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미린 시집 <눈부신 디테일의 유령론>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잘 모르는 시인인데 우연히 도서관에 있는 시집 중에 최신 거 같아서 빌려왔다 별로 재미는 없는데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그런 이상 야릇한 책이다 요즘 젊은 시인들은 이렇게도 쓰는구나 서울 태생이라니까 도시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은 이런 생각도 하는구나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뭐, 유령론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꿈속으로 들어갔다
꿈 밖에서 생각하니 도로 같기도 하고 강 같기도 하고 해자 같기도 했다 꿈속에서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뭐 그런 것들이 있다 하여튼 소들이 막 밀려왔다 목장에 있어야 할 소들이 도로 위로 막 쏟아져서 밀려왔다 그런데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몰라도 소들이 막히기 시작했다 길이 막히기 시작했다 내가 도로인지 강인지 해자인지 헛갈린 것은 갓길이 없어서 인 것 같았다 길이 막히면 갓길로 가거나 길 밖으로 뛰어내리면 되는데 그러질 못했다 길 양쪽이 다 막혀 있었다 그래서 소들은 앞으로 갈 수 없으니까 막히고 만 것이었다 그야말로 꽉 막힌 정체였다 내가 강이 아니고 도로였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교통경찰 같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이 소들을 빨리 묻어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출근을 하려면 빨리 소를 치우고 길을 터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포클레인들이 막 밀려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지 말고 소들을 다시 산으로 돌려보내자고 사정을 했다 목장 주인이 올 때까지만이라도 기다리자고 말렸다 저번에 평화로에서 만났던 말들처럼 자동차와 함께 달려보자고도 설득을 했다 하지만 말을 듣지 않고 포크레인이로 땅을 파고 소를 막 묻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나중에 목장 주인과 하느님께 고자질을 할 거라며 사진을 찍어서 증거를 남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카메라가 구덩이에 떨어져서 작살이 났다 그래도 나는 이미 찍은 사진이라도 건져야 한다며 메모리 카드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조금 전까지 도로였던 길이 강으로 변한 것이었다 장마철에는 가끔 강물을 따라서 귀한 것들이 떠내려오기도 했었다 호박도 떠내려오고 돼지도 떠내려오고 소도 떠내려오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 꿈속에서는 수의를 만들려고 장만해 놓은 삼베가 쌓여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한두필이 아니라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장마철에 떠내려오는 물건들은 흙탕물에 젖어있게 마련인데 이번 꿈속에서는 너무나 멀쩡하지 않겠는가 무슨 삼베공장 창고가 그대로 내 앞으로 뚝 떨어진 것 같았다 강물에 떠내려온 것이 분명한데 비닐 포장도 멀쩡하고 하나도 젖지를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서둘러서 수의를 만들기 시작했다
수의사가 되어 소를 치료하지 못하고 소들의 수의를 만들기 시작했다 꿈속이어서 앞뒤가 잘 맞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 밖에서도 나는 부지런히 수의를 만들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