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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Nov 19. 2023

정방폭포 서(序)

― 다시 시작하는 순례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정방폭포 서(序)


정방폭포 서()

― 다시 시작하는 순례



<4·3과 평화> 여름의 얼굴이 된 정방폭포

상처가 깊을수록 많은 눈물을 쏟아서 더욱 하얗다

새하얀 무명천이 하늘에서 끝없이 내려온다

무명천 할머니께서 수의를 만들고 계시는지

만가(輓歌)처럼 베 짜는 소리도 함께 들린다


얼굴 안쪽에 그늘처럼 흑백사진 한 장이 숨어있다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전분공장과 창고들이 보이고

멀리, 목호(牧胡)들의 범섬까지 뚜렷하게 보인다

물빛과 무명천은 여전히 하얗고

발을 담그고 세수도 하였을 것만 같은 여울물소리


더 이상 발을 디딜 수 없는 노래는 비명(悲鳴)이 된다

길을 잃고 느닷없이 단애(斷崖) 아래로 떨어진 사람들

서귀, 중문, 남원, 안덕, 대정, 표선, 한라산 남쪽 사람들

태평양을 헤매다가 75년 만에 작은 집으로 돌아온다


불로장생을 꿈꾸며 불로초를 찾아왔던 서복이 머문 곳

지금도 대궐 같은 집에서 불로초를 가꾸고 있는 곳

불로초 공원에 만든 그 작은 공간으로 돌아오는 영혼들

타고난 제 삶도 끝까지 살지 못하고 벼락처럼 떠나버린

그 많은 정방폭포의 사람들

광풍에 느닷없이 길이 끊어져 허공에 발을 딛고 

한꺼번에 바다로 추락해 버린 목숨들, 오늘도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바다에서 길을 찾고 있는 사람들


그중의 한 사람을 따라서 긴 순례를 다시 시작한다



* 정방폭포는 한라산 남쪽 최대의 학살터였다. 75년 만인 2023년 5월에 비로소 서복불로초공원 한쪽에 작은 4·3 희생자 위령공간이 마련되었다.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 11. 20. 윤동주




* 정방폭포에서 베틀소리가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만가(輓歌) 소리도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아우성소리가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자장가소리도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원자폭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일본이 항복하는 소리 들린다.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일장기 대신 성조기가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1945년부터 1950년까지 대한민국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에 윤동주와 송몽규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었다. 그전에 이육사도 감옥에서 죽었다. 해방은 원자폭탄처럼 떨어졌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원자폭탄의 위력은 제주도까지 휘몰아쳤다. 해방에서부터 한국전쟁까지 제주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아니, 어떻게 죽었을까? 산에서 죽고 바다에서 죽고 감옥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왜 돌아오지 못했을까? 윤동주와 송몽규는 시체라도 돌려받았는데 어찌하여 제주도 사람들은 골령골에 암매장되거나 바다에 수장되고 말았을까.


왜 제주도의 폭포는 남쪽에만 있을까? 자세히 살펴보니, 북쪽의 폭포들은 낮은 포복으로 기어 오고 있었다. 윤동주 시인이 요즘 시인이라면 어떤 시를 쓰고 있을까? 나는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며 나의 꿈과 나의 삶과 나의 문학을 처음부터 다시 한번 점검하며 순례를 떠난다. 윤동주의 거울 하나 들고서 순례를 다시 시작한다.


"하늘을 보지 못해서 부끄럼이 너무 많구나! 나는 지금껏 죽어가는 것들을 얼마나 사랑했을까? 나는 이제라도 나한테 주어진 길이 아니라,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길을 찾아서 걸어가고 싶다. 오늘 밤에도 나의 별은 잠들지 못하고 추위에 떨고 있구나."



https://brunch.co.kr/@yeardo/1585





노인성이 유숙하는 섬


노인성이 유숙하는 섬




서귀포는 어디라도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서귀포혁신도시에서 중문관광단지까지

이어도 길을 걷다가 태평양으로 간다

설문대할망의 막내아들을 만나러 간다

남극노인성이 유숙하는 이어도로 간다


바다에서 해(海)를 본다 물이 아프다

인간들의 욕망이 낳은 쓰레기들의 섬

썩지도 않는 플라스틱 욕망들의 얼굴,


바다 해(海) 글자를 더 자세히 본다

어머니가 보인다 어머니가 아프다

아픈 어머니에게 방사능 오염수까지 먹인다

태평양의 수평선이 트로이목마를 끌고 온다

북극곰의 신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바다와 하늘이 함께 뜨거워지고 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막내아들이

뜨거운 어머니 이마에 물수건을 올린다

유숙하던 노인성도 곁에서 돕는다

서천꽃밭 꽃감관도 불사화를 가져온다


용궁으로 가는 올레에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노랫소리 들려온다 하늘에는 서천꽃밭이 있고 땅에는 마고성이 있고 바다에는 이어도가 있다


어머니를 살리려고 노인성과 꽃감관도 떠나지 못한다



* 2003년에 태어난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가 성인이 되었다

* 인간들의 욕망은 바다에 쓰레기섬을 만들고 핵폐기물도 버린다

* 서귀포시 도로명주소에 '이어도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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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나의 숨결이
바다와 나의 숨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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