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1. 출발 11화

9. 황금향

강산 시인의 세상 읽기 &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by 강산

내가 심었던 감귤나무에서 첫 열매가 열렸다

따서 먹어보니 황금향이다

맛은 좋은데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는다

껍질과 알맹이가 너무 착 달라붙어 있다

나의 심장처럼 겉과 속이 잘 분리되지 않는다


이어도공화국 평생학교에 나무 고아원이 있다. 버려진 나무들을 가져와서 기르는 곳이다. 요즘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버려지는 나무들이 많다. 버려진 감귤나무 묘목도 주워 와서 심었는데 올해 첫 열매가 열렸다. 따서 먹어보니 황금향이다. 우리들이 보통 먹는 감귤은 온주밀감이다. 제주에서 가장 흔한 감귤이 온주밀감이다. 온주밀감 외에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황금향 등이 있다. 그 중에서 나는 황금향이 가장 맛있다. 그런데 이 황금향은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다른 감귤들과 달리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는다. 껍질과 알맹이가 너무 착 달라붙어 있어서 껍질 분리가 쉽지 않다.


나의 심장도 그렇다. 보통사람들은 심장과 가슴 사이에 막이 있어서 심장을 잘 분리할 수 있다고 한다. 심낭 혹은 심막이라고 하는데 심장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이 막이 손상되어 심장과 가슴의 분리가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심장수술을 여러 번 할수록 심장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위험이 배가 된다고 한다. 심장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흉골을 전기톱으로 자르고 가슴을 열어야만 한다. 심장수술이 끝나고 흉골이 다시 붙는 과정에서 심장 표면도 함께 가슴에 달라붙는다고 한다. 나는 그런 위험한 심장수술을 이미 두 번 받았다. 1990년 6월 8일에 1차 수술을 받았고 2017년 12월 22일에 2차 수술을 받았다. 만약에, 또 다시 잘못되어 3차 수술을 받게 된다면 심장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심장이 터져버릴지도 모른다고 하니 잘 관리해서 3차 수술을 받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도 어쩌면 그럴 것이다. 몸과 마음이 잘 분리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가슴과 머리가 잘 분리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가슴과 마음이 잘 분리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마음과 마음이 잘 분리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상처가 깊으면 깊을수록 마음을 다스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상처가 아무는 과정에서 흉터가 너무 깊이 스며들어서 스스로의 마음을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는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어야만 한다. 좋은 사람이 되려면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만 한다. 이어도공화국에는 그런 좋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날이 흐리면 사람들은 구름이 하늘인 줄 안다. 하늘이 없어지고 없는 줄로 안다. 하지만 구름을 뚫고 올라가 구름 위로 날아보면 안다. 구름 위에는 더 찬란한 하늘이 있다. 우리들의 삶도 그렇다. 삶에 지치면 비행기를 타라. 날이 흐리면 비행기를 타라. 구름이 하늘인 줄 아는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라. 그러면 알 수 있다. 구름을 뚫고 힘차게 올라보면 알 수 있다. 구름 위에도 찬란한 하늘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삶도 역시 그렇다. 삶이 힘들고 지치면 우리들의 앞날은 없을 것처럼 답답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 고비만 잘 넘기면 또 다른 기쁨이 펼쳐질 것이다. 구름 위를 날아다니는 빛나는 비행기들을 보아라. 우리들도 얼마든지 저 비행기들처럼,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 자신만의 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자, 이제는 언제라도 길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이어도공화국으로 오라. 구름 위에서도 길을 찾지 못한다면, 이어도공화국에서는 반드시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 내가 반드시 그대의 길을 찾아줄 것이니 걱정 하지 멀고 무조건 나에게로 오라.


나도 오랜만에 비행기를 탔다. 구름 위에서 또 다른 하늘을 볼 수 있는 것 만으로도 비행기 값은 아깝지 않다. 오랜만에 나는 세상 구경을 나갔다. 심장이 아파서 나는 이렇게 가끔 세상 구경을 나간다. 병도 잘 사귀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나는 서울대학은 가지 못했지만 서울대학병원에서 인생을 배웠다. 그리고 덕분에 이렇게 용산 전자랜드에 들러 노트북도 하나 얻었다. 이 특별한 노트북은 원고료를 선불로 받은 것이니 어쩔 수 없이 나는 앞으로 피 같은 글을 써야만 한다.


그리고 오늘은 더욱 특별한 날이어서 종로 거리를 걷고 청계천변 물길도 걸었다. 물가에는 암수 한 쌍의 오리와 작은 학(?)이 나란히 서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징검다리도 건너보고 서울의 물소리도 자세히 들어보았다. 그리고 시인동네 찾아가는 대신에 고영 시인과 첫 전화 통화도 하였다. 고영 시인은 충북 단양군에 있다고 하였다. 배영옥 시인을 잘 보내주기 위해서 단양으로 갔다고 하였다. 아직도 배영옥 시인을 잘 보내주지 못해서 앞으로도 더 그곳에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시인동네도 아예 단양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하였다. 자세한 내막은 내가 잘 알 수 없지만 배영옥 시인은 그렇게 외롭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고영 시인의 말에 의하면 배영옥 시인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였다. 병원에서도 포기해서 시골로 함께 갔다고 하였다. 단양에서 겨우 두 달 버티다가 떠났다고 하였다. 하지만 배영옥 시인이 떠난 다음에도 고영 시인은 그녀를 보내지 못했다고 하였다. 무슨 사연인지 나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냥 지켜보기로 하였다. 나는 그냥 좋은 친구가 되고 싶었다.


나는 오늘 어두운 아침에 갔다가 어두운 밤에 돌아왔다. 공항 대합실에서 나는 고영 시인과 통화를 하다가 가장 나중에 비행기에 올랐다. 그런데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휴대폰을 의자에 그냥 두고 비행기를 타고 말았다. 분명히 같은 비행기에 먼저 타 있을 것이었다. 나는 대합실 의자에 홀로 얌전히 앉아있는 그 휴대폰을 들고 들어가, 비행기 안에서 그 휴대폰 주인을 찾느라고 시간이 또 흘렀다. 안내방송까지 하며 찾아주니 휴대폰 주인이 나타나서 감사 인사를 하였다. 오늘 하루는 특별히 더 길고 더욱 인상 깊은 날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밤에 또 긴 꿈을 꾸었다. 하루는 늘 같은 시간 같아도 우리들의 시간은 날마다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수렁에 빠진 나날이었다. 숫자의 세상에서 숫자로 산 나날이었다. 봅슬레이처럼 빠르고 굽은 길을 달리고 있었다. 위험하고 이상한 배를 타고 쏜살같이 달리고 있었다. 나는 울며불며 비명을 지르며 달리고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돌아와 보니 고향이었다. 초등학교 토끼장에서 어머니가 나오셨다. 환자복을 입고 커다란 똥주머니를 차고, 삐쩍 마른 어머니가 나오시다 자꾸만 넘어지셨다. 섬에는 잘 다녀왔냐? 아이고, 내 아들 잘 왔구나! 넘어지며 비틀거리며 겨우 다가온 어머니가, 다시 넘어지며, 와락, 나를 껴안았다. 나는 뒤로 넘어져 일어서질 못하고, 어머니 또한 똥주머니에 튕겨져 나가 뒤로 넘어지셨다. 더 이상 일어서지 못하고 땅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나, 어머니는 자꾸만 다시 일어나 나를 껴안으려 하셨다. 하지만 그 똥주머니 때문에 나를 온전히 안지 못하고, 또 다시 자꾸만 뒤로 넘어져 자빠지셨다. 어머니는 한참을 드러누워 생각하시다가, 비장한 결심이라도 한 듯, 자신의 생명 같은 똥주머니를 터트리고 나를 끌어안으셨다. 그리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으셨다. 어머니의 목숨이었던 똥을 뒤집어쓴 나는, 꺼억꺼억 소리 내어 펑펑 울기 시작했다.


꿈 밖에서도 나는, 뜨거운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뜨겁고 깊이 울면서, 숫자의 늪에서 겨우 빠져나오고 있다. 아무리 길어도 문장이 되지 못하는 숫자들, 아무리 많아도 감동을 주지 못하는 숫자들, 아무리 생각해도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숫자들, 숫자에 어머니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따뜻해지지 않는다. 숫자에 어머니의 숨결이 돌지 않으면 사랑이 싹트지 않는다. 나는 밤새 울음으로 쌓아놓은 꿈똥을 바라보며, 어머니의 손길과 어머니의 숨결을 느낀다. 그리고 젖은 숫자들의 낙엽을 밟고 걸어 나와, 평생의 꿈을 향해 젖은 몸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하지만 오늘 먹은 황금향은 꿈똥처럼 참 향기롭고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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