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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쉼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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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Oct 15. 2023

이어도공화국 곡성군쉼터

―  쉼터  일기 6




그래나는 바보 맞다




공인중개사무소에서 자꾸 전화가 온다. “노형부영 3차 아파트는 매물이 없기로 유명합니다. 수요자는 많은데 공급자가 없습니다. 제주도에서 집 구하기 가장 어려운 동네가 바로 그곳입니다. 전세는 4억 이상이고 연세는 2천4백만 원 이상입니다. 매수자가 많아서 매도자에게는 부동산중개수수료도 받지 않습니다. 왜 그런 알짜배기 집을 쉼터로 쓰십니까? 사장님 바보 아닙니까?”   

  

그렇다. 나는 바보 맞다. 그래도 어쩌랴. 나는 바보로 태어났으니 바보로 살아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비싼 밭을 사서 풀밭으로 만들고, 숲으로 만들기도 하더니, 이제는 제주도 중심가 알짜배기 집을 쉼터로 내놓다니, 점점 더 미쳐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어쩌랴. 나는 처음부터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가난하게 태어났고 가난하게 살았다. 그래서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안다. 그 가난한 사람들의 따뜻한 안식처가 되고, 부활의 동굴이 되기를 소망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의미 있는 예술가들이 의미 있는 알을 잘 낳을 수 있는 작은 둥지가 되기를 기도한다. 아름답고 의미 있는 사연들이 하나 둘 쌓여가는, 이야기가 부자인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나와 인연이 맺어진 사람들의 하룻밤 따뜻한 쉼터가 될 수 있으면 좋다.     


나는 제주쉼터 덕분에 이재정 사진가를 알았다. 아직 만나보지 못했으나 가끔 소식 들을 수 있어서 참 좋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세상을 읽고 배운다. 이에 용기를 얻어서 조심스럽게 쉼터 운영을 확대할 생각을 한다. 나에게는 사연이 많은 공간이 몇 있다. 그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나의 고향집이다. 고향집과 부모님 산소가 있는 반월산에 작은 밭이 있다. 이곳도 쉼터로 만들어볼 작정이다.     


직장 정년퇴직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반월산을 사려고 노력하기도 하였으나, 여러 가지 사연으로 반월산을 사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있는 고향집에 작은 쉼터를 만들어볼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서두르지는 않을 생각이다. 인연 있는 사람이 나타나서 대신 운영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어도공화국 제주시쉼터> 예약받습니다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

https://brunch.co.kr/@yeardo/1563

이어도공화국 제주시쉼터 

https://brunch.co.kr/@yeardo/1561

이어도공화국 곡성군쉼터

https://brunch.co.kr/@yeardo/1046

이어도공화국 정읍시쉼터

https://brunch.co.kr/@yeardo/1154


이어도공화국 제주시쉼터 예약 현황 : 

1. 2023년 12월 10일 ~ 31일 이재정 사진작가님 (시집 원고 마감 작업)







이어도공화국 곡성군쉼터

―  쉼터 일기 6




연어의 종착역



곡성 고향집 바로 앞에

연어의 종착역 표지석이 있다

나는 연어가 되어

참으로 먼 길을 거슬러 돌아왔다

나도 이제는

연어알 같은 붉은 알을 낳아야겠다



b

나의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산이나 아름다운 섬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산이나 섬을 확보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리하여 나는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려고 한다. 먼 훗날 또 다른 내가 나타나서 아름다운 산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상을 꼭 만들어주길 기도한다. 나는 그 아름다운 세상의 작은 씨앗이라도 되고 싶다. 요즘 내가 만들고 있는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가 그 작은 씨앗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혹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각자의 처지에 맞도록, 작지만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 연합하는 방법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씨앗들이 모여 아름다운 숲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종의 <아름다운 쉼터연합>을 만들면 어떨까 혼자 생각해 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서두르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다. 나는 다만 내가 가진 아름다운 씨앗을 잘 심고 아름답게 가꾸고 싶을 뿐이다. 먼 훗날 그 아름다운 씨앗이 아름다운 숲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에 나는 오늘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 이름을 이어도서천꽃밭이라고 정했다. 달문moon이라는 이름도 좋지만 이어도서천꽃밭이라고 정했다. 나는 오래도록 이어도로 살았다. 그리고 이어도공화국을 만들기 위하여 30년 넘게 준비를 하였다. 이어도는 제주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향인 동시에 죽은 사람들이 모여서 산다고 생각하는 특별한 섬이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 섬에서 홀로 꿈꾸며 살았다. 그러다가 생각 속에만 존재하는 섬을 실제로 만들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이어도종합해양과학기지가 생기면서 내가 생각했던 이어도에 대한 상상력에 오히려 상처를 입게 되었다. 제주도 사람들이 오래도록 꿈꾸어온 이상향을, 바다 가운데 세워진 철탑 하나로 규정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내가 생각하는 이어도는 이어도종합해양과학기지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이어도는 차라리 불로초를 찾으려고 제주도에 왔다는 서복과지의 주인공, 서복선생이 만들었다는 어느 섬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서천꽃밭과 합쳐서 이어도서천꽃밭이라고 이름을 정했다. 바로 이 이어도서천꽃밭에서 이어도공화국을 꿈꾸며 만들 작정이다. 이어도서천꽃밭에서 나는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하여 살살이꽃 뼈살이꽃 숨살이꽃을 가꾸며 아픈 사람들을 위하여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갈 작정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제주도의 아름다운 곶자왈을 많이 알아보았다. 그러다가 좋은 기회가 있어서 성사될 뻔하였는데 결국 중단되고 말았다. 그리고 연어의 종착역이 있는 고향집과 반월산을 염두하고 추진을 하였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작은 고향집과 작은 반월산자락을 구했을 뿐 구체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중단된 상태로 있다. 또한 정읍사의 고장 정읍에, 옥정호가 앞마당으로 펼쳐진 종석산에 이어도공화국을 만들기 위하여 추진하였으나, 산을 구입하고 교육까지 받아서 임업 후계자가 되었으나 믿었던 친구와 가는 길이 달라서 역시 중단된 상태에 있다.


하지만 눈을 똑바로 뜨고 세상을 다시 한번 둘러보니 참 좋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또한 나름대로 잘 꿈꾸고 잘 가꾸고 있는 좋은 사람들이 내 곁에는 아직도 참 많이 남아있다. 김도수 시인을 비롯하여 지리산 섬진강 시인들 그리고 아름다운 여수 시인들도 의미 있는 별장들을 소유한 사람들이 많아서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합칠 수 있다면 내가 구상 중인 <아름다운 쉼터연합>은 실현 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특히,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폐가들을 활용하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요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아름다운 제주도에 이어도서천꽂밭을 더욱 의미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만 할 것이다. 추진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내가 먼저 앞장서서 작고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야만 할 것이다.  


내가 구상하는 이어도공화국은 이제 연합체제로 추진될 전망이다.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인 이어도서천꽃밭이 꼭 중심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좋은 뜻을 품은 사람들이 각자의 처지에서 아름답게 만들어서 연합을 하는 방향으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우선 제주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서 할 예정이다. 전국각지에 각 본부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어도공화국 곡성반월산 본부, 이어도공화국 정읍종석산본부, 이어도공화국 여수은하수본부...., 이런 식으로 본부 체제를 구축하고 싶다. 본부장 중심으로 만들어서  <아름다운 쉼터연합>으로 발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의 고향 곡성에 작은 고향집과 뒷산인 반월산에 아주 작은 땅이 있다. 이곳에 누군가 살면서 의미 있는 쉼터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나에게는 특별한 추억과 아픔이 있는 곳이어서 내가 추진하려고 하였으나 여러 가지 여건상 내가 직접 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그러니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좋은 일을 함께 하면 좋겠다. 제주도 이어도서천꽃밭을 포함한 곡성반월산 본부 정읍종석산본부 등의 소유권은 재단법인 등을 만들어서 내가 죽은 다음에도 팔리는 일이 없도록 조치를 취할 생각이다. 그러니 우선 곡성반월산 본부를 맡아서 이끌어줄 의향이 있으신 분은 연락 주면 좋겠다. 그러면 의논해서 본부장으로 임명하고 사업을 추진할 생각이다. 곡성반월산 본부가 자리를 잡으면 다음은 정읍종석산본부를 추진할 생각이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 말씀하셨습니다

집이 너무 좁아서

마을에 돈을 지불하고 

창고 자리 땅을 사서 창고를 지었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등기가 되어 있지 않아서

이번에 실시한 지적 재조사 관련하여

창고자리 토지를 추가로 매입해야만 했습니다




고향집 옥상에서 찍은  빨래 하시는 나의 어머니
고향집 바로 앞에서 찍은 아버지 말년의 모습과 어머니 





전국에 있는 빈 집들 수리를 하여

가난한 작가들 창작실로 써도 좋고

지친 사람들 무료 쉼터로 써도 좋고

가난한 사람들 살림집으로 써도 좋고

여러 가지 활용방안을 생각해 봅니다

저도 늘 비어있는 집이 하나 있습니다

    




전남 곡성군 삼기면 원등리 957번지

제가 중학생 시절까지 살았던 집이 있는 곳입니다

바로 집 앞에 삼기천(섬진강으로 이어짐)이 있고

징검다리가 있고

호남고속도로가 있고

제가 태어난 월경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오랫동안 이곳에 가지 못했습니다

도저히 갈 수 없었습니다

2013년 6월 3일

겨우 용기를 내어 갈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저를 가장 슬프게 하는 글입니다

이 글은 어머니의 마지막 글입니다

아마도 병원을 몰래 빠져나오셔서

고향집에서 농약을 마시고

그 농약이 온몸으로 퍼지는 순간에 쓰셨을 것입니다

신음소리가 새어나갈까 봐

수건을 입에 물고

치아가 다 으스러지도록 입을 앙다물고 쓰신 듯합니다

자식인 저는 평생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사망 진단서 대신

시체 검안서를 읽으며 온몸으로 울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2006년 2월 26일 20시 54분



2007년 04월분 전기요금 고지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께서 떠난 이후에도 전기는 한동안 들어왔나 봅니다

어머니는 머리카락이 엉덩이까지 내려왔었다고 하셨습니다

오빠와 언니들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은 막내딸이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딸막이라고 하셨습니다 



맨 앞에 보이는 슬라브 건물은 오랫동안 구멍가게였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집도 없어서

빨랫비누, 세숫비누, 바늘, 동정, 검은 고무줄, 애기고무줄, 이태리 타울, 비누곽 등등

커다란 미원박스에 생활용품들을 담아 이고 다니시며 팔아야만 했던

도붓장수였습니다

그러다가 새마을운동 일환으로 마을 회관에 함께 지었던 구판장을 하다가

구판장을 못하게 되자

화장실 자리에 슬라브 집을 짓고 구멍가게를 하시다가

바로 그 가게 방에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집을 비워 방치해 두었더니

대문은 멀쩡한데

집 안의 물건들은 누군가 다 털어가 버렸습니다



빈 집에도 이렇게 새 이름표가 붙어 있습니다



옆집도 다 헐리고

쭈욱 늘어선 정자나무 무성한 놀이터였던 자리에

정자나무는 늙고 새로운 정자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집 바로 앞에 있는 정자에는 텔레비전까지 갖추어져 있습니다



가게 건물 옆

아래채 벽이 위험해 보입니다



아래채 옆

창고 벽은 이미 무너져 있습니다

빨리 정리를 해야 할 듯합니다



슬라브집 지붕에서 본 본채 지붕입니다

집터가 워낙 좁아서

마당이 너무 좁고

텃밭 없는 것이 흠입니다



슬라브집 지붕에서 본 정자 지붕입니다

구멍가게 지붕과 정자 지붕이 닿을 듯 가깝습니다



가게 건물 내부 모습입니다

앞에 보이는 작은 탁자는

가게방 앞에 있었던 것입니다

막걸리와 소주를 마시는 술상입니다

주 안주는 김치와 기름소금이었습니다

주로 아버님께서 술을 마시던 술상입니다

저물녘이면 늘

아버님의 얼굴로 붉은 해가 떠올랐습니다

다행히 술상은 돈이 되지 않았는지

고물장수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가게 바닥에 전기요금 고지서가 있었습니다



형제들도 저와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1년 넘게 전기 들어오다가 지쳐서 끊겼나 봅니다



광주에 살고 계신 누나와 함께 집을 둘러보고 알아본 결과

아직도 집은 어머니 앞으로 있었습니다

누나와 형님들과 동생에게 연락하니 나에게 관리를 하라고 합니다

그냥 아무 조건 없이 내 앞으로 상속을 하고 내 마음대로 쓰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큰 형님 앞으로 가야 할 것 같아 큰 형님께 말씀드렸더니

그냥 저에게 쓰라고 합니다

그래서 형제들 모임 총무인 막내와 의논한 결과

부모님을 위한 형제들 모임 통장으로 5백만 원 입금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형님들과 누나는 돈 받는 것을 극구 사양하시지만 

(얼마 전에 누나가 3백만 원에 팔려고 내놓았는데 팔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저도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 것 같습니다 



곡성군청에 갔습니다

곡성군 기차마을에서 장미축제가 있었습니다

22세기 약속의 땅 곡성군

기차마을이 있는 곡성군

심청이 마을과 섬진강이 있는 곡성군

여기에서 저는 다시 문학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너무 멀리 돌아서 온 것 같습니다



곡성군청이 정겹게 느껴집니다



등기소까지 들러 왔습니다

서류정리는 천천히 해도 된다고 합니다



아마도 저번 태풍에 창고 담장이 무너진 것 같습니다



집터는 좁아도 최대한 활용한 집이기 때문에

안쪽 내부는 상당히 넓습니다

방이 4개 이상 나올 것입니다

천천히 수리할 생각입니다

가게방은 심야전기 난방설비가 잘 되어 있어

전기공급만 재개되면 바로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방을 먼저 정리하고 도배해서 사용하면서

나머지도 고치면서 글을 쓸 생각입니다



아마도 저는 그렇게 많이 사용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창작 작업실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빌려줄 생각입니다

또 누가 압니까

이 작은 창작 작업실에서 세계적인 작품이 탄생할 수 있을지......,

주위 여건으로 보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좋은 인연을 꿈꾸어 봅니다



집 바로 앞에 있는 정자도 잘만 활용하면 좋을 듯합니다

저 뒤에 보이는 분들은 누나와 매형입니다



정자 바로 앞으로 삼기천이 흐르고

옛날에는 흐르는 물도 많아서 징검다리가 있었습니다

징검다리 건너

뚝 너머에 우리 집이 있었습니다

뚝을 넘으면 월경리입니다

그곳에서 저는 어릴 때부터 오리를 많이 길렀습니다

제 시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징검다리의 주요 배경이었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뚝이 넘쳐 회관으로 피난을 가야만 했습니다



불가피하게 자물쇠를 채웠습니다

다음에 혹시 사용하시고 싶은 분들은 저에게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비밀번호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징검다리



하나


길이었다 덜 자란 몸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

어머니는 방물을 파셨고 새벽 샛강의

입김 자욱한 안갯속으로 떠나시곤 했다

나는 담장 밑에 펼쳐놓은 꼬막껍질에

쑥국 끓이기 놀이를 하며 자랐다

노을만 어렵게 어렵게 감아 들이던

바람개비가 스스로의 바람결을 가늠할 수 있을 때

물오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파랑 간짓대 들고

오리 떼를 몰아내던 골목이 심하게 흔들렸다

어머니 뒷모습을 지우던 안갯속으로

하얀 꽁무니가 사라지고

나도 그 속으로 따라 날아가고 싶었다




할아버지 산소가 보이는 징검다리 사이로 햇살이

주검처럼 부서지며 흘러갔다 하류에서

한 몸으로 몸을 섞기 위해 취로사업 나가신

아버지가 무너진 둑에 묻히고 작업복이 천수답

허수아비에 내걸리던 날도 나는 그 저수지 뚝에서

삐비 꽃을 뽑아먹고 돌아오는 길

가로수 구멍 속에 몇 개의 돌을 더 던져 넣었다

어머니가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는 줄도 몰랐다

그 해 여름 장마는 담장의 발목을 적셨고

두꺼비 같은 우리 식구들은

한밤중에 회관으로 기어 올라갔었다




학교 앞 코스모스로 기다리기를 즐겼다

하학종소리 사이로 보이는 형의 검정고무신 앞은

발가락이 먼저 나와 있었고 생활 보호 대상자

가족 앞으로 달려오는 옥수수 빵과 건빵

나는 그것이 좋았다 우리는 뿔 필통 속 몽당연필로

흔, 들, 리, 며, 징, 검, 다, 리, 건, 넜, 다,

끈이 풀리는 소리로 흘러가는 여울물 소리는

우리를 다시 묶어주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징검다리를 잘도 건너 다녔다




수수깡으로 안경을 만들어 끼고 기차놀이하던

우리들은 그 새끼줄 속에서 자유로웠다

우리들의 기차는 징검다리를 비로소 건너 다녔고

오후의 서툰 기적소리 울리며

동구 밖까지 나가 놀던 소아마비 동생은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못했다 찾다가 찾아보다가

어린 집배원이 된 큰 형도

동생의 소식은 가져오지 못하고 한 떼

건너가는 동네 아이들만 오래도록 바라보곤 했다



다섯


여울물 소리는 끈이 풀리는 소리였고

또다시 묶이는 소리였다 방직공장에 취직했던

누이가 파란 눈의 아이를 보듬고 돌아와

빨래터에는 방망이질 소리가 잠들지 않았고

헛발 짚은 어머니는 물속에 더욱 자주 빠지셨다

……………… 배고픔과 어머니 ………………

들판에 흐드러진 달맞이꽃 사이로 그렇게 어머니는

젖은 보름달을 이고 늦게 돌아오시곤 했다






연어의 종착역


곡성 고향집 바로 앞에
연어의 종착역 표지석이 있다
나는 연어가 되어
참으로 먼 길을 거슬러 올라왔다
나도 이제는
연어알 같은 붉은 알을 낳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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