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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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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Dec 12. 2023

3. 몸은 아래로 정신은 하늘로


윤동주 시인을 다시 만나 함께 길을 찾는다

1. 윤동주 시인을 만나 함께 길을 찾는다

2. 윤동주 시인을 읽으며 길을 찾는다

3. 윤동주 시인을 다시 만나 함께 길을 찾는다



배진성 프로필

서른 살까지 사는 것이 꿈이었다 왼쪽 가슴이 아팠다 남몰래 가슴을 안고 쓰러지는 들풀이었다 내려다보는 별들의 눈빛도 함께 붉어졌다 어머니는 보름달을 이고 징검다리 건너오셨고, 아버지는 평생 구들장만 짊어지셨다 달맞이꽃을 따라 가출을 하였다 선천성 심장병은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나의 비밀은 첫 시집이 나오고서야 들통이 났다 사랑하면 죽는다는 비후성 심근증, 심장병과 25년 만에 첫 이별을 하였다 그러나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바다는 나를 이어도까지 실어다 주었다 30년 넘게 섬에서 이어도가 되어 홀로 깊이 살았다 나는 이제 겨우 돌아왔다 섬에서 꿈꾼 것들을 풀어놓는다 꿈속의 삶을 이 지상으로 옮겨놓는다 나에게는 꿈도 삶이고 삶도 꿈이다 <꿈삶글>은 하나다 윤동주 시인을 다시 만나 함께 길을 찾는다



1. 윤동주 시인이 나를 읽는다


윤동주 시인을 다시 읽는다
윤동주 시인이 나를 읽는다


윤동주 시인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이제 꿈속에서도 윤동주 시인이 보인다. 눈을 뜨니 방 벽에서도 눈이 보인다. 눈들이 보인다. 윤동주의 눈이 보이고 송몽규의 눈이 보이고 강처중의 눈이 보이고 정병규의 눈이 보인다. 벽에 서있는 나무판자에 눈동자가 많다. 옹이들이 죽으면 저렇게 벽의 눈이 되기도 한다. 아예 눈알이 빠져서 뻥 뚫린 구멍도 있다. 


오늘은 자꾸만 <자화상> 생각이 난다. 나의 자화상을 어떻게 그릴까.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 제목은 처음에는 <외딴우물>이었다가 <우물속의자화상>이었다가 최종적으로 <자화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나의 자화상은 최종적으로 어떤 자화상으로 남을 수 있을까. 나 자신도 나의 자화상이 궁금해진다. 나는 이렇게 다시 윤동주 시인을 읽는다. 아니, 윤동주 시인이 나를 읽는다. 東柱(동주)와 童舟(동주)와 童柱(동주)가 나를 읽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렇게 다시 만나서 함께 길을 찾는다.



연어의 종착역


        

고향집 바로 앞에 

연어의 종착역 표지석이 있다

나는 연어가 되어 

참으로 먼 길을 거슬러 돌아왔다

나도 이제 당신을 만나 

붉은 알을 낳아야만 한다  



고구마 꽃



고구마꽃이 피었다

고구마꽃이 젖을 물리고 있다

꼬리박각시나방이 젖을 빨고 있다

고구마가 땅 속에서 젖을 준다

땅 속에서 어머니는

아직도 나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이어도를 아시나요



1


이어도를 아시나요

아름다운 나라의 끝이 아니라

아름다운 나라가 시작되는 곳

당신은 이어도를 아시나요


서귀포시 해(海) 1번지

이어도를 아시나요

서귀포시 태평양로 1

이어도 섬을 당신은 아시나요


서귀포는 어디라도 문만 열면 태평양인데

태평양으로 날아가는 이어도를 아시나요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제주도 사람들이 오래도록 꿈꾸어 오던 섬

이어도를 아시나요 이어도의 꿈을 아시나요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낳은 이어도를 아시나요

어부들의 한숨소리가 만든 이어도를 아시나요

기다림의 울음소리가 쌓인 이어도를 아시나요


태평양 전쟁은 아직도 끝이 나지 않았는데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에 태극기가 휘날린다

제주도의 막내아들이 성인이 되어 날아간다

노인성이 유숙하는 이어도 섬으로 날아간다


2


서귀포는 어디라도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서귀포혁신도시에서 중문관광단지까지

이어도 길을 걷다가 태평양으로 간다

설문대할망의 막내아들을 만나러 간다

남극노인성이 유숙하는 이어도로 간다


바다에서 해(海)를 본다 물이 아프다

인간들의 욕망이 낳은 쓰레기들의 섬

썩지도 않는 플라스틱 욕망들의 얼굴,


바다 해(海) 글자를 더 자세히 본다

어머니가 보인다 어머니가 아프다

아픈 어머니에게 방사능 오염수까지 먹인다

태평양의 수평선이 트로이목마를 끌고 온다

북극곰의 신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바다와 하늘이 함께 뜨거워지고 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막내아들이

뜨거운 어머니 이마에 물수건을 올린다

유숙하던 노인성도 곁에서 돕는다

서천꽃밭 꽃감관도 불사화를 가져온다


용궁으로 가는 올레에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노랫소리 들려온다 하늘에는 서천꽃밭이 있고 땅에는 마고성이 있고 바다에는 이어도가 있다


어머니를 살리려고 노인성과 꽃감관도 떠나지 못한다


3


이어도를 아시나요

당신은 이어도를 아시나요

아름다운 나라가 시작되는 곳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아시나요


이어도공화국을 아시나요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섬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섬

하늘과 바다를 이어주는 섬


이어도공화국을 아시나요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이 

아름답게 함께 살아가는 곳

이어도공화국을 당신은 아시나요


이어도공화국에 지금 살고 있는 

이어도 시인을 당신은 아시나요



2. 윤동주 시인의 거울을 보니


윤동주 시인의 거울을 보니 내가 보인다

송우혜 선생님의 <윤동주평전>을 읽는다. 윤동주 시인을 만나려면 먼저 간도로 가야만 한다. 간도는 좀 특별한 곳이다. 간도를 한문으로는, 간도(間島)라고 쓰기도 하고 간도(墾島)라고 쓰기도 한다. 청나라는 병자호란 뒤, 간도를  봉금(封禁) 지역으로 정하고 조선 사람이든 청나라 사람이든 아무도 들어가 살 수 없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간도라는 지명은 조선과 청나라 사이[間]에 놓인 섬[島]과 같은 땅이라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선 후기에 우리 농민들이 이 지역에 이주하여 땅을 새로 개간하였다는 뜻에서 ‘간도(墾島)’라고 적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윤동주 시인을 만나려면 사이섬으로 가야 한다. 개간한 섬으로 가야 한다.


"처음엔 두만강 위쪽 땅을 그냥 '간도'라고 했다. 그러나 후에 압록강 이북을 '서간도'라 하면서, 두만강 이북은 '북간도'로 구분해서 불렀다" 윤동주 시인은 북간도에서 태어났다.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명동촌이 또한 특별한 곳이다. 명동촌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마을이 아니다. 1899년 2월 18일에 생겨난 마을이라고 한다. "두만강변의 도시인 회령과 종성에 거주하던 네 명의 학자들 가문에 속한 22개 집안 식솔들로 이루어진 총 141명의 이민단이 그날 일제히 고향을 떠나 두만강을 건넜다"라고 한다. 그러니까 북간도 명동촌은 학자들 가문이 두만강을 건너 이국땅에 세운 개척마을이다. 윤동주 시인은 그런 특별한 마을에서 1917년 12월 30일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런데 나는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을까? 



3. 몸은 아래로 정신은 하늘로


윤동주 시인의 일생은
몸은 아래로 내려가고 정신은 하늘로 향했다

윤동주 시인은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명동촌의 명동소학교를 나와 용정의 은진중학교로 진학했다. 평양의 숭실중학교를 거쳐 다시 용정으로 돌아와 광명학원 중학부에 편입했다. 그리고 1938년 4월 9일 드디어 송몽규와 함께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다. 또한 1942년 4월 2일 동경 입교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같은 해 10월 1일 경도의 경도 동지사대학 영문과로 편입학하였다. 다음 해 1943년 7월 14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36분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윤동주 시인은 특별한 곳에서 태어나 평생 길을 찾다가 떠났다. 평생 공부를 하다가 길을 찾아 떠났다. 나는 어디에서 언제 어떻게 태어났을까? 나는 전남 곡성군 삼기면에서 태어났다.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려고 밤새 나를 찾아 헤매었다. 인터넷으로 주민등록표 초본을 열람하였다. 옛날에 내가 보았던 초본과 많이 달라져 있다. 간편하게 변했다. 초본에는 나의 출생지가 나와 있지 않았다. 나의 주소지 변동사항이 29번까지 기록되어 있었다. 1 전라남도 곡성군 삼기면 원등리 957번지, 1975년 9월 23일 전입...., 나는 그 이전의 나의 행적을 찾고 싶었다. 1번의 주소지는 지금 내 고향집이 있는 주소지였다. 내 기억 속에는 그 고향집 징검다리 건너에 유년시절이 있었다.


나는 다시 제적초본을 열람하였다. 출생장소가 전남 곡성군 삼기면 원등리 1099번지로 되어 있었다. 나의 기억과 달랐다. 나는 지금껏 징검다리 건너 월경리 외딴집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에 살았던 월경 2구 행정리에서 태어나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하였다. 내 무의식적인 기억 속에는 방 벽이 기울어져 있고 방바닥도 수평이 아니고 천정에서 빗물이 떨어져서 방에 세숫대야를 놓고 밤새 빗물을 받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껏 원등리 1099번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신고일은 1968년 10월 15일로 기록되어 있었다. 신고인은 아버지로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왜 2년도 더 지나서 출생신고를 하셨을까. 그리고 왜 2월 28일로 출생신고를 하셨을까? 어머니께서는 늘 내가 2월 24일 아침 6시에 태어났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태어나서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제적초본에 기록된 나의 출생지와 나의 기억 속의 출생지를 비교하며 밤새 고향의 길들을 둘러보았다.   



늦게 쓰는 일기



1966년 참꽃 불타는 2월 29일 새벽 두 시

그믐달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의 눈썹이

떨어지고 닭도 울지 않았다 개 한 마리가

어둠 속에서 컴컴한 어둠을 향해

컹컹 짖었다 그리고 나는 울지 않았다

울음 없는 아이로 태어나 누워만 있었다

송아지 울음소리가 걸어 나오는 물소리

가느다랗게 들리고 핑경 같은 별들이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잠들지 못하는 그 사이로

보이지 않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나는

별무덤을 파헤치고 다시 태어났다

그 자리에 나의 탯줄과 함께 누워있는 어머니

무덤가 어린 쑥 잎에도 향기가 오르고

나는 어머니가 누운 만큼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별똥별이 떨어지고 숲이 있는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 지상에

세상은 있었고 내가 태어나면서 같이 태어난

또 다른 세상이 있었다 그러한 아침으로

때 아닌 비가 내리고 담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늦게 쓰는 일기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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