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을 아시나요
자운영을 아시나요
사람들은 전기차를 친황경차라고 말한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기차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기차가 해답이라고 말한다. 수소전기차가 해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30년 넘게 전기를 만들고 있는 사람으로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정답도 아니고 해답도 아니다. 그 전기차를 움직이는 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효율은 50%도 되지 않는다. 그 전기를 풍력이나 태양광으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것 또한 친환경이 아니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또한 이산화 탄소가 발생한다. 사람들은 다만 차가 달리는 도로에서만 이산화탄소가 보이지 않으면 친환경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다. 근본부터 다시 한 번 더 깊이 생각해야만 한다. 우리들의 농업과 우리들의 식생활부터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 오늘 아침 좋은 글을 보았다. 평소에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잘 정리한 글을 만나서 반가왔다. 그 소중한 글을 여기에 모셔왔다.
"자운영 먹고 싶다." 어제 저녁, 엄마가 갑자기 말했다. 자운영이 뭐냐고 물었다. 자운영 몰라? 츄릅츄릅 입맛을 다시던 엄마가 더듬더듬 그 옛날의 풍경을 소환하는 순간, 예닐곱 유년의 기억의 편린들이 반딧불이처럼 반짝거렸다. 내 기억 속 자운영은 꽃분홍의 논 풍경이다. 논마다 분홍분홍 꽃이 나부쳐 바람에 흔들리던 게 기억난다. 워낙 까무룩한 기억이어서 아예 잊고 살았던 장면.
자운영은 콩과에 속하는 녹비 작물이다. 옛날엔 논에 자운영을 심었다. 봄에 꽃이 피면 땅과 함께 갈아엎고, 모내기를 했다. 엄마는 어렸을 적부터 자운영 나물을 참 좋아했다고 한다. 달달한 나물향이 들기름보다 더 고소하다고 했다. 자운영 뜯으러 가자! 동무들과 소쿠리를 들고 들녘에 나가곤 했는데, 운이 나쁘면 논 주인에게 붙잡혀 소쿠리와 자운영을 뺏기기도 했단다.
그도 그럴 것이 자운영은 녹비 작물이기 때문이다. 녹비 작물은 말 그대로, 천연 비료다. 콩과 식물이어서 지력을 돋구는 데 으뜸인 작물이다. 공중 질소를 고정시켜 땅을 기름지게 한다. 잎은 나물로도 먹고 뿌리와 줄기는 약재로도 사용된다. 뿌리가 강해 웬만한 잡초들도 쫓아낸다. 전혀 낭비가 없는 존재다. 농부들은 자운영을 '풋거름'이라고 불렀다. 이게 1960, 70년대 화학 질소 비료가 등장하며 논에서 퇴출됐다. 농부들은 그때부터 자운영을 더 이상 심지 않고 질소 비료를 논에 살포해왔다.
요컨대 농촌 생태계 붕괴가 시작된 것이다.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게 있다. '땅의 힘'이다. 기름지고, 유기질이 풍부한 땅은 대기 탄소를 포집한다. 지구상에서 땅보다 탄소를 더 많이 포집하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지구상 토지의 약 37%를 차지하는 경작지 태반은 탄소를 포집하지 못한다. 땅의 힘이 완전히 망가졌다.
크게 세 가지 요인이다. 경운법, 질소비료, 농약. 경운기와 트랙터로 표층을 갈아버리는 방식의 농작법은 지력을 파괴한다. 질소 비료도 마찬가지. 화학 비료는 생산과정에서도 대규모로 탄소를 방출한다. 설상가상 질소 비료가 기화되면서 방출되는 아산화질소는 온난화효과가 이산화탄소에 비해 310배 더 높은 것으로 알려진 악명 높은 온실가스다. 탄소 포집은 커녕, 대량의 온실가스를 방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농약은 땅의 유기 성분들을 모조리 휘발시킨다. 이렇게 땅의 힘을 상실한 표토층은, 탄소 포집도 못하고, 오히려 온실가스를 방출하며, 미세먼지와 대기오염의 주범이 되고 말았다.
가령, 볏짚을 보자. 예전엔 벼를 수확하고, 볏짚을 잘게 썰어 논에 뿌렸다. 그걸 땅과 함께 섞어 놓으면, 논이 유기화된다. 온갖 미세 생물들이 살아나고 대기 중 탄소를 저장한다. 농업진흥청 연구에 따르면, 이렇게 볏짚 하나만 투여해도 1ha 당 16.9톤의 탄소를 더 저장한다. 이산화탄소로 환산할 경우 62톤이다.
하지만 볏짚을 퇴비로 사용하지 않고 화학 비료를 투여하면 어떻게 될까? 탄소 저장이 무려 0이다. 땅의 힘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이다.
하면, 현재 볏짚은 어디에 쓰고 있을까? 대부분이 고기 생산을 위한 사료로 들어간다. 수확이 끝나는 대로 하얀 비닐 시트에 포장돼 사료용으로 발효된다. 이렇듯 웃픈 비대칭의 속사정은 도처에 존재한다.
볏짚은 벼과 퇴비로 그치지만, 콩과 녹비 작물인 자운영, 헤어리베치 등을 논밭에 심으면 공중 질소를 고정시키기 때문에 화학 질소 비료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헤어리베치의 경우엔 100%를 커버한다. 이들 녹비 작물은 땅을 기름지게 하고, 탄소를 저장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자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 세계의 농지 중 유기농업의 농지는 1.2%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대기업 위주로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빨리 생산하기 위해 표층을 갈아버리는 경운법, 화학 비료, 농약, 다량의 물 사용 등의 반생태적 농작법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육류 대신 두부를 열심히 먹으면 세상이 더 좋아지고 기후위기에 대응할 거라고 믿곤 한다. 절반만 진실이다. 콩은 어디에서 오는가? 곡물자급률이 엉망진창인 한국의 경우 콩 자급률은 25.4%. 주로 미국에서 대두를 수입하고 있지만, 남미에서도 오고, 러시아에서도 온다. 화전 방식으로 콩을 재배하는 남미야 말할 필요도 없고 나머지도 전부 화학농법의 콩들이다.
소비에만 초점을 맞춰서 그런 거다. 과연 저 콩은 어떻게 생산되는가?와 같은 근본적 맥락을 놓쳤을 때 생기는 오해다. 기후위기는 자연과 인간이 맺었던 불평등한 착취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콩 한 조각조차 땅의 힘을 무력화시키면서 얻은 거라면, 우리는 그 관계를 다시 재조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는 바로 이 균형이 무너져서 생겼다. 먼 나라의 반생태적 환경에서 생산한 대두콩을 탄소 배출하는 비행기나 선박으로 먼 거리를 '수입’해서 입에 넣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채식주의를 실천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일 것이다.
사실은 너무 흔하고 뻔한 이야기다. 이미 파리기후협정 때도 적지 않은 국가의 농림부 장관들이 땅의 힘을 회복시켜 기후위기에 대응하자는 이야기를 해왔고, 많은 이들이 각자의 땅을 회복시켜 탄소도 저장하고, 식량위기에도 지혜롭게 대응하고, 생태적 환경을 다시 복원하자고 말해왔지만 그저 다들 뒷등으로 흘려들었을 뿐이다.
전기자동차, 전기자동차, 전기자동차.... 늙은이들밖에 없는 한국 농촌에는 태양광을 쫘악 깔아버리고 먹거리는 '수입'해서 먹으면 그만이지와 같은 이야기를 '기후위기'라는 이름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기후위기가 자연에 대한 폭력적 수탈 때문에 빚어졌다는 이 단순한 진리는 신재생에너지 밧데리를 장착한 탈탄소 자본주의를 위해 철저히 무시되고 망각되고 있다.
더 웃픈 것은 이명박 때의 '녹색성장' 때만 해도 농촌 지자체 단체들에서 자운영과 같은 녹비 작물의 재활성화와 유기농업에 대한 담론이 뜬구름처럼 존재했지만, 문재인 때의 '그린뉴딜'에는 아예 그조차도 실종돼 버렸다. 자칭 기후위기 전문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농촌의 회복은 땅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된다. 분홍꽃 자운영 물결치는 논과 자줏빛 헤어리베치가 물결치는 과수원으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현재 지구의 경작지를 다 유기농법으로 전환하면 지구 탄소의 1/4가 저장된다는 연구가 있다. 물론 이는 과장된 이야기다. 그럴 가능성도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 원주민과 자연을 착취하지 않는 방식으로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꾸준히 경작지를 유기화하며 지력을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대전환을 이뤄야 한다.
자연과 인간의 시원적 관계는 '땅'을 매개로 이루어졌다. 토지에 대한 수탈이 기후위기를 자초한 시발점이었다. 꼬인 매듭을 풀어야 한다. 자연과 인간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과연 어떤 노동의 윤리를 통해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가?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식량을 재배해야 하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다 먹여 살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 '절대 인구 증가' 앞에서 지구의 땅을 놓고 인간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고 정치를 펼쳐야 하는가? 땅의 회복은 바로 이 질문들의 연쇄 과정이다.
질문의 과정, 새로운 관계 모색, 철학의 정초. 이게 없으면 다 소용 없다고 거듭 말하는 이유다.
본의 아니게, 어제 저녁 느닷없이 자운영을 먹고 싶다고, 자운영의 분홍분홍 꽃들이 그립다는 엄마의 말에, 오늘 아침 점순이와 산책을 하며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사진 출처(http://wildflower.kr/xe/wfc_01/7778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