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윤동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산 Jan 17. 2024

5. 정방폭포를 쓰기 시작한다




5. 정방폭포를 쓰기 시작한다




정방폭포를 쓰기 시작한다. 정방폭포 이전과 이후를 쓰기 시작한다. 보이는 것들의 이전과 이후를 쓰기 시작한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서 오래도록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오래도록 바라보고 메모를 하고 여러 각도에서 다시 바라보고 메모를 수정하고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드디어 글을 쓰기 시작한다. 같은 것도 보는 시간에 따라서 달라진다. 기후 조건과 날씨 상태에 따라서 달라진다. 나는 결코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곳에서만 바라보지 않는다. 이번에 쓰기 시작하는 정방폭포도 그렇다. 나는 우선 정방폭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제주 4.3 당시에 정방폭포 절벽 위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해 본다. 지금은 서복불로초공원이 근사하게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전분공장과 창고들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 내가 정방폭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서복 일행이 지나가면서 썼다는 "서복과지" 혹은 "서복과차"라는 글자를 찾아보고 싶어서였다. 본격적으로 정방폭포에 대하여 메모를 쓰기 시작한 것은 2023년 봄부터였다. 서귀포지역 최대 학살터였던 정방폭포에 5월에 겨우 희생자 위령공간이 우여곡절 끝에 조성되었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그 실체가 밝혀지기 위해서는 한 10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정방폭포는 대한민국 명승 제43호로 지정되었으며 정방폭포는 한라산 남쪽 최대의 사삼 학살터였다. 정방폭포는 동양에서 유일하게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이기도 하다. 정방폭포는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면 높이 23m의 작은 폭포에 머물지 않는다. 정방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은 어쩌면 한라산 백록담에서부터 출발하였을지도 모른다. 한라산을 내려와 서귀포 시내를 지나오는 동안 누군가가 뱉은 침도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도로가 지나가는 다리 아래로 흘러오면서 자동차 경적의 그림자도 씻고 내려온 물일지도 모른다. 또한 정방폭포 절벽을 기어올라오는 다슬기의 거친 숨소리도 섞여있을 것이다. 그렇게 바다에 다다른 물은 바다의 윤슬로 반짝이며 또다시 하늘로 올라가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늘로 올라간 윤슬은 구름으로 떠돌다가 다시 한라산 백록담으로 내려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정방폭포는 우리들의 모든 사람들의 숨소리를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하여 나는 드디어 정방폭포를 쓰기 시작한다.


정방폭포는 천제연폭포, 천지연폭포와 더불어 제주도 3대 폭포라고 불린다. 높이 23m, 너비 8m에 깊이 5m에 달하며, 국내에선 유일한 뭍에서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폭포다. 서귀포 시내에서 버스로 15분 거리에 있다. 입구의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하고 소나무가 있는 계단을 따라 5분 정도 내려오면, 햇빛이 비쳐 은하수 빛깔로 변하는 정방폭포를 볼 수 있다. 멀리서도 시원한 폭포소리가 들리고, 폭포 양쪽으로 주상절리가 잘 발달한 수직 암벽도 볼 수 있다. 한라산에서 내려와 서귀포 시내를 관통하고, 바다 앞으로 하얗게 떨지는 정방폭포의 모습은, 외국의 거대 폭포처럼 웅장하진 않지만, 자연과 조화롭게 어울리며 단정하게 떨어지는 모습이 전통 수묵화를 감상하는 느낌을 준다. 


1995년 제주기념물 제4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국가 명승 제43호로 승격되었다.


정방폭포의 한쪽 석벽에는 '서불과차'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다음과 다음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아주 먼 옛날 중국 진시황은 세상을 모두 자기의 손아귀에 넣고 권세를 누리며 부러울 것 없이 살았다. 그런데 그 부러울 것 없는 진시황에게도 어쩌지 못하는 고민이 있었으니, 그건 자신의 나이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왕으로서의 위엄이나 왜적을 막아내는 장수로서의 용맹스러움은 나무랄 데 없었으나 점점 늙고 쇠약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은 스스로도 어쩔 수 없음에 늘 진시황은 고민하였다. 늙지 않고 영생을 누리고 싶었던 진시황이 하루는 모든 신하를 불러 놓고 명을 내렸다.  “이 세상에서 불로장생 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자가 없느냐?” 서불이라는 꽤 많은 신하는 진시황의 앞으로 나서서 또박또박 그 물음에 대답을 하였다.  “소인이 듣기로는 저 동쪽 나라 작은 섬 영주라는 곳에는 영산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 불로초가 있다고 합니다. 제가 그곳에 가서 그 불로초를 캐오겠습니다.” 자신의 큰 소원이 이루어지게 된 진시황은 서불이 원하는 동남동녀 각 500명을 뽑아주고, 큰 배와 먹을 것을 잔뜩 내려주었다. 동쪽의 거친 바다를 건너오던 서불 일행은 깊은 바닷속 큰 용을 만나 큰 위기를 맞으나 서불의 쩌렁쩌렁한 호령으로 금방 물리쳤다. 제주에 도착하자 서불은 데리고 온 동남동녀 500쌍에게 제주의 영산 한라산에 가서 불로초를 캐오라고 명한다. 동남동녀 500쌍은 한라산에서 불로초를 찾아온 산을 헤매었지만 결국 불로초를 찾지 못하고, 한라산의 특이한 식물 시로미를 캔 뒤 정방폭포 서쪽 절벽에 ‘서불과지’라는 마애각을 남기고 서쪽으로 돌아갔다. 


정방폭포 ‘소남머리’는 4.3 사건 당시 정보과에서 취조받은 주민들 중, 즉결처형 대상자들 대부분이 희생당한 곳이기도 하다. 흔히 정방폭포에서 희생당했다고 하는 희생자 대부분이 정방폭포 상당과 이어지는 이곳에서 총살당했다. ‘소남머리’는 동산에 소나무가 많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서귀중학교 학생이었던 송세종 씨는 "그때 당시 어디 여자인지는 모르지만, 도망가다가 절벽으로 떨어졌는데 노송에 걸렸어. 그 여자가 임신을 하고 있었지. 떨어지니까 군인들이, 이건 하늘이 도운 사람이라 해가지고 살려줬어. 사람 두 번 죽인다는 것이 없으니까. 나도 직접 눈으로 본 건 아니지만"이라고 회고했다. 서귀리 및 서귀면, 중문면 일대뿐만 아니라 남원면, 안덕면, 대정면, 표선면 주민에 이르기까지, 정방폭포 희생자들은 산남 지역 전체에 이른다. <출처: 제주 4·3 연구소, 「4·3 유적 Ⅱ」(2008)>




* 정방폭포 관련 작품은 인터넷 발표 보류 규정 때문에 핵심 작품은 제외하고 참고자료만 여기에 올립니다.


정방폭포



산은 바다의 지붕 위에 떠 있고

바다는 산에서 내려온 물들의 집


수직은 수평 위에 서 있고

수평은 쓰러진 수직의 잔잔한 잠


산의 고향은 바다

바다의 고향은 산


하늘이 수직으로 떨어져

단애 아래 수평으로 걷는다


산은 바닥에서 다시 출발하고

바다는 또 하늘에서 내려온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목숨들

날아오르지 못하는 날개들


바닥이 너무 깊이 젖어

일어서지 못하는 수평선

허리 굽힌 윤슬이

툭, 어깨를 치며

손을 내민다



* 제주 4·3 당시 130여 가구가 거주한 무등이왓은 ‘잃어버린 마을’ 122곳 가운데 가장 큰 마을로, 조와 메밀, 콩 등을 재배했다. 1948년 11월 15일 토벌대가 무등이왓 마을을 진입해 주민 10명을 총살했으며, 21일에는 주민 3명을 총살하고 마을을 불태웠다. 동광리는 무등이왓(130여 가구)과 조수궤(10여 가구), 시장밧(3 가구), 간장리(10여 가구), 삼밧구석(45 가구) 등 5개 자연마을로 이뤄진 중산간 마을로 4·3 당시 최소한 172명이 희생됐으며, 인근에는 주민들이 피신 생활을 했던 큰넓궤가 있다.




정방폭포 8

― 파랑새를 보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정방폭포 절벽에 파랑새가 살고 있다

절벽 중간쯤 움푹 파인 돌 틈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파랑새 두 마리

나는 보았다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

정방폭포 물소리의  커튼을 젖히고

힘차게 날아오르는 파랑새를 보았다

꿈인 듯 생시인 듯

밤하늘을 원 없이 날다가

돌아갈 때에는

물고기도 한 마리씩 물고 가는 파랑새들

집에 숨어있는 새끼들에게 주려는 듯

환하게 미소 지으며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정방폭포의 어둠을 먹고 자란 파랑새를 보았다

오래도록 숨어 살던 파랑새가 이제는 

당당하게 새끼를 키우는 것을 비로소 보았다


정방폭포에서 태어난 파랑새는 이제 푸르다

한라산으로 날아간다 파랑새가 푸르게 난다

시로미를 입에 물고 한라산 위로 날아오른다




정방폭포 10

―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정방폭포 앞에서 태평양을 본다

정방폭포 위에서 태평양을 본다

한라산을 등지고 태평양을 본다

제주도는 어디라도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제주(濟州)라는 말은 너무 슬프다


덕판배를 타고 거친 해상을 누비던 탐라국이

이웃나라 고려의 벼슬자리에 눈이 멀면서

탐라국은 물 건너 하나의 작은 고을이 되었다

용불용설처럼 출륙금지령이 오래 지속되면서 

덕판배는 사라지고 테우들만 명맥을 이었다 

강력한 해상독립국가로 다시 돌아갈 것인가

큰 나라 눈치를 보며 목숨을 연명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가슴의 문만 열면 태평양인데


1946년 8월 1일,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었다

전라남도 제주군이 제주도(道)로 승격되었다

인디언의 땅을 점령한 미국이 눈독을 들였다

섬은 스스로 문을 열지 않으면 섬에 갇힌다

연대와 환대로 마음을 열어야 섬을 지킬 수 있다

덕판배가 판옥선이 되고 거북선이 되는 동안

제주도 사람들은 테우를 타고 멜잡이만 했다

더 늦기 전에 이제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태평양으로 가야만 한다


저 태평양을 보아라

파도가 파도의 등을 밀어주는 태평양을 보아라

바람이 바람을 안고 함께 가는 태평양을 보아라

토박이들이 먼저 이방인들을 안아주어야만 한다

현지인들이 먼저 이주민들을 품어주어야만 한다

연대하는 마음으로 환대하는 마음으로 대해야만

침략자들까지 감동하여 함께 하나가 될 수 있다

탐라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꼭 그래야만 한다



* 탐라국(현 제주도)은 삼국시대에 이르러 백제, 신라와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탐라국이 육지에 직접 예속되어 행정구역으로 편제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 중엽인 1105년(숙종 10)부터다. 1271년(원종 12)에 삼별초(三別抄)가 제주도에 웅거 하면서 몽골에 마지막까지 항쟁을 벌이다가 1273년에 패한 후 제주도는 원나라의 직할지가 되어 목마장(牧馬場)이 설치된다. 원의 직할 지였던 까닭에 다른 곳보다도 몽골의 문화적인 영향이 컸으며, 대규모 목마의 흔적으로 환경에도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그 후 약 1세기 동안 제주도는 고려와 원나라 사이에 소속이 여러 차례 바뀌는 복잡한 과정을 겪다가 1367년(공민왕 16)에 완전히 고려에 복속된다. 조선시대에 들어 1416년(태종 16)에 한라산을 경계로 북쪽에 제주목(濟州牧)을 두고, 남쪽의 동부에는 정의현(旌義縣), 서부에 대정현(大靜縣)을 설치하여 전라도에 소속시켜 조선시대 동안 유지된다. 1864년에 정의현과 대정현을 군으로 승격했으며,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23부제(府制)를 실시함에 따라 1895년에 제주부를 설치하여 정의군, 대정군을 관할하도록 한다. 1896년에 다시 13 도제(道制) 실시로 전라남도 제주군, 정의군, 대정군이 된다. 1914년에 시행된 군면 폐합 때 정의군, 대정군과 완도군 추자면이 제주군에 병합되어 제주군은 제주도 전역을 관할하게 된다. 1915년에 도제(島制)를 실시하여 제주도라 했으며, 1946년에 비로소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어 제주도(濟州道)로 승격하고 북제주군 및 남제주군을 신설한다.




정방폭포 32

― 태평양으로 간다




은하수는 한라산으로 내려오고

한라산은 정방폭포로 내려오고

정방폭포는 태평양으로 내려간다


태평양은 가장 낮은 곳에 있다


태평양()을 영어로는 

퍼시픽 오션(Pacific Ocean) 

아주 넓고 고요한 바다

평화로운 바다라고 한다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시인이다

시인은 이름을 잘 짓는 사람이다


정방폭포에서 태평양으로 가는

한라산이 묻는다 

은하수가 묻는다

일본에게 묻는다 미국에 묻는다


그대들은 평화로운 바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벌였던가요 

우리들의 태평양에서

평화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던가


제주도는 어디라도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아니다

제주도는 알고 보면

태평양 그 자체의 몸이다


그리하여 태평양에서는

태평가를 함부로 부를 수 없다




정방폭포 36

― 태평양에 우리들의 얼굴이 있다




태평양에서 우리들의 얼굴을 보았다

거대한 플라스틱 쓰레기 섬을 보았다

사람들의 손자국과 발자국을 보았다


인류세는 이미 지층이 쌓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머니의 가슴에 총을 쏘고 아버지의

머리에 총을 쏘았고 지구의 몸에도 원자폭탄을

새겨놓았다 우리는 우리들의 가슴에 총을 쏘았다


제주도에서 학살이 일어나던 그 시기부터

우리의 지구는 급격하게 뜨거워졌다

지구는 심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가슴에만 울분이 쌓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들의 지구는 죽어가고 있다

우리들은 이제라도 인간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해야만,


자, 이제 우리들의 가슴에도 평화의 나무를 심고 가꾸자

상처 깊은 어머니의 가슴에도 사랑의 나무를 심고 가꾸자

인류세에서 다시 자연의 지질시대로 돌려놓아야만 하리라




정방폭포 37

― 쓰레기 섬이 하는 말



은하수에서 한라산으로

한라산에서 정방폭포로

정방폭포에서 태평양으로 간다


일본의 해안에서는 아직도

원자폭탄 냄새가 흘러나오고

원자력발전소에서는 핵 오염수를 방출하고 있다


하와이를 지나 캘리포니아로 가는데

거대한 쓰레기 섬이 나를 붙잡고

제주도의 사연과 어머니의 상처에 대하여 말한다




정방폭포 38

― 바다에서




바다는 모든 생명의 어머니

식물도 동물도 모두 바다에서 태어났다

하물며 제주섬도 바다에서 태어났다


바다에서 태어나서 육지로 올라온 생명들

육지로 올라온 동물과 육지로 올라온 식물들

환경이 변하면 그 환경에 적응하며 몸을 바꾼다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류세가 환경변화를 가속화시켜서

식물과 동물들이 적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세상은 상생하는 생명들만 살아남는다

나는 이제 누구와 함께 공생할 수 있을까

제비나비와 제주꼬마팔랑나비가 꽃을 찾고 있다


바다에서 글쎄

청띠제비나비와 왕자팔랑나비가 알 낳을 자리를 찾고 있다




정방폭포 39

― 뼈에는 바다가 있다




바다는 생명의 고향

우리는 몸속에 바다를 품고 있다

등뼈에서 바다의 파도소리 들린다


우리들의 먼 조상은 바다에서 살았다

바다에서 강으로 올라왔다

강에는 칼슘도 없었고 망간도 없었고 인도 없었다

강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바다가 필요했다

민물고기는 몸속에 바다의 등뼈를 만들었다


지느러미는 네 개의 다리가 되었고

심장과 허파를 보호하려고 갈비뼈를 만들었다

이크티오스테가는 서서히 육지로 올라왔고

바다에서 강으로 강에서 지상으로 상륙했다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 그리고 인간

몸 안에 바다를 품고 있는 인간

태아를 기르는 바다

자궁은 몸 안에 품고 있는 바다가 분명하다




정방폭포 40

― 식물과 동물의 공존




공생관계의 식물과 동물은 살아남고

이기적인 독불장군은 살아남을 수 없다


삼첩기, 쥐라기, 백악기를 살아남았던 공룡

키 큰 나무를 따라서 공룡의 키도 자라났다

몸길이가 27미터나 되었던 바로 사우루스

높은 나무의 나뭇잎을 먹기 위해서 키가 자랐다


공룡의 엄청난 식욕은 산림을 황폐화시켰다


초식성 공룡을 잡아먹는 육식성 공룡도 출현했다

공룡이 공룡을 잡아먹고살았다 숲이 사라지고

공룡은 멸종되었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고

우리들의 숲이 사라지면 사람들도 멸종되고 말리라


꽃이 피는 현화식물의 탄생으로 공룡이 멸종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속씨식물들은

겉씨식물처럼 키가 크지 않아도 된다 

꽃으로 곤충을 유혹하여 씨를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곤충과 꽃의 상부상조가 속씨식물을 번식시켰고

키가 큰 겉씨식물이 줄어들어서 공룡들의 식량이 줄었다

포유류들도 식물과 공생관계를 유지하여 살아남았다

하지만 공룡들은 식물들을 뜯어먹기에 바빠서 결국 멸종되고 말았다

사람도 그러하리라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면 결국 죽고 말리라



정방폭포 42 

― 해바라기




정방폭포, 화두 하나 붙들고 살다 보니

내 몸속에서 정방폭포 소리가 들린다

물길이 뚝 끊어지는 지점에 폭포는 있다

물과 허공이 만나면 폭포가 생겨난다


해바라기 하나 스스로 태어난다

친구도 없이 홀로 부지런히 키를 키운다

어느 날 바람이 불어 쓰러지고 만다

쓰러진 해바라기는 포기할 수 없어서

허리를 세우고 다시 해를 향해 다가간다


허리가 꺾인 해바라기는 끝내 꽃을 피운다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긴 해바라기는 겨드랑이에도

꽃을 피운다 머리가 무거워진 해바라기는

친구가 없던 해바라기는 스스로 많은 꽃을 피운다


해바라기 줄기는 하나인데 꽃들이 참 많다


머리가 무거워서 땅 가까이 내려가니

봉선화 친구들이 환하게 웃으며 맞이한다



정방폭포 43 

― 해바라기 폭포




해바라기 몸속에서 폭포소리가 쏟아진다

가까이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물 흐르는 소리와 햇빛 흐르는 소리 들린다


해바라기들은 제 머리까지 해를 끌어내려

8월의 햇빛 폭포에 푸르게 샤워를 한다

해바라기 밭에서는 정방폭포 소리 들린다


해바라기들은 햇빛 폭포가 되어 더욱 푸르다



정방폭포 44 

― 별꽃과 윤슬 꽃이 피어나는 나무




정방폭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

낮에는 햇빛이 쏟아져 바다에서 꽃이 피고

밤에는 바다의 숨결이 올라가 별꽃이 핀다


별빛과 윤슬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서

아무리 험한 절벽이어도 늘 오르내린다

햇빛과 달빛은 아낌없이 환하게 비춘다


정방폭포는 하루에 두 번씩 몸을 뒤집는데

거대한 나무줄기로 햇빛과 달빛이 흐르고

하늘과 바다에 별꽃과 윤슬 꽃이 피어난다




정방폭포 45 

― 정방폭포에는 언제나




낮에는 할머니가 베를 짜고

밤에는 어머니가 베를 짠다

정방폭포는 쉬지 않고 베를 짠다


낮에는 햇빛으로 베를 짜고

밤에는 달빛으로 베를 짠다

정방폭포에는 늘 해와 달이 산다


낮에는 태평양으로 가고

밤에는 한란산으로 간다

정방폭포는 언제나 오르고 내린다


낮에는 무명천 할머니가 베를 짜고

밤에는 반월산 어머니가 베를 짠다

정방폭포에는 상처와 고향이 함께 있다


낮에는 피에타상과 마리아가 있고

밤에는 비설상과 웡이자랑이 있다

정방폭포에는 절규와 자장가소리가 있다


낮에는 이중섭의 서귀포 환상이 있고

밤에는 강요배의 지는 동백꽃이 있다

정방폭포에는 꽃이 피고 복숭아가 열린다


낮에는 순이 삼촌이 바다 밭을 일구고

밤에는 명준이 중립국으로 배를 타고 떠난다

정방폭포 앞에는 언제나 섶섬과 문섬이 있다



정방폭포 46 

― 길 끝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



나는 언제나 길 끝에서

한걸음 더 내딛고 싶었다


한라산에서 먼 길을 돌아서

길 끝에 서서 바라본다


섶섬과 문섬 사이로 용오름이 오르고

더 먼 곳에서 무지개가 떠오른다


발 밑의 절벽이 무서워서 망설이고 있는데

한라산에서 뒤따라온 바람이 등을 힘차게 밀어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드디어 태평양이 되어있다



정방폭포 47

― 절벽과 사다리



정방폭포 아래 사는 무태장어에게는

오를 수 없는 절벽이지만

절벽을 기어오르는 다슬기에게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징검다리 사다리다


정방폭포 아래에서 오래도록 꿈을 꾸는

이무기는 언젠가는 승천할 수 있지만

정방폭포 위에서 꿈을 포기한

다슬기는 끝내 떨어져서 죽고 말리라


멀리 보이는 수평선도

건널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하면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 되지만

덕판배라도 타고 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태평양을 가슴에 품은 큰 사람이 되리라


관다발을 타고 오르내리는

햇빛과 물이 돌아보면 서귀포는 언제나 

문만 열면 태평양의 가슴으로 활짝 열린다

서귀포의 감귤나무들이 태평양의 바람을 품는다 



정방폭포 48

― 하얗게 지퍼를 내린다



정방폭포가 하얗게 지퍼를 내린다

정방폭포에 백발거사가 살고 있다


문만 열면 태평양인 서귀포

정방폭포가 남대문을 연다

지퍼를 내리고 오줌을 싼다

발이 젖는 늙은이가 되었다


요즘에는 서서 싸지 않는다

남자도 집에서 앉아서 싼다


한라산에 누워있던 설문대

너무 오래 입은 옷이 낡았다

앉기만 해도 엉덩이 보인다

할망의 오줌발은 힘이 세다


남자보다 여자가 힘이 좋다

하르방보다 할망이 더 세다


바람이 분다 하얗게 지퍼를 내린다

수직으로 쏟아지던 폭포가 날아간다

하얀 수직이 푸른 수평으로 날개를 편다


바람은 백발거사를 푸르게 춤추게 한다



정방폭포 49

― 길 끝에서 날개를 편다




길 끝에서 하늘을 본다

길 끝에서 당신을 본다

길 끝에서 날개를 편다


길 끝에서 앞으로 갈까

길 끝에서 뒤돌아 갈까

길 끝에서 멈추어 설까


나무의 길 끝에서 잎이 핀다

나무의 길 끝에서 꽃이 핀다

나무의 길 끝에서 나비 난다


길 끝에서 바다를 본다

길 끝에서 힘차게 뛴다

길 끝에서 날개를 편다


너에게 날아가는 나비 한 마리

태평양을 건너가는 길을 만든다

나는 드디어 너의 하늘에 안긴다


정방폭포에서는

너에게 갈 수 있는 길이 보인다

너의 푸른 하늘이 환하게 보인다



정방폭포 50

― 정신없이 쓰다 보니 정리가 필요하다




정신없이 쓰다 보니 너무 어질러져 있다

이제는 정리가 필요하다

정방폭포도 이제 태풍에 대비를 해야 한다

백발거사의 머리칼이 태풍에 휘날릴 것이다


식물의 언어와 동물의 언어와 폭포의 언어를 

나는 이제 조금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꽃은 벌과 나비와 나방과 잠자리를 부르는

식물의 언어


세상을 둘러보니

벌레는 어디에도 없다

다양한 곤충들이 있을 뿐

벌레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하늘에서 불을 훔친 것은 

프로메테우스가 아니라 식물이다

식물들은 

물과 햇빛만 있으면 살 수 있다


식물들의 과학은

인간보다 훨씬 더 앞서간다

맹물로 가는 자동차를

식물들은 처음부터 타고 다녔다


식물들은 누구라도 광합성을 하는데

인간은 아직까지

광합성 인간으로 진화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인간들은 스스로 

지구를 향하여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


정방폭포 위에서

다시 한번 정방폭포를 본다

아니,

저 먼 곳에서 정방폭포를 다시 본다




정방폭포 51



내가 살았던 이어도에는 서복 선생님도 함께 살고 계셨다

진시황제처럼 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상머슴이 되셨다

이어도는 하늘에도 있고 바다에도 있고 수중에도 있었다

천국에도 있고 연옥에도 있고 지옥에도 있는 공화국이었다

이어도 사람들은 서복 선생님과 서귀포 이야기를 자주 했다

서귀포에서 가져온 불로초 씨앗으로 서천꽃밭도 만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서복 선생의 꿈

나는 그런 꿈속에서 오십육 년 넘도록 살다가 산책을 나왔다

서복 선생님께서 정방폭포에 쓰셨다는 서불과지(徐市過之)

그 멀고도 아름다운 전설의 길을 따라서 걸어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겨서 정방폭포로 간다




徐市過此(之) 서불과차(지)


서복(徐福), 또는 서불(徐巿)은 전국시대 진(秦) 나라의 인물. 자는 군방(君房), 서불(徐巿)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제(齊) 나라 사람이다. 기원전 219년, 방사로 진시황에게 중용되었고, 이후 명령을 받아 어린 남녀 수천 명을 데리고 동쪽으로 불로초를 구하러 갔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서복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사마천 사기의 진시황본기뿐만 아니라 사기의 '회남형산열전', 진수의 정사 삼국지, 후한서 등에 나온다. 기록에 따르면 서복은 중국을 떠나 단주(亶洲) 또는 이주(夷洲)에 도달하였다고 나오는데, 중국에서 이주(夷洲)는 지금의 타이완을, 단주(亶洲)는 일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또한 서복은 처음부터 불로초를 찾을 수 없음을 알고 아예 진시황의 손아귀를 벗어나 자기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일부러 용왕의 명을 빙자하여 어린 남녀 수천 명과 각종 기술자들을 요구하여 데리고 떠났으며, 동쪽 어느 섬에 자기의 왕국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동쪽으로 간 이후의 행방에 대한 전설로는 그가 일본, 대만 또는 제주도에 도달하였다는 전설이 있는데, 서복에 관한 전승은 동아시아 해안 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베링 해협을 건너 알래스카, 즉 아메리카에 도달했다는 전설도 있다.


서복이 다녀갔다는 의미의  서불과차(徐市過此) 혹은 서불과지(徐巿過之)는 글자가 서귀포시 정방폭포 옆에 새겨져 있다. 이 글자 자체는 2000년대 초에 중국인 관광객 유치 차원에서 주변 정리 사업을 할 때 새긴 것이며 원래는 폭포 절벽 어딘가에 새겨져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그 위치를 알 수 없다. 2011년에 서귀포에서 글자를 찾아보겠다고 폭포 주변을 정밀 탐색했지만 발견되지 않았다. 







정방폭포 52 




나는 설문대하르방이 보고 싶었다

설문대할망의 남편이 보고 싶었다

오백장군의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꿈속에서도 하르방을 찾아다녔다

한라산 백록담에서부터 내려왔다

애이리 내 주변에 소나무들이 많다

나무들이 문섬과 섶섬을 보고 있다

조용하던 물소리가 갑자기 커진다

느닷없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바다로 나가서 한라산을 바라보니

설문대할망이 엉덩이를 까고 앉아

아, 시원하게 오줌을 누고 있구나!

설문대하르방은 언제 볼 수 있을까




정방폭포 53




여름 장마가 시작되었다

예부터 정방하폭()이라 하였다

<4.3과 평화> 표지에서도

정방폭포 물소리가 들린다

안쪽은 옛날 소리에 젖는다

전분공장, 단추공장, 창고들

물보라가 전분가루처럼 흩날린다

햇빛을 받으니 단추처럼 반짝인다

물줄기가 갑자기 삼베로 펄럭인다

무명천으로, 날아가버린 턱을 감싼다

무명천 할머니가 무명천을 풀고

무지개를 타고 창을 하기 시작한다

섶섬이 고수인지 문섬이 명창인지

득음한 목소리에 쩌렁쩌렁 울린다

정방폭포는 역시 여름이 제철이다




정방폭포 54




정방폭포는 대한민국 명승 제43호로 지정되었다

정방폭포는 한라산 남쪽 최대의 사삼 학살터였다

너븐숭이 순이 삼촌 목소리가 여기서도 들린다

순이 삼촌 소설이 창작오페라로 꽃을 피우는 동안

정방폭포 영령들은 이제 겨우 위령 공간 얻었네

절벽이 너무 높아서 아직도 올라오지 못하는 영혼들

아직도 바람처럼 파도처럼 허공을 떠돌고만 있네

사람들은 바다로 떨어지는 절경이라며 환호하지만

단추처럼 뚝, 떨어진 죽은 영혼들은 오늘도 눈물만,

정방폭포에 무지개가 자주 떠오르는 것은

그때 떨어져 죽은 영혼들이 다리를 놓는 소리

하늘로 올라가는 길에 자꾸 미끄러지는 흔적

울부짖으며 허우적거리며 토해놓는 붉은 울음

눈동자도 눈꺼풀도 모두 짓물러버린 피눈물

아,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깊은 무지개의 목소리




정방폭포 55




폭포를 만나려면 어디가 좋을까

상류에서 만나는 것이 좋을까

하류에서 만나는 것이 좋을까


우리 인생에서

꼭 한 번 만나야만 한다면

초반부에 만나는 것이 좋을까

후반부에 만나는 것이 좋을까


흐르기만 하는 물은 폭포를 보지 못한다

떨어지는 물만이 절벽을 볼 수 있다


한라산을 내려오며 보았던

작은 폭포들을 돌아보면서

정방폭포 위에 다다른 물줄기

문섬과 섶섬이 있는 태평양을 본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아득한 높이를 가늠하며

온 힘을 다하여 날개를 펼치고 뛰어내린다




* 정방폭포를 쓰기 위해서 현지답사, 자료 조사 및 메모를 시작합니다. 




정방폭포 56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 서귀포라 하였는데

또다시 돌아왔으니 무엇이라 해야만 할까

정방폭포가 더 좋아서 또다시 돌아온 서복

정방폭포와 소남머리 사이에 집을 지었다네

전분공장과 단추공장이 있었던 자리에 글쎄

터를 잡고 아예 살림을 차리고 살아간다네

해방이 되고 3.1절 발포 사건이 일어나고

4.3 무장봉기가 일어나고 초토화 작전으로

단추공장과 전분공장으로 끌려간 사람들

정방폭포 아래로 눈물 떨어뜨려 죽일 때

‘서복과지’글씨에 매달린 영혼들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 정방폭포로 돌아왔다네

가족들은 무서워서 시체도 찾아가지 못하여

동남동녀들과 영혼들과 함께 살림을 차렸다네

무서운 단추공장과 전분공장의 기억을 지우고

죽은 사람들과 함께 불로초를 기르며 살아가네

용왕님도 가끔 찾아와 머물고 가는 이곳에는

소나무 가지에 용왕님의 그림자가 걸려있고

하늘에는 남극성이 피고 땅에는 황근꽃이 뜨네

뼈아픈 고통도 억울함도 원망도 잘 익으면 저렇게

용 같은 소나무로 자라고 남극성으로 빛나고

노랗게 피어나는 무궁화, 황근꽃으로 떠오르는구나                    




정방폭포 57




정방폭포 위쪽 물에 발을 담그고

무섭게 떨어지는 폭포수를 본다

나도 함께 떨어질 것만 같아서

한 발짝 더 뒤로 물러선다

물러서서 먼바다를 본다

하늘과 바다가 닿아서 더욱 푸르다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왔으리라

너븐숭이 순이 삼촌도 왔으리라

선인장 마을 무명천 할머니도 왔고

이덕구도 김달삼도 이재수도 왔으리라

잃어버린 영혼의 몸을 찾고자 왔으리라

정방폭포 위에서 비로소 보인다

폭포는 절벽, 천길 낭떠러지로 보인다

한  때는 공장 앞마당이었던 빨래터

물가에는 이제 제법 큰 소나무도 자라고

숲이 자라도 그날의 아우성 덮을 수 없다

발가락이 간지러워서 문득 발을 내려다보니 

절벽을 기어오른 다슬기가 발등으로 오르고 있다




정방폭포 58




폭포는 모두가

높은 곳에서 떨어진다고 

착각하지 마라


하느님이 보면

모두가 낮고

용왕님이 보면

모두가 높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이

더 낮은 곳으로 떨어지고

발목 아래로 흐르는 물이

더 깊은 곳으로 떨어진다


아스팔트 다리 위에는

오늘도 사람들이 지나가고

내일도 자전거가 지나가고

모레도 자동차가 지나가리라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폭포

바다보다 더 깊은 곳으로 떨어져

다시 한번 높이 솟아오르는 물소리


바다로 가는 물소리가 있다

바다로 가는 발소리가 있다

더 이상 디딜 바닥이 없을 때

우리는 모두 정방폭포가 된다


낮은 곳에서

더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 낮은 곳으로 떨어져서

시체도 찾을 수 없는 영혼들이 있다


늘 낮은 곳에서만 사는 바다는

더 높은 곳을 꿈꾸며

날고 싶어서 날아보고 싶어서

오늘도 파도의 날개를 펼쳐본다




정방폭포 59




정방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은 어디에서 왔을까

한라산에서 출발을 하였으니

백록담에서 헤어진 물도 조금은 섞여 있으리라

미악산을 지나 애릿내를 지나왔으니

애기무덤들의 울음소리도 조금을 섞여 있으리라

복개천 서귀포 시내 지하로 흘러왔으니

서귀포의 어둠의 숨소리도 조금은 섞여 있으리라

자동차가 달리는 다리 아래로 흘러왔으니

자동차 바퀴소리의 그림자도 조금은 섞여 있으리라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다리 아래로 흘러왔으니

사람들의 발자국소리도 조금은 섞여 있으리라

내가 헛묘 속의 주인을 찾아서 여기까지 왔으니

나의 눈물도 조금은 섞여 있으리라

동광에 있는 임문숙 씨 가족과 김여숙 씨 가족의

헛묘에 묻혀있는 주인공들의 눈물도 섞여 있으리라

무등이왓에서 큰넓궤로, 볼레오름으로, 단추공장으로

소남머리로, 정방폭포로 걸어갔던 발자국도 있으리라

정방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속에는

어찌하여 그것들 뿐이겠는가

백록담에 잠시 머물렀던 물은

바다에서 하늘로 다시 올라간 구름이었으며

또다시 지상으로 내려온 빗물이 아니었던가

그 속에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당신이 언젠가 흘렸을 눈물도 조금은 섞여 있으리라

아, 그리하여 오늘은 이렇게 정방폭포로 떨어지고

바다의 윤슬로 반짝이며 서로를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우리들은 함께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고 말리라




정방폭포 60




삼십 년 넘게 시를 썼지만 아직도 나는

나의 대표작이 없구나

나의 시의 농사는 이렇게 망하는 것일까

나도 나의 대표작 한 편 쓰려고

화두 하나를 잡았는데 

이것이 바로 정방폭포로구나

하필 잡은 화두가

'이 뭣꼬'도 아니고 정방폭포라니

정방도 아니고 폭포도 아니고 정방폭포라니

차라리 나무라면 

끝까지 붙들고 있으면 언젠가는 자라겠지만

하필 붙잡은 화두가 정방폭포라서

붙잡을수록 자꾸만 아래로 떨어지기만 하는구나

정방에 앉아서 참선이라도 하려 해도

자꾸만 떨어지는 폭포수에 마음까지 젖는구나

그래도 한 번 잡은 화두는 끝까지 잡아야만

무엇인가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나는 오늘도 정방폭포 속에서 살아간다

정방폭포 하나 붙들고 날아오를 꿈에 젖는다

하늘과 바다를 뻥 뚫고 빛 속으로 날개를 편다




정방폭포 61 




발아래 길이 없어지는 순간

갑자기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구름다리도 없었고

무지개다리도 없었다

폭포수는 빛이 되어 날기 시작했다

환한 빛 속에 구슬들이 반짝였다

하늘빛 구슬과 폭포수빛 구슬과

바다빛 구슬이 반짝이며 떨어졌다

푸르고 하얗고 파아란 빛의 구슬들

폭포수뿐만 아니라 모든 풍경이

노을빛으로 변하여 펄럭이고 있다

그 노을빛 풍경 속에서

베 짜는 소리가 들린다

무명천 할머니께서 달빛처럼 운다

무명천 할머니의 절창이

새가 되어 날아간다

뒤늦게 수의 한 벌 얻어 입은 영혼들

베틀소리 절창에 날개를 달고

푸른 하늘로 올라가 별빛으로 반짝인다




정방폭포 62




제주도는 어디라도 한라산에서 내려온 물이 흐르고

서귀포는 어디라도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우리들은 어찌하여 한라산에서 만나 정방폭포로 왔을까

서귀면에서도 오고 중문면에서도 오고 안덕면에서도 오고

대정면에서도 오고 남원면에서도 오고 표선면에서도 오고

산남지역 사람들은 어찌하여 이렇게 모두 이곳으로 왔을까

한라산은 어찌하여 이렇게 태평양이 되었을까

제주도는 어찌하여 이렇게 태평양의 날개가 되었을까




정방폭포 63




정방폭포, 화두 하나 들고

행주좌와어묵동정으로 수행하니

나도 모르게 나는 정방폭포가 된다

폭포가 되어 깊이 바라보니

절벽을 기어오르는 다슬기들이 있다

큰 물에 떠내려간 저 다슬기들은

언제쯤 올라가 다리 아래서 쉴 수 있을까

폭포수가 되어 깊이 뒤돌아보니

서복 일행이 왔다가

내 몸 절벽에 '서복과차' 새기고

떠나간 그 옛날의 사람들도 생각이 나고

난리가 나서 많은 사람들이 끌려와

총을 맞고 붉은 피를 흘리며

나와 함께 떨어지던 비명소리도 들리고

동광 사람들이 찾아와서 시체를 찾지 못하고

영혼만 모셔가서

헛묘를 만들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그 후로 온몸에 바느질 자국이 선명한

선인장 마을에서 왔다는 무명천 할머니가 와서

손수 만든 수의 한벌씩 입혀주던 생각도 나고

너븐숭이 옴팡밭에서 왔다는 순이 삼촌이

정방폭포 아래에서 뼈라도 찾아보겠다며

호미질을 하던 일도 생각이 나고

곁에 있던 단추공장과 전분공장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불로장생을 꿈꾸는 서복전시관이 들어서고

섶섬과 새섬과 문섬과 범섬을 지나

저 먼바다에서는 오늘도 윤슬로 반짝이고

나도 따라서 바다에서 돌아보면

나의 고향 같은 백록담이 보이고

더 먼 고향 같은 하늘도 보인다

나는 오늘도 정방폭포가 되어

걷고 머물고 앉고 눕고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가만히 있어도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는 선이다

행주좌와 어목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 무시선 무처선(無時禪 無處禪)






너에게 나를 먼저 보낸다




너는 어찌하여 나를 만날 수 없을까

너는 어찌하여 나를 만질 수 없을까

너는 어찌하여 나를 안을 수 없을까


나는 어찌하여 너를 만날 수 없을까

나는 어찌하여 너를 만질 수 없을까

나는 어찌하여 너를 안을 수 없을까


너와 나는 언젠가 꼭 만나야만 한다

너와 나는 언젠가 꼭 만져야만 한다

너와 나는 언젠가 꼭 안아야만 한다


너와 나는 우리가 되어야 꽃이 된다

너와 나는 우리가 되어야 밥이 된다

너와 나는 우리가 되어야 삶이 된다


함께 우리가 되기 위하여 내가 먼저

너에게 나를 꿈과 사랑으로 보낸다

행복으로 꽃피는 삶을 위하여 간다




나는 요즘 내 삶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길에서 나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서 찾고 있다. 한라산에서 내려온 물이 서귀포 시내의 복개천 안으로 흐르다가, 이제 잠시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이다가 마지막 다리 아래를 흐르고 있다. 머지않아 이 물은 더 이상 길이 없어질 것이다. 길 끝에서 허공에 발을 내딛어야만 할 것이다. 나의 삶도 이제는 그럴 것이다. 그동안 무난한 길을 걸어왔던 나는 이제 그 길 끝에 도달하고 말았다. 이제는 길 없는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3년만 근무하고 나오려고 했던 발전소에서 나는 벌써 36년 가까이 머뭇거리고 있다. 이제 1년 후면 임금피크에 접어들고 3년 후에는 어쩔 수 없이 나와야만 한다. 나는 그동안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에 취해서 살았다. 삶의 의미를 깊이 깨닫지 못하고 월급의 마약에 취해서 정신없이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나의 지금 심정은 정방폭포 위에서 어떻게 날개를 펼쳐야만 바다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과연 나의 날개를 펼치고 날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과연 사랑하는 당신을 기어이 만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정방폭포 4·3 희생자 위령공간 제막식. 고상현 기자



바다와 나의 숨결이



바다는 언제나 숨을 멈추지 않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바다는 언제나 숨을 멈추지 않는다

바다는 오늘도 살기 위하여 숨 쉰다

바다는 오늘도 쓰레기 가득 토한다

나도 자주 쉬지 않고 울분을 토한다

바다와 나의 숨결이 만나 춤을 춘다

바다와 나의 숨결이 만나 하늘 된다

바다와 나의 숨결이 만나 구름 된다

바다와 하늘 사이에 틈이 있어 산다

바다와 하늘 사이에 틈이 좋아 산다

바다와 나 사이에도 틈이 있어 좋다

하늘과 나 사이에도 틈이 있어 산다




https://youtu.be/BBafqg4lQm8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정방폭포 서(序)


정방폭포 서()

― 다시 시작하는 순례



<4·3과 평화> 여름의 얼굴이 된 정방폭포

상처가 깊을수록 많은 눈물을 쏟아서 더욱 하얗다

새하얀 무명천이 하늘에서 끝없이 내려온다

무명천 할머니께서 수의를 만들고 계시는지

만가(輓歌)처럼 베 짜는 소리도 함께 들린다


얼굴 안쪽에 그늘처럼 흑백사진 한 장이 숨어있다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전분공장과 창고들이 보이고

멀리, 목호(牧胡)들의 범섬까지 뚜렷하게 보인다

물빛과 무명천은 여전히 하얗고

발을 담그고 세수도 하였을 것만 같은 여울물소리


더 이상 발을 디딜 수 없는 노래는 비명(悲鳴)이 된다

길을 잃고 느닷없이 단애(斷崖) 아래로 떨어진 사람들

서귀, 중문, 남원, 안덕, 대정, 표선, 한라산 남쪽 사람들

태평양을 헤매다가 75년 만에 작은 집으로 돌아온다


불로장생을 꿈꾸며 불로초를 찾아왔던 서복이 머문 곳

지금도 대궐 같은 집에서 불로초를 가꾸고 있는 곳

불로초 공원에 만든 그 작은 공간으로 돌아오는 영혼들

타고난 제 삶도 끝까지 살지 못하고 벼락처럼 떠나버린

그 많은 정방폭포의 사람들

광풍에 느닷없이 길이 끊어져 허공에 발을 딛고 

한꺼번에 바다로 추락해 버린 목숨들, 오늘도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바다에서 길을 찾고 있는 사람들


그중의 한 사람을 따라서 긴 순례를 다시 시작한다



* 정방폭포는 한라산 남쪽 최대의 학살터였다. 200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75년 만인 2023년 5월에 비로소 서복불로초공원 한쪽에 작은 4·3 희생자 위령공간이 마련되었다.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 11. 20. 윤동주




* 정방폭포에서 베틀소리가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만가(輓歌) 소리도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아우성소리가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자장가소리도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원자폭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일본이 항복하는 소리 들린다.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일장기 대신 성조기가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1945년부터 1950년까지 대한민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에 윤동주와 송몽규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었다. 그전에 이육사도 감옥에서 죽었다. 해방은 원자폭탄처럼 떨어졌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원자폭탄의 위력은 제주도까지 휘몰아쳤다. 해방에서부터 한국전쟁까지 제주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아니, 어떻게 죽었을까? 산에서 죽고 바다에서 죽고 감옥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왜 돌아오지 못했을까? 윤동주와 송몽규는 시체라도 돌려받았는데, 어찌하여 제주도 사람들은, 대전 골령골에 암매장이 되거나 어느 깊은 바다에 수장이 되고 말았을까.


왜 제주도의 폭포는 남쪽에만 있을까? 자세히 살펴보니, 북쪽의 폭포들은 낮은 포복으로 기어 오고 있었다. 윤동주 시인이 요즘 시인이라면 어떤 시를 쓰고 있을까? 나는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며 나의 꿈과 나의 삶과 나의 문학을 처음부터 다시 한번 점검하며 순례를 떠난다. 윤동주의 거울 하나 들고서 순례를 다시 시작한다.


"하늘을 보지 못해서 부끄럼이 너무 많구나! 나는 지금껏 죽어가는 것들을 얼마나 사랑했을까? 나는 이제라도 나한테 주어진 길이 아니라,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길을 찾아서 걸어가고 싶다. 오늘 밤에도 나의 별은 잠들지 못하고 추위에 떨고 있구나."



https://brunch.co.kr/@yeardo/1585





노인성이 유숙하는 섬


정방폭포 1

― 노인성이 유숙하는 섬



서귀포는 어디라도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서귀포혁신도시에서 중문관광단지까지

이어도 길을 걷다가 태평양으로 간다

설문대할망의 막내아들을 만나러 간다

남극노인성이 유숙하는 이어도로 간다


바다에서 해(海)를 본다 물이 아프다

인간들의 욕망이 낳은 쓰레기들의 섬

썩지도 않는 플라스틱 욕망들의 얼굴,


바다 해(海) 글자를 더 자세히 본다

어머니가 보인다 어머니가 아프다

아픈 어머니에게 방사능 오염수까지 먹인다

태평양의 수평선이 트로이목마를 끌고 온다

북극곰의 신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바다와 하늘이 함께 뜨거워지고 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막내아들이

뜨거운 어머니 이마에 물수건을 올린다

유숙하던 노인성도 곁에서 돕는다

서천꽃밭 꽃감관도 불사화를 가져온다


용궁으로 가는 올레에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노랫소리 들려온다 하늘에는 서천꽃밭이 있고 땅에는 마고성이 있고 바다에는 이어도가 있다


어머니를 살리려고 노인성과 꽃감관도 떠나지 못한다



* 2003년에 태어난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가 성인이 되었다

* 인간들의 욕망은 바다에 쓰레기섬을 만들고 핵폐기물도 버린다

* 서귀포시 도로명주소에 '이어도로'가 있다




병원 / 윤동주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 사실 윤동주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이 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원제는 이 시 제목처럼 '병원'이었다고 한다. 윤동주의 사후에 고이 보관해 왔던 시들을 모아 세상에 내놓은 지인 정병욱은 당시의 그의 말을 이렇게 회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 인지 후에 시집의 제목은 우리가 익히 아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되어 출간되었다. (내가 홀로 추측해 보건대, 윤동주 시인은 아마도 처음에는 <병원>이라는 제목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마지막으로 서시를 쓰면서 책 제목을 바꾸지 않았을까 생각을 한다. 책 제목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서시의 핵심 단어들을 나열해 놓은 단어들이기 때문이다. 즉,  책의 제목은 서시의 키워드만 뽑아서 나열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병원입니다. 지금은 어디가 가장 아픈 곳일까. 지금은 우리들의 어머니인 지구가 가장 아픈 병원입니다. 윤동주 시인이 지금, 우리 시대에 우리들과 함께 살아있다면 아마도 아픈 지구를 먼저 노래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늙은 의사는 아직도 젊은이의 병을 모릅니다."


18. 윤동주 문학관 (brunch.co.kr)



나무들의 거리는 적당하다(메모)




나무들은 함부로

남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무들은

한평생 한 자리를 지킨다

그림자도 평생

멀리는 떠나가지 않는다

그렇게 모여사는 

나무들의 숲은 참 아름답다


나무의 가지들은 함부로

남들의 하늘을 욕심내지 않는다

다른 가지들을 배려해서

빈 허공에만 손을 뻗는다

신중하지 못해서 엉켜버린 가지들은

아픈 사람들처럼 상처가 많다


사람들은 거리를 지키지 못해서

서로에게 상처를 많이 준다

가족들은 거리가 없어서

오히려 상처를 더 많이 입는다

연인들 또한 거리 때문에 싸운다

가장 적당한 거리는

서로가 보이는 곳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서로를 지켜주는 친구들의 거리다


딱 나무들의 거리만큼

친구들의 숲은 적당하다

홀로 떨어져서 바라보는

나무의 거리도 때로는 필요하다









앞표지
제1부
제2부
제3부
제4부
제5부
제6부
뒤표지






정방폭포 윤동주를 읽는다


― 정방폭포가 윤동주를 읽는다, 정방폭포 윤동주 읽기



by강산Nov 29. 2023

아래로



정방폭포 윤동주를 읽는다

― 정방폭포가 윤동주를 읽는다, 정방폭포 윤동주 읽기



<4·3과 평화> 정방폭포 찾아간다

정방폭포는 <윤동주>를 읽고 있다

검은 주상절리의 서랍을 열어본다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 11. 20. 윤동주)




정방폭포는 한라산 남쪽 최대의 학살터였다. 75년 만인 2023년 5월에 비로소 서복 불로초 공원 한쪽에 작은 4·3 희생자 위령공간이 마련되었다.


정방폭포에서 베틀소리가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만가(輓歌) 소리도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아우성소리가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자장가소리도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원자폭탄 떨어지는 소리도 들린다. 일본이 항복하는 소리도 들린다.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일장기 대신 성조기가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1945년부터 1955년까지 대한민국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에 윤동주와 송몽규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었다. 그전에 이육사도 감옥에서 죽었다. 해방은 원자폭탄처럼 떨어졌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원자폭탄의 위력은 제주도까지 휘몰아쳤다. 해방에서부터 한국전쟁까지 제주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아니, 어떻게 죽었을까? 산에서 죽고 바다에서 죽고 감옥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왜 돌아오지 못했을까? 윤동주와 송몽규는 시체라도 돌려받았는데 어찌하여 제주도 사람들은 골령골에 암매장되거나 바다에 수장되고 말았을까.


왜 제주도의 폭포는 남쪽에만 있을까? 자세히 살펴보니, 북쪽의 폭포들은 낮은 포복으로 기어 오고 있었다. 윤동주 시인이 요즘 시인이라면 어떤 시를 쓰고 있을까? 나는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며 나의 꿈과 나의 삶과 나의 문학을 처음부터 다시 한번 점검하며 순례를 떠난다. 윤동주의 거울 하나 들고서 순례를 다시 시작한다.


"하늘을 보지 못해서 부끄럼이 너무 많다. 나는 지금껏 죽어가는 것들을 얼마나 사랑했을까? 나는 지금껏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했을까? 나는 이제라도, 나한테 주어진 길이 아니라,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길을 찾아서 걸어가고 싶다. 오늘 밤에도 나의 별들은 잠들지 못하고 추위에 떨고 있다."








별 헤는 밤


季節(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색여지는 별을
이제 다 못헤는것은
쉬이 아츰이 오는 까닭이오、
來日(내일)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靑春(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追憶(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憧憬(동경)과
별 하나에 詩(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어머니、

어머님、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식 불러봅니다。 小學校(소학교) 때 冊床(책상)을 같이 햇든 아이들의 일홈과 佩(패)、鏡(경)、玉(옥) 이런 異國少女(이국소녀)들의 일홈과 벌서 애기 어마니 된 게집애들의 일홈과、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일홈과、비둘기、강아지、토끼、노새、노루、「프랑시쓰·쨤」 「라이넬·마리아·릴케」 이런 詩人(시인)의 일홈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北間島(북간도)에 게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러워
이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우에
내 일홈자를 써보고、
흙으로 덥허 버리엿습니다。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버레는
부끄러운 일홈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一九四一、十一、五.)* 윤동주

그러나 겨을이 지나고 나의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우에 파란 잔디가 피여나듯이
내일홈자 묻힌 언덕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 할게외다。



* 원문에서는 이 날짜 표시가 이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이어지는 마지막 연은 정병욱의 평가를 듣고 나중에 윤동주가 추가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정방폭포 윤동주 읽기

1. 정방폭포 윤동주를 읽는다

2. 정방폭포가 윤동주를 읽는다

3. 윤동주가 정방폭포를 읽는다



4·3과 평화가 정방폭포를 찾아간다

정방폭포는 윤동주를 읽고 있다

검은 주상절리의 서랍을 열어본다




정방폭포 서()



새하얀 무명천이 하늘에서 끝없이 내려온다

무명천 할머니께서 수의를 만들고 계시는지

만가(輓歌)처럼 베 짜는 소리도 함께 들린다


주상절리 서랍에서 흑백사진 한 장 꺼낸다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전분공장과 창고들이 보이고

멀리, 목호(牧胡)들의 범섬까지 뚜렷하게 보인다

물빛과 무명천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하얗고

발을 담그고 세수도 하였을 것만 같은 여울물소리


더 이상 발을 디딜 수 없는 노래는 비명(悲鳴)이 된다

길을 잃고 느닷없이 단애(斷崖) 아래로 떨어진 사람들

서귀, 중문, 남원, 안덕, 대정, 표선, 한라산 남쪽 사람들

태평양을 헤매다가 75년 만에 작은 집으로 돌아온다


불로초 공원에 만든 그 작은 공간으로 돌아오는 영혼들

타고난 제 삶도 끝까지 살지 못하고 벼락처럼 떠나버린

그 많은 정방폭포의 사람들

광풍에 느닷없이 길이 끊어져 허공에 발을 딛고 

한꺼번에 바다로 추락해 버린 목숨들, 오늘도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바다에서 길을 찾고 있는 사람들


그중의 한 사람을 따라서 긴 순례를 다시 시작한다

윤동주를 읽던 정방폭포가 젖은 몸으로 따라나선다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 11. 20. 윤동주)




정방폭포는 한라산 남쪽 최대의 학살터였다. 75년 만인 2023년 5월에 비로소 서복 불로초 공원 한쪽에 작은 4·3 희생자 위령공간이 마련되었다.


정방폭포에서 베틀소리가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만가(輓歌) 소리도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아우성소리가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자장가소리도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원자폭탄 떨어지는 소리도 들린다. 일본이 항복하는 소리도 들린다.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일장기 대신 성조기가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1945년부터 1955년까지 대한민국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에 윤동주와 송몽규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었다. 그전에 이육사도 감옥에서 죽었다. 해방은 원자폭탄처럼 떨어졌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원자폭탄의 위력은 제주도까지 휘몰아쳤다. 해방에서부터 한국전쟁까지 제주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아니, 어떻게 죽었을까? 산에서 죽고 바다에서 죽고 감옥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왜 돌아오지 못했을까? 윤동주와 송몽규는 시체라도 돌려받았는데 어찌하여 제주도 사람들은 골령골에 암매장되거나 바다에 수장되고 말았을까.


왜 제주도의 폭포는 남쪽에만 있을까? 자세히 살펴보니, 북쪽의 폭포들은 낮은 포복으로 기어 오고 있었다. 윤동주 시인이 요즘 시인이라면 어떤 시를 쓰고 있을까? 나는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며 나의 꿈과 나의 삶과 나의 문학을 처음부터 다시 한번 점검하며 순례를 떠난다. 윤동주의 거울 하나 들고서 순례를 다시 시작한다.


"하늘을 보지 못해서 부끄럼이 너무 많다. 나는 지금껏 죽어가는 것들을 얼마나 사랑했을까? 나는 지금껏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했을까? 나는 이제라도, 나한테 주어진 길이 아니라,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길을 찾아서 걸어가고 싶다. 오늘 밤에도 나의 별들은 잠들지 못하고 추위에 떨고 있다."




노인성이 유숙하는 섬



서귀포는 어디라도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서귀포혁신도시에서 중문관광단지까지

이어도 길을 걷다가 태평양으로 간다

설문대할망의 막내아들을 만나러 간다

남극노인성이 유숙하는 이어도로 간다


바다에서 해(海)를 본다 물이 아프다

인간들의 욕망이 낳은 쓰레기들의 섬

썩지도 않는 플라스틱 욕망들의 얼굴,


바다 해(海) 글자를 더 자세히 본다

어머니가 보인다 어머니가 아프다

아픈 어머니에게 방사능 오염수까지 먹인다

태평양의 수평선이 트로이목마를 끌고 온다

북극곰의 신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바다와 하늘이 함께 뜨거워지고 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막내아들이

뜨거운 어머니 이마에 물수건을 올린다

유숙하던 노인성도 곁에서 돕는다

서천꽃밭 꽃감관도 불사화를 가져온다


용궁으로 가는 올레에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노랫소리 들려온다 하늘에는 서천꽃밭이 있고 땅에는 마고성이 있고 바다에는 이어도가 있다


어머니를 살리려고 노인성과 꽃감관도 떠나지 못한다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1940년 12월 윤동주)




2003년에 태어난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가 성인이 되었다. 인간들의 욕망은 바다에 쓰레기섬을 만들고 핵폐기물도 버린다. 서귀포시 도로명주소에 '이어도로'가 있다.


사실 윤동주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이 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원제는 이 시 제목처럼 '병원'이었다고 한다. 윤동주의 사후에 고이 보관해 왔던 시들을 모아 세상에 내놓은 지인 정병욱은 당시의 그의 말을 이렇게 회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 인지 후에 시집의 제목은 우리가 익히 아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되어 출간되었다. (내가 홀로 추측해 보건대, 윤동주 시인은 아마도 처음에는 <병원>이라는 제목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마지막으로 '서시'를 쓰면서 책 제목을 바꾸지 않았을까 생각을 한다. 책 제목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서시의 핵심 단어들을 나열해 놓은 단어들이기 때문이다. 즉,  책의 제목은 서시의 키워드만 뽑아서 나열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병원이다. 지금은 어디가 가장 아픈 곳일까? 지금은 우리들의 어머니인 지구가 가장 아픈 병원이다. 윤동주 시인이 지금, 우리 시대에 우리들과 함께 살아있다면 아마도 아픈 지구를 먼저 노래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늙은 의사는 아직도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옛날에는 사람만 병들고 자연은 건강했지만 이제는 사람들 때문에 자연까지 병이 들었다. 이제는 사람과 지구를 함께 구해야만 한다."





견우와 직녀처럼




오늘은 동광리 무등이왓으로 사람들이 몰려가는 날

3년째 오늘은 정방폭포 수박령(水縛霊)들 고향 가는 날

무등 타고 놀던 아이들 대신 지박령(地縛霊)들만 사는 곳

아랫마을 간장리 사람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드는 날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 빈 집터에 조를 함께 심는 날

영귀소리에 불려 나온 조릿대밭 영혼들 술 한 잔 받는 날

오메기떡 만들어서 빚은 고소리술 한 잔 하는 날

그때의 사람들처럼 큰넓궤에서 50일 동안 살다 나온 술

3만 명의 영령들이 함께 맛을 본 고소리술 얻어 마시는 날

잃어버린 마을에 사람들이 찾아와서 

해원과 상생과 평화의 바람이 되어 스스로 부는 날

75년 동안 한 곳에서만 붙들려 살았던 

수박령(水縛霊)과 지박령(地縛霊)이 만나는 날

정방폭포의 물소리도 바람으로 함께 따라서 오는 날

75년 만에 마련한 정방폭포 4·3 위령 공간에 모였던 

억울한 영령들이 무등이왓으로 한꺼번에 따라서 몰려오는 날

수박령(水縛霊)의 몸에서는 아직도 너무 많은 비가 내리는 날

안덕을 따라서 대정, 중문, 서귀, 남원, 표선이 따라오는 날

지박령(地縛霊)과 수박령(水縛霊)이 견우직녀처럼 만나는 날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수정 예정)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을 만들려면 오늘은 조 모종을 옮겨 심어야만 한다 새벽부터 비가 너무 많이 내린다 지난 5월에 만들어진 정방폭포 4·3 위령 공간 때문이다 물의 영혼으로 살았던 수박령들이 불로초 공원으로 한꺼번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정방폭포 수박령들이 동광리 지박령을 만나려고 한꺼번에 귀향하여 얼싸안고 울기 때문이다


동광리 무등이왓 땅살림 코사를 복지회관 실내에서 지낸다 

안개비로 가득한 조 밭으로 가서 영귀소리로 원혼들을 불러 모아 모시고 온다

함박 가득 담긴 생메 위의 청댓잎은 더욱 푸르고 

156개의 술잔이 더욱 빛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비는 문 밖에서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다

조 밭에서 해야 할 땅울림도 안에서 하고 말과 소도 안에서 울고

김매기와 갈치잡이와 멜잡이도 안에서 하고 안개비는 멀뚱하게 쳐다만 본다


사람들은 점심으로 떡과 국수를 먹고 돌아가고 

나는 홀로 헛묘와 무등이왓으로 젖으며 걸어간다


헛묘와 충혼묘지 사이에 있던 검문소는 오래전에 떠났다 출입을 통제하던 검문소는 사라졌다 동광육거리는 이제 세월처럼 돌아간다 회전식 로터리로 바뀌어 차들도 돌아간다 나도 따라서 돌아간다 이제는 이곳도 거치지 않고 평화로를 달릴 수 있다 육신을 찾지 못한 헛묘와 영혼을 찾지 못한 충혼묘지의 배롱나무꽃은 짙은 안개비로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니 발자국소리를 듣고 깨어난다 헛묘에서 깨어난 영혼들은 삼밧구석마을로 집을 찾아가고 나는 홀로 무등이왓으로 간다 양잠단지 가는 길가에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 검은 표지석이 있다 무등이왓은 입구부터 조릿대들의 세상이다 강귀봉 우영팟의 최초학살터에는 더덕 덩굴이 가득하다 더덕꽃은 아직 피지 않았고 푸른 조릿대들만 볕뉘라도 건져보려는 듯 뜨물 같은 안개비를 조리질하고 있다 최초 학살터 바로 곁에 광신사숙이 있다  아직도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는 지름길보다 에움길로 간다 말방에(연자방아)터를 지나 잠복학살터로 간다 말방아는 보이지 않고 태양광 패널들만 안개비를 맞고 있다 무너진 돌담과 조릿대들만 길을 비켜준다 아마도 이 오래된 팽나무가 있는 밭에서 마을 이름이 정해졌을 것이다 아이들은 이 팽나무를 오르며 열매도 따먹고 놀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밭을 매었을 것이다 이 팽나무 그늘에서 자치기 하며 놀았던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 대신 송악덩굴이 올라가 저물도록 내려오질 않는다 별아이비도 뒤늦게 따라서 올라간다 잠복학살터에서 짚더미와 멍석에 쌓여 불태워졌던 사람들은 지금도 뜨거워서 안개비 속에서도 훌떡훌떡 뛰어오르고 있다 뒤늦게라도 불을 끄려는 듯 이곳에는 물탱크가 만들어져 있다 이제는 샘물 대신에 농업용수를 퍼올리고 있다 이 물탱크 뒤쪽에 조밭이 있다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을 파종하고 키우는 오메기밭이 있다 오늘은 오메기밭 가득 안개비가 흘러넘친다 첫해에는 온통 돌밭이었다 오메기를 심을 수 있는 조 밭은 반도 안 되던 밭이 이제는 흙을 돋아서 오메기밭을 두 배로 늘렸다 갈수록 더 늘어날 것만 같다


오래도록 젖으며 홀로 걷다 보니 바람을 조리질하는 무등이왓 조릿대길에 볕뉘가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슬픈 족속(族屬)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1938년 9월, 윤동주) 




제주 4·3 당시 130여 가구가 거주한 무등이왓은 ‘잃어버린 마을’ 122곳 가운데 가장 큰 마을로, 조와 메밀, 콩 등을 재배했다. 1948년 11월 15일 토벌대가 무등이왓 마을로 진입해 주민 10명을 총살했으며, 21일에는 주민 3명을 총살하고 마을을 불태웠다. 동광리는 무등이왓(130여 가구)과 조수궤(10여 가구), 시장밧(3 가구), 간장리(10여 가구), 삼밧구석(45 가구) 등 5개 자연마을로 이뤄진 중산간 마을로 4·3 당시 최소한 172명이 희생됐으며, 인근에는 주민들이 피신 생활을 했던 큰넓궤가 있다. 큰넓궤에 피신해 있던 사람들은 50일 만에 발각되어 볼레오름까지 도망을 갔으나 모두 붙잡혀 정방폭포에서 사살되었다.


우리 민족은 슬픈 족속이다. 탐라국의 족속은 더욱 슬픈 족속이다. 탐라국의 예술가들이 슬픈 족속을 위로하기 위하여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에서 봄부터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 하기 위하여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아니, 이미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하여도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탐라국의 윤동주를 위하여, 탐라국의 송몽규를 위하여 의미 있는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반야심경




엘리베이터 속에서 폭포 소리가 들린다

엘리베이터 속에서 정방 모습이 보인다

정방폭포 절벽을 기어올라가는 다슬기처럼

한참을 멈췄다가 다시 올라간다

나를 끌어올리는 엘리베이터 로프도 보인다

나를 하늘로 인도하는 것은

하느님의 수염이 아니라

기름이 잔뜩 발라진 검은 쇠줄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계단을 오른다

쇠줄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오른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스스로 올라간다

아파트 옥상에는 하늘타리꽃이 피어난다

별처럼 하얗게 피어나는 하늘타리의 꽃이

반야심경(般若心經)을 독송하고 있다

반야심경(半夜心經)을 염불하고 있다

깊은 밤의 마음을 뚫고 만다라가 핀다

붉게 핀 칸나의 꽃들은 합장을 하고

도라지꽃들은 묵언수행을 하고 있다

푸른 고추들의 얼굴에 붉은빛이 돌고

토란잎에 매달린 취우들의 눈빛이 맑다

흙의 가슴에서는 고구마 순의 상처에서

이제 막 뿌리를 만들며 어둠을 뚫는다

땅속에서 반야심경(半夜心經) 소리

하늘에서 반야심경(般若心經) 소리

마음속으로 반야반야(半夜般若) 소리

저 멀리 보이는 드림타워에서도

정방폭포 소리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밤을 알아야 낮을 알고

달을 알아야 해를 알고

어둠의 그림자를 알아야 빛이 보인다

나는 이제 반야에서 천천히 줄을 타고 내려온다

260자의 윤슬이 마음의 경전으로 빛난다

마음의 경전 속에서 바다는

파도를 불러 오도송(悟道頌) 하나 읊고 있다



술가락


  

우리 부부는 인제는 굶을 도리밖에 없엇다.
잡힐 것은 다 잡혀먹고 더 잡힐 것조차 없엇다.
「아- 여보! 어디좀 나가봐요!」
안해는 굶엇것마는 그래도 여자가 특유(特有)한 뾰루퉁한 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
나는 다만 말없이 앉어 잇엇다.
안해는 말없이 앉아 눈만 껌벅이며 한숨만 쉬는 나를 이윽히 바라보더니

말할 나위도 없다는 듯이
얼골을 돌리고 또 눈물을 짜내기 시작한다.
나는 아닌게 아니라 가슴이 아펏다. 그러나 별 수 없었다.
둘 사이에는 다시 침묵이 흘럿다.
「아 여보 조흔수가 생겻소!」얼마동안 말없이 앉아 잇다가 나는 문득 먼저 침묵을 때트렷다.
「뭐요? 조흔수?」무슨 조흔수란 말에 귀가 띠엿는지 나를 돌아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아니 저 우리 결혼할 때… 그 은술가락말이유」
「아니 여보 그래 그것마저 잡혀먹자는 말이요!」
내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안해는 다시 표독스러운 소리로 말하며 또 다시 나를 흘겨본다.
사실 그 술가락을 잡히기도 어려웟다.
우리가 결혼할 때 저- 먼 외국(外國) 가잇는 내 안해의 아버지로부터 선물로 온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그 술가락과 함께 써보냇던 글을 나는 생각하여보앗다.
「너히들의 결혼을 축하한다. 머리가 히도록 잘 지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이 술가락을 선물로 보낸다.
이것을 보내는 뜻은

너히가 가정을 이룬뒤에 이술로 쌀죽이라도 떠먹으며 굶지말라는 것이다.

만일 이술에 쌀죽도 띠우지 안흐면

내가 이것을 보내는 뜻은 어글어 지고 만다.」대게 이러한 뜻이엇다.
밥 먹는데 무엇보다도 필요한 안해의 술가락이 없음을 그때서야 깨달앗던 까닭이다 

굶은 나는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없이 「여보 어찌 하겟소 할 수 잇소」
나는 다시 무거운 입을 열고 힘없는 말로 안해를 다시 달래보앗다. 안해의 빰으로 눈물이 굴러 떨어지고 잇다.
「굶으면 굶엇지 그것은 못해요.」 안해는 목메인 소리로 말한다.
「아니 그래 어찌겟소. 곧 찾아내오면 그만이 아니오!」 나는 다시 안해의 동정을 살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없이 풀이 죽어 앉어잇다. 이에 힘을 얻은 나는 다시
 「여보 갖다 잡히기오 발리 찾어내오면 되지 안겟소」 라고 말하엿다.
「글세 맘대로 해요」 안해는 할 수 없다는 듯이 힘없이 말하나 뺨으로 눈물이 더욱더 흘러내려오고잇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전재산인 술가락을 잡히기에는 뼈가 아팟다.
그것이 운수저라 해서보다도 우리의 결혼을 심축하면서 멀리 ××로 망명한 안해의 아버지가
남긴 오직 한 예물이엇기 때문이다. 「자 이건 자네 것 이건 자네 안해 것-세상없어도

이것을 없애서 안되네」 이러케 쓰엿던
 그 편지의 말이 오히려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런 숟가락이건만 내것만은 잡힌지가 벌서 여러달이다.
술치 뒤에에는 축(祝)지를 좀 크게 쓰고

그 아래는 나와 안해의 이름과 결혼이라고 해서(楷書)로 똑똑히 쓰여잇다.
나는 그것을 잡혀 쌀, 나무, 고기, 반찬거리를 사들고 집에 돌아왓다.
안해는 말없이 쌀음 받어 밥을 짓기 시작한다. 밥은 가마에서 소리를 내며 끓고잇다.
구수한 밥내음새가 코를 찌른다. 그럴때마다 나는 위가 꿈틀거림을 느끼며 춤을 삼켯다.
밥은 다되엇다. 김이 뭉게뭉게 떠오르는 밥을 가운데노코 우리 두 부부는 맞우 앉엇다.
밥을 막먹으려던 안해는 나를 똑바로 쏘아본다.
「자, 먹읍시다.」 미안해서 이러케 권해도 안해는 못들은체 하고는 나를 쏘아본다.
급기야 두 줄기 눈물이 천천이 안해의 볼을 흘러 나리엇다.

웨 저러고 잇을고? 생각하던 나는 「앗!」하고 외면하엿다.
밥 먹는데 무엇보다도 필요한 안해의 술가락이 없음을 그때서야 깨달앗던 까닭이다.


(1935년1월1일, 송몽규,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콩트 당선작)



윤동주에게는 송몽규가 있었다. 나에게는 누가 있을까. 윤동주에게 송몽규가 없었다면 과연 오늘날의 윤동주가 있을 수 있었을까. 나에게 과연 그런 사람이 있는가? 가만히 다시 생각하니 나에게도 송몽규 같은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곁에 있었구나!




시의 씨앗


서랍



바다가 하늘의 서랍을 열었다

하늘의 서랍 안에는

하늘의 눈물이 가득 담겨있다

눈물과 함께 담겨 있을

하늘의 비밀문서를 찾으려고

오늘도 바다는 서랍을 열고 있다

정방폭포 서랍이 끝없이 열린다


하늘도 바다의 서랍을 열었다

바다의 서랍 안에는

바다의 어둠이 가득 담겨있다

어둠과 함께 담겨 있을

바다의 비밀문서를 찾으려고

오늘도 하늘은 서랍을 보고 있다

주상절리 서랍이 여러 곳에 있다


바다는 마래터널 서랍도 열어보고

하늘은 무등산 서랍까지 열어본다



우리는 이제 다 함께 힘을 모아서, 숨어 있는 서랍을 열어야만 한다. 숨어 있는 마지막 서랍을 찾아서, 우리는 이제 태평양을 건너가야만 한다.



송몽규의 술가락



송몽규의 술가락이 윤동주를 먹여 살렸다

이덕구의 술가락이 하늘 한 술 뜬다

하늘의 술가락이 바다 한 술 뜬다

정방폭포가 은빛 술가락으로 빛난다

하늘의 정방폭포 술가락이 크게 한 술 뜬다


요즘에는 술가락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

그럼에도 당신의 술가락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



* 작전명 <화려한 휴가> 공수부대, 광주에서의 열흘이 제주에서의 7년 7개월 계속되었다. <택시운전사> <서울의 봄> <그때그사람들> <남산의부장들>



벽과  그림자



몸이 무겁다

마음이 무겁다

그림자는 더욱 무겁다


벽을 짚고 겨우 일어설 수 있다

그림자는 벽을 많이 만나야

비로소 일어서서 잘 살 수 있다



* 나는 당신이 잃어버린 마을이다. 잃어버린 마을에서 나는, 무너진 돌담을 짚고 일어선다. 흔들리는 조릿대를 붙잡고 일어선다. 바람에 섞여있는 정방폭포 소리에 젖으며 일어선다. 멀리서 들려오는 당신의 향기로운 목소리가 나의 그림자를 일으켜 세운다. 당신의 무지개는 잊지 않고 잃어버린 마을까지 찾아온다.

  


서울의 봄



우리나라 군인들의 적은 누구인가

우리나라 군인들은 먼저

우리나라 시민들에게 총을 쏘았다

우리나라 군인은 계엄군이었다

제주에서 그랬고

여수에서 그랬고

서울에서 그랬다


12월 12일 우리나라 군인들은

우리나라 군인들에게 총을 쏘았다

5월 17일 전국으로 확대하여

5월 18일 광주를 향하여

화려한 휴가를 떠났다

우리나라 군인들은 그렇게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총을 쏘았다


알고 보면 북한도 우리 민족인데

우리 민족은 우리 민족에게 총을 쏘았다


사람들은 자주 사람들에게 총을 쏘았다



시집과 갈치의 가격



윤동주의 시집과 전집과

관련 책들을 읽다 보니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

을 사야만 했다

제주도 도서관에는 한 권도 없다

3년이 더 지났으니

희망도서로 신청할 수도 없다


1999년에 발행된 시집이

5만 원이면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고

오후 산책을 나간다


윤동주 시인은 습작노트 2권과

자선 시고집 1권을 남겼다

윤동주는 송몽규가 신춘문예에 당선된 무렵부터

날짜를 명기해 가며 습작품을 보관했다


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

『창(窓)』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월대천 징검다리에서 왜가리 한 마리

여울물을 바라보며 추위에 떨고 있다


왜가리의 삶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징검다리 건너지 않고 외도포구 지나

외도교 아래를 지나 대원암 쪽으로 간다


눈이 내리는 바다에는 바람까지 거세다

바다에 누워계신 관세음보살을 씻은 파도가

해안길까지 날아와 적신다

안경과 입술에도 소금맛이 스며든다


파도가 날아오르는 연대포구에서

청해수산 홍보영상을 촬영 중이다

통통한 갈치가 싱싱하게 빛나고 있다

파도처럼 바다로 뛰어들 것 같은 갈치가

한 마리에 5만 원씩이라고 한다

아, 갈치도 참으로 비싸구나!

하며 속으로 생각하며 돌아서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한 생명이 겨우 5만 원 이라니

한 시인의 삶이 겨우 5만 원 이라니



우물과 징검다리



김도수 시인께서 또다시 진메마을

징검다리 보수공사를 하셨구나

덕치면장님께서 징검다리 놓으셨구나


요즘에는 징검다리도

포클레인으로 놓는구나

징검다리 소식 듣고 보니

울력으로 징검다리 보수하던

연어의 종착역 기적소리 들린다


해마다 마을 공동우물 퍼내던

울력하던 날까지 생각이 난다

도르래 돌아가는 소리까지 들린다

그런 날에 언제나 나는 가장 어렸다

누워계신 아버지 대신 나가 울력을 했다

두레박을 타고 내려가

막힌 샘 물길을 새로 뚫어주곤 하였다


아직도 나는 가끔 꿈속에서

깊고 어두운 우물 속으로 내려가

꽉 막혀 있는 물길을 새로 뚫어주곤 한다

어느 때는 두레박 줄이 끊어지고

깊은 우물 벽이 미끄러워 올라가지 못하고

나의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만 웅웅 거리고ᆢ..,



나누리 파크



불빛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별빛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꽃빛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월라봉 아래에서 산방산을 향하여

나누리 파크에 꽃으로 피어납니다

언제라도 스위치만 올려 주십시오

그리움의 전기줄 속으로 달려가서

환하게 켜지는 사랑이 되겠습니다


사랑은 날마다 꽃으로 피어납니다

당신은 날마다 꽃으로 피어납니다

당신은 언제나 꽃길만 걸으십시오



아름다운 나라에는 공원이 많습니다. 공원이 많은 나라는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국립공원이 많은 나라, 도립공원이 많은 나라, 시립공원이 많은 나라, 민간공원이 많은 나라, 크고 작은 공원들이 많은 나라가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서귀포는 공원이 많은 아름다운 고장입니다. 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들은 아름다운 공원의 주인입니다. 문만 열고 나가면 공원들이 펼쳐져 있고 아름다운 자연이 황홀하게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 이제 우리 함께 공원을 걸어볼까요. 마음 한 번 돌이키면 우리들은 모두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의 주인이 됩니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정원은 언제나 우리들을 주인으로 모시고 기다립니다. 소유와 소비를 넘어 우리들은 이제 공유와 상생의 길을 함께 가야만 합니다. 



오리와 오리나무



오리가 오리나무 아래로

뒤뚱뒤뚱 뒤뚱뒤뚱

그림자도 따라서 뒤뚱뒤뚱


오리가 오리나무 위로

청둥청둥 청둥청둥

소리도 따라서 청둥청둥


오리나무 그림자도

뒤뚱뒤뚱 뒤뚱뒤뚱

오리나무 낙엽들도

청둥청둥 청둥청둥


오리와 오리나무가 흔들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4.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