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인성이 유숙하는 섬, 지리산으로 간다, 을사년 뱀사골
서귀포는 어디라도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서귀포혁신도시에서 중문관광단지까지*
이어도 길을 걷다가 태평양으로 간다
설문대할망의 막내아들을 만나러 간다
남극노인성이 유숙하는 이어도로 간다
바다에서 해(海)를 본다 물이 아프다
인간들의 욕망이 낳은 쓰레기들의 섬
썩지도 않는 플라스틱 욕망들의 얼굴,
바다 해(海) 글자를 더 자세히 본다
어머니가 보인다 어머니가 아프다
아픈 어머니에게 방사능 오염수까지 먹인다
태평양의 수평선이 트로이목마를 끌고 온다
북극곰의 신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바다와 하늘이 함께 뜨거워지고 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막내아들이
뜨거운 어머니 이마에 물수건을 올린다
유숙하던 노인성도 곁에서 돕는다
서천꽃밭 꽃감관도 불사화를 가져온다
용궁으로 가는 올레에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노랫소리 들려온다 하늘에는 서천꽃밭이 있고 땅에는 마고성이 있고 바다에는 이어도가 있다
어머니를 살리려고 노인성과 꽃감관도 떠나지 못한다
* 서귀포시에 도로명주소 ‘이어도로’가 있다
올해는 푸른 뱀의 해, 을사년이다
120년 전에 을사늑약이 있었고
80년 전에 조국 해방이 있었고
80년 전에 남북 분단이 있었다
그런데 악몽처럼 120년 전의
을사오적이 또 나라를 팔고 있다
덕분에 우리들은
을사오적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번 기회에 청소를 해야만 한다
깨끗하게 싹 정리를 해야만 한다
지리산으로 가야만 한다
지리산 뱀사골로 함께 가야만 한다
푸른 뱀이라고 했다
1905년
을사오적이 있었다
푸른 뱀이라고 했다
2025년
을사오적이 있었다
뱀은 이무기 됐을까
땅에 떨어진 이무기
용산에 살던 이무기
뱀사골로 가야 하나
우리들의 삼일 정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삼일운동이 다시 시작되었다
https://youtu.be/Pyk2EMLpCCo?si=5BimVYZwx7uo69iR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6623&docId=540695&categoryId=46623
1988년 《문학사상》 신인발굴 당선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yeardo@naver.com
서른 살까지 사는 것이 꿈이었다 왼쪽 가슴이 아팠다 남몰래 가슴을 안고 쓰러지는 들풀이었다 내려다보는 별들의 눈빛도 함께 붉어졌다 어머니는 보름달을 이고 징검다리 건너오셨고, 아버지는 평생 구들장만 짊어지셨다 달맞이꽃을 따라 가출을 하였다 선천성 심장병은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사랑하면 죽는다는 비후성 심근증, 심장병과 25년 만에 첫 이별을 하였다 그러나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바다는 나를 이어도까지 실어다 주었다 30년 넘게 섬에서 이어도가 되어 홀로 깊이 살았다 나는 이제 겨우 돌아왔다 섬에서 꿈꾼 것들을 풀어놓는다 꿈속의 삶을 이 지상으로 옮겨놓는다 나에게는 꿈도 삶이고 삶도 꿈이다 윤동주 시인을 다시 만나 함께 길을 찾는다 생명의 숲으로 가는 길을 찾아서 마지막 순례를 떠난다
1부
섬들이 징검다리처럼 있다
섬들이 징검다리처럼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다
섬들이 징검다리가 되어 나를 밟고 지나간다
내 안에 섬들의 발이 있다
내 가슴속에 섬들의 발자국이 있다
내 가슴속에 이어도가 있다
내 가슴속에 이어주는 섬이 있다
나는 징검다리 같은 이어도가 된다
징은 아플수록
아름답게 운다
이어도에서 하늘만 보았다
이어도에서 바다만 보았다
하늘에서 징소리가 들린다
바다에서 징소리가 들린다
해가 낳은 징소리가
달빛 메아리로 여울진다
바다가 낳은 징소리가
숨비소리보다 깊은 물결로 퍼진다
정방폭포로 가는 사람들을 따라서
윤동주 시인과 함께 징을 찾아간다
득음을 위한 독공이 한창이다
사과나무 속에서
고려청자 굽는 소리 들린다
조선백자 깨뜨리는 소리 들린다
수없이 많은 사금파리들이 쌓인다
사과나무 속에서
사과를 미리 빚어보고 구워보고 깎아본다
벚꽃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성질 급한 봄꽃들이 속옷 바람으로 뛰쳐나와도
사과나무는 진득하니
사과나무 속에서 사과만을 만들고 있다
울컥, 울혈을 토해내고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보았던 사람들, 이어도에서 하늘로 간다 죽어서도 하늘을 우러러본다 서천꽃밭으로 간다 버드나무 아래 우물에서, 동자들이 물을 길어와 꽃밭에 물을 주고 있다 숨결도 함께 주고 있다 서천꽃밭에서 꽃과 꽃씨를 챙겨 삼색 물을 건넌다
서천꽃밭을 나와 하늘에서 본다
소도였던 자리에 솟대가 세워져 있고, 마고할미가 살던 곳에 노고단이 있고, 단군이 내려왔던 곳에 참성단이 있고, 방사탑과 거욱대 위에 새와 돌이 있다
백두산도 보이고 지리산도 보이고 무등산도 보인다 한라산 백록담도 보이고 영실도 보인다 마라도와 가파도와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보인다
한반도 남쪽에는 수직으로 솟아오른 높은 건물들과 붉은 십자가들이 보인다 한반도 북쪽에는 김일성과 김정일 동상이 미사일처럼 세워져 있다
윤동주 시인이 방학 때마다 타고 갔던, 고향 가는 철로가 기적소리처럼 펼쳐져 있다 강처중의 고향도 보이고 문익환의 고향도 보인다
하늘에서 다시 본다
한국과 중국과 일본 중간쯤
바다 위에 공 하나 떠 있다
손을 뻗친 손바닥 자국들이
비치볼에 가득 찍혀 있다
높은 하늘에서 본다
미국과 소련이 질러대던
럭비공 하나 떠 있다
축구공 하나 떠 있다
군홧발로 함부로 차던
족구공 하나 떠 있다
더 높은 하늘에서 본다
미국이 상대선수를 바꾼다
미국과 중국이 야구를 한다
미국과 중국이 탁구를 한다
빠따로 수없이 얻어맞은
상처투성이 야구공 하나 있다
찌그러진 탁구공 하나 떠 있다
하늘에서 또다시 본다
알이 하나 있다
알이 움직이고 있다
알에서 깨어나고 있다
가장 소중한 꽃 한 송이 피어난다
고향집 바로 앞에
연어의 종착역 표지석이 있다
나는 연어가 되어
참으로 먼 길을 거슬러 돌아왔다
나도 이제 너를 만나
붉은 알을 낳아야만 한다
서귀포는 어디라도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서귀포혁신도시에서 중문관광단지까지*
이어도 길을 걷다가 태평양으로 간다
설문대할망의 막내아들을 만나러 간다
남극노인성이 유숙하는 이어도로 간다
바다에서 해(海)를 본다 물이 아프다
인간들의 욕망이 낳은 쓰레기들의 섬
썩지도 않는 플라스틱 욕망들의 얼굴,
바다 해(海) 글자를 더 자세히 본다
어머니가 보인다 어머니가 아프다
아픈 어머니에게 방사능 오염수까지 먹인다
태평양의 수평선이 트로이목마를 끌고 온다
북극곰의 신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바다와 하늘이 함께 뜨거워지고 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막내아들이
뜨거운 어머니 이마에 물수건을 올린다
유숙하던 노인성도 곁에서 돕는다
서천꽃밭 꽃감관도 불사화를 가져온다
용궁으로 가는 올레에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노랫소리 들려온다 하늘에는 서천꽃밭이 있고 땅에는 마고성이 있고 바다에는 이어도가 있다
어머니를 살리려고 노인성과 꽃감관도 떠나지 못한다
* 서귀포시에 도로명주소 ‘이어도로’가 있다
오랜만에 빈 고향집에 돌아왔다
빈터에 꽃을 심다가 허리를 폈다
깨복쟁이 친구 어머니가
감나무 아래 샘터에서 목욕을 하고 계신다
어머니와 친구는 오래전 흙이 되어
등목을 할 수 없다
나의 등과 친구 어머니 등에 손이 닿지 않는다
가만히 다시 내려다보니
내가 심은 꽃들이 등을 내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뼈만 남은 저 감나무 말벗이라도 되어야겠다
심우도(尋牛圖) 속으로 걸어간다 나의 흰 소는 보이지 않고 검은 소들이 있다
소들이 소나무 아래 모여 있다 멍에도 코뚜레도 없다 숲에서 뜯어먹은 풀을 되새김질하며 서로의 눈빛을 본다 서로의 등을 핥아주는 소도 있고 죽비처럼 꼬리로 엉덩이를 치는 소도 있다 새로 발견한 풀밭을 알려주는지 귓속말을 속삭이는 소도 있고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는 소도 있다
나도 소를 길렀다 나는 늘 길을 들이려고 했다 내가 기르는 소는 코뚜레를 하였고 멍에를 하고 쟁기질을 해야 했다 갱본에서 쉬는 동안에도 말뚝에 박혀 있어야 했다 나의 소는 소나무 그늘에서 쉬어보지 못했다
나는 흰 소를 타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불 생각만 하였다 소와 함께 놀아줄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가 소를 업어 줄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소들이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소는 걸어가면서도 텅텅텅 똥을 잘 싼다 풀을 먹고 자란 소들이 풀에게 밥을 준다 나도 소나무 그늘에 앉아 바다를 보다가 소들이 들어가는 숲으로 따라 들어간다
숲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가 귀를 찢는다 소나무가 없어져야 땅값이 오른다며 소나무를 죽이고 있다 그해 겨울의 숲처럼 숲은 온통 소나무 무덤이 된다
숲에 소나무가 없다 소들이 함께 모여서 쉴 곳이 없다 가시덤불 속에서 가시에 찔리며 소들이 서 있다
소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어렵게 새로 돋아나는 소나무 새싹에 콧김을 불어넣는다
나는 심우도(尋牛圖) 밖으로 나와 심우도(心牛圖)를 그린다
당신은 나에게 등을 보이고 떠나버린 등나무였다
등만 보이던 그 등나무가 오늘은 등꽃을 켜고 있다
다랑쉬에는 다랑쉬마을이 들어있다
오름은 움푹해진 백록담도 품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평생 달과 함께 살았다
집들이 모두 불타고 굴속으로 들어갈 때에도
달과 함께 가재쑥부쟁이와 시호꽃을 피웠다
사람들이 다랑쉬굴 안에서 연기가 된 뒤에도
달은 잊지 않고 찾아와 섬잔대와 송장꽃을 피웠다
무쇠솥과 항아리와 놋수저와 신발만 남기고
열한 명이 들려 나와 바다로 떠난 이후에는
더 이상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어둠 속에는 아홉 살 아이가 울고 있는데
벗겨진 신발 찾으러 들어가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잠겨버린 어둠은 열리지 않는다
달이 찾아와 소리쳐 불러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곁에 있는 용눈이오름 아끈다랑쉬오름 높은오름
돛오름 둔지오름이 힘을 합쳐도 문을 열 수가 없다
남아있는 늙은 팽나무가 그저 바라볼 뿐
무너진 돌담도 집터도 우물터도 안으로 눈물 흘릴 뿐
달을 따라서 달의 고향으로 온 나도 그저
서로의 얼굴만 바라다볼 뿐
푸른 뱀이라고 했다
1905년
을사오적이 있었다
푸른 뱀이라고 했다
2025년
을사오적이 있었다
뱀은 이무기 됐을까
땅에 떨어진 이무기
용산에 살던 이무기
뱀사골로 가야 하나
우리들의 삼일 정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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