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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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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an 18. 2024

6. 문수물과 폐동이왓




다시 문수물과 폐동이왓



어느 날 모래가 덮쳐서 없어졌다는 폐동이왓 그

앞에는 이호테우 쌍원담이 있고 문수물이 있다

얼마 전까지 문수물의 숨구멍은 두 개였었다

오늘 아침 산책길에 보니 숨구멍 하나가 없다

문수물 이름표도 모래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아, 어느 날 갑자기 모래가 덮쳐버린 마을이여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모래는 끊임없이 쌓인다

저 남은 숨구멍도 언제 막힐지 모르겠다

나도 이렇게 시간의 모래에 서서히 묻히리라




문수물과 폐동이왓




시월의 가을비가 해변을 식힌다

해변으로 우산과 우비가 지나간다

원담 안에서 솟아 나오는 문수물은

쌍원담과 함께 잠수를 하고 있다

문수보살님의 시원한 숨결과 손길로

깊은 피부병까지 치료해 주는 문수물

나는 지금 폐동이왓 팔각정에 있다

오른쪽 앞에는 말 등대가 깜박이고

왼쪽 하늘에는 비행기 불 켜고 온다

어느 날 모래가 덮쳐서 없어졌다는

폐동이왓은 이제 소나무산이 되었다

나도 이제 머지않아 돌아갈 것이다

내가 돌아간 뒤에 나는 무엇이 될까


등대의 불빛이 바다에 다리를 놓는데

고양이들의 눈빛이 그 다리를 건넌다




강아지 배추 뜯어먹는 소리




사람들은 가끔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강아지가 배추를 뜯어먹는 소리가 좋다 내가 밭에서 일을 하면 강아지는 열심히 배추를 뜯어먹고 풀도 뜯어먹는다 때로는 꽃밭에서 놀다가 꽃에 콧구멍을 들이대고 향기에 취하기도 한다 또한 예쁜 꽃을 입으로 따서 다른 강아지에게 건네주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소나무재선충 때문에 소나무가 많이 죽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속으로 웃기도 한다 주로 산의 주인들이 많이 웃는다 뿐만 아니라 겨우 남아 있는 멀쩡한 소나무까지 마구 베어낸다 알고 보니, 산에 소나무가 없으면 밭으로 개간하기가 쉽다고 한다 소나무가 많은 숲은 밭으로 만들기도 어렵고 주택지로 용도를 변경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땅값을 올리기 위해서는 산에 소나무가 없어져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달리 비싼 밭에 소나무를 심는다 비싼 밭을 싼 숲으로 만들고 있다


나는 처음부터 아픈 몸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나는 아픈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아픈 사람들의 보폭은 건강한 사람들의 보폭과 다르다 나란히 손 잡고 걸을 수 없다 함께 같은 속도로 걷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나의 속도에 맞추어서 산다 나의 시는 나의 삶이어서 마침표가 없다 나의 시의 마침표는 나의 무덤이 될 것이다 또한 나의 시에는 숨표가 많다 나의 쉼표는 나의 헐떡이는 숨이다 숨이 차기 때문에 자주 쉬어 주어야만 한다 시는 시인의 발걸음을 닮아야만 한다 시는 시인의 숨결이 느껴져야만 한다


나는 평생 숲을 가꾸는 것이 꿈인데, 숲이 아직은 나를 품어주지 못한다 참나무가 많은 정읍의 종석산이  좋아서 가려고 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다 종석산에서 산양삼을 재배하는 친구가 있다 그곳으로 가려고 작은 임야를 구하고 교육을 받아서 임업후계자가 되었다 하지만 함께할 친구는 나와는 생각이 많이 다른 듯하다 나는 참나무 숲을 가꾸고 많은 사람들이 참나무로 부활하기를 꿈꾸는데, 친구는 참나무를 베어내고 산양삼을 대규모로 재배하여 큰 소득을 올리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물론, 약초 재배에 좋은 여건이니 어느 정도의 재배는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숲이 목적이 아니고 돈이 목적이라면 나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숲을 원한다


나는 5년 전에 이미 평생 써야 할 시의  원고료를 선불로 받았다 나의 심장 속 대동맥 판막을 뜯어내고 금속판막으로 교체하였다 깨어나보니 나의 통장에 거금이 입금되어 있었다 내가 수술을 받기 전날 입금을 하고 기도를 하였던 것이다 내가 깨어날 때까지 그는 쉬지 않고 기도를 하였을 것이다 "꼭 살아 돌아와 좋은 시를 써 주세요 응원합니다" 이 응원 메시지와 그의 기도가 나를 부활시킨 것이었다 수술을 받는 동안에 꾸었던 꿈속의 천사가 나를 살린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간절한 기도에 보답하기 위하여 지난 5년 동안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출사표를 던지고 시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어도공화국이 들어설 아름다운 숲을 구하지 못하여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를 먼저 쳤다 그곳에 나는 서천꽃밭을 만들고 있다 아름다운 숲에 만들 이어도공화국을 미리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곳에 나와 인연이 닿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나무를 심고 가꾼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아직은 함께 살 수 없지만 그들의 나무를 보며 날마다 생각한다 그들의 나무를 가꾸며 그들과 같은 하늘 아래서 함께 숨을 쉰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꿈은 그렇게 천천히 자라고 시나브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서천꽃밭에 자란(紫蘭)이 피어나고 은방울꽃이 피어난다 자란(蘭)의 꽃말은 "서로 잊지 않다" 은방울꽃의 꽃말은 "틀림없이 행복해진다"라고 한다




강아지 배추 뜯어먹는 소리

앞표지


1. 당신에게 보냅니다

2. 너에게 나를 보낸다

3. 정방폭포

4.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배진성 프로필

서른 살까지 사는 것이 꿈이었다 왼쪽 가슴이 아팠다 남몰래 가슴을 안고 쓰러지는 들풀이었다 내려다보는 별들의 눈빛도 함께 붉어졌다 어머니는 보름달을 이고 징검다리 건너오셨고, 아버지는 평생 구들장만 짊어지셨다 달맞이꽃을 따라 가출을 하였다 선천성 심장병은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나의 비밀은 첫 시집이 나오고서야 들통이 났다 사랑하면 죽는다는 비후성 심근증, 선천성 심장병과 25년 만에 이별을 하였으나,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바다는 나를 이어도까지 실어다 주었다 30년 넘게 섬에서 이어도가 되어 홀로 깊이 살았다 나는 이제 겨우 돌아왔다 섬에서 꿈꾼 것들을 풀어놓는다 꿈속의 삶을 이 지상으로 옮겨놓는다 나에게는 꿈도 삶이고 삶도 꿈이다 <꿈삶글>은 하나다 덤으로 사는 인생 하나 당신에게 보낸다




사과꽃망울


사과꽃망울



득음을 위한 독공이 한창이다

     
사과나무속에서
고려청자 굽는 소리 들린다
조선백자 깨뜨리는 소리 들린다
수없이 많은 사금파리들이 쌓인다
     
사과나무속에서
사과를 미리 빚어보고 구워보고 깎아본다
     
벚꽃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성질 급한 봄꽃들이 속옷 바람으로 뛰쳐나와도
사과나무는
진득하니 사과나무속에서 사과만을 만들고 있다
     
울컥, 울혈을 토해내고 있다




제1부 너에게 나를 보낸다


강아지 배추 뜯어먹는 소리


강아지 배추 뜯어먹는 소리



사람들은 가끔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강아지가 배추를 뜯어먹는 소리가 좋다 내가 밭에서 일을 하면 강아지는 열심히 배추를 뜯어먹고 풀도 뜯어먹는다 때로는 꽃밭에서 놀다가 꽃에 콧구멍을 들이대고 향기에 취하기도 한다 또한 예쁜 꽃을 입으로 따서 다른 강아지에게 건네주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소나무재선충 때문에 소나무가 많이 죽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속으로 웃기도 한다 주로 산의 주인들이 많이 웃는다 뿐만 아니라 겨우 남아 있는 멀쩡한 소나무까지 마구 베어낸다 알고 보니, 산에 소나무가 없으면 밭으로 개간하기가 쉽다고 한다 소나무가 많은 숲은 밭으로 만들기도 어렵고 주택지로 용도를 변경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땅값을 올리기 위해서는 산에 소나무가 없어져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달리 비싼 밭에 소나무를 심는다 비싼 밭을 싼 숲으로 만들고 있다


나는 처음부터 아픈 몸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나는 아픈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아픈 사람들의 보폭은 건강한 사람들의 보폭과 다르다 나란히 손 잡고 걸을 수 없다 함께 같은 속도로 걷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나의 속도에 맞추어서 산다 나의 시는 나의 삶이어서 마침표가 없다 나의 시의 마침표는 나의 무덤이 될 것이다 또한 나의 시에는 숨표가 많다 나의 쉼표는 나의 헐떡이는 숨이다 숨이 차기 때문에 자주 쉬어 주어야만 한다 시는 시인의 발걸음을 닮아야만 한다 시는 시인의 숨결이 느껴져야만 한다


나는 평생 숲을 가꾸는 것이 꿈인데, 숲이 아직은 나를 품어주지 못한다 참나무가 많은 정읍의 종석산이  좋아서 가려고 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다 종석산에서 산양삼을 재배하는 친구가 있다 그곳으로 가려고 작은 임야를 구하고 교육을 받아서 임업후계자가 되었다 하지만 함께할 친구는 나와는 생각이 많이 다른 듯하다 나는 참나무 숲을 가꾸고 많은 사람들이 참나무로 부활하기를 꿈꾸는데, 친구는 참나무를 베어내고 산양삼을 대규모로 재배하여 큰 소득을 올리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물론, 약초 재배에 좋은 여건이니 어느 정도의 재배는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숲이 목적이 아니고 돈이 목적이라면 나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숲을 원한다


나는 5년 전에 이미 평생 써야 할 시의  원고료를 선불로 받았다 나의 심장 속 대동맥 판막을 뜯어내고 금속판막으로 교체하였다 깨어나보니 나의 통장에 거금이 입금되어 있었다 내가 수술을 받기 전날 입금을 하고 기도를 하였던 것이다 내가 깨어날 때까지 그는 쉬지 않고 기도를 하였을 것이다 "꼭 살아 돌아와 좋은 시를 써 주세요 응원합니다" 이 응원 메시지와 그의 기도가 나를 부활시킨 것이었다 수술을 받는 동안에 꾸었던 꿈속의 천사가 나를 살린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간절한 기도에 보답하기 위하여 지난 5년 동안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출사표를 던지고 시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어도공화국이 들어설 아름다운 숲을 구하지 못하여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를 먼저 쳤다 그곳에 나는 서천꽃밭을 만들고 있다 아름다운 숲에 만들 이어도공화국을 미리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곳에 나와 인연이 닿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나무를 심고 가꾼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아직은 함께 살 수 없지만 그들의 나무를 보며 날마다 생각한다 그들의 나무를 가꾸며 그들과 같은 하늘 아래서 함께 숨을 쉰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꿈은 그렇게 천천히 자라고 시나브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서천꽃밭에 자란(紫蘭)이 피어나고 은방울꽃이 피어난다 자란(蘭)의 꽃말은 "서로 잊지 않다" 은방울꽃의 꽃말은 "틀림없이 행복해진다"라고 한다




고구마 꽃



고구마 꽃



고구마꽃이 피었다

고구마꽃이 젖을 물리고 있다

꼬리박각시나방이 젖을 빨고 있다

고구마가 땅 속에서 젖을 준다

땅 속에서 어머니는

아직도 나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어느 시인의 눈썹달과 별 하나


어느 시인의 눈썹달과 별 하나



나는 날마다 바다를 본다 나는 날마다 같은 바다를 본다 같은 바다이지만 날마다 다른 표정의 바다를 본다 삼십 년 넘게 같은 바다를 본다 마라도와 가파도와 형제섬과 송악산이 보인다 그 너머로 이어도가 보인다 나는 그 이어도에서 삼십 년 넘게 살았다 이제 이어도에서 나와 세상 속으로 걸어갈 준비를 한다


화순항에서 서귀포항으로 간다 정방폭포로 간다 나의 삶은 이제 정방폭포에 가까워지고 있다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용 한 마리, 저 빛나는 정방폭포를 지나면, 저 빛나는 허공의 길을 밟으면, 바다가 될 것만 같다 해룡이 될 것만 같다 나도 이제는 하늘로 가는 해룡 한 마리로 부활을 할 것이다


발전소에서 야간근무를 하면서 두 시인을 만났다 별빛을 만들면서 시인을 만났다 만났다기보다는 보고 들었다 <대구문학관에서 문학, 꽃피다> 뒤늦게 유튜브로 만나, 보았다 문태준 시인과 김민정 시인을 연속해서 듣고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이병률 시인과 나희덕 시인에 이어서 두 시인이 내 가슴속으로 걸어서 들어왔다 그런데 아, 김민정 시인이 그만 느닷없이 가슴속에 들어앉고 말았다 


얼핏 잠이 들었는데 꿈속까지 따라서 들어오고 말았다 꿈인 듯 생시인 듯 아침은 오고, 발전소의 하늘에 달이 떠 있다 시인의 눈썹 한쪽이 걸려 있다 벌써 아침인데 달은 절반도 가지 못했다 이제 막 월라봉을 벗어나, 산방산까지는 아직도 멀었다 바다의 방에도, 산의 방에도 가려면 서둘러야만 하겠다 화순항에는 아침에도 등대불빛이 반짝이고 있다 눈썹달 오른쪽 아래에는 별 하나 깜박인다 별이 글쎄 아침부터 윙크를 하고 있다


오늘은 아무래도 아침 퇴근길에 한라산 아래 첫 동네로 가야겠다 한라산아래첫마을영농조합법인이 만들어놓은 넓은 메밀밭으로 가야겠다 그 메밀밭의 백비에 달빛이 새겨놓은 비문을 읽어야만 하겠다



화순곶자왈 맹아림에서
화순곶자왈 맹아림에서
화순곶자왈 맹아림에서

사진일기 20231105 (brunch.co.kr)



화순곶자왈 맹아림에서



아침 퇴근시간이 30분 늦추어졌다 3년만 일하고 나오려고 했던 발전소에서 나는 40년 가까이 일을 하고 있다나의 꿈이 40년 가까이 미루어졌다 더 늦기 전에 꿈을 찾아서 시를 써야만 한다 내가 유명하지 않기 때문에 유리한 점도 있다 나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좋다 누가 청탁을 한 것도 아니고 어디에 공식적으로 발표할 것도 아니어서 얽매일 필요도 없다 그래서 나는 문법이나 띄어쓰기에도 크게 구속을 받지 않는다 나는 그냥 나의 호흡에 맞추어서 자유롭게 쓴다 일반적인 줄 바꿈도 나의 호흡과는 잘 맞지 않아서 내 방식대로 쓴다


이어도서천꽃밭에 수선화꽃이 피기 시작했다 아직도 수국꽃이 남아있는데 수선화꽃의 계절이 돌아왔다 분꽃이 한창 씨를 만들고 있는데 들국화가 곁에서 노랗게 눈을 뜨고 있다 새깃유홍초와 아직 내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작은 꽃들이 피고 쑥들도 자라고 있는데 코끼리마늘 싹이 땅을 들고 올라오고 있다 감귤은 조생종은 거의 다 익었고 만감류도 익기 시작했다 수확시기에 물을 너무 많이 먹은 감귤은 감귤나무에서 터져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오늘 아침에 살펴보니 황금향 몇 개가 입술이 터져있었다 요즘에는 수리시설이 좋아서 과일들도 과식해서 문제가 많다


10여 년 전에 온몸이 불에 태워져서 겨우 목숨만 남았던 워싱턴야자수가 아픈 상처를 잊고 잘 자라고 있다 또한 서귀포자연휴양림에서 주워온 도토리가 낳은 참나무는 이제 제법 의젓한 자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선흘리 불칸낭 가슴에서 입양해 온 어린 후박나무는 양쪽 문지기로 성장해서 대문을 잘 지키고 있다 아이들이 직접 심은 앵두나무와 하귤나무는 형제처럼 정답게 나란히 잘 자라고 있다 모과나무에서는 잘 익은 모과가 떨어지고 감나무에서는 새들이 날아와서 잘 익은 감을 숟가락도 없이 아침식사로 맛있게 드시고 있다 늦게 익은 무화과를 따서 나도 맛있게 아침으로 먹는다 온주밀감과 황금향 감귤을 한 봉지 따서 제주시로 간다 9시에 산방도서관에 들러 책을 바꾸고 곁에 있는 화순곶자왈로 간다 나는 주로 따로 여행을 하지 않고 중간중간 쉬면서 짧은 여행을 한다 입구 간판에는 화순곶자왈 생태탐방숲길이라고 쓰여 있지만 나는 늘 화순곶자왈 맹아림이라고 부른다


곶자왈(Gotjawal)은 ‘곶’과 ‘자왈’의 합성어로 된 고유 제주어다 곶은 숲을 뜻하며, 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서 수풀 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으로, 표준어의 ‘덤불’에 해당한다 곶자왈은 돌무더기로 인해 농사를 짓지 못하고, 방목지로 이용하거나, 땔감을 얻거나, 숯을 만들고, 약초 등의 식물을 채취하던 곳으로 이용되어 왔으며, 불모지 혹은 토지이용 측면에서 활용가치가 떨어지고 생산성이 낮은 땅으로 인식되었다


곶자왈에는 대부분 돌들이 많다 흙은 거의 없다 용암이 만들어 낸 요철() 지형은 지하수 함양은 물론 다양한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숲을 이루어, 생태계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내가 자주 다니는 화순곶자왈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아서 쓰러진 나무들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곶자왈 지대는 토양의 발달이 빈약하고 크고 작은 암괴들이 매우 두껍게 쌓여 있어 아무리 많은 비가 올 지라도 빗물이 그대로 지하로 유입되어 맑고 깨끗한 제주의 생명수인 지하수를 함양한다는 점에서 마치 ‘스펀지'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각종 오염물질이 빗물을 통해 유입될 경우 지하수 오염에 매우 취약한 지역이기도 하다 이를 인식한 제주도 사람들은 곶자왈 지키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한라산뿐만 아니라 제주도의 곶자왈지대를 최애 하고 있다 특히 화순곶자왈지대에는 고사리들과 각종 양치식물들 그리고 각종 이끼류와 콩짜개란이 돌과 나무들에 많이 자라고 있어서 더욱 좋아하는 곳이다


곶자왈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은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이다 다만 곶자왈은 중간산 지대의 야생숲이 있는 곳을 통칭하는 말이고, 제주도 내의 다양한 장소에 분포되어 있다 곶자왈이 분포하는 지대는 크게 4곳으로 나뉘는데, 서쪽에서 동쪽으로 한경-안덕 곶자왈지대, 애월 곶자왈지대, 조천-함덕 곶자왈지대, 계좌-성산 곶자왈지대로 나뉜다 이 중 가장 넓은 곶자왈 지대는 한경-안덕 곶자왈(44.8 km²)이며, 조천-함덕(43 km²), 계좌-성산(7.6 km²), 애월(3.5 km²) 곶자왈이 그 뒤를 잇는다


내가 곶자왈에서 주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나무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사람들도 저 곶자왈의 나무들처럼 자연스럽게 태어나고 자연스럽게 죽어서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을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곶자왈에도 큰 상처들이 많다 인간들이 살면서 곶자왈에도 큰 상처를 주었다 4.3 등의 역사적 상처뿐만 아니라 숯을 만들기 위해서 대부분의 나무들은 밑동이 잘려나간 기억이 있다 하지만 곶자왈의 나무들은 그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새싹으로 새롭게 태어나서 새로운 가지들을 내어서 더욱 풍요로운 숲을 이루었다


곶자왈의 나무들은 대부분 기둥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기둥이 모여서 함께 자란다 나무들은 가지가 잘리거나 기둥이 잘리면 더 많은 여러 가지를 만들거나 여러 기둥을 만들어서 새롭게 자라기 시작한다 무의식적으로 위기를 느끼면 살아남기 위해서 더욱 다양하게 대처하기 위해서 그랬을 것이다 사람도 극심한 위기에 처하면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해서 잘은 모르지만, 사형수들이 죽을 때 사정을 한다는 이야기도 언뜻 들은 것 같다 곶자왈의 나무들은 또한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생명들까지 가슴에 품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흙을 만나지 못하여 


화순곶자왈의 나무들은 대부분 맹아림이다 옛날에 숯을 굽기 위하여 나무들을 베었다고 한다 숯을 굽는 사람들은 아예 숲에 살면서 숯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곶자왈에 살아있는 나무들은 대부분 부모를 잃은 고아들일 것이다 밑동을 잘린 나무에서 어렵게 자라난 고아 형제들이다 흙이 없어서 그렇지 않아도 살기 어려운 환경에서 고아로 자란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었겠는가 흙을 만나지 못하여 바위 위로 뻗어가는 뿌리들을 보면서 마음이 참 아프다


나에게도 아픈 손가락이 있다 나의 잘못으로 다친 손가락이 있다 조울증과 중독증으로 아픈 청춘이 있다 화순곶자왈에서 아픈 청춘 같은 맹아림을 본다 맹아림 같은 아픈 손가락을 생각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픈 손가락을 후 불어주는 마음으로 이름을 불러본다 아픈 손가락 때문에 나의 마음이 많이 아프다 아픈 손가락이 나에게 말을 한다 "우리 함께 오늘도 힘을 내자"라고 문자를 보내온다 아침은 저녁에게 안부를 묻고 저녁은 아침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청년은 아픔이고 중년은 슬픔이다 아침은 아프고 저녁은 슬프다


문수물과 폐동이왓

문수물과 폐동이왓 (brunch.co.kr)


앞표지
제1부
제2부
제3부
제4부
제5부
제6부
뒤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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