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1. 출발 07화

5. 시와 발전소

강산 시인의 세상 읽기 &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by 강산

제주도에는 참 좋은 시인들이 많다

나는 지금까지 시인이 아니었다

좋은 시인을 차마 만날 수 없었다

나도 이제 진짜 시인으로 살고 싶다


나의 손은 그동안 시 쓰는 손이 아니었다. 나의 손은 일을 하는 손이었다. 땅을 파고 돌을 쌓고 나무를 심는 손이었다. 나의 귀는 그동안 귀마개로 틀어막아져 있었다. 소음의 구렁텅이 속에서 별빛만을 만들었다. 그래서 나의 귀는 음악을 듣지 못했다. ‘시인 부부가 예술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에릭 사티’의 음악을 듣는다. 나도 아름다운 어느 시인 부부처럼 교양 있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선천적으로 그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다운 시인이 되기로 한다.


나는 그동안 청탁서를 받고도 시를 쓰지 않았다.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시를 쓸 수 없었다. 나에게 시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랜 세월 사랑할 수 없었다. 나는 오랜 세월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들은 끝끝내 사랑해야만 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용서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만 한다. 한 번 더 깊이 생각하면 세상은 온통 사랑이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에는 사랑이 흘러 넘친다. 마음 한 번 돌리면 행복이 범람한다. 겨울나무가 하늘에 뿌리를 뻗어 하늘의 영혼을 빨아들인다.


가슴이 넓은 나무 / 강산


폭낭과 워싱턴야자수가

나란히 서 있다


붉은 해가 솟는다


워싱턴야자수 그림자가

폭낭 가슴을 관통한다


붉은 해가 기운다


가슴이 넓은 나무가

홀쭉한 나무를 안아준다


* 4월 1일부터 제주4․3평화공원 문주에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시화는 짧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눈에 들어오는 이미지 하나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으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완성될지 아직은 모른다. 우선 메모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4․3이라 말하지 않고 3․1절 발포사건”이라고 말한다. 우리들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외치던 3․1정신을 향해 발포한 미군정, 그리고 무자년 겨울의 초토화 작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승리를 위해서는 그런 적군까지 용서하고 안아줄 수 있는 가슴 넓은 민족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진정한 예수님의 사랑이고 부처님의 자비가 아니겠는가?


우리들은 이미 알고 있다. 나뭇가지 하나 없이 욕망만 키우는 워싱턴야자수는 바람에 쉽게 쓰러질 것이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잔 나뭇가지뿐만 아니라 온갖 벌레들과 바람까지 업어서 키워줄 줄 아는 폭낭은 오래도록 살아남아 우리들을 가슴 깊이 안아줄 것이다.


한라산 어욱 / 강산


한라산 어욱은 새가 되지 못하여

봄부터 베를 짜기 시작한다

초가지붕에도 오르지 못하여

베옷 한 벌 장만하기 시작한다


천둥 번개 요란한 여름에도

베틀소리 멈추지 않는다

새 옷 한 벌 얻어 입지 못하고

만가(輓歌)도 없이 숨 죽여 가신 님들


해 좋은 날, 어욱꽃 마을까지 내려온다

수의 한 벌 챙겨들고

요령소리 앞세우고

잃어버린 마을까지 잊지 않고 찾아온다


무너진 돌담 하나 대답이 없어

빈 상여 소리에

빈 수의 한 벌 흩어져 날아가고

갈 곳 잃은 바람의 곡비

온몸이 휘청거린다


뼈만 남은 한라산 억새

흰 눈 내려 헛묘에 묻히고

한라산 자락에는 해마다

메김소리 가득한 오름 하나씩 늘어난다


* 어욱 : 억새의 제주도 사투리


발전소 시인 1 / 강산


나는 발전소에서

3년만 근무하고

시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벌써

발전소에서 33년을

발전기와 함께 돌고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전기를 만들고 있지만

나는 아직

전기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나도 그렇다


그대가

스위치를 올려주지 않으면

나는 평생 보이지 않으리라


발전소 시인 2 / 강산


자석 속에서 자석이 돌면

전기가 만들어진다

고정자 속에서 회전자가 돌면

어지러워서 전기가 튀어나온다

그러니까 발전소는

회전자를 돌리기 위해서 존재한다

정신없이 돌려야만 한다

1분에 3600바퀴를 돌려야 한다

수력발전소도 그렇고

화력발전소도 그렇고

원자력발전소도 그렇다

하물며

풍력발전소도 그렇고

조력발전소도 그렇다

모두가 다 자석을 돌려서 만든다

이렇게 자석을 돌려서

전기를 만드는 발전기를

역학적 발전기라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열전기와 태양전지도 만들었다

반도체에서도 전기가 나온다

자석에서 반도체로 바뀌고 있다

나도 이제는

세상에 맞추어 바뀌어야 한다

아니다 그것이 아니다

내가 이제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어야 한다


발전소 시인 3 / 강산


나도 아직 전기를 보지 못했으니

전기를 잘 모른다

자, 그럼 우리 함께 전기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먼저 막대자석을 생각하면 된다

N극과 S극을 생각하면 된다

우리들이 한 번쯤 실험했을

자기장을 생각하면 된다

N극에서 S극으로 둥그렇게

모여들던 쇳가루를 생각하면 된다

+전자와 -전자를 생각하면 된다

전자석을 만들어본 기억이 있으리라

못에 코일을 감고 건전지를 연결하여

쇳가루를 불러 모았던 기억이 있으리라

+와 -가 나란히 같은 쪽에 있는

네모난 건전지를 그대는

혓바닥에 대어본 기억이 있는가?

붉은 혀끝이 얼얼해져오며

시큼한 맛을 느껴본 기억이 있는가?

발전소는 그냥 돌아가는 것들이

너무 많은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수력발전소는 수차가 돌아가고

풍력발전소는 풍차가 돌아가고

화력발전소는 불꽃이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까 원자력발전소도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핵분열이란 죽음에서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세상에는 온통 돌아가는 것들이 많다

돌아가다 보면 전기도 나오고 우리들의 인생도 나온다

화력발전소에는 오늘도 태양이 파이어볼로 떠오른다


발전소 시인 4 / 강산


30년 넘게 발전소에 살아보니

세상이 모두 발전소로 보인다

땅도 바다도 발전소로 보인다

강도 하늘도 발전소로 보인다

빛도 바람도 발전소로 보인다

물도 나무도 발전소로 보인다


30년 넘게 발전기를 돌려보니

세상이 온통 돌아가는 것들 투성이다.

해와 달이 돌아가고

물과 불이 돌아가고

밤과 낮이 돌아가고

삶과 죽음이 돌아간다


30년 넘게 야간근무 하여보니

야간근무 하는 것들이 보인다

땅 속에서도 야간근무를 하고

물 속에서도 야간근무를 하고

풀 속에서도 야간근무를 하고

나무에서도 야간근무를 하고

하늘에서도 야간근무를 한다


오늘 밤에도 하느님께서

별빛을 켜고 야간근무를 한다


발전소 시인 5 / 강산


사람 속에는 심장 발전소가 있고

나무 속에는 나무 발전소가 있다

나무 속에는 양수 발전소가 있다


나무는 날마다 물을 끌어올린다

나무는 해마다 잎을 피워올리고

나무는 해마다 꽃을 피워올린다


나무 속에 발전소가 있다는 것은

환하게 빛나는 꽃빛을 보면 안다

낙엽을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돌확 / 강산


‘확독’이라고 하는 바위가 우리 집 샘가에 있었다

새벽마다 어머니는 엎드려 보리쌀을 갈았다

돌과 돌 사이에서 보리쌀은 조금씩 환해졌다

조금씩 물을 붓고 갈 때마다 온몸이 출렁거렸다


내 마음의 샘가에도 무거운 돌확이 있었다

나는 밤마다 먼 들판의 샘가에서 마음을 갈았다

선천성심장병 어린이가 텔레비전에 나올 때마다

나는 홀로 먼 들판으로 달려 나가 별빛을 갈았다


꿈과 길 / 강산


참으로 이상한 꿈을 꾸었다

길은 모두 나라의 땅이라며

길마다 교도소를 만들었다

죄인들은 먹고 놀면 안 된다며

일을 시켰다

나라가 하는 일을 반대하면

모두가 죄인이라며

잡아들여

공짜로 일을 시켰다

죄인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조용히 쉬쉬하며

자신들의 땅 안에서

숨죽이며 갇혀 살았다

그렇게 세상에는

길이 없어지고 있었다

감옥의 세상이 되고 있었다

검찰이 나라인지

나라가 나라인지

내가 나라인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꿈 밖에서도

길이 없어지고 있었다


시인 부부가 예술가에게 보내는 편지 (1)

천재 작곡가 에릭 사티!

27년간의 고독 속에서, 840번 서성이면서, 당신은 불행했나요?

글 : 장석주 시인 / 글 : 박연준 시인


“고독이란 천재 예술가들의 내실(內室) 같은 것이지요. 지구 위의 아주 작은 방! 어둡고 음습한 방, 몸을 벌레처럼 둥글게 말고 웅크려 숨을 수 있는 방. 그렇습니다, 예술가들에겐 제 예술을 빚을 그런 창조의 방이 필요한 법이지요. 당신은 그 무인도처럼 황량한 방에서 27년 동안 벌레처럼 살며 생계를 위해 샹송을 작곡하거나 실험적인 음악을 빚었지요. 오늘은 당신의 선물 같은 ‘사라방드’ ‘짐노페디’ ‘그노시엔’ 같은 곡을 듣겠습니다.”

장석주


“매일, 쓸데없이, 열렬히, 시를 쓸 때, 저는 당신의 ‘선율’을 좋아했습니다. 내 귀를 거슬리게 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소리였거든요. 시의 리듬에 근접한 음악. 원래 시가 음악과 한패잖아요? 당신의 음악엔 묘한 힘이 있어요. ‘힘없이 힘 있는’ 걸음, 목적 없이 나아가는 걸음, 반복되는 걸음, 발자국이 사라지는 걸음. 고양이처럼 무심히, 돌고 도는 걸음 말이지요.”

박연준


장석주 | 에릭 사티의 ‘고독 그 자체였던 방’


음악이 없는 삶은 상상하지 못합니다. 그런 실낙원의 삶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아요. 음악은 나의 불꽃 애인! 숱한 전위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천재 작곡가 에릭 사티(1866~1925)!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주차 경비원이나 방향제 영업사원이 되지 않고, 동사와 명사를 주로 쓰되 부사와 형용사에는 인색한 시를 쓴 나와는 달리, 당신은 해운 중개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도보 여행자나 극지 탐험가는 되지 못한 채 생애 대부분을 피아노를 치고 작곡을 하며 살았지요. 당신이 기숙학교의 외로운 소년이었다면, 나는 실업계 고등학교의 외톨이였습니다. 우리는 고독 속에서 온전한 사람들이었지요. 고독이라는 궁극의 진리 속에서 기쁨은 충분했습니다. 우리는 채석장 근처에서 산 적은 없지만 자기 자신으로 충분했다는 점에서, 어쩐지 이란성 쌍둥이처럼 꽤나 닮았어요.


당신이 죽은 지 100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엉뚱하고 익살스러운 사티, 카바레에서 피아노를 치고 몽마르트르 술집들을 순례하던 술꾼 사티, 신비주의자 사티, 고독하고 가난한 사티…. 내게 당신은 언제나 12월의 사티였어요. “나는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왔다”는 말로 나를 놀라게 한 음악가, 당신은 과도한 음주가 원인이 된 간경화로 성요셉병원에서 아내도 아이도 없이 쓸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카바레 ‘흑묘(黑猫)’의 피아니스트였던 당신과 나는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어요. 그랬으니 봉두난발에 펠트 모자, 코에 작고 동그란 안경을 걸친 기묘한 모습으로 파리 몽마르트르 일대를 취한 채 돌아다녔다는 당신을 그저 상상 속에서만 그려볼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는 겨울입니다. 우울입니다. 동천(冬天)에 빗금을 그으며 나는 쇠기러기 떼 찬 서릿발 묻은 발처럼 내 영혼이 식은 적은 없습니다만 겨울의 우리는 가난하고 쓸쓸합니다. 우리는 진흙으로 빚은 듯 겨울 저녁이 올 때 갓길의 불행을 껴안고 영원히 떠돌겠지요. 천 송이의 장미, 상냥한 유모, 화초를 키우는 소녀, 오류가 없는 삶, 홍옥(紅玉)인 듯 빛나는 기쁨, 잘 익은 토마토, 아침식사, 모닥불, 따스한 배춧국, 당나귀 방울 소리가 들리는 작은 식당 그리고 여기 멀쩡한 영혼은 없습니다. 살을 에는 찬바람이 방랑자같이 떠도는 동아시아의 겨울에는 어쩐지 “이가 아픈 꾀꼬리같이” 어느 한구석에 불편을 지닌 영혼들뿐이지요. 이 불만과 불편의 겨울을 나기 위한 양식으로 당신의 음악을 찾아냅니다.


당신은 노르망디 옹플뢰르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불과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잃고 외롭고 반항적이고 게으른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아버지가 새 아내를 맞자 열세 살인 당신은 혼자 파리로 나와 파리음악원에 들어갑니다. 음악원에서 피아노 운지법과 화성학을 공부했겠지요. 친구 한 명도 없이 국립도서관을 드나들며 플로베르 소설을 탐독하고, 바흐, 쇼팽, 슈만의 음악에 심취했다는 당신의 내면 생활에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당신은 심오한 독창성을 발휘한 음악 말고 무엇을 잘했나요? 노동과 여가시간은 충분했나요? 당신의 식성은 까다로웠나요?


당신은 불행하고 고독했나요? 차가운 겨울 저녁 파리의 카바레와 술집을 전전한 것은 그 불행과 고독을 달래기 위함이었나요? 고독은 고독으로만 극복할 수 있고, 불행은 불행에 대한 내구력을 키움으로써만 벗어날 수 있어요. 감히 당신이 겪은 고독의 깊이, 불행의 상처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파리 교외 3층 건물에 마련한 거처에서 27년을 살았어요. 당신의 방을 찾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지요. 고장 난 피아노 한 대와 방치된 잡동사니로 가득 찬 먼지들의 방에서 당신은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 방은 당신만의 고독한 영지(領地)였겠지요. 아마 당신은 ‘커다란 녹색 눈을 가진 작고 슬픈 소녀처럼’ 찾아온 가난과 고독을 기꺼이 벗으로 품었겠지요. 한때 당신은 ‘가난 씨!’라고 불리기도 했지요.


고독이란 무엇인가요? 고독이란 도피와 일탈의 한 형식, 칩거를 통해 궁극의 안녕을 누리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 혹은 개인이 세계를 향한 정신적 저항의 한 방식이겠지요. 하지만 ‘한 마리 개를 위한 물렁물렁한 진짜 전주곡’ 같은 음악을 작곡하려고 기꺼이 고독을 받아들이거나, 잉크가 아니라 피를 찍어 단 한 편의 시를 쓰려고 고투하고 멸종 직전의 생물 종처럼 살며, 고독을 궁극의 승리로 여기는 이들은 더는 존재하지 않아요. 고독이란 천재 예술가들의 내실(內室) 같은 것이지요. 지구 위의 아주 작은 방! 어둡고 음습한 방, 몸을 벌레처럼 둥글게 말고 웅크려 숨을 수 있는 방. 그렇습니다, 예술가들에겐 제 예술을 빚을 그런 창조의 방이 필요한 법이지요. 당신은 그 무인도처럼 황량한 방에서 27년 동안 벌레처럼 살며 생계를 위해 샹송을 작곡하거나 실험적인 음악을 빚었지요. 오늘은 당신의 선물 같은 ‘사라방드’ ‘짐노페디’ ‘그노시엔’ 같은 곡을 듣겠습니다. 나는 아주 가끔씩만 당신의 음악을 듣습니다.


냉기와 밤을 견디며 기어코 살아낸 생이란 건 저 너머로의 발걸음! 당신이 그랬듯이 혼자인 건 나의 존재방식! 내가 아닌 것은 내가 아닌 거고, 우리는 저마다 자기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내가 그러한 사람이라는 것. 혼자일 때만 내가 원치 않는 그 무엇이 되지 않고, 오롯하게 나로 존재하는 것이겠지요. 당신 영혼의 유적지였던 파리 근교의 작은 방을 떠올립니다. 그 방에 누구도 들이지 않고 몽상가로 혼자 살 때 당신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음악의 미래였어요. 오늘밤은 당신의 음악과 자발적 고독을 기리기 위해 동편 하늘을 덮는 검은 구름 같은 시를 쓰겠습니다.


장석주

전업 작가. 파주에 살며, 음악과 산책을 좋아한다. 주로 글을 쓰거나 인문학 강연을 한다.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철학자의 사물들》 《이상과 모던뽀이들》 《마흔의 서재》 《일상의 인문학》 《호젓한 시간의 만에서》 등과, 아내인 박연준 시인과 함께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 보오》를 썼다.


박연준 | 에릭 사티의 ‘선율과 걸음걸이’


카페 ‘검은 고양이’에서 연주를 마치고, 피아노에서 떨어져 나온 당신을 상상합니다. 몇 개의 불빛이 흔들리는 밤거리를 걷는 사람. 당신의 걸음걸이를 상상해봅니다. 어디로 갈 건가요? 당신의 피로와 추위, 혼자된 영혼을 데리고. 당신은 꽁다리에(그런 게 있다면) 시를 묻히고 다니는 사람.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칭송하거나 혐오하는데, 당신의 경우 후자일 때가 많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때로 어떤 예술가에게 세상은 유독 혹독해지죠.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할게요.


스물아홉 때 〈산책〉이란 제목으로 시를 한 편 썼어요. 부제를 ‘에릭 사티의 4분음표 걸음으로’라고 붙인 시지요. 그때 저는 당신의 선율을, 음악의 걸음걸이를 주목했습니다. 시의 갈비뼈를 빼서 음악을 지휘하는 당신의 주법을 알아보았어요. 시와 음악은 같은 음계를 사용해요. 같은 오선지에서 뛰놀고, 같은 감각회로를 갖지요. 나는 언어에 선율을, 당신은 선율에 언어를 입힌다고 생각합니다. 과장이 아니라, 진심으로요.


그때 나는 바퀴벌레가 출몰하는 방에서, 혼자 귀신처럼 서성이곤 했어요. ‘도무지 물기가 생길 일 없는 싱크대’가 달린 원룸에 혼자 살던 때입니다. 그 방엔 대부분 나와 ‘시’ 둘만 거주했습니다. 어둑하고 신산한, 음기가 넘치던 방이었어요. 슬픔만으로, 뭐든 키울 수 있을 것 같던 때였습니다.


매일, 쓸데없이, 열렬히, 시를 쓸 때, 저는 당신의 ‘선율’을 좋아했습니다. 내 귀를 거슬리게 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소리였거든요. 시의 리듬에 근접한 음악. 원래 시가 음악과 한패잖아요? 당신의 음악엔 묘한 힘이 있어요. ‘힘없이 힘 있는’ 걸음, 목적 없이 나아가는 걸음, 반복되는 걸음, 발자국이 사라지는 걸음. 고양이처럼 무심히, 돌고 도는 걸음 말이지요.


어둠 속에 숨어서 딱정벌레들은 더욱 딱딱해지고

햇빛은 수줍은 올챙이처럼 떼지어 도망다닌다

840번을 반복해도 나는 변하지 않을 테지만

잠을 토닥이느라 베개도 지쳤겠지만

거울 속엔 저렇게 눈이 많이 내린다

29년째 얼굴을 찡그리느라 근육을 혹사시켰어

음악은 쉬고 싶을 거야

새벽 4시는 숨죽인 꽃처럼 아름다울까?

- 졸시, 〈산책〉 중에서


당신은 ‘세 개의 짐노페디(Trois Gymnopédies)’ 중 1번은 ‘느리고 비통하게’, 2번은 ‘느리고 슬프게’, 3번은 ‘느리고 장중하게’ 연주하도록 주문했죠? 세 가지 형식이 어떻게 다른지, 그 미세한 차이를 알아요. 그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지도요. 비통은 슬픔보다 발이 무겁죠. 슬픔은 장중함보다 선이 길고, 종종 위로 솟아야 하고, 무게 중심이 약간 빨리 이동해야 하고요. 장중함은 나체가 아니죠. 무엇이든, 얇은 거라도 걸친 채 발을 끌듯 걸어야 하죠. 그 얇은 외투가 당신의 음악이겠죠. 어쨌든 ‘비감(悲感)’은 당신의 음악에서 공통분모예요. 그런데 이 비감이 쓰고 있는 모자가 바로 ‘명랑’이에요. 당신의 음악은 슬픈 가운데 명랑해요. 사실 이 점 때문에 당신 음악에 끌렸던 것 같습니다. 제 시를 읽고, 눈치 챘겠지만 ‘840번’이란 숫자는 당신의 숫자입니다. ‘벡사시옹(vexation, 짜증)’이란 곡을 작곡한 당신은 이런 주문을 달아놓았지요.


“연주자에게, 이 동기를 840회 연속으로 연주하시오. 미리 준비를 하고 절대적인 침묵 속에서 미동도 없이 연주하시오.”


우스워라! 840회 반복한다면, 연주 시간이 스무 시간도 넘는다 하더군요. 그래서 당신은 연주자에게 ‘미리 준비’를 하라고 한 거군요! 저는 저 자신을 840번 연주해본 적 있어요. 반복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반복은 서성임이에요. 반복은 스윙(그네)이고, 반복은 리듬이고, 반복은 걸음걸이지요. 반복은 지옥이고, 반복은 강조입니다. 반복은 걱정이고, 반복은 대체 불가능이고, 반복은 반복 자체입니다. 반복은 변주를 향하고, 이 미세한 틀어짐이 균형과 색깔을 불러와요.


당신이 왜 840번을 반복해 연주하라 요청했는지, 저는 정확히 이해해요. 그래야만 하니까요. 다 다른 반복! 다 다른 반복! 다 다른 반복!


어젯밤 두 편의 시를 썼습니다. 그중 한 편의 제목은 ‘음악의 말’인데, 첫 문장을 말해줄게요(첫 문장이 전부니까요).


“벼락처럼 빠른 걸 주운 사람? 주운 사람?”


저는 당신이 무덤에 누워 눈을 감은 채, 나직이 대답하는 상상을 합니다. ‘나’라고. 음악은 ‘흐를 때도 있지만 고여 있을 때도, 앉아 있을 때도, 싸우고 있을 때도’ 있어요. 그리고 서성일 때도 있고요. 음악이 서성일 때, 그때가 좋아요.


말하고 나니, 기도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는 뭘까요. 어떤 대화는 기도를 상회하죠.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 이 말을 840번 반복하시오! 이렇게 요청합니다.


평안하시길.


박연준

파주에 살며, 일주일에 세 번 발레를 배운다. 창문, 숲, 기러기를 좋아한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이 있고, 산문집 《소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등을 썼다.


*《topclass》2020년 1월호 * 장석주 시인은 역시 문을 잘 열어 주시고 박연준 시인은 글을 참 재미있게 잘 쓴다.


2000.jpg 꼭 이렇게 생긴 돌확이 우리집 샘가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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