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꿈삶글

배진성 시인의 꿈삶글 0017

― 연어의 종착역

by 강산
002.png

고향집 바로 앞에

연어의 종착역 표지석이 있습니다

나는 연어가 되어

참으로 먼 길을 거슬러 돌아왔습니다

나도 이제 당신을 만나

붉은 알을 낳아야만 합니다



001.png




연어의 종착역




고향집 바로 앞에

연어의 종착역 표지석이 있습니다

나는 연어가 되어

참으로 먼 길을 거슬러 돌아왔습니다

나도 이제 당신을 만나

붉은 알을 낳아야만 합니다



꿈삶글-017-001.png

https://youtu.be/rvAn4vEZGSE?si=BZ3OG1yThh4tbPoh



배진성 시인의 꿈삶글 0017

―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배진성 시인의 꿈삶글에서 <꿈삶글>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세상은 이제 많이 바뀌어서 한 사람의 <꿈삶글>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꿈과 삶과 글이 더욱 중요할 것 같다

얼굴책을 보니 몇몇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김주대 시인, 류근 시인, 조하성봉, 이원규 시인..... ,


국민의 힘 하는 짓들이 참으로 한심하다

내란을 일으켰던 대통령과 당이 또 대통령을 하겠단다

국민의 힘 김문수와 한동훈이 3차 경선에 진출했다

홍준표와 안철수는 탈락했다

그런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의 단일화를 거론한다


국민을 우습게 알고 정치를 하고 있는 인간들이 많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정치인들보다는 시인들이 더 좋다

그리고 요즘은 특히 지리산 사람들과 지리산에 관심이 많다





* 조하성봉님의 페이스북 글과 사진 / 나는 아직 조하성봉님을 잘 모른다 지리산에 관한 글과 사진을 많이 올리고 지리산 빨치산에 대한 공부를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듯.......,


어제 이재명 대통령후보 수락연설에서

제주4.3에서 광주 5.18과 연결해서 12.3 계엄을 말하는데 좋은 연설이었다.

민간인 학살과 국가폭력이 핵심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승만과 박정희 묘를 찾아 참배를 했다.


남한에서 처음 계엄령이 떨어진 곳은 48년 10월 여순항쟁이었다. 다음이 제주 4.3이다.

언론에 보도된 바도 있지만 남한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다. 그러니까 법도 없는 상태에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것이다. 후에 계엄법이 제정된다.


두 장의 사진.


#1


1948년 5월 5일 ‘4.3사건’ 대책을 협의하기 위해

제주비행장에 도착한 미군정 수뇌부.


"화평이냐 진압이냐"는 갈림길 선택을 놓고 열린 이날 9인 비밀회의에서 경찰총수인 조병옥 경무부장은 강경진압을,

경비대 김익렬 연대장은 평화적인 해결을 주장하다가 몸싸움을 벌였다.


딘 장군은 다음날 김익렬 연대장을 해임조치하고, 강경진압을 선택했다.


왼쪽부터 보좌관, 군정장관 딘 소장, 통역관, 유해진 제주도지사, 제주군정관 맨스필드 중령, 안재홍 민정장관, 경비대 송호성 총사령관, 조병옥 경무부장, 김익렬 제9연대장

/(미 국립문서보관소).


그 후 김익렬은 6월 16일, 여수 제14연대장에 보직되었으나 후임이었던

박진경 대령이 6월 18일 암살되자 암살 배후로 의심을 받아

7월 15일 제14연대장 직에서 해임되어 서울의 특무부대로 불려가서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혐의점이 없으므로 풀려나서 8월 8일 온양의 제13연대장이 되었다.


특무부대에서 조사를 받는 사건은 김익렬에게 전화위복이 되었다.

만약 제 14연대장직에 그대로 있었다면 10월 19일 여·순 반란의 반란부대장이 되므로서 파면되어 군생활이 끝났을 것이다.

김익렬은 제1여단 13연대장이 되므로서 그 후 여단이 사단으로 승격되자 제1사단(사단장 백선엽 대령)의 예하부대가 되어,

중장으로 예편했다.


‘4.3사건’은 미군정과 친일경찰, 서북청년단의 탄압과 횡포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다.

48년 5월 10일 남한 단독선거를 저지하기 위한 통일독립운동의 항쟁이다.

북에서도 그렇게 말한다.

그래서 ‘레드 헌트’가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다.

북과 같은 주장을 한다고..:


4.3항쟁이 육지에서도 널리 알려지게된 이유가 문상길중위의 박진경연대장 암살사건 때문이다.

서울로 압송되어 군사재판을 받고 남한 정부 수립 후 최초로 사형된 인물이다.

그 재판과정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고립되어 있던 제주 4.3항쟁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하지만 문상길중위는 여전히 음지속에 있다.


#2


칼 마이던스의 여순항쟁 기록집을 샀다.

박정희가 나오는 사진 한장 때문이다.

‘역사강사’라는 타이틀로 유투브에서 강의를 하는 배기성이라는 동무가

구독자가 100만이 넘는 매불쇼에 나와 4.3강의를 하면서

이 사진을 띄어놓고 맨우측 인물이 ‘제임스 하우스만’이라고 우기길래

실소를 금치 못하다가 원본을 확인하고 싶어 구입했다.


목소리 엄청 크고 열정적인데, 팩트는 아주 소홀히 한다.

4,3항쟁에 대한 강의 전반이 그렇다.

의도가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의 책임을 묻는 것이라서..그냥 넘어간다.

그럼에도 팩트는 좀 확인하고 주장해라... 배기성아.


여수 14연대 항쟁은 4.3을 진압하기 위한 제주도 파병을 거부하면서 일어난다.

48년 10월 반군토벌전투사령부에서 회의하는 모습이다.

박정희 왼쪽이 5여단 군사고문관 무어 중위로 추측.


송호성 사령관 오른쪽이 임시군사고문단을 대표하는 작전책임자 할리 풀러(Hurley E Fuller) 대령.풀러 대령 오른쪽은 풀러 대령의 부관(이름은 설명이 없음)


** 마치 하우스만 대위가 여순항쟁에서 모든 것을 지휘하는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실제로 여순항쟁에는 할리 풀러 대령이라는 영관급이 직접 지휘하였음.

칼 마이더스 사진에는 할리 풀러 대령이 아주 많이 등장함.

/주철희 박사의 설명.


박정희는 호남지구전투사령부 남부지구(제5여단장, 김백일 중령) 작전참모였다.

이 사진은 10월 말, 광주에서 칼 마이더스가 찍었다.

11월 11일 박정희는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언도받았다.


만주국육군군관학교 졸업 후 일본육군사관학교 본과(2년)에 진학, 1944년 4월 견습군관으로 관동군 635부대에 배치된다.

1946년 9월 귀국한 그는 조선경비사관학교에 입학해 3개월 단기 과정을 마치고, 국방경비대에 들어가서 포병 소위 계급을 부여 받는다.

복무 도중에 셋째 형인 공산주의자였던 박상희가 대구 10월항쟁으로 경찰에게 사살되었다.


박상희의 친구였던 이재복의 권유로 남조선로동당에 들어가서 국군 내 남로당 군사총책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제1연대 정보주임장교이자 육군본부 정보국에 근무하던 김창룡이 주도한 숙군 작업 도중에 여수·순천 반란사건과 연루돼 체포된다.


수사 과정에서 군내 남로당 조직원 약 300명의 명단을 제공하고 숙군사업에 적극 협조한 점을 인정받아 1949년 2월 13일 1심에서 사형을 면하고 “파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2심에서 “징역 10년으로 감형"되었고 같은 만주국 출신이자 당시 육본정보국장으로 김창룡의 직속상관 백선엽 대령과 정일권, 김정렬, 장도영, 원용덕 등의 만군 출신 군인들의 구명으로, 처벌을 면하고 예편되었으며 전향하게 된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육군본부 작전정보국에 복귀.

1961년 5.16쿠데타의 수괴.

죽어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며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해방과 미소의 점령 분단, 4.3항쟁과 여순항쟁, 이어지는 빨치산투쟁.

그리고 한국전쟁. 여전한 분단과 대립.

이 전체의 과정을 연속성 속에서 봐야만 역사가 보인다.

.

.

#진달래산천


https://www.facebook.com/100001280261431/posts/pfbid0dtm7qT4Rzx1wzWGeDFzihfxFd2PRjGq9MZPwCh9frH2TYAwLLXJ5wX5YCck8doQPl/?app=fbl


백순잔치를 엽니다.

물론 잔치 준비는 정지아작가가 합니다.


전남도당 구례군여맹원으로 지리산에 입산했다가

남부군 정치지도원이 되었던…

이옥자.


정지아의 소설 빨치산의 딸,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그녀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죠.


함께 하실분들은

5월 3일(토) 12시에 오셔서 축하하고

함께 먹고 노는 시간이 될듯 합니다.


이옥자선생님이 사시는 집 마당에서 엽니다.


아래 글은 구순 잔치 후 쓴 글.


#1


왜 이렇게 슬픈 얼굴인가.

<남부군> 정치지도원이었던 이옥자의 구순을 축하하는 자리.


그녀가 말했다.

“이상한 일이지. 이런 날 왜 전 남편과 아이가 생각나지...”


그녀의 전 남편 최규복은 구례군당 조직부장이었다.

48년 5.10선거를 반대해 피아골로 들어가 야산대 활동을 시작한다.

남한에선(제주섬 빼고) 가장 이른 시기에 무장투쟁에 들어갔다.


48년 10월 여순항쟁 이후 그녀도 천은사골 광의면당에 있다가 구례군당의 호출을 받았다.

48년 12월 말, 태어난지 6개월된 아이를 업고 질매재를 거쳐 피아골 구례군당으로 입산한다.

이듬해 그 아이는 겨울 지리산에서 죽는다. 최규복은 한국전쟁 시기 낙동강 도하 중 전사한다.


그녀가 말했다.


"그 젊었던 수많은 동지들 수많은 생명들 모두 잃어버리고

원하던 세상도 아닌 이 세상에서 여직 목숨 붙이고 있는 것은

정말 죄스러운 일이야..."


"....."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데…. 살아 있으니 사는 거지.”


#2


" 51년 11월 말쯤 이었을 거야.. 왕시루봉 능선에서 비를 맞으며 커다란 불을 가운데 피워 두고 오락회를 열었지. 유행가는 부르지 못하고 장기자랑 같은 걸 하지.. 그 친군 소울음 소리같은 목소리 흉내를 멋지게 내는... 요즘 같으면 개그맨이었지. 머리도 아주 좋고.. "


48년 5월에 지리산에 들어와 54년 봄까지...

그 누구보다 빨리 그 누구보다 오래 지리산에 남았던 사람들.

구례군당유격대. 그들 모두를 구순잔치에 모셨다.


강경구 고재호 김상금 김우선 김흥복 양순기 김효선 박광춘 박귀성

박대수 박병하 박종하 박중래 이상암 장성수 정재숙 조용식 최규동 최규복 양순기


그리고 구례 출신의 빨치산들(전남도당 포함)


오재원 오홍근 왕병석 유상기 유장영 이강만 이분호 이상률 임창식 정귀남 정원모 정상렬 정운창

정호연 조삼순 조영길 조용만 조정섭 최규석 최복삼 최석태 최성칠 최정호 한창희 한종희 한주희 강영주 강효원 공인주 구봉례 구재회 구춘길 김귀남 김도선 김도연 김병추 김봉옥 김성균 김순덕 김숭동 김영만 김오동 김용재 박노익 박정하 박춘산 선동기


<전남유격투쟁사>에서 구례 출신들만 따로 정리했다.


#3


"...

이른 저녁을 해 먹고 그들 일행은 해거름판에 군당을 떠났다. 피아골 능선을 따라 올라 왕시루봉에 도착하자 어둑어둑해졌는데 주위가 온통 불바다였다. 그날 하루 내내 왕시루봉에서 검붉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토벌대들이 춘계공세의 일환으로 불을 지른 모양이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꽉 들어찼던 숲이 다 타고 아직 남은 잔 불길이 그때까지도 일렁이는 중이었다. 불더미를 뛰어넘기도 하고 피해서 돌기도 하며 그들은 왕시루봉 능선 비탈을 따라 내려갔다. 보름인지 둥그렇게 떠오른 달빛이 무척 밝았다.

곧게 뻗은 왕시루봉 능선이 섬진강을 앞에 두고 기세를 꺽고 몇 갈래의 작은 능선으로 나뉘는 부근에서 그들은 원능선을 버리고 한수내 쪽으로 접어들었다. 한수내와 머리마을 사이의 강이 얕아 그쪽으로 도하할 작정이었다. "

- <빨치산의 딸> 2부 p175


한수내 맞은 편 무수내에 살고 있다.

그녀의 집 창문에선 한수내와 왕시루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사진의 오른쪽 봉우리가 왕시루봉이다. 타고 내리면 한수내 섬진강과 만나게 된다.

왼쪽 가운데 햇살 비치는 높은 봉우리는 무등산이다.


"지리산 어느 곳 어느 골짝 우리가 지나치지 않은 곳이 없어.

그러니 지리 골짝 모두가 우리의 트야. "


지리 아흔아홉골 그 어디,

그들의 피가 뿌려지지 않은 곳이 어디 있을까.


# 4


한번은 감옥을 살고 나온 뒤 결혼한 두번째 남편인 고 정운창선생과 함께 집에 모셨다.

두 사람의 대화다.


이- 조감독집 봐라 먼지도 하나 없네. 이 사람은 청소를 잘 안해.

조- 어제 오신다길래 청소를 했죠. 저도 평소엔 지저분해요.

정- 이 사람아! 우리가 산에서 살 때 생각해봐... 먼지가 뭐냐,

더한 것들을 둘러쓰고 먹고 살았는데......


이- 그땐 빨치산 시절이라 그랬지.

정- 지금도 마찬가지야, 난.

이- 그래도 그렇지. 사람들이 집에 오면 창피해서는 안되지.


정- 이 봐! 우주가, 인간이 어디에서 생겨났나.. 먼지에서 생겨났어.

뭘 그래....먼지로 부터 우주만물이 생겨난거야..그러니 먼지는 먹어도 되.

그리고 난 여전히 지금 사는게 빨치산 시절과 다를바가 없다고 생각해.


이-어이! 정운창씨 나중에 나 좀 봐!


이옥자는 남편을 평소에도 그렇게 부른다.

모두들 환하게 웃었다...



#5


오전 잠시 잠시 비가 내렸고 가까운 친지들만이 자리했던 날,

조금은 가라앉은 자리....가객 정용주의 분투가 빛났다.

역시... 이 날의 피날레는

‘내 나이가 어땠어’ 였다.


야이야..

내 나이가 어땠어..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야...

.

.

#진달래산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