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산 Sep 05. 2020

농업과 임업




같은 삼의 씨를 심어도

밭에서는 인삼이 되도

산에서는 산삼이 된다


밭에서 숲농법을 연구하던 나는 이제 숲으로 간다. 같은 작물을 심더라도 밭에서 자란 놈과 숲에서 자란 놈은 확실히 다르다. 인삼과 산삼의 조상은 같다. 같은 씨앗인데 밭에서 자라면 인삼이 되고 산에서 자라면 산삼이 된다. 이제 본격적으로 숲생활을 준비한다. 나는 먼저 임업 후계자가 되기 위하여 교육을 받고 있다. 나는 우리들의 농업에 대하여 너무나 불만이 많았다. 특히 농약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또한 화학비료에 대한 생각도 회의적이다.


제주도 농촌에는 경운기보다 탈탈이라고 말하는 운반차가 많다. 주로 경운기 대가리를 이용하여 만든 일종의 트럭이라 생각하면 된다. 그 탈탈이에는 어김없이 농약 살포기가 설치되어 있다. 요즘에는 탈탈이에서 트럭으로 바뀌어가는 추세에 있다. 그런데 농촌에서 사용하는 트럭에도 역시 농약 살포기들이 설치되어 있다. 내가 제주도 농촌에서 살면서 가장 놀란 것은 시도 때도 없이 뿌려대는 농약이었다. 나의 첫 인상은 제주도 농사의 절반은 농약농사라는 느낌이 들었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농사라 할 수 있는 감귤농사에도 너무 많은 농약을 살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마철에는 비만 그치면 중간 중간에 농약을 살포하기 바빴다. 거의 일주일 간격으로 농약을 살포하는 농가들도 있었다. 그래도 요즘에는 많이 줄어든 것 같은데 내 생각에는 아직도 너무 많은 농약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생각이 든다. 


감귤농사에서 가장 골치 아픈 해충이 깍지벌레라는 생각이 든다. 이 벌레는 잎이며 가지며 나무에 달라붙어 수액을 빨아먹는다. 그래서 깍지벌레 공격을 받은 감귤나무는 대부분 말라죽고 만다. 감귤나무는 3년만 농약을 하지 않으면 대부분 죽는다고들 말한다. 내가 실제로 감귤나무를 심고 가꾸어본 결과 농약을 하지 않으면 3년도 되지 않아 죽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하여 방재활동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문제는 어떻게 친환경적으로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방재활동으로 감귤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해야만 할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밭에서 농사를 지어본 결과 농약을 하지 않고도 지을 수 있는 작물을 몇 가지 찾았다. 그 중에서 돼지감자, 들깨, 참깨, 부추, 호박, 토란, 옥수수, 수수, 해바라기...., 등 많은 작물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우리들의 농사법에 만족할 수 없었다. 왜 숲에서는 농약도 하지 않고 비료도 하지 않고 퇴비도 따로 하지 않은데 잘 자라는 것일까? 이런 생각에 일반 관행농업이 아니라 숲농업을 하고 싶어서 나름 연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계를 느끼고 있는 차에 우연히 작은 숲이 나에게 찾아왔고 그 숲을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보니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아무리 숲농법을 연구해도 직접 숲에서 농사를 짓는 것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들의 몸은 더 이상 농약에 찌든 농산물이 아니라 자연이 우리들에게 직접 차려주는 자연밥상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우선 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임업후계자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조건이 충족 되어야만 한다. 그 중에서 내가 임업후계자가 되기 위해서는 꼭 40시간 이상의 교육이 필요하다. 오프라인으로 40시간 이상을 받아도 되고, 오프라인 20시간 이상과 온라인 40시간 이상의 교육이 필요하다. 온라인 교육은 오프라인 교육의 절반으로 인정되고 최대 40시간 까지만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찌 되었던지 오프라인 교육은 20시간 이상을 받아야만 한다. 그런데 교육 측면에서는 코로나19 때문에 오히려 편리하게 교육을 받고 있다. 귀산촌 아카데미란 교육은 원래 오프라인 교육인데 코로나 확산에 따라 원격교육으로 전환하여 실시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미 오프라인 20시간 이상과 온라인 40시간 이상을 다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더 이상 교육을 받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교육도 자주 받다보니 중독성이 있다. 요즘에 자꾸만 궁금한 것들이 많아져서 추가로 교육을 받고 있다. 특히 내가 관심이 많은 산양삼에 관한 교육을 많이 받고 있다.



많은 교육 중에서 이기종 강사님의 산양삼 재배기술 강의가 특히 좋았다. 산양삼 재배에는 부지 선정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씀 하셨다. 침엽수 30%와 활엽수 70%가 가장 좋다고 말씀 하셨다. 그리고 계곡이 있어서 시원한 바람이 잘 부는 곳이 좋다고 말씀 하셨다. 그러니까 산삼 재배에는 서늘한 기후와 적당한 습도가 중요하다고 말씀 하셨다. 산삼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부엽토가 많고 25도씨를 넘지 않는 시원한 곳을 좋아한다고 하셨다. 물론 큰 나무들이 있어서 하늘을 가려주어서 뜨거운 태양빛을 직접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씀 하셨다. 우리나라 산 중에서 온도가 낮은 곳이 좋기 때문에 주로 해발 500미터 이상에서 재배하는 것이 좋다고 말씀 하셨다. 여러가지 사항을 종합해보면 종석산은 산삼 재배에 최적지라는 결론이 나온다. 많은 참나무들이 쏟아놓은 풍부한 부엽토와 옥정호에서 올라오는 적당한 습도 때문에 산삼 재배에는 참으로 좋은 산임에 틀림 없다. 역시 오랜 심마니생활로 터득한 임영규씨의 선택은 탁월한 것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이기종 강사님은 한국임업진흥원 평창 현장교육 센터장이며 약초나라 대표님이라고 말씀 하셨다. 산양삼 재배만 30여년을 하시면서 직접 몸으로 터득하신 그 오랜 시간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나누어주시는 그 마음이 산삼보다 귀하고 숲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기회 있으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것만 같다.   




요즘에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공부를 할 수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저렴한 가격으로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었다. 유튜브에서는 특정한 단어만 입력하고 검색하면 수 많은 교육 자료들이 쏟아져 나온다. 산양삼 재배에 관한 자료들도 바로 찾을 수 있다. 나는 오늘 오래도록 산양삼을 재배하신 이원경 대표님과 박상수 대표님 그리고 강진하 멘토님도 만날 수 있었다. 세상에는 참 좋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그 중에서 산림청에서 산촌인 시리즈로 발행한 포스트가 너무 좋아서 베껴쓰기를 한다. 두고 두고 배워야만 할 것이다. 특히 산양삼을 활용한 저온숙성과 발효공법을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돌이 심마니 산양삼에 빠지다 

동인발효삼영농조합법인 이원경 대표


예로부터 삼(蔘)은 귀한 약재였다. 그 월등한 약효는 설화와 민담으로 전해 내려올 정도. 그중 산양삼은 삼의 씨나 묘삼을 산에 심어 자연생태로 재배한 인삼을 말하는데, 밭에서 재배한 가삼보다 향이 진하고 더 달며 효능이 뛰어나다고 잘 알려져 있다. 이원경 대표가 산양삼에 빠지게 된 이유 역시 심마니로 떠돌다 발견한 산양삼의 효험 때문이었다. 평창 오대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산양삼을 재배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30여 년이 훌쩍 흐른 지금, 그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실패를 딛고, 산양삼으로 일어서다


이원경 대표는 본래 농업인이었다. 제천이 고향이었는데, 농토를 빌려서 일구는 대농 사업을 했다. 20만 평정도 되는 제법 큰 규모의 사업이었으나 결과가 좋지 못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농사일은 적자였다. 쌀농사는 크게 경쟁력이 있지 않았다. 그러다 눈을 돌리게 된 것이 바로 산이었다. 일반 관행 농업으로는 수익을 올리기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새로운 소득 작목을 찾아다니던 차, 임산물에 관심이 생겼다. 강원도 삼척에 터를 잡은 건 바로 전부 그런 연유였다.
 
“대농 사업을 크게 했는데, 잘 안됐습니다. 수지가 맞지 않았어요. 쌀농사와는 다른 경쟁력 있는 작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다 관심을 두게 된 것이 임산물이었습니다. 주로 곰취와 같은 쌈 채소였죠.”
 
이원경 대표는 삼척 여삼리 산자락에 터를 잡고 매일같이 산을 오르내렸다. 지금처럼 묘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던지라 온갖 산을 누비며 야생 쌈을 캐고 묘를 채취했다. 모듬 쌈채소를 선보일 계획이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흔히 보이는 구성이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산나물도 흔하던 때라 크게 주목받기 어려웠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실패를 맛봐야 했다. 하지만, 이원경 대표는 주저하지 않았다. 새로운 소득 작물을 찾으러 산을 휘젓고 다녔다. 본격적인 심마니 생활의 시작이었다. 산에 머물고, 산에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지형을 익히며, 유망한 임산물을 꾸준히 물색했다. 그러한 노력 끝에 마주하게 된 것이 바로 산삼이었다.



“심마니 생활을 오래 하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산삼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귀한 약재였죠. 하지만, 산삼을 찾는 데에만 시간을 꼬박 쓰다 보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삼을 심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죠. 결국, 심마니 생활을 접고, 강원도 삼척 여삼리에서 조금씩 산양삼을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삼의 씨를 종이컵 정도 되는 양을 사다가 손수 심었습니다. 처음, 재배를 시작하는 터라 많은 양을 수확하지는 못했습니다만, 가능성을 봤어요. 산양삼이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원경 대표는 산양삼 재배를 본격화할 마음을 먹곤 재배 적지를 찾아다녔다. 아무리 사람이 키워내는 일이라지만, 자연이 들이는 정성 역시 간과할 수는 없었다. 가삼과 다르게 인공시설이나 농약 없이 기르는 삼이다 보니, 지형 및 토양 여건 등 주변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야말로, 자연이 빚어낸 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허투루 결정할 수 없었다.
 
“숱하게 산을 오르내리면서, 이곳 평창 오대산 자락을 발견하곤 여기다 싶었습니다. 여건이 아주 좋았어요. 인근에 높은 산이 많아 여름철에도 온도가 높지 않고, 통풍도 잘 돼 서늘한 게 이보다 좋은 요건은 없다고 판단했죠. 더불어 편마암 지대로 사질양토가 많아 산양삼 재배에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원경 대표는 7만 평 되는 규모의 임야에 산양삼을 재배하기에 이르렀다. 주변에서는 정신 나간 놈이라고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산양삼이 지금만큼 대중화되지 않았을 시기의 얘기였다. 물론, 이원경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 좋은 품질의 산양삼 개발에 몰두했다. 저온 숙성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 발효삼 역시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발효공법’을 적용하여 약효를 강화해 흡수력을 높임으로써 사포닌 성분을 극대화한 거였다. 체계적으로 개발한 산양삼은 다행히도 좋은 반응을 얻어, 농업신문에 실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산양삼의 효능이 점차 입증되었죠. 몸져 누워 계시던 부모님께 드린 산양삼 덕에 쾌차했다는 소식도 종종 들려오고,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될 정도였어요. 삼의 발효과정에서 생성되는 사포닌 성분의 항암, 항산화 작용 등 효과 입증도 학술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죠.”

현재는 이러한 이원경 대표의 노력을 이어받아 아들인 이동규 씨가 적극적인 산양삼 제품 및 6차 산업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더불어, 동남아 시장에서도 산양삼의 인기가 급증하고 있어 제조시설을 증축하여 산양삼의 세계화에 대응할 전망이다.

“요즘, 현대인들 많이 지치잖아요. 코로나19로 인해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도 아주 힘들고요. 그에 따라, 6차 산업 역시도 시대에 맞춰 변화되어야 한다고 봐요. 예전의 경우는 임산물 채취나 음·식료 만들기와 같은 체험 활동 위주의 프로그램이 주된 콘텐츠였잖아요. 이제는 한적하게 머물면서 경치를 감상하고 치유할 수 있는 스테이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동규 씨는 젊은 임업인답게 보다 적극적인 산업 전략 구성과 분석을 통한 효율적인 대안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온라인 홍보를 통한 공격적인 마케팅과 함께 이곳 강원도 평창을 6차 산업의 명소로 만들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몸과 마음을 보듬을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다지고 있는 중이다.    



매일같이 경사진 산을 오르며 산양삼의 상태를 살펴온 지가 어느덧 30년. 그 시간은 그저 30년이란 세월을 뜻하지만은 않는다. 몇 번의 고비와 좌절에도, 끝내 저버리지 않고 치열히 고민하고 답을 찾아 헤맸던 부단한 고생의 흔적을 뜻하기도 한다. 여전히 강원도 평창의 드센 산새를 오르내리며 더 좋은 산양삼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이원경· 이동규 부자(父子)의 노력으로 앞으로 산양삼이 세계화될 날도 머지않을 것 같다.




산도 산양삼도 후손이 주인,
이기종 약초나라 대표


경사가 심한 산에 오르는데 힘든 기색이 없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내 집 마당 걷듯 편안해보인다. 산에 올라 땅을 고르며 송풍기로 낙엽을 훑는 모습도 보기 좋을 뿐이다. 산에 산삼 씨 뿌려 재배한 산양삼, 그 재배만 어언 30여 년. 그렇게 연구한 재배공법을 널리 알려 나누는 사람. 약초나라 대표이자 한국임업진흥원 평창현장교육센터장인 이기종 대표다.


맨 땅에 씨 뿌리며 연구한 산양삼 재배공법
강원도 평창의 산자락에서 산양삼을 재배하는 약초나라 이기종 대표는 과거 서울에서 제법 건실한 건설회사에 다니며 이사 직위까지 올랐던 건설인이었다. IMF 외환위기의 폭풍이 온 나라를 휩쓸 때, 그가 다니던 회사도 부도 위기에 처했다. 누구나 힘들었던 시절. 그리고 인간관계에 염증을 느끼며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만 같던 나날들, 그는 도시를 떠나 대관령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평창으로 내려와 본격적으로 산양삼 재배를 시작했다. 평창으로 이사한 것도 벌써 몇십 년이 지난 일. 그는 변함 없이 산에 올라 땅을 고르고 씨를 뿌린다. 한여름에도 시원하게 맑은 공기 마시며 농사 짓는 일이 좋다고 말하는 그는 ‘산 사람’이 다 됐다. 무턱대고 씨를 뿌리며 시작한 산양삼 재배. 맨땅에 헤딩하듯 재배공법을 연구해온 지 오래이건만, 그는 근래에서야 비밀을 찾았노라 말한다.



대관령에서부터 산에서 ‘뭘 해 먹고 살까’를 고민했어요. 그러다 산삼을 봤죠. 산에서 산양삼을 재배해 팔면 돈을 벌 수 있겠다 싶었고요. 당시 한 알에
2,500원씩 하던 산삼씨를 사서 아무 규칙 없이 그냥 뿌렸어요. 그러다 기후조건을 조금씩 바꿔 봤죠. 습한 곳부터 시작해서 메마른 땅, 나무그늘 안, 햇빛이 살짝 드는 터까지 계속 뿌리며 수확량을 지켜봤죠. 씨 뿌리는 간격이나 양도 계속 바꿨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도 쥐가 파먹기 일쑤니 책 보고 독학하며 연구할 수밖에요. 씨 뿌릴 돈을 벌러 평창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하며 다시 건설회사를 다니기도 했죠. 그런데도 별 수확이 없더라고요. 안정적인 방법을 찾아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에요.


빠지지 않는 효능과 맛, 산양삼 예찬
시행착오를 거치며 그는 산양삼 재배도 체계적으로 교육해야 함을 실감했다. 산을 터전으로 삼는 주민과 후손들이 함께 알았으면 했다. 교육사업을 결심한 뒤론 경북 영주에 있는 한국임업진흥원까지 한 회도 놓치지 않고 교육을 받으러 다녔다. 그리고 평창에 한국임업진흥원 평창현장교육센터를 유치하는 데 공을 들였다. 20년 전에는 86%, 현재까지 84% 산업이 임업인 고장. ‘산림수도’를 공표한 도시, 그리고 세계인들이 주목할 평창동계올림픽 개최지. 타당한 이유였다. 그렇게 설립된 한국임업진흥원 평창현장교육센터에서 그는 일주일에 한 번, 교육을 한다. 이미 산양삼을 재배해본 임업인들이 들으니 질문 하나하나가 예리하다. 교육이 이어지며 산양삼을 재배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 그는 “한국의 산양삼은 자연원시림에서 재배한 캐나다산, 미국산과 향과 효능을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산삼 씨를 뿌려 기른 만큼 몸에 좋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삼은 모든 몸의 기능을 원래대로 돌려주는 역할을 해요. 세포조직을 활성화하죠. 혈압도 높으면 낮춰주고, 낮으면 높여주는 식으로 균형을 맞춰줘요. 면역력에도 좋아서 나이 드신 분들 겨울 감기 예방에도 좋고요. 몸의 기가 허약해 기운이 없는 분들은 만사가 귀찮을 수 있잖아요. 이런 분들도 20여 뿌리를 챙겨 먹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원기를 찾을 수 있어요.


진짜 심마니의 손에 산삼 씨를 건네라
물론 예외는 있지만 세상 어떤 업종에 가도 찾아볼 수 있는 사람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다. ‘장사’를 하는 사람, ‘기술’을 연구하거나 없던 것을 만드는 사람. 이기종 대표는 스스로를 ‘기술자’에 가깝다고 말한다. 매출에 큰 욕심 없이 재배에만 몰두하며 연구했다. 그의 말마따나 “몸이 아픈 사람에게 팔거나 좋은 사람에게 선물하는” 보람에 지냈다. 이처럼 장사에 관심이 크지는 않아도, 가끔 정석대로 재배하지 않은 산양삼을 볼 때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잘 재배한 임업인들이 피해를 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산삼 씨를 뿌려 제대로 재배한 산양삼은 처음에는 모르지만 먹다 보면 ‘맛’이 다르다고 말한다.


어떤 배는 수분이 많고 식감이 부드럽죠. 반면 버석버석 식감이 거친 배가 있고요. 감도 그래요. 씹으면 쓰고 떫은 감이 있고 달콤하면서 부드러워 꿀꺽 넘어가는 감도 있어요. 제대로 제배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예요. 산양삼도 잘 재배한 것은 향이나 입 안에서 개운한 정도가 달라요. 약성도 마찬가지고요. 일정량 먹고 나면 느끼는 피로감을 느끼는 정도가 달라짐을 알 수 있죠.


산은 우리가 아닌 후손의 것이다
그는 산양삼을 재배하는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아낌 없이 전한다. 그간의 산양삼 재배 노하우는 물론 좋은 삼을 알아보는 방법도 함께다. 개중 똑똑한 후배는 열심히 공부하며 인터넷을 활용해 정보를 세상에 알린다. 넉살 좋게 “센터장님 지식은 이제 내 것”이라며 농을 건네는 후배를 보면, 그저 기특하고 대견하다. 지식을 후배와 나누듯 그는 산림도 후대에 물려줄 자원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법적으로 내 소유라고 해서 내 땅이 아니라는 말이다. “후손들이 쓸 땅임을 잊지 말자”라는 그의 당부가 이어진다.


나무를 심고 그 밑을 정리해야 해요. 그러면 산불이 크게 나기 힘들죠. 나무가 자라고 그 밑에 풀이 없어지죠. 가을이 되면 낙엽을 모아 둔덕을 만들고요. 그러면 낙엽이 탈 수 있어도 불씨가 멀리 날아갈 수가 없어요. 태울 것이 없으니까요. 바람이 엄청나게 불지 않는다면 산불을 예방할 수 있죠.


지금까지 임업은 1차산업에서 시작해 신6차산업까지 변화를 거듭해왔다. 이는 그를 비롯해 끊임 없이 도전 하는 임업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기종 대표에게는 또다른 도전 과제가 생겼다.  인터넷, 이메일, SNS를 잘 활용하는 일. 성큼성큼 산에 오르는 그의 뒷모습에서 꿈꾸는 청년의 모습을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청산별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