼사진이라도 찍어두려고

심재산방 원두막으로 휴대폰을 가지러 간다

그러나 아, 그 짧은 사이에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불한당이 쳐들어와 맹렬하게 짖어대는 바람에

꿈돌이와 꿈순이의 사랑의 고리는 빠지고 말았다

꿈돌이의 경험 부족으로, 너무나 서툰 사랑으로

사랑하는 마음의 고리가 너무 헐거웠던 것이리라

아, 한반도의 가엾은 운명처럼, 근친상간처럼

한 번 사랑에 실패한 꿈돌이는

더 이상 사랑에는 관심이 없이 거드름만 피웠다

꿈순이가 다시 사랑의 불씨를 살려보려 했지만 

허사였다 한 번 식어버린 사랑은 깜깜해졌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은 안 되겠다 싶어서

꿈돌이를 다시 개줄에 묶고 방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꿈돌이의 다급하고 슬픈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짧은 순간에

불한당이 맹렬하게 쳐들어와 꿈순이를 범하고 말았다

아마도 그 불한당은 경험이 많았으리라

꿈돌이가 아무리 짖고 난리부르스를 춰도 강력한 힘으로

한 번 불륜으로 결합된 사랑의 고리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지켜보던 분꽃들도 고개를 돌리고 태양만 바라보고 있었다







1. 어느 시인의 눈썹달과 별 하나



발전소에서 야간근무 하면서

두 시인을 만났다

별빛을 만들면서 시인을 만났다

만났다기보다는 보고 들었다

대구문학관에서 문학, 꽃피다

뒤늦게 유튜브로 만나, 보았다

문태준 시인과 김민정 시인을

연속해서 듣고 보았다

그런데 아, 김민정 시인이

그만 느닷없이

가슴속에 들어앉고 말았다

얼핏 잠이 들었는데

꿈속까지 따라서 들어오고 말았다

꿈인 듯 생시인 듯 아침은 오고

발전소의 하늘에 달이 떠 있다

시인의 눈썹 한쪽이 걸려 있다

벌써 아침인데 반도 가지 못했다

이제 막 월라봉을 벗어나

산방산까지는 아직도 멀었다

바다의 방에도

산의 방에도 가려면  서둘러야만 하겠다

화순항에는 아침에도 등대불빛이 반짝이고

눈썹달 오른쪽 아래에는 별 하나 깜박인다



2. 모르는 당신에게 나는 간다



나는 김민정 시인을 모른다

김민정 시인은 문학동네시인선 총괄 편집자라고 한다

또한 난다 출판사 대표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책 출판에 대한 열정과 능력이 빛나는 누나 같다

아, 우리나라 문학동네는 이렇게 굴러가는구나

자신의 건강도 돌보지 못하면서 시인들을 뒷바라지하는구나

참으로 존경스러운 마당발이 우리 문학을 살찌게 하는구나

나도 이제 그에게로 가고 싶다

나도 이제 문학동네에 가서 아름다운 시인이 되고 싶다

나는 이제 겨우 우리들의 문학동네를 읽는다

나는 이제 겨우 김민정 시인을 거꾸로 읽는다

이어도서천꽃밭에서 김민정 시인의 시를 읽는다

창문 밖으로 호박과 호박잎이 보인다

올해는 호박을 많이 심지 못했다

올해는 호박잎을 너무 많이 먹어서

호박이 많이 열리지 않았다

열린 애기 호박도 잎을 잃고 울면서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내년에는 호박을 더욱 잘 심어서 호박잎을 많이 먹어도

호박이 잘 열리고 더욱 잘 자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

그의 최근의 시집을 읽고 쪽파를 심는다

대가 끊겼다며 아들 타령을 하는 조선시대를 생각하며 씨를 심는다

방치해 둔 쪽파에서 싹이 돋아나서 나도 샤프란 옆에 심는다

숨어있던 꽃무릇 옆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처럼 파를 심는다 



3. 책 만드는 여자



책 만드는 여자 김민정 시인이 아름답다

그가 인스타그램을 한다기에 나도 가입했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난다 출판사의 홈페이지처럼 운영되는 듯

세상은 바뀌고 윤전기도 바뀌고 있는 듯

대형 인쇄기가 막 토해놓은 원판을 본다

따뜻한 종이에 들어앉은 글자와 그림을 본다

종이에 숨결을 불어넣는 시인이 아름답다

나무의 죽음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아름답다

죽은 나무에 버섯의 종균이라도 심는 듯

돋보기를 들이대고 살펴보는 눈빛이 아름답다


<잘 줄은 알고 할 줄을 모르는 어떤 여자에 이르러>

를 한 번 더 읽고 그녀의 산문집을 읽는다

폴란드의 화가 빌헬름 사스날의
담배 피우는 소녀(앙카) 그림이

잘 어울린다 <<각설하고,>>

화가는 아내의 그림을 그렸다는데

김민정 시인의 인상과 잘 어울린다

어쩌면 이 그림을 보고

머리 스타일을 맞춘 것처럼 닮았다

김민정 시인이 담배를 피우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인쇄된 원본을 감리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버섯에 대하여 생각한다

섯은 음지에서 잘 산다

버섯은 그늘을 먹고 산다

버섯은 죽음을 먹고 산다

내 몸에도 내 마음속에도

버섯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나의 죽음은 어떤 버섯을 키울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버섯들을 보면서 이름을 불러본다


양송이, 느타리버섯, 표고, 먹물버섯, 광대버섯, 무당버섯, 치마버섯, 환각성 버섯, 그물버섯,  영지버섯류, 말굽버섯류, 구름버섯류, 구멍장이 버섯, 싸리버섯, 말징버섯, 말불버섯, 방귀버섯, 말뚝버섯, 망태버섯, 찻잔버섯, 붉은알버섯, 목이목, 붉은목이류, 흰목이류,  곰보버섯, 덩이버섯, 들주발버섯, 털작은입술잔버섯, 안장버섯, 느타리, 표고, 팽이, 노루궁뎅이, 잎새버섯, 송이, 덩이버섯, 곰보버섯, 복령, 영지, 상황버섯, 동충하초, 운지버섯, 독우산광대버섯, 알광대버섯, 마귀광대버섯, 광대버섯, 흰땀버섯, 삿갓땀버섯.....,



4. 나도 이제 책을 만들기 시작한다



책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편집자를 잘 만나야만 한다

편집자를 잘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원고가 좋아야 한다

좋은 원고를 쓰기 위해서는 의미 있는 기획이 있어야 한다

의미 있는 기획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신을 잘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생활을 단순화해야만 한다

생활을 단순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한다

어떤 것들을 포기하고 어떤 것들에 집중할 것인가 결정해야만 한다 


나도 이제 책을 만들기 시작한다 좋은 책을 만들려면,


좋은 책을 만들려면 좋은 편집자를 만나야 한다

좋은 편집자를 만나려면 좋은 글을 써야만 한다

좋은 글을 쓰려면 의미 있는 생각을 해야만 한다

의미 있는 생각을 하려면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

의미 있게 살려면 깊은 명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깊은 명상을 하려면 많은 것들을 버려야만 한다

버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수양을 해야만 한다

수양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깊이 보아야 한다

자신을 깊이 보기 위해서는 진실이 배어야 한다

진실하게 살기 위해서는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솔직하게 말을 하기 위해서는 욕심 버려야 한다

욕심을 버리기 위해서는 하늘을 자주 봐야 한다

하늘을 보기 위해서는 부끄럽지 않아야만 한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하늘이 되어야만 한다

좋은 책을 만들려면 늘 푸른 하늘이 되어야 한다


이어도서천꽃밭에서 마라도와 형제섬을 본다 바다와 산방산을 보면서 무화괴나무 꺾꽂이를 한다 무궁화꽃과 칸나꽃이 한창인데, 봄도 아닌데 꺾꽂이를 한다 분꽃이 여러 가지 색으로 피어나는 가을인데 꺾꽂이를 한다 너무 무성하게 자란 무화과나무 가지를 잘라주면서, 줄기에 뿌리가 난 가지 몇 개를 잘라서 화분에 심는다 무화과나무 가지는 땅에 닿으면 그 가지에 뿌리가 나와 새로운 나무가 된다 이런 번식 방법을 휘묻이라고 하는데 봄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가을에 옮겨서 심는다 이제 살고 죽는 일은 하늘에 달려있다 나는 다만 살아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일만 남았다 나는 이렇게 철이 따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 좋은 책을 만들어야만 한다



5. 나는 어떤 책을 먼저 만들까



시집은 일반 사람들이 잘 읽지 않는다

시가 너무 어려워져서 그런 것도 있다

요즘에는 시인들과 평론가들만 읽는다

물론 몇몇 시인들의 시집은 잘 읽는다

그렇다고 그 시인들처럼 쓰고 싶지 않다

또한 아직은 본격적으로 산문도 아니다

어쩌면 산문으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

바로 그 준비단계일수도 있으리라

형식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나만의 형식을 찾아서 써볼 생각이다

나의 꿈과 나의 삶과 나의 글에 대하여

쓸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글을

<꿈삶글>이라고 진작부터 명명하였다

앞으로 내가 쓰는 <꿈삶글>을

독자 여러분들은 자유롭게 읽으면 된다

시로 읽어도 좋고 산문으로 읽어도 좋다

내가 나를 위하여 자유롭게 쓰듯이

독자 여러분은 자신을 위하여 읽으면 된다

문제는 책 속에 담길 내용이 더욱 중요하다

어떤 내용의 마음을 담아서 책을 만들까

우선 세상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하자

나를 먼저 소개하고 본격적으로 쓰자

그것이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듯

어떤 경로를 통하여 책이 만들어지는지,

어떤 인연으로 세상으로 나올 수 있을지,

작가와 편집자는 어떻게 협력을 하는지,

세상에 나온 책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 아직은 확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도 아직은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모른다

다만,

이번에 낼 책은 소통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

그러려면 좀 쉽게 써야만 하겠다는 큰 다짐,

읽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소망,

내가 쓰는 글들은 먼저 나 자신을 위해서 쓴다

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반성하고 계획한다

그런 나의 모습과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시는

독자 여러분들도 자신의 거울을 볼 수 있기를,

그리하여 우리들이 함께 사는 우리들의 세상이

좀 더 의미 있고 좀 더 아름다워질 수 있기를,

이런 생각을 하는데 포도잎이 사라지고 없다

이번이 몇 번째인가, 자라면 없어지는 포도잎

다시 기운을 차리고 겨우 또다시 새 잎을 내는,

한 번 더 생각하니 너무 그늘에 심은 것 같아서

햇빛을 좀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옮긴다 



포도잎을 좋아하는 벌레를 찾아라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잘 자라지 못한다

포도잎이 피어서 햇빛을 먹고 자라려고 하는데

번번이 어느 날 밤에 기습하여 포도잎을 먹는다

아침에 찾아가서 살펴보면 벌써 내빼고 없다

나에게 잡히기만 해 봐라 가만 두지 않겠다

아, 그러나 어쩌랴

포도 잎이 많지 않아서

나처럼 먹을 것이 하나도 없어서

그놈도 지금쯤 쫄쫄 굶어서 침대에 누워 있으리라


어쩌면 이번에 만들 책은 포도 같은

아니 포도잎 같은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마도 햇빛을 가슴 가득 담아놓은 포도가 달듯이

포도잎도 빛나는 햇빛을 가득 품고 있어서 좋아하는 듯


줄박각시나방벌레 한 마리 오늘도 꿈을 꾸기 시작한다



6. 문태준 시인을 만나 핑크뮬리로 피었다



안덕산방도서관에서 문태준 시인을 만났다

<생명 세계와 나의 시>라는 강의를 하였다

애월에서 살면서 느낀 것들을 주로 말했다

시인 자신의 손바닥만 한 수첩을 보여주었다

시어 모집 수첩을 보여주었다 시인의 재산,

또한 한 번 쓰면 거의 고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퇴고 없는 시 쓰기에 대하여 다시 생각한다

그만큼 쓰기 전에 오래도록 익혀서 쓴다는,


시어 수집 수첩, 시간 저장 수첩, 기억 저장소


시에 묻혀 사는 삶

시에 젖어 사는 삶

시에 피어 사는 삶

시가 되어 사는 삶


나의 뒤통수를 꽝, 때리는 망치가 있다


여름방학 때 70권의 시집을 집중적으로 읽고 

시의 눈을 뜨게 되었다는 시의 새싹

선배 박정대 시인이 자신의 시를 태웠다는 죽비 

군대에서 시를 읽기 위하여 몰래 가져간 시집,

시집을 분해하여 낱장으로 온몸에 숨겨갔다는,

이성복 시인의 시집 <그 여름의 끝>은 흙탕물에,


그리고 육조 혜능 선사의 게송이 자신을

불교방송에 입사를 하게 만들었고 불교와의 인연,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가 없네.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니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있으리오." 


"마음은 보리의 나무요 몸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라 밝은 거울은 본래 깨끗하거니 어느 곳이 티끌과 먼지에 물들리오."


아, 나는 운명적인 문태준 시인을 만나고 핑크뮬리로 피었다

가까운 마노르블랑 카페로 가서 가을 바다를 보며 하늘이 되었다



7. 이어도에서 외도로 외도에서 애월로

― 문태준 시인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 오롬마르



이어도에서 외도로 흘러서 왔다

이어주지 못하고 혼자가 되었다

외도에서 애월의 오롬마르 간다

문태준 시인 보려고 찾아서 간다

참으로 부지런한 사람에게 간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니,

외도에서 장전리는 십오 분 지척

걸어서 간다면 한 시간 사십 분,

오늘은 비가 오락가락 바퀴로 간다

외도에서 외도를 찾아서 애월 간다

내도로 다니던 발길이 장전리 간다

제주시 애월읍 장전리 110-5번지

주차장 화살표 따라가면 언덕이다

낮은 언덕 위에 오롬마르 숨어있다

우산을 쓰고 넓은 잔디밭을 지나서

옥상으로 올라간다 풀향이 뒤따른다

내가 좋아하는 옥상이 여기도 환하다

바다 건너 섬인지 남해안인지 보인다

애월 중산간 옥상에서 너머가 보인다

자갈  깔린 옥상에서 파도소리 들린다

바깥 먼저 둘러보고 안으로 들어간다

깊은 곳까지 참 많은 사람들 찾아왔다

여기서 태어났다는 미인에게 묻는다

문태준 시인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주말에만 있다는 시인은 낮잠을 잔단다

조금 전까지 잔디를 깎고 잠이 들었단다

카페 아래 살림집에서 꿈꾸고 있단다

옥상까지 따라갔던 풀향이 땀이었구나

시인은 주말에도 저렇게 부지런하구나

나는 시인의 책과 풀향기 입고 돌아온다



8. 나도 이제부터 시인으로 산다

― 다시 시인으로 살기 위하여 나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나는 너무 이어도에서만 갇혀 살았다

누가 나를 이어도에 가두었던 것일까

왜 나는 스스로 이어도가 되었던 것일까

왜 나는 사랑을 잃고 시인을 포기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길은 시인의 길이다

그래, 이제 다시 시인의 길로 돌아서 가자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에움길로 가자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무릎이 깨져도

내가 가야만 할 나의 길을 회피하지 말자

당당하게 출사표를 다시 한번 던지고 

나는 다시 이제부터 시인으로 산다

나는 이제 끝까지 시인으로 살고 싶다

시는 사랑이 없으면 쓸 수 없다

나는 이제 끝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랑하자

세상이 아무리 나를 속일지라도

나는 끝까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자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

다른 시인들은 저렇게 많은 상을 받았는데

나는 지금껏 밥상이나 받으며 살았구나

오랜만에 외도 거실에서 시인을 본다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어주니

외도에도 도시가스가 들어온다고

보일러와 계량기를 바꾸고 돌아간다

가스레인지는 인덕션으로 바꾼 지 오래전,

가스레인지 바꾸러 온 사람을 돌려보내고

인덕션을 보며 생각한다 아,

그동안 내가 만든 전기가 밥상을 차렸구나

오늘은 발전소 동료들 생각하며 불을 켠다

지금껏 받아먹기만 했던 밥상을 차려본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상은 밥상이었구나



9. 서쪽에서 서쪽으로



곽재구 시인을 보다가 늦은 밤 산책을 나간다

월대천 징검다리에서 휴대폰을 잃었다는 사람

밀려오는 파도를 들여다보는 눈빛이 간절하다

물고기는 누구에게 소식 전하려고 가져갔을까


내도 알작지 산책길에 뒤뚱뒤뚱 흰 곰 한 마리

흰 양 한 마리 걸어간다 가까이 가서 보니 개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썰매를 끄는 사모예드 란다

썰매를 끌던 개가 어찌하여 저렇게 끌려가는가


나는 어찌하여 썰매를 끌지 못하고 끌려가는가


시인의 사평역을 생각하며 포구로 간다

이호테우해수욕장 곁에 있는 포구에서

배에 불을 켜놓고 긴 줄을 바닥에서 감는다

삼베 실에 풀을 먹이려고 길게 펼쳐놓듯이

방파제 끝에서 끝으로 왔다 갔다 하며 감는다

배의 주인인 듯 한 부부와 딸이 밤을 가다듬는다


어디에 쓰는 줄이냐고 물으니 낙하산줄이란다


나는 이호포구와 해수욕장 사이에 있는

테우에 앉아서 휴대폰 메모장에 받아 적는다

반짝이는 등대 불빛과 수평선 불빛과

방파제 보안등 불빛과 함께 바다새 소리를 적는다


내 가슴속 해변의 모래밭을 파도가 적신다

토란꽃이 피고 고구마꽃이 피는 계절에

파도가 조용히 와서 물결무늬를 새기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서쪽에서 서쪽으로 간다


와온포구에서 갯벌에 번지는 노을이 나에게 온다



10.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나만의 글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나만의 글을 쓰기 시작한다

오직 나만이 쓸 수 있는 나만의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어도서천꽃밭에서 피는 꽃부터 호명하기 시작한다



11. 시를 쓰고 시를 발표해야 시인이다



시인은 합격증도 아니고 자격증도 아니다

시인은 시를 쓰고 시를 발표해야만 시인이다

나도 이제는 다시 시인으로 살기 시작한다

물론, 아직은 시인으로 사는 시간이 많지 않다

시인도 생활인이므로 생존과 꿈을 겸해야 한다

아직은 시만 쓰고는 살 수 없으므로 함께 한다

다만, 시인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많아지기를,

그리고 종내에는 오직 시만 쓸 수 있기를....,


하지만 나는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쉬었다

아니, 처음부터 문단활동을 시작하지도 못했다

그리하여 나는 아직 발표할 곳이 많지 않다

발표보다는 우선 새롭고 참신한 작품을 써야 한다

나는 바닥부터 새로 시작할 각오가 되어 있다

기회가 된다면 어디라도 발표를 시작할 것이다

아직은 인적 네트워크가 아주 미약한 상태에 있다

하지만 서두르지는 않을 작정이다 멀리, 오래,

시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천천히 가야 한다


이번에 시산맥사 대표 문정영 시인의 권유로

월간 모던포엠 10월호에 신작 시 2편 발표한다

아마 지금쯤 인쇄가 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아직 모던포엠을 잘 모른다 인연을 믿는다



가을 저녁



추석(秋夕), 가을 저녁이 참 좋다

가을 저녁이란 말이 참 좋다

내가 아마

가을 저녁쯤 되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가을의 한가운데란 말보다

8월의 한가운데란 말보다

나는 왜 가을 저녁을 더 좋아하는 것일까

나는 어쩌면

가위를 무서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위라는 말을 무서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들의 머리를 자르는 전단가위

우리들의 머리카락 자르는 이발가위

애끓는 마음까지 잘라버린 인연가위

배 속에 넣은 채로 봉합해 버린 수술가위

천의 피부를 싹둑, 싹둑 자르고

인연의 실을 뚝, 뚝 끊어버리는 바느질가위

붉은 피 똑똑똑 흘리며 사지를 절단하는 부엌가위

마늘 모가지 따는 농업가위, 공업가위, 어업가위

아, 담벼락에서 거시기를 노리던 그 큰 거시기 가위

사마천의 거시기까지 잘라버린 그 크고 무서운 가위

그리하여 나는 아직도 한가위보다 추석이란 말이 좋다

가을밤 보름달 속에서 큰 가위 하나 보인다

가을 저녁을 가위질하며 큰 보름달 하나 하늘을 가른다



숲에서 길을 찾다



소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칡과 등나무가

서로를 미워하며 키만 키우고 있었다


소나무는 목숨에 대하여 말해 주었으나

가슴속으로 흐르는 물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소나무는 길을 알려주려고 숲과 숲을 이어주는

외나무다리가 되었다


뒤늦게 칡과 등나무는 서로의 강을 보았고

소나무가 말해주는 아름다운 길을 보았다


다투어 하늘로만 향하는 길을 틀어 강을 건넌다는 것은, 낭떠러지의 아득함과 절벽의 막막함으로 가는 길, 그래도 가야만 하는 우리들의 길


칡과 등나무는 외나무다리를 부여잡고 돌고 돌아

으르렁거리는 물살 위에서 겨우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서로에게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으나

칡과 등나무는 서로를 안으면서 길이 되었다


먼 훗날 소나무 다리가 먼 길 떠난 뒤에도

칡과 등나무는 든든한 서로의 다리가 되리라


갈등(葛藤)의 다리가 강을 건너고 있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



서른 살까지 사는 것이 꿈이었다 왼쪽 가슴이 아팠다 남몰래 가슴을 안고 쓰러지는 들풀이었다 내려다보는 별들의 눈빛도 함께 붉어졌다 어머니는 보름달을 이고 징검다리 건너오셨고, 아버지는 평생 구들장만 짊어지셨다 달맞이꽃을 따라 가출을 하였다 선천성 심장병은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나의 비밀은 첫 시집이 나오고서야 들통이 났다 사랑하면 죽는다는 비후성 심근증, 심장병과 30년 만에 이별을 하였으나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바다는 나를 이어도까지 실어다 주었다 30년 넘게 섬에서 이어도가 되어 홀로 깊이 살았다 나는 이제 겨우 돌아왔다 섬에서 꿈꾼 것들을 풀어놓는다 꿈속의 삶을 이 지상으로 옮겨놓는다 나에게는 꿈도 삶이고 삶도 꿈이다 <꿈삶글>은 하나다 덤으로 사는 인생 하나 너에게로 간다 서귀포에서 서귀포로 살며 너에게 나를 보낸다 서귀포와 함께 너에게 보낸다    



고구마꽃



고구마꽃이 피었다

고구마꽃이 젖을 물리고 있다

꼬리박각시나방이 젖을 빨고 있다

고구마가 땅 속에서 젖을 준다

땅 속에서 어머니는

아직도 나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토란꽃



꽃이 피지 않는다고 슬퍼하지 마라

조금만 더 뜨거워지면 꽃은 피리라

웃음 없다고 토란토란 토라지지 않고

오늘도 나마스테 나마스테 인사한다


* 나마스테 : “당신의 영혼에 경의를 표합니다” 인도의 인사말



마늘꽃



사람들은 당신이

꽃으로 피기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마늘이

꽃으로 필까 봐서

마늘종 목을 친다


나는 마늘보다

마늘꽃이 더 좋다

나는 늘 기다린다


당신이 활짝 피어야

나는 더욱 환해진다

나의 사랑은 그렇다


우리들의 사랑은

그래야만 하리라

마늘꽃이 환하다



꽃농사와 나비농사



나는 작물농사보다 꽃농사가 더 좋다

나의 꽃농사는 나비와 나방농사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나의 텃밭 이름이 서천꽃밭이다

감자와 파와 마늘을 심으려고 준비한다

나는 게으른 농부라서 수확에는 소질이 없다

구석에 있던 쪽파를 준비하고

꽃이 지고 한참이 지났는데 

이제 겨우 땅을 파서 코끼리 마늘을 찾는다

코끼리 마늘은 새끼 마늘들도 함께 있다

나는 아직 심지도 않았는데 벌써 꽃을 상상한다

벌과 나비와 나방들을 생각한다

어리호박벌과 배짧은꽃등에를 생각한다

가중나무산누에나방과 어스랭이나방을 생각한다

노랑애기나방과 흰띠알락나방을 생각한다

제주등줄박각시와 노랑줄박각시를 생각한다

왕자팔랑나비와 제주꼬마팔랑나비를 생각한다

청띠제비나비와 제비나비를 생각한다

갈구리나비와 줄흰나비를 생각한다

작은주홍부전나비와 바둑돌부전나비를 생각한다

왕나비와 암끝검은표범나비를 생각한다

암검은표범나비와 홍점알락나비를 생각한다

남색남방공작나비와 가락지나비를 생각한다

산굴뚝나비와 호랑나비를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호박꽃이 환하게 웃는다 

웃는 꽃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호박잎을 뜯는다

호박잎과 들깻잎으로 아침을 싸서 먹을 예정이다

나처럼 느린 민달팽이가 아침을 먹으려고 상을 차린다



감귤꽃 속에서 탱자가 보인다



감귤 꽃들이 환하게 피었다

감귤꽃 속에 너와 내가 있다

꽃 속에 글쎄 너와 내가 있다

우리는 저렇게 함께 살았구나

우리는 저렇게 한 식구였구나

감귤꽃 속에서 감귤이 보인다

감귤꽃 속에서 탱자가 보인다

탱자와 감귤이 한 집에 살았구나

너와 나는 처음부터 한 식구였구나

그래서 향기가 저렇게 가득했구나

우리들의 사랑은 천년을 살겠구나

우리들의 향기는 하늘로 가는구나



강아지 배추 뜯어먹는 소리



사람들은 가끔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강아지가 배추를 뜯어먹는 소리가 좋다. 내가 밭에서 일을 하면 강아지는 열심히 배추를 뜯어먹고 풀도 뜯어먹는다. 때로는 꽃밭에서 놀다가 꽃에 콧구멍을 들이대고 향기에 취하기도 한다. 또한 예쁜 꽃을 입으로 따서 다른 강아지에게 건네주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소나무재선충 때문에 소나무가 많이 죽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속으로 웃기도 한다. 주로 산의 주인들이 많이 웃는다. 뿐만 아니라 겨우 남아 있는 멀쩡한 소나무까지 마구 베어낸다. 알고 보니 산에 소나무가 없으면 밭으로 개간하기가 쉽다고 한다. 소나무가 많은 숲은 밭으로 만들기도 어렵고 주택지로 용도를 변경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땅값을 올리기 위해서는 산에 소나무가 없어져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달리 비싼 밭에 소나무를 심는다. 비싼 밭을 싼 숲으로 만들고 있다.


나는 처음부터 아픈 몸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나는 아픈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아픈 사람들의 보폭은 건강한 사람들의 보폭과 다르다. 나란히 손 잡고 걸을 수 없다. 함께 같은 속도로 걷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나의 속도에 맞추어서 산다. 나의 시는 나의 삶이어서 마침표가 없다. 나의 시의 마침표는 나의 무덤이 될 것이다. 또한 나의 시에는 숨표가 많다. 나의 쉼표는 나의 헐떡이는 숨이다. 숨이 차기 때문에 자주 쉬어 주어야만 한다. 시는 시인의 발걸음을 닮아야만 한다. 시는 시인의 숨결이 느껴져야만 한다.


나는 평생 숲을 가꾸는 것이 꿈인데, 숲이 아직은 나를 품어주지 못한다. 참나무가 많은 정읍의 종석산이  좋아서 가려고 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다. 종석산에서 산양삼을 재배하는 친구가 있다. 그곳으로 가려고 작은 임야를 구하고 교육을 받아서 임업후계자가 되었다. 하지만 함께할 친구는 나와는 생각이 많이 다른 듯하다. 나는 참나무 숲을 가꾸고 많은 사람들이 참나무로 부활하기를 꿈꾸는데 친구는 참나무를 베어내고 산양삼을 대규모로 재배하여 큰 소득을 올리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물론, 약초 재배에 좋은 여건이니 어느 정도의 재배는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숲이 목적이 아니고 돈이 목적이라면 나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숲을 원한다.


나는 5년 전에 이미 평생 써야 할 시의  원고료를 선불로 받았다. 나의 심장 속 대동맥 판막을 뜯어내고 금속판막으로 교체하였다. 깨어나보니 나의 통장에 거금이 입금되어 있었다. 내가 수술을 받기 전날 입금을 하고 기도를 하였던 것이다. 내가 깨어날 때까지 그는 쉬지 않고 기도를 하였을 것이다. "꼭 살아 돌아와 좋은 시를 써 주세요. 응원합니다." 이 응원 메시지와 그의 기도가 나를 부활시킨 것이었다. 수술을 받는 동안에 꾸었던 꿈속의 천사가 나를 살린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간절한 기도에 보답하기 위하여 지난 5년 동안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출사표를 던지고 시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어도공화국이 들어설 아름다운 숲을 구하지 못하여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를 쳤다. 그곳에 나는 서천꽃밭을 만들고 있다. 아름다운 숲에 만들 이어도공화국을 미리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곳에 나와 인연이 닿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나무를 심고 가꾼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아직은 함께 살 수 없지만 그들의 나무를 보며 날마다 생각한다. 그들의 나무를 가꾸며 그들과 같은 하늘 아래서 함께 숨을 쉰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꿈은 그렇게 천천히 자라고 시나브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서천꽃밭에 자란(紫蘭)이 피어나고 은방울꽃이 피어난다. 자란(蘭)의 꽃말은 "서로 잊지 않다" 은방울꽃의 꽃말은 "틀림없이 행복해진다"라고 한다.



어느 시인의 눈썹달과 별 하나



발전소에서 야간근무 하면서

두 시인을 만났다

별빛을 만들면서 시인을 만났다

만났다기보다는 보고 들었다

대구문학관에서 문학, 꽃피다

뒤늦게 유튜브로 만나, 보았다

문태준 시인과 김민정 시인을

연속해서 듣고 보았다

그런데 아, 김민정 시인이

그만 느닷없이

가슴속에 들어앉고 말았다

얼핏 잠이 들었는데

꿈속까지 따라서 들어오고 말았다

꿈인 듯 생시인 듯 아침은 오고

발전소의 하늘에 달이 떠 있다

시인의 눈썹 한쪽이 걸려 있다

벌써 아침인데 반도 가지 못했다

이제 막 월라봉을 벗어나,

산방산까지는 아직도 멀었다

바다의 방에도

산의 방에도 가려면  서둘러야만 하겠다

화순항에는 아침에도 등대불빛이 반짝이고

눈썹달 오른쪽 아래에는 별 하나 깜박인다



모르는 당신에게 나는 간다



나는 김민정 시인을 모른다

김민정 시인은 문학동네시인선 총괄 편집자라고 한다

또한 난다 출판사 대표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책 출판에 대한 열정과 능력이 빛나는 누나 같다

아, 우리나라 문학동네는 이렇게 굴러가는구나

자신의 건강도 돌보지 못하면서 시인들을 뒷바라지하는구나

참으로 존경스러운 마당발이 우리 문학을 살찌게 하는구나

나도 이제 그에게로 가고 싶다

나도 이제 문학동네에 가서 아름다운 시인이 되고 싶다

나는 이제 겨우 우리들의 문학동네를 읽는다

나는 이제 겨우 김민정 시인을 거꾸로 읽는다

이어도서천꽃밭에서 김민정 시인의 시를 읽는다

창문 밖으로 호박과 호박잎이 보인다

올해는 호박을 많이 심지 못했다

올해는 호박잎을 너무 많이 먹어서

호박이 많이 열리지 않았다

열린 애기 호박도 잎을 잃고 울면서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내년에는 호박을 더욱 잘 심어서 호박잎을 많이 먹어도

호박이 잘 열리고 더욱 잘 자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

그의 최근의 시집을 읽고 쪽파를 심는다

대가 끊겼다며 아들 타령을 하는 조선시대를 생각하며 씨를 심는다

방치해 둔 쪽파에서 싹이 돋아나서 나도 샤프란 옆에 심는다

숨어있던 꽃무릇 옆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처럼 파를 심는다 



여섬이 되었네



이어도는 최고

대상군 해녀네

깊은 물속으로

한 번 들어가서

나올 줄 모르네

비바람 불어도

모습 안 보이네

태풍이 불어도

나오지를 않네

해양 과학기지

테왁처럼 떠서

님을 기다리네

용궁으로 떠난

님을 찾아 나선

긴 사랑의 물질

끝날 줄 모르네

숨비소리 없이

돌아오지 않네

나도 님 찾아서

이어도로 가네

사랑을 찾아서

여의도로 가네

전복보다 좋은

여섬으로 가네

이어도 여의도

여섬이 되었네



정방폭포



산은 바다의 지붕 위에 떠 있고

바다는 산에서 내려온 물들의 집


수직은 수평 위에 서 있고

수평은 쓰러진 수직의 잔잔한 잠


산의 고향은 바다

바다의 고향은 산


하늘이 수직으로 떨어져

단애 아래 수평으로 걷는다


산은 바닥에서 다시 출발하고

바다는 또 하늘에서 내려온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목숨들

날아오르지 못하는 날개들


바닥이 너무 깊이 젖어

일어서지 못하는 수평선

허리 굽힌 윤슬이

툭, 어깨를 치며

손을 내민다



외돌개 



1


외돌개 만나러 가서

선녀탕을 먼저 본다


외돌개 만나러 가서

코끼리를 먼저 본다


그대는 보이지 않고

하늘과 바다를 본다


범섬 문섬 섶섬 새섬

삼매봉, 한라산 본다


외돌개는 포구에서

내 마음을 붙잡는다


세월이 흘러도 녹슬지

않을 계류기둥, 돌 말뚝



2


사람들은 스스로

외돌개가 된다


외돌개에 와서

자신의 모습 본다


세월에 무너진

가슴들 쓸려가고


홀로 서 있는

자신만 남아있다


뒤늦게 울부짖는

파도의 통곡소리



3


포구에는 배들이

드나들고

우리들

마음의 포구에도

돌기둥은 필요하나니


혼자라서 외롭다고

울부짖는 그대여

다시 한번 돌아보라


세상에 혼자인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

뿌리 쪽부터 돌아보라


세월이 흘러도 녹슬지

않을 돌기둥, 거기

또한 그대 서럽게 서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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